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43)
먼치킨 길들이기 43화
“유모, 안 아파?”
키네미아가 바네사의 손을 잡았다. 이상할 정도로 손이 차가웠다.
“아프긴요. 자꾸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보다 이거 드세요, 아가씨.”
바네사가 내민 것은 진한 고동색 차였다.
“……이게 뭔데?”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차예요. 아가씨는 추위를 많이 타시잖아요.”
……갑자기?
고동색 찻물은 핏기가 가신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이상해. 키네미아가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어서요, 아가씨.”
바네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차를 권했다.
이건 이상해. 키네미아는 위험을 느끼는 제 감각을 의심하지 않았다.
‘도와줄 사람을 불러야……!’
그녀가 돌아서려는 때였다.
“……!”
턱- 손목이 붙잡혔다.
“어디 가시려고요, 아가씨.”
“유모 지금 이상해. 알아?”
겁에 질린 키네미아의 말에도 바네사는 태연했다.
“차를 드셔야죠.”
“유모!”
일단 벗어나야 돼! 키네미아가 손목을 뿌리치려 하자 바네사가 제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지금 뭐 하는……!”
“이걸 마시지 않으면 이 여자는 죽어.”
바네사의 목소리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남자?
마법사인가?
이 모든 게 환상?
아니면 유모를 세뇌했나?
어째서 이런 짓을? 할아버지나 엄마, 아빠한테 원한이 있는 인물인가?
몇 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키네미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에이얀은 어디로 갔지? 볼일이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나?
“……넌 뭐야. 누구야.”
“지금 내 이름이 궁금해? 이 여자의 목숨이 걱정되지 않아?”
바네사는 자신의 목에 칼을 더 들이밀었다. 붉은 핏줄기가 칼날을 타고 톡 떨어져 내렸다.
“……마실 거야. 마실 테니까 유모는 놔줘.”
“그래야지, 대공녀. 어서 마셔.”
“아니, 네가 먼저야. 유모부터 놔줘.”
“이것 봐, 대공녀.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거든? 목에 댄 거 안 보여? 칼이라고, 칼!”
그가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그러나 키네미아는 단호한 얼굴을 했다.
“유모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유모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은 마시지 않을 거야.”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누구보다 더 잘 파악하는 중이야. 날 직접 세뇌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그렇게 했겠지. 그게 더 쉬웠을 텐데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거야. 그러니 내가 자발적으로 차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잖아? 유모의 세뇌부터 풀어. 약속은 지킬 거야.”
“…….”
그제야 마법사가 입을 다물었다.
역시.
세뇌할 수 없었던 이유까지 알 수는 없다. 하나 날 세뇌할 수 없으니 바네사를 이용했을 테지.
잠시간 입을 다물고 있던 마법사가 낄낄거렸다.
“크크큭. 내가 대공녀를 얕봤어. 건장한 사내놈을 선택해 억지로 먹였어야 했는데.”
그럼 지금 당장 다른 사람을 세뇌할 수는 없다는 뜻이네. 그의 말에 조금 마음을 놓은 키네미아가 숨을 깊게 내뱉었다. 뭔가 복잡한 조건이나 대가가 필요할지도…….
그럼 바네사를 제외하면 일단 안심해도 된다는 뜻인가.
곧 창틈 새로 검은 나비가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유모가 풀썩 쓰러졌다. 안전한 곳까지 이동시키라는 요구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칫.’
키네미아는 유모에게 다가갔다. 목의 상처는 깊지 않았으며, 숨이 고르고 맥박이 안정적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키네미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모, 나 때문에 미안해…….’
– 이제 마셔. 대공녀.
검은 나비에게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마실 거야.”
짜증스럽게 키네미아가 찻잔을 쥐었다. 찻물 위에 미간을 찡그린 새하얀 얼굴이 출렁거렸다.
‘독은 아닐 거야.’
물론 확신은 없다. 그러나 날 죽이려고 했다면 유모가 칼을 휘두르게 하는 게 더 간편한 일 아니었을까.
문득 이대로 도망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다 바네사를 다시 일으키면?
그건 위험해.
게다가 이게 독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도는 있을 터.
그녀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에이얀은 반드시 알아챌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영지에는 마탑주와 쉔 티엔도 있으니 위험한 상황까진 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내 키네미아가 마시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던 그때였다.
– 마셔.
너울거리는 나비는 어느새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메아리가 번지듯 마시라는 소리가 귀를 울려 댔다.
– 마셔, 대공녀.
– 마셔.
– 마셔.
– 마셔.
“재촉하지 않아도 마신다고!”
빽 소리를 지른 키네미아가 단숨에 차를 들이켰다.
미지근한 액체가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다.
“…….”
별맛은 안 나네.
입을 꾹 다문 그녀가 눈을 굴리는데, 나비가 앞으로 날아왔다.
– 입을 벌려. 대공녀.
깐깐하긴……. 키네미아가 입을 벌렸다.
“이제 됐지?”
차를 다 삼켰다는 걸 확인한 검은 나비가 말했다.
– 좋…… 아…….
음……?
늘어진 테이프로 재생한 것처럼 남자의 목소리가 뭉개졌다.
– ……약효…… 가…… 들…….
급속도로 정신이 멍해진 키네미아가 눈을 깜빡였다.
“어…….”
무심코 든 손이 물에 번진 것처럼 흐릿했다.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다. 애써 힘을 주어도 눈꺼풀이 내려앉고, 눈앞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곧 암전이 찾아왔다.
* * *
수풀 안으로 들어서던 에이얀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지는 해를 등진 대공 성이 보였다. 벌써 어두워진 사위에 거대한 대공 성은 불길한 분위기를 풍겼다.
“…….”
그때 근방에서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얀.”
“칼슨?”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린 에이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칼슨을 필두로 마법사 십수 명이 에이얀과 대치하듯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오랜만이네. 칼슨과 그 친구들.”
에이얀이 기다란 눈매를 접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늘 여유가 넘치시는군.”
그 말에 에이얀은 픽 웃음을 흘렸다.
“내 말이 우스운가?”
“이런, 아니야. 사과할게. 네가 네 형이랑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하기에.”
“……!”
칼슨은 기습이라도 당한 양 눈을 홉떴다. 그에 반해 에이얀은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이름이 뭐였지. 브라운?”
“브렉이다!”
브렉은 지난 에이얀 습격 사건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은 마법사 중 하나였다.
부러 이름을 못 외우는 척하는 도발임을 알면서도 칼슨의 심장은 분노로 펄떡였다.
“맞아, 브렉. 그렇게 닮는 게 핏줄인가? 난 외동이라 잘 몰라서.”
이죽대듯 말하는 에이얀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아, 그 핏줄 말인데, 지능도 비슷해지나? 지금 보니 형이랑 비슷한 수준 같아서 물어보는 거야.”
칼슨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짓씹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모욕을 느낀 건 마찬가지였는지 가늘게 어깨를 떨거나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분노에도 에이얀은 배부른 맹수처럼 눈을 휘며 웃었다.
“그래서? 내게 그렇게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낸 이유가 뭔데?”
바로 기습해 오지 않은 이유는 대공 성에서 지내는 마탑주 때문일 것이다. 마법사들은 마탑주의 감각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에이얀에게만 점멸하는 신호를 보내왔다.
“이유가 마음에 내키면 살려 주려고. 마침 2차 각성이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찌뿌둥한 참이었거든.”
2차 각성을?! 칼슨의 동공이 떨렸다.
떼로 덤벼도 2차 각성을 안 한 에이얀에게 상대도 되지 않던 이들이다.
그런데 2차 각성까지 마친 괴물을 앞에 두게 되다니.
‘하필!’
칼슨은 공포로 죄어 오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혔다.
‘괜찮아…… 괜찮아.’
적당히 시간을 끌다 도망치면 돼. 라이언은 적당히 시간만 벌어 주면 된다고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