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34)
먼치킨 길들이기 134화
그때였다.
뒤에서 거대한 인영 몇몇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족보행을 하는 거대한 몸이 마물과 기사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바위처럼 거대한 손이 마물을 쥐고 바닥에 내려쳤다.
“저, 저건…….”
“골렘이야. 함께 싸워 줄 병기지.”
키네미아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리온은 제국과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대들을 치하한다.”
에이얀이 손을 들자, 아공간에서 수많은 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명검이었다.
처음 보는 푸르른 빛이 감도는 날.
그것뿐인가. 검신에는 베히모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기사들이 욕망해 마지않는 바로 그 장인의 검.
탁, 에이얀이 손을 튕겼다.
그러자 기사들 앞으로 검이 하나씩 날아들었다. 그들은 전부 제 검을 버리고 새로운 검을 쥐었다.
검을 쥔 기사들의 마음이 술렁였다.
패배감으로 가득 찼던 전장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골렘과 검으로 순식간에 기사들은 마물과의 대치에서 확연히 승기를 잡아 나갔다.
그러다 마물에게 검을 휘두르던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리온!”
뒤이어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다른 기사들의 연호가 이어졌다.
“리온!”
“리온! 리온! 리온! 리온!”
“리온을 위하여!”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푸른 검이 하늘을 향했다. 사기가 잔뜩 올라온 기사들은 기어코 영지를 지켜 낼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키네미아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에이얀의 손을 잡았다.
“가자.”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손을 잡고 바람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밟아 하늘을 걸어 올랐다.
연호와 함성이 들리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자 키네미아가 입을 열었다.
“좋아, 이걸로 한시름 놓겠어.”
이상 현상이 일어난 뒤부터 정신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누군가에게 조종받는 듯한 마물의 대량 확산을 확인한 후, 키네미아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베히모스와 마탑에 까마귀를 보내는 일이었다.
“미스릴 검과 골렘이 대량으로 필요해!”
그리고 받은 답은 이러했다.
[차라리 우릴 죽이세요. -베히모스] [저희 부에 마법사가 세 배 정도 더 있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기계부]조력자들을 움직이는 것은 다행히 어렵지 않았다. 키네미아는 유려한 필체로 능력 있는 여자들의 공통 역린을 공격했다.
“리온에서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지원이 들어갈 거야.”
베히모스는 바로 함락당했고, 머뭇거리는 기계부에는 에이얀을 투입했다.
에이얀은 연구에 틀어박힌 마법사들의 뒷덜미를 잡아 하나둘씩 기계부에 던져 주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도움이 오늘처럼 만족스러운 장면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최전방같이 도움이 빠르게 닿기 어려운 곳은 에이얀과 함께 직접 지원에 나섰다.
가신들과 유모는 키네미아가 전장을 도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사실 영지의 통수권자가 최전방을 돈다는 것 자체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위험에 혼란스러울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였고, 에이얀과 함께라면 일주일이 걸릴 일을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었다.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키네미아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쩐지 조용한 에이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모르간의 성에 닿아 있었다.
근래에 에이얀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종 모르간의 성을 바라보곤 했다. 에이얀이 그럴 때면 그녀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뿐이었다.
문득 황제, 용사와의 삼자대면을 떠올리며 키네미아는 륜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저건 요제프 크로츠가 만든 성이란다.”
당시 갑작스러운 모르간 성의 등장에 놀라워하는 키네미아에게 우진은 담담하게 그리 말했다.
“줄리안 에버렛이 요제프 크로츠에게 이미 접촉한 건가.”
네가 말한 것보다 이르지 않냐면서 황제가 용사를 닦달했고, 키네미아가 의문을 표했다.
“폐하, 방금 말씀하신 그가 제가 아는 그 에버렛이 맞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 대답은 제 입꼬리에 고인 피를 닦은 용사가 대신했다.
“맞아. 셀테어의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자, 줄리안 에버렛.”
“셀테어의 영혼?”
“보통의 인간이라면 에이얀의 힘을 감당할 수 없을 테지만, 셀테어의 영혼을 가진 자는 달라. 원래 하나였으니까. 그의 영혼은 무의식중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힘을 찾고 있지. 그리고 요제프 크로츠는 줄리안 에버렛을 이용해 에이얀의 힘을 가지려는 속셈이고.”
그는 손깍지를 낀 채 키네미아에게로 몸을 내밀었다.
“줄리안 에버렛은…… 그는 에이얀 크로츠뿐만 아니라 대공녀에게도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이야.”
용사의 태도에서 불안함을 느낀 키네미아의 눈이 흔들렸다.
이에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로 리온의 비극을 일으킨 자지.”
케네스 리온을 독살한 자.
이를 의심한 아이리아 리온을 없애기 위해 그녀의 암살을 도운 자.
줄리안 에버렛.
“…….”
모르간의 성은 고요했다. 이렇게 하늘에서 가만히 바라볼 때면 멸망한 적도, 모든 혼란을 일으킨 적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용사의 말은 의심해 봄직했다. 물론 그가 키네미아를 움직이기 위해 거짓을 말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절박할 테니까.
그러나 키네미아는 가족의 죽음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에이얀과 깍지를 낀 손을 살짝 당겼다.
“에이얀, 이제 돌아가자.”
아직 헤매고 있긴 하지만 어찌 됐든 답은 움직인 곳에 있을 터였다.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실 거야.”
의문의 답은 줄리안 에버렛에게 직접 들을 생각이었다.
* * *
“결정은 내렸나.”
마치 피아노를 치듯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던 울프만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자 술렁이던 좌중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쯧쯧쯧, 혀를 찬 울프만은 영상구 너머로 보이는 각국의 수장들을 흘겼다.
멸망했던 왕국의 재등장과 동시에 일어난 위기 상황에, 각 나라의 수반들이 힘을 합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각자 위치가 위치인 만큼 책임도 막중했다. 때문에 쉬이 결정할 일은 아닐 테지만 더 이상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었다.
울프만은 답답한 이들의 귓구멍에 다시 정황을 박아 주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저건 일종의 고치라네.”
울프만의 얼굴 옆으로 멸망한 왕국의 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첨탑 모양의 성을 둘러싼 그리 넓지 않은 땅.
그 주위로 아주 얇은 무명천 같은 것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무명천의 끝부분에서 작은 뿌리가 땅에 박혀 있었다.
울프만은 뿌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뿌리는 무언가를 마시는 것처럼 올록볼록한 목 넘김을 보이며 왕국 안으로 무언가를 끌고 오고 있었다.
멸망한 왕국의 재건을 둘러싸고 마탑에서 벌인 회의에서 마법사들은 한목소리로 저것이 대기에 흐르는 마력과 악한 기운을 빨아들인다고 결론을 내린 지 오래였다.
“부화하기 전에 에너지를 비축 중일 걸세. 모든 기운이 모이고 있으니까.”
부화, 라는 단어에 누군가 침음성을 냈다. 좌중 사이에서는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맴돌고 있었다.
“파괴하는 것이 옳네.”
울프만이 그들의 결정을 기다리는 사이에 잠자코 듣고 있던 황제 프랜시스가 먼저 운을 띄웠다.
– 탑주님, 제국에서는 병사들을 얼마나 파견해야 하겠습니까?
“아아, 결정을 망설이던 게 그것 때문이었군.”
울프만의 입이 호선을 그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 먼저 마탑에서 손을 쓰겠네. 하나 걱정되는 건 초유의 상황에서 나올지 모를 이변이지. 이는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걸세.”
이에 한시름 놓은 듯한 텔라레스의 국왕이 조급하게 재촉했다.
– 그럼 탑주님, 마탑에서는 언제쯤 준비가 끝나겠습니까?
“이쪽? 이봐, 여긴 마탑일세. 언제나 준비돼 있는 곳이지.”
울프만의 호언장담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마탑에는 인류 최고이자 최악의 병기가 존재했으니까.
그가 손짓하자 영상이 바뀌었다. 이내 잡힌 것은 지옥의 성을 앞두고 있는 에이얀의 뒷모습이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불량한 자세로 하늘에 서서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였다.
‘영 못마땅한가 보군.’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멸망한 고향이 다시 나타났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을 터.
한숨을 삼킨 울프만이 에이얀을 향해 짧게 물었다.
“상황은?”
– 그리 좋지 않습니다, 스승님.
에이얀이 답지 않게 비관적인 말을 하며 말을 늘였다.
“뭐? 성에 무슨 변화라도-”
– 제 옆에 미아가 없잖습니까.
“네 주인님은 내 옆에 있다, 이 똥강아지 녀석아!”
결국 울프만이 노성을 지르자 에이얀이 강아지처럼 쫑긋 귀를 세운 채 뒤를 돌아보았다.
울프만은 화색이 돈 얼굴로 손을 흔드는 에이얀을 바라보면서, 세계의 운명이 저런 놈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니 통탄할 일이라며 탄식했다.
울프만은 키네미아를 제 옆에 끌어안고는 손을 내저었다.
“노닥거리지 말고 어서 시작해!”
“맞아, 빨리 시작해.”
강아지를 혼내는 투로 키네미아가 거들자 멍, 하고 대답한 에이얀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