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09)
먼치킨 길들이기 109화
더군다나 묘하게 태연자약한 태도가 더더욱 케이릴의 심기를 자극했다.
그가 누구인가. 에렉시나의 길드장인 케이릴 혼이다.
제국의 내로라하는 길드로 구성된 참가자들 중 어느 누가 자신을 저런 오만한 눈으로 바라보겠는가.
“꼼수를 써서까지 위에 올라서려고 하다니, 아주 감동이야.”
곧이어 에렉시나의 길드원들이 케이릴을 거들기 시작했다.
“실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눈물 없인 못 보겠네.”
“그래서 1층에서도 혼자 다녀온 거 아니야? 이거 그대로 둬도 되는 건가?”
“그러게. 1층에서부터 촉이 쎄한 것이 다 이유가 있었네.”
에렉시나는 서로 낄낄거리며 말을 받아 냈다.
하나 평소 같았으면 비난에 동참했을 다른 길드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묘한 기류를 느낀 그들은 쉴 새 없이 떠드는 입과는 달리 분위기를 살피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렇게 에렉시나가 의아해하는 그때, 제게 쏟아지는 조롱을 잠자코 듣기만 하던 에이얀이 음, 작게 목을 울렸다. 그러곤 이내 생글생글 웃었다.
“입으로 떠들어도 성과에 반영이 되나 보지? 잘도 떠드는 걸 보면.”
그가 ‘그동안 입으로 점수 얻은 걸 지금 알았다.’까지 말하자, 케이릴이 표정을 우그러트리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저 애송이가 우리 에렉시나의 실력을 시험해 볼 기회를 받고 싶다는데?”
케이릴은 곧장 제 칼자루에 손을 댔다.
이에 상황을 지켜보던 로우가 그를 막아섰다.
“케이릴 혼. 검을 뽑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을 거다.”
그러자 케이릴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래? 돌이킬 수 없게 되면 대체 어디의 누가 손해일까? 궁금해 죽겠는데?”
그의 말과 함께 에렉시나가 전투를 준비하듯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에렉시나와 흑야 사이에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결국 상황이 쉬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관리자 프로스트가 나섰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의 분쟁은 묵인하지 않겠습니다. 상층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렸으니 이제 올라가 주십시오.”
그러나 상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에렉시나나 흑야 중 어느 누구도 먼저 발을 떼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다는 듯 프로스트가 로우를 바라보았다. 너희가 먼저 자리에서 떠나라는 뜻이었다. 로우가 그나마 제일 말이 통하는 인물이라 생각해서였다.
이에 수긍한 듯 로우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게이트로 몸을 돌렸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에렉시나를 훑은 크샨들은 그제야 로우를 따라 게이트로 향했다.
“그런데 그 키네미아 리온 요-정님은 따라오지 않은 모양이지?”
“요정은 무슨 요정이야. 오크일 게 안 봐도 뻔하지.”
“아, 그래서 안 따라온 건가? 신비주의로 남으려고?”
에렉시나의 길드원들이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떠나는 흑야를 뒤따랐다.
그때였다. 그 어떤 조롱에도 평소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던 셋의 기세가 날카로워진 것은.
* * *
6층으로 들어서자 그들이 선 곳은 협곡 아래 골짜기였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가파른 곡벽 위에서 그들을 훔쳐보는 수많은 눈이 느껴졌다.
유령처럼 일렁이는 형체는 그들이 예사 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쉔 티엔은 아무런 오러도 불어넣지 않은 침을 던졌다. 그러자 침이 마물을 통과해 지나쳤다.
“무속성이군요.”
비주가 말했다. 무속성은 일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오러를 감아야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탈진을 조심해야겠군.’
이번 층에서 탈락자들이 대거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대강 어림해도 숫자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저 마물들을 다 베어 내기 위해 오러를 사용해야 한다면 마력이 남아나지 않을 터.
하나 흑야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물을 더 많이 벨수록 환산한 점수도 높아질 테니까. 지금까지 날려 버렸던 점수들을 단번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쉔 티엔과 에이얀이 가만히 있어 준다는 전제하에서였지만.
지금처럼 오합지졸로 움직이는 전략을 고수한다면 절대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내 마렌이 긴장한 기색으로 로우의 명을 기다리는데, 그가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가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이자 크샨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에렉시나의 조롱이 로우를 분노케 할 정도였던가?
“감히 요정님을…….”
잇새로 내뱉은 목소리를 들은 마렌이 가볍게 탄식했다. 화가 난 포인트가 그쪽인 모양이었다.
그뿐인가. 분에 찬 건 쉔 티엔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가 우드득 소리를 내며 목을 돌렸다. 쉔 티엔은 탑에 입성한 뒤 처음으로 의욕이란 게 생긴 눈이었다.
그때 에이얀이 양해도 구하지 않고 그들 전부를 오른쪽 곡벽 위로 워프시켰다.
갑작스레 나타난 마물에 크샨들은 검을 뽑아 들고 오러를 입혔다.
쉔 티엔과 로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쏘아 들어갔고, 크샨들이 로우의 뒤를 따르려는 때였다.
마렌이 주위에 에이얀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에이얀 님?”
에이얀은 왼쪽 곡벽에 홀로 선 채였다.
쾅!
콰과광!
그가 손을 튕기자 거대한 빛의 돔이 미친 듯이 곡벽 위를 깎아 내면서 마물들을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재차 손을 튕기니 하늘에서 수많은 빛의 화살이 쏟아졌다.
“키에에에-!”
연이은 폭발음과 마물의 괴성이 협곡을 뒤덮었다.
마물의 지옥도를 만들어 낸 에이얀은 시선을 돌려 마렌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나긋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 살고 싶으면 점수는 알아서 챙겨야지, 크샨.
당장 순위를 올리지 못하면 자신이 손수 죽여 주겠다는 뜻 같았다. 마렌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검을 휘둘렀다.
* * *
탑 안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키네미아는 제게 책을 내민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창백한 안색을 가진 20대 초반가량의 미남자였다.
“다른 책이었나?”
그의 물음에 주저하던 키네미아가 이윽고 남자가 내민 책을 받아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그는 빙그레 웃다가 그녀가 안은 책의 제목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음, 그 책은 내용이 별로야. 내용 대부분이 저자의 고약한 상상이지. 봐도 입맛만 나빠질 거라 그리 추천하지는 않아.”
키네미아가 책을 내려다보았다. ‘역대 제일의 사관, 제국의 기원을 말하다!’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뭔가 다 안다는 듯이 얘기하네.’
키네미아는 경계하는 기색으로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았다.
옷차림부터 말투까지 잘 교육받은 태가 나지만, 사서는 아닐 터였다. 아까 보았듯이 사서들은 하늘색으로 된 코트 형태의 겉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아무나 들이지 않는 황립 도서관에 들어올 정도면, 고위 귀족?’
설마 원한인은 아니겠지? 괜한 시비에 말려드는 건 질색인데.
그를 향한 시선에 서린 ‘누구냐.’는 질문을 알아차린 듯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도서관의 지박령이야.”
……뭐라는 거야? 뜬구름 같은 소개에 키네미아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상한 사람인가.’
……피해야겠다.
“쿨럭!”
그때 남자가 입을 막고 기침을 하더니, 왈칵 피를 뱉어 냈다.
엥! 피?!
고맙지만 이제 도움은 됐다고 말하려던 키네미아는 그의 기침에 말문이 막힌 채 입을 벌렸다.
깜짝 놀란 키네미아가 새파랗게 질린 손을 파르르 떨었다.
“……피가!”
하지만 그는 손등으로 입을 훔치더니 서글서글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 보이는 것보다 상태는 괜찮아.”
물론 그의 창백한 안색은 보이는 것보다 더 괜찮지 않아 보였다.
“피를 쏟았는데?!”
그러자 하하, 웃은 그가 흐느적거리듯 말했다.
“개의치 말렴. 오랫동안 앓고 있는 지병이 있는지라.”
“지병?”
“……뭐, 신이 내린 벌이겠지.”
검지로 천장을 가리키던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늘-”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또다시 피를 왈칵 쏟아 냈다.
그는 말 그대로 핏기 없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늘은 조금 심하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심해?!’
이런 병자 중의 병자를 목도하는 건 처음이라 키네미아는 밀려드는 당황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약, 약은?! 보호자는?”
키네미아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그는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그저 눈을 휘어 보였다.
“그리 내가 걱정되면 잠깐이라도 좋으니 나와 산책을 해 주지 않겠어? 볕을 쬐는 건 건강에 좋거든.”
경황이 없긴 해도 낯선 남자에 대한 경계를 풀지는 않았던 키네미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왜-”
그 순간, 남자가 씨근덕대는 숨소리를 내며 몸을 무너트렸다.
‘……!’
무의식중에 그를 안아 부축한 키네미아가 속으로 비명을 질러 댔다.
“내 마지막 생의 부탁이야. ……산책.”
남자는 무슨 마지막을 앞둔 개가 주인과의 산책을 바라는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으으?!’
키네미아가 눈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