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28)
먼치킨 길들이기 128화
“…….”
눈을 데구르륵 굴린 키네미아는 애써 저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피했다.
뭐지, 대체. 짚이는 구석이라고는 에이얀뿐인데. 에이얀이 마탑에서 대체 어떻게 지냈기에 내가 저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 거지.
당사자에게 물어봤자 큰 수확은 없을 테고. 키네미아는 에이얀에 대해 제일 솔직하게 털어놓을 것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나중에 벤자민 님께 물어봐야지.’
순간 서류 정리를 하고 있던 벤자민이 영문 모를 오한을 느낀 것은 꿈에도 모른 채, 키네미아는 그렇게 해야겠다며 혼자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서, 보여 준다고 했던 건?”
때마침 에이얀이 입을 열어 연구실 내부의 묘한 분위기를 끊어 내자, 쥬디스가 바짝 기합이 들어 대답했다.
“아, 네! 거기 비겁자! 준비됐어?”
이에 부원 하나가 헐레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달려갔다.
키네미아가 ‘왜 비겁자야?’라고 물으니, 쥬디스는 ‘저 녀석이 마을 정비하는데 혼자 도망가서는 어떤 할머니랑 고구마를 먹고 있지 뭡니까.’라며 크게 웃었다.
“……아.”
그때 일을 묵인한 책임자로서 양심이 콕콕 찔리는구나. 키네미아는 어물쩍 웃으며 모른 척하기로 했다.
사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도움이었다.
마법사들이 다녀간 뒤로 주민들은 아예 셰넌벨을 마법사들의 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마법사들이 정비한 마을’이라는 걸 아무도 믿지 않아서 그저 전설이 되어 버렸다.
‘……나라도 안 믿었을 거야.’
모두가 우스갯소리처럼 듣고 코웃음 치며 넘기는 통에 주민들도 더 주장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에이얀이 말도 없이 데려왔다가 데려간 게릴라성 이벤트에 가까웠기에 저장해 놓은 영상도 없고.
‘아깝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다스리는데, 기개부 부원 하나가 넌지시 물어 왔다.
“다른 것들보다 골렘의 주목도가 높다면서요?”
그렇다며 대답한 키네미아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며칠간의 연회에 참석하면서 알게 된 마음 쓰린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귀족들은 마탑의 마력 기계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도 구매욕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계들이 하나같이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다 못해 오버 스펙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마탑의 마력 기계는 새로운 마정석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연료도 새로운 마정석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과도한 기술력에 홀려서 잔뜩 쌓아 놓은 기존 마정석을 무용지물로 만드느니, 더 실용적인 선택을 유지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잘된 걸 수도 있나.’
의도적이진 않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주술사들의 파이를 갈라 먹지 않게 되었으니, 그들에게 접근이 한결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뭐, 워맥 자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주술사 협회에 보낸 서신은 이미 단칼에 거절당하긴 했지만…….
주술사들도 마법사들 못지않게 워낙 콧대가 높은 자들이었던 터라 쉽게 응하리란 기대는 없었다.
그때 쥬디스가 비겁자에게서 코어를 건네받아 구동시켰다. 모래가 울퉁불퉁 뭉치면서 새로 설계한 골렘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존 골렘보다 체구는 더 작았지만 훨씬 날렵해진 실루엣이었다.
‘호오-’
키네미아가 두 손을 모아 그러쥐었다.
기존 마력 기계가 차디찬 외면을 받은 반면, 마탑의 신문물에는 귀족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골렘.
그에 따라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물론이었다.
주문이 밀려든다는 소식에 기개부는 크게 기뻐했고, 쥬디스는 곧장 신모델 개발 착수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간 과정을 보여 주겠다며 나선 것이다.
쥬디스는 눈을 반짝이는 키네미아를 뿌듯하게 응시하면서 말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말입니다. 사실 이전의 골렘은 의전용에 가까웠죠.”
지금까지의 골렘은 대륙에 ‘이게 바로 마탑의 기술력이다!’를 보여 주기 위한 시험 기술에 가까웠다. 때문에 연비나 기타 편이성은 고려하지 않은 탓에 실사용 시에는 여러모로 불편하고 모자란 부분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위력은 20% 정도 감소했지만, 반응 속도를 크게 향상시켜서 마물 처리 속도는 비슷하고 연비는 훨씬 더 나아졌어요. 개발자로서 실사용자들을 위한 한 걸음 후퇴랄까…….”
“대단해……!”
키네미아가 눈을 빛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면서 연신 놀라움을 내비치자, 한껏 기분이 상승된 쥬디스가 얼굴에 꽃을 피웠다.
‘이런 반응 덕에 설계할 맛이 나지.’
요즘 부서에 일감이 배로 늘어나는 바람에 쉴 시간은 줄어들었으나, 모두 활기가 넘치는 이유는 다 대공녀를 놀라게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쥬디스가 키네미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달라붙었다.
“대공녀, 구체적으로 더 설명드리자면-”
그렇게 그녀가 설명을 늘어놓으려던 때였다. 뒤통수가 아파 돌아보니-
‘……?!’
에이얀이 서늘한 눈으로 쥬디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쥬디스가 손을 떼어 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에이얀의 발밑에서 스멀스멀 마력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힉! 쥬디스는 그대로 한 걸음 물러섰다.
쥬디스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키네미아가 ‘왜 그래?’라고 묻자, 에이얀이 짐짓 모르는 체하며 쥬디스의 손이 닿았던 키네미아의 어깨를 털어 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키네미아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제 옆에 미친 독점욕의 화신이 있다는 걸 모른 체 맹하게 서 있는 키네미아에게 쥬디스가 안타까움으로 가득 찬 시선을 보내는 때였다.
시야 한편에 새카만 깃털이 보였다.
‘까마귀?’
연기로 만든 것 같은 까마귀는 날갯짓을 하며 에이얀의 손끝으로 내려앉더니, 이내 몸 안으로 흡수되는 것처럼 사라졌다.
“무슨 소식 왔어?”
키네미아의 물음에 에이얀이 고개를 들었다.
“미아, 황제가 전할 말이 있다는데.”
“황제 폐하?”
* * *
긴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어 올린 황제는 집무실에 앉아 서류를 들어 올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렇듯 기분 좋은 내색을 숨기지 않는 이유는 마침 좋은 소식을 들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대공녀가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이야.’
대공녀가 탑에 갈 수 있도록 황태후에게 부탁한 것은 자신이었으나, 꼭대기 층을 토벌하는 결과까지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 대공녀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껍데기’를 소멸시켰다.
그녀가 황제가 되면서 얻은 수많은 짐 덩이 중 하나가 절로 떨어져 나간 것이다.
“기분 좋아 보이네, 프랜시스.”
그때, 미처 처리하지 못한 짐 덩이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서류를 내리며 짐 덩이와 눈을 마주쳤다. 하얗고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칠렐레팔렐레 말 걸기 전에 내 기분이 계속 좋게 놔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음, 당연히 안 해 봤지.”
“이제부터 하도록 해. 한순간에 진흙탕에 빠진 구두 끝으로 정수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니까.”
“한마디밖에 안 했는데 그렇게까지?”
자신을 싫어하지 말라면서 징징대던 것도 잠시, 그가 이내 기침을 콜록거렸다.
걱정과 짜증을 삼킨 프랜시스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누가 믿을까. 저 팔랑거리는 종이 인형 같은 남자가 천 년은 족히 묵은 용사라는 걸.
이제는 동화 속에나 찾아볼 수 있는 태초의 광룡, 셀테어를 봉인한 그 용사.
프랜시스는 10년 전 그가 자신을 용사라 소개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를 다시 떠올렸다.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그녀는 애초에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가 자신을 황위에 앉도록 돕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믿지 않았을 것이다.
“프랜시스.”
아픈 척은 다 끝냈는지 그가 생긋 웃으며 이름을 부르자 황제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내 애정을 이용하려 들지 마, 용사.”
“알지, 프랜시스는 공과 사가 확실한 편이잖나. 쿨럭쿨럭.”
그가 손수건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황제는 걱정스런 얼굴로 그를 쓰다듬었다.
“무리하지 마.”
그가 가볍게 그녀의 손을 떼어 냈다.
“걱정 마, 프랜시스. 세계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냅다 죽어 버리진 않을 테니. 이 종이 용사가 네가 사랑하는 백성들은 전부 지켜 줄 거야.”
그녀가 줄곧 조롱하던 별칭으로 자신을 지칭한 그가 손을 팔랑거리며 웃었다.
용사는 황제의 애정이 선을 넘었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는 듯 이렇게 종종 그녀와 거리를 두곤 했다.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죽이곤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잘 알고 있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으니 먼저 죽지 말라고.”
흥. 콧방귀를 낀 후 서류에 멋들어진 사인을 끝마친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럼 이제 가 볼까.”
그가 따라 일어나 매무새를 다듬었다. 퍽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그녀가 픽 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오랜 시간, 고대하고 고대한 일이 아니던가.
이제 모든 걸 밝힐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