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0)
먼치킨 길들이기 120화
* * *
키네미아는 와인을 홀짝이며 간간이 옆을 쳐다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근엄해 보이는 울프만이 들뜬 황태후와 마력 기계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울프만은 키네미아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말을 하던 도중에 그녀의 어깨를 도닥였다.
키네미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난장판 그 자체였다.
마탑 일행이 연회의 주인공을 감싸 안고 통곡을 하며 연신 사과하는데 시상식이 진행될 수 있을 리가.
키네미아는 시상식은 생략하고 상은 인편으로 전달받겠다면서 황태후에게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울프만과는 서로 간의 갈등은 일시적으로 봉합하기로 했다.
울프만이 관여해 있다고는 하나, 본질은 에이얀과 그녀 사이의 문제였으니까.
‘그리고…….’
키네미아는 울프만이 황태후에게 마력 기계에 대해 운을 떼면서 사업 홍보를 하자, 속물 같은 제 마음이 스르륵 풀리는 것을 느끼며 옅은 자괴감에 빠졌다.
‘그나저나, 왠지 내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데.’
좀처럼 보기 힘든 인물들이 몰려왔다고 해도, 자신에게 쏠리던 시선이 아예 차단될 리가 없는데. 초대객들은 가끔 힐끔거리긴 해도 다가올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특히나 길드원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아예 이쪽은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뭐, 상관없나.’
키네미아가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 숙부님은 어디 계시지.’
그녀가 숙부를 찾는 동안 벤자민은 키네미아를 내려다보았다.
‘연회장에서 이런 짓을…….’
에이얀이 마력으로 키네미아를 감싸고 있어서, 마력을 느끼는 자들은 그녀에게 쉬이 다가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마력이 없는 키네미아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만 갸웃거렸다.
하여간 미친 건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쯤, 키네미의 시선이 어딘가로 움직였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간 벤자민의 어깨가 멈칫 굳었다.
은밀하게 키네미아의 동선을 관찰하고 있던 에이얀과 울프만도 마찬가지였다.
키네미아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세 사람이 움직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에이얀이 한 팔로 키네미아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고, 울프만이 키네미아의 손을 쥐었으며, 벤자민이 키네미아 앞을 막아섰다.
“……?”
붙잡힌 키네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지금 포획당한 건가?
키네미아는 대체 뭐냐는 눈으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계속 잡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이내 스르륵 풀려났다. 그러고는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
뭔데?
당황하던 그녀는 창가에 덩그러니 서 있는 숙부를 재차 보았다.
그러자 에이얀에 의해 눈앞의 시야가 차단됐다.
“……?”
키네미아는 다시금 숙부와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세 사람에 의해 동선이 막히는 것을 수없이 반복했다.
“…….”
철통 방어에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던 키네미아가 눈을 도르륵 굴렸다.
“……저한테, 다른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무슨 용건인지는 몰라도 그래 보이는데. 세 사람과 눈을 맞추자 에이얀이 얼굴을 감싼 채 머뭇거리다 어렵게 내뱉었다.
“……저건 좋은 사람이야?”
그게 뭔 소리야.
키네미아가 눈매를 좁혔다.
우리 숙부한테 ‘저거’라고 칭하는 건 그렇다 쳐도, 좋은 사람이냐고 묻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응. 좋은 분이셔.”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그야 그렇지. 당연하잖아.”
숙부니까.
에이얀은 곧바로 나오는 키네미아의 수긍에 살짝 충격을 받은 듯했다.
“에이얀?”
“나도 몇 년만 더 있으면 저 남자처럼 네 취향에 맞출 수 있-”
취…… 향……? 얼이 빠진 듯 취향이란 말을 되새기던 키네미아가 한 손을 들어 황급히 에이얀의 입을 틀어막았다.
“……잠깐만, 내 취향이라고?”
입이 막힌 채 에이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취향이 갑자기 왜…….”
기가 차서 말하던 키네미아가 입을 벌렸다.
설마 지금껏 계속 그것 때문에 막으려던 거였어?
에이얀을 풀어 준 키네미아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에 에이얀이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전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얼굴이라 참으려 했지만 결국에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싸운 지 얼마나 됐다고. 맙소사. 이런 모습이 귀여워 보이면 이제 구제불능인 건가?!
키네미아가 혼란에 빠진 사이, 그녀가 왜 웃는지 모르겠다는 듯 세 사람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어찌 되었든 오해는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키네미아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말했다.
“저분은 틸튼 백작님이라고 해요. 제 숙부님이시죠.”
“아.”
“음.”
“아아…….”
벤자민, 울프만, 에이얀이 동시에 저마다의 탄식을 내뱉었다.
* * *
“미아, 아무래도 내가 마탑주께 무슨 잘못을 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숙부도 엄청난 오해의 늪에 빠져 있었다.
“죄송해요.”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다 내 잘못인데.”
그가 침울하게 가슴을 매만졌다.
그게 아니라서 죄송해요. 키네미아가 안타까운 얼굴로 이제 그러지 않을 거라면서 숙부의 팔을 두드렸다.
숙부를 내 새로운 파트너로 오해해 그랬다는 말은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아까 너와 같이 있던 그분은 리카샤라고 했던가?”
“네, 맞아요.”
“형제분께서도 오신 것 같던데, 지금은 도통 보이질 않는구나. 다시 돌아가신 건가?”
엥?
“그럴 리가요. 에이얀은 형제가 없어요.”
“뭐?”
그가 턱을 쓸었다.
“……리카샤와 정말 많이 닮은 남자였는데.”
“숙부님께서 잘못 보셨을 거예요.”
저런 얼굴이 세상에 둘이나 있을 리가. 키네미아가 흘깃 에이얀을 응시했다. 마탑에서 나온 데다가 외모까지 출중했으니, 그에게 말 한번 걸어 보려는 이들이 주변에 구름 떼같이 몰려들어 있었다.
에이얀은 착하게 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이전처럼 매몰차게 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키네미아의 시선을 느낀 에이얀이 손을 살랑살랑 흔들자 그녀는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자신을 빤히 보는 숙부와 눈이 마주쳤다.
“……?”
온갖 감정이 담겨 있는 시선이었다.
왜지.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숙부가 눈물을 그렁그렁 채우고 있기에 손수건을 건넸다. 그는 손수건을 멋들어지게 펴서 눈물을 훔쳤다.
“미아가 사랑이라니. 다들 걱정했을 때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갑자기요?!
“-어느새 그렇게 격렬한 사랑싸움을 할 정도로…….”
사랑싸움이라니! 두 손으로 볼을 감싼 키네미아가 고개를 떨구었다. 죽어 버릴까!
조카가 수치심에 떨고 있는 사이, 그는 마치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손이 근질근질해. 꼭 시로 남기고 싶구나.”
“시로 옮기시는 날엔 베개에 코 박고 죽어 버릴 거예요.”
“……!”
숙부는 다시금 그렁그렁 눈물을 채웠지만, 키네미아는 울어도 안 된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때,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중앙을 비우고 하나둘씩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연회의 마무리를 알리는 시간이었다.
“우리도 한 곡 출까?”
“네.”
키네미아는 숙부의 손을 잡고 중앙으로 나섰다. 이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가 감개무량하다는 듯 말했다.
“형님도 이제 걱정을 더시겠어.”
그는 이미 에이얀과 자신이 결혼하고 애를 셋 정도 낳은 것처럼 감동에 가득 차 있었다. 작은 일에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숙부야 그렇다 치지만-
“안 그러실걸요.”
키네미아는 불퉁하게 대꾸했다.
“응?”
“아빠는 엄마를 사랑한 걸 후회하셨잖아요. 종국에는 그렇게 끝나 버렸으니까.”
“으음?”
의아하다는 듯 말끝을 올린 숙부가 이내 웃음을 흘렸다.
“네 아빠에 대해 모르는 게 많구나.”
“네?”
“형님은 시간을 돌려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했었거든.”
키네미아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보이자 숙부는 확언했다. 형님은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하지만, 다른 여자들한테 추파를 뿌리고 다니셨잖아요.”
그게 다 불행하게 끝났던 사랑이 초래한 결과 아니겠는가. 그러나 숙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 가세는 기우는데 형님한테는 다른 능력이 없었으니까.”
“…….”
“형님은 정말 얼굴밖에 가진 게 없었지.”
우애가 애틋했던 형제치고는 신랄한 평가였다.
생각에 잠긴 키네미아는 숙부의 발을 두세 번 더 밟아 댔고, 숙부는 조금 울었다.
이윽고 길게 늘인 비올라의 소리가 곡의 끝을 알렸다.
숙부와 인사를 마친 키네미아가 파트너를 바꾸기 위해 옆에 다가온 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가 손을 잡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연회는 끝이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