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2)
먼치킨 길들이기 112화
“……?!”
에이얀은 유리 공예품이라도 되는 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키네미아의 얼굴을 감싸다가 천천히 귓불과 목으로 손을 내렸다.
“이제 됐-”
키네미아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려 하자 곧바로 두 팔을 뻗은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뒷머리와 등을 감싸 안았다.
품에 안은 가녀린 몸과 체온에 본능처럼 심장이 반응했다.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에이얀은 눈을 감았다. 긴장으로 뻐근했던 어깨가 어느새 한결 이완되어 있었다.
그가 길게 숨을 내쉬는 듯 키네미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미아.”
귓바퀴에 숨결이 닿자 키네미아는 파드득 놀라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 맞아.”
하지만 그녀는 몸을 굳히면서도 에이얀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아둔하게도 그런 반응이 기꺼워 품 안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키네미아 리온은 그를 세상 제일의 얼간이로 만들었다. 만약 이 실감 나는 키네미아의 환상이 그를 죽이려 한다 해도 군말 없이 죽어 줄 정도로.
너는 어떻게 늘 이런 순간마다 내 앞에 있을까.
손이 닿는 상황 자체만으로도 복잡한 머릿속은 통째로 휘발되고, 그 어떤 의문조차 불식시켰다.
침묵 속에서 입을 연 것은 키네미아가 먼저였다.
“그런데…… 에이얀. 여기 어디야? 로우는? 오라버니는?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어?”
그녀가 에이얀과 함께 탑에 올랐던 일행을 찾으며 두리번거렸다. 에이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심하며 키네미아를 품 안으로 더 깊게 끌어안았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둘이 됨으로써 더더욱. 고심을 거듭해도 듣기 좋은 설명은 불가능했다.
“에이얀?”
키네미아가 추궁하듯 이름을 부르니 에이얀이 어렵게 입을 뗐다.
“미아,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없어.”
그는 큰 손으로 키네미아의 머리를 받치듯 안고 그녀가 당황하지 않도록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둘뿐이야.”
“나 진지하니까 장난치지 말고-”
말을 이어 가던 키네미아가 문득 든 직감에 눈매를 좁혔다.
“-진짜야?”
* * *
“10층?!”
맙소사, 맙소사. 애써 에이얀의 품에서 떨어진 이후 자초지종을 들은 키네미아가 양손으로 두 볼을 감쌌다.
멍청이 하나 때문에 10층에 혼자 빠지게 되다니. 아니, 이제는 둘이다. 나까지!
키네미아가 그렇게 내적 비명을 지르던 때였다.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두 손을 떼어 내고 깍지를 꼈다.
“그런데, 미아.”
“응?”
“여기엔 어떻게 온 거야?”
“아.”
그게 남아 있었지. 키네미아는 눈을 옆으로 데구르륵 굴리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 그게…… 고대 유물을 타고 온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키네미아가 끙, 소리를 내면서 미간을 구겼다.
에이얀은 그런 키네미아의 미간을 꾹 누르며 목 안으로 웃었다.
“고대 유물을 타고 왔어?”
“으응. 그런 것 같아.”
그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연못에서 에이얀의 실루엣을 보고 손을 뻗은 순간 빛에 휘감기는 기분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이곳이었다.
이를 전부 이야기하자 에이얀은 찰떡같이 알아들은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 알아듣겠어?”
“예전에 기록을 읽은 적 있어. 근원이 같으니 고대 유물이 서로 공명하는 거겠지.”
아하. 나만 모르는 이야기였구나, 그거. 키네미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단순한 우연일 뿐인가?’
내심 그 이상한 남자가 관여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키네미아는 일단 남자를 마음속 요주의 인물 1위에 새겨 놓았다.
“우우-”
키네미아가 생각을 정리하는 그때, 또다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키네미아는 낯선 소리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에이얀은 그런 키네미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생각에 잠겼다.
‘하필 이런 때에…….’
키네미아의 설명대로 고대 유물을 거쳐 왔다면, 자신이 힘을 쓸 걸 알아차리고 탑이나 탑의 주인이 키네미아를 부른 건가.
차라리 환상을 보여 주는 것이 나았을 것을.
그는 다시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지금도 마력은 끊임없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흘러나간다는 것만 명징해질 뿐이었다.
에이얀이 아랫입술을 물며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치 못하게 키네미아를 만나 느꼈던 기쁨과 설렘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안을 메운 것은 초조함과 두려움이었다.
심장이 꽉 조여 왔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라는 게 뭔지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다.
홀로 남게 된 것도, 탑에서 나가려면 죽음을 불사해야 한다는 것도 두렵지 않았건만.
에이얀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안전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지금이 그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손끝이 차게 식기 시작했다.
* * *
시련의 탑 9층 로비.
길드전의 관리자, 프로스트는 제 앞에 일렬로 꿇어앉은 에렉시나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들은 전부 호되게 얻어맞아 퉁퉁 붓고 피를 흘리는 상태였으며, 잔뜩 주눅이 든 채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다.
프로스트가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니 로우는 손을 케이릴의 어깨에 얹은 채 그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왜 이런 일이…….’
지금까지는 길드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로비에서 기다리는 사이에, 관리자역으로 온 한낱 공무원 입장에선 제일 상상하고 싶지 않은 참변이 벌어져 있었다.
“케이릴 님께서 에이얀 님을 10층으로 밀어 넣고 게이트의 핵을 부쉈다고요?”
그 후에 흑야를 덮치기까지 했고?
프로스트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되묻자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한 프로스트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비명처럼 말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허링인지, 달링인지 하는 후작의 의뢰를 받았다고 합니다.”
“허……!”
프로스트가 기가 찬 탄식을 내뱉는데, 케이릴을 바닥에 거세게 내동댕이친 로우가 물었다.
“그러니 다시 묻습니다. 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까?”
분노가 그대로 담겨 있어 냉랭하고 음산하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로우의 박력에 밀린 프로스트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이런 말씀드리기가 정말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만, 이런 상황 자체가 처음이어서 저희로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재차 확인할 겸 프로스트가 기사단장을 돌아봤지만, 그도 딱히 방법은 없는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에 로우가 케이릴을 당장이라도 죽여 버릴 듯 흉흉한 기세로 쏘아보았다. 케이릴이 식겁해 뒷걸음질을 쳤다.
지금껏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그라도 제 동료가 10층에 갇히게 되었으니 분노를 갈음할 길이 없었겠지.
속이 답답한 건 프로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책임 소재부터 당장 저 10층에 갇힌 이를 구할 해결책까지 전부 막막한 일 투성이가 아닌가.
아무리 그가 강자라고 해도 과연 10층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젠장……. 사상자가 나오다니.’
에이얀의 죽음을 확신한 프로스트가 일단 통신석으로 본부와 연락을 취하려던 때였다.
뒤로 물러서 있던 쉔 티엔이 나섰다.
“거기 관리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지 말고 최대한 빨리 마탑주님께 연통을 넣어 주시게.”
“예? 마탑주님께요?”
물론 마탑주라면 현 상황의 타개책을 알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마탑주가 도움을 줄까?’
프로스트는 회의적이었다. 결국 이건 제국 내에서 벌어진 제국의 사건이 아닌가.
하지만 프로스트는 쉔 티엔이 이은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리카샤가 시련의 탑 10층에 갇혔다고 전하면 될 걸세.”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프로스트가 입을 뻐끔거리다 겨우 말했다.
“……리, 리카샤요? 설마 에이얀 님께서 리카샤셨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호칭이 튀어나오자 듣고 있던 이들의 입이 전부 벌어졌다.
“리카샤가 여기에 왜?”
“그 마법사가 리카샤였다고?”
의문과 경악이 가득 찬 반응이 돌아왔다. 쉔 티엔은 그들의 멍청한 표정들이 탐탁지 않은 투로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얼빠진 얼굴인가. 저런 마법사가 리카샤나 마탑주가 아니라는 게 더 놀랄 일이 아닌가.”
그제야 놀라던 이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모두가 에이얀의 힘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절로 수긍될 정도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 그럼 우선 본부를 통해 마탑에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로스트가 통신석을 빠르게 꺼내자, 로우가 흑야를 모아 세웠다.
“저희는 안에 다른 게이트가 없나 찾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탑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쉔 티엔이 연기를 내뱉었다.
이내 로우는 다시 문 안으로 들어섰다.
쉔 티엔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에이얀을 떠올렸다.
‘……죽지는 않겠지.’
그 미친놈이라면 탑의 주인을 잡고 내려올지도. 그는 우스개 섞인 생각을 하며 걱정을 날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