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18)
먼치킨 길들이기 118화
벤자민은 곧바로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곧장 연회장을 떠나 복도를 지나쳐 대기실로 향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에이얀이 대기실에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벤자민은 에이얀을 방 안에 밀어 넣고 쾅, 문을 닫았다.
“……?”
“벤자민?”
의아해진 에이얀과 울프만이 벤자민을 응시했다.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벤자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문을 막아서고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기묘한 침묵이 세 남자를 둘러쌌다.
“내 착각인가. 누가 문 앞을 막고 있는 것 같은데, 벤자민.”
그에 벤자민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혹시 그 이야기를 아십니까? 떠나는 때를 아는 자가 아름답다는 것.”
쌩뚱맞게 터져 나온 벤자민의 말에 에이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이 더 여운을 남기는 법입니다. 1달 정도 지나면 새벽 2시쯤에 문득 ‘다시 연락해 볼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이얀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벤자민, 미쳤어?”
“……미!”
미쳤느냐니?!
울프만도 ‘너 오늘따라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인다.’는 얼굴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벤자민은 입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는 미친 건 너희들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세상 어느 대의 마탑주가 연회에 나가서 무릎 꿇을 고심을 하겠으며, 세상 어느 대의 리카샤가 제 짝사랑에 의해 세계 평화를 좌지우지하느냔 말이다.
때문에 제정신인 나만 고생이 아닌가!
그러나 차마 그 말을 할 순 없었다. 결국 그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대공녀께서 다른 파트너와 함께 입장하셨습니다.”
“…….”
쥐 죽은 듯한 침묵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연금술사나 흑야겠지.”
에이얀은 픽 웃음을 흘리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분들은 아니십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는 매우 친밀한 관계로 보였습니다.”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에이얀이 벤자민을 지나치려 하자, 벤자민이 앞을 막아서는 결계를 쳤다.
“벤자민.”
그의 의도를 눈치챈 울프만이 벤자민의 결계 위에 자신의 결계를 덧씌웠다.
내심 불안한 마음이었던 벤자민은 마탑주의 발 빠른 지지에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대공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후에 대기실에서 나와 주십시오.”
* * *
“익히 이야기는 들었지만, 역시 실물이 더 나으시네요. 이렇게 아름다운데 총명하기까지 한 분이시라니.”
익히 이야기를 들었다는 부분에서 잠시 멈칫했던 키네미아는 최대한 선량한 미소를 지어내 보였다.
‘무슨 이야기였을까.’
지금 와서까지 나쁜 소문이 도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애써 벌렁거리는 심장을 잠재웠다.
지금 제국 내에서 키네미아 리온 대공녀는 열악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뛰어난 계책을 자아낸 데다가, 전설의 흑야를 완벽히 지휘해서 시련의 탑을 공략한 명장이 되어 있었다.
“그런 과찬을 들으니 부끄럽군요.”
“겸손도 하셔라.”
듬직하게 옆에 서서 담소를 듣던 숙부는 잘 커 준 조카가 그리 뿌듯했는지 연신 키네미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황태후에게서 초대장을 받은 키네미아는 숙부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흑야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연회에 참가하는 걸 꺼려 했고, 쉔 티엔은 서대륙인들은 자신 같은 타대륙 사람을 구경거리처럼 여긴다면서 탐탁지 않아 했던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눈이 마주치자 숙부가 찡긋 윙크했다.
‘기분이 좀 나아지셨구나.’
지금은 성이 바뀌었지만, 한때는 그도 리온이었던지라 지금까지 수도에서 지내면서도 이런 연회와는 영 인연이 없었을 텐데.
제 시집을 읽었다는 귀족들을 만나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삼류 시인인 그의 시를 읽는 이는 지금까지 많지 않았을 테니까.
‘다행이네.’
어제는 만나자마자 허리를 붙잡고 엉엉 우는 통에 난감했었는데.
“미, 미아아아……!”
수도에 오자마자 숙부를 찾지 않은 것이 실책이었다. 만에 하나 내가 미워서 찾아오지 않는 거라면 어쩌나 발을 동동 굴렀다고 울먹이는데, 좀처럼 떼어 놓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키네미아는 그를 어르고 달래서 같이 연회에 참석해 달라 부탁한 참이었다.
얼굴이 뚫어질 것 같은 느낌에 설핏 주위를 둘러보니 세라핌이나 가디언 같은, 여러 유명 길드들에서도 키네미아에게 선망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며 홱 고개를 돌리곤 했지만.
길드전에 참여했던 길드들은 전부 연회에 초대를 받았으나, 에렉시나만은 빠져 있었다. 황태후의 지시로 조사를 받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리온의 날개를 뵙습니다, 대공녀. 데뷔탕트에도 잠깐 인사를 드리긴 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키네미아와 인사를 하고 싶어 하는 줄은 끝없이 이어졌다.
영지에 틀어박혀 돈이나 세던 대공녀가 이제 명예까지 갖춘 셈이 아니던가.
귀족들의 수가 뻔히 보이긴 해도, 그들을 냉정히 뿌리칠 수만은 없었다.
황태후가 직접 선별해 초대한 이들은 감사하게도 대부분 권세 높은 귀족들이었다. 이런 기회를 내 버리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있을까.
‘이 기회를 잡아야만 해.’
세력 확충! 고객 확보! 이참에 마력 기계를 홍보할 기회도 생긴 거지.
“그럼요, 레슬리 백작 부인.”
키네미아가 정확히 이름을 부르자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기억하시는군요! 그때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금방 돌아가셔서 정말 아쉬웠거든요.”
키네미아는 빙긋 웃었다. 이런저런 계산속 외에도 홀로 침대에 틀어박혀서 우울해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게다가 이렇게 걱정 없는 연회는 마탑 이후로 처음이니까.
문득 마탑의 연회에 생각이 미치자 웃고 있던 키네미아가 돌처럼 굳었다.
기억들이 머릿속에 급작스럽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공중 섬과 마법사들.
‘생각하지 말자.’
아름다운 정원과 폭포.
‘기억하지 마.’
긴장으로 차갑게 식었던 커다란 손.
“그래서 그이가 대공녀의 활약을 전해 듣고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냐면서 볼을 꼬집고…… 대공녀?”
“네?”
키네미아가 되묻자 레슬리 백작 부인은 제가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는지 눈치를 보는 기색이었다.
아, 맙소사. 큰일 났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난처한 기색을 숨기려는데, 뒤에 선 숙부의 양손이 키네미아의 어깨 위를 짚었다.
“레슬리 백작 부인. 죄송하지만 제가 잠시 조카를 좀 빌려 가야겠군요.”
살았다……. 감동한 눈으로 숙부에게로 고개를 들자 그가 윙크를 보냈다.
* * *
키네미아는 숙부의 손에 이끌려 테라스에 앉아 숨을 들이켰다.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가라앉았던 속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괜찮니?”
“네에…….”
말을 늘어트리며 키네미아는 두 손을 눈두덩이 위에 덮었다.
“미아, 편치 않으면 돌아갈까?”
“네? 아뇨.”
키네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숙부는 연회가 피곤한 탓에 그런 거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연회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그녀가 손을 내저으니 숙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럼?”
키네미아는 입매를 굳혔다.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떨어지지가 않아서요.”
그 생각은 심장과 머리에 달라붙어서 깜짝 상자처럼 튀어나오고,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껏 저는 아주 단호하게 끊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마음이란 게 그런 거지. 이성을 마비시키고 막무가내 멍청이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정말 별로네요.”
키네미아가 투덜거리며 눈매를 좁혔다.
그러자 숙부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가는 대로 두렴.”
키네미아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멍청해지는 것도 싫고, 아프기도 싫어요.”
그런 건 질색이다.
“그것도 나중에 멋진 시가 될 텐데.”
그러나 숙부는 혼자 감상에 젖어 말했다.
난 시인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키네미아가 그를 물끄러미 뜯어보았다. 아빠 같은 미남은 아니었으나 눈꼬리나 입매,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잠시만요. 여기.”
“응?”
“속눈썹이 묻어서요.”
“여기?”
그가 허리를 숙였다.
“제가 해 드릴게요.”
키네미아가 웃으며 숙부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는 때였다.
하얗고 커다란 손이 키네미아의 손등을 덮었다.
“……?”
키네미아는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제일 먼저, 결이 좋은 새카만 머리카락이 보였다.
야위어 보이는 새하얀 얼굴의 턱을 지나, 오뚝한 콧대 위로 시선을 올렸다.
기다란 눈매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