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2)
먼치킨 길들이기 92화
간지러워. 키네미아는 난처한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다.
“잠을, 못 잤어?”
“응. 마탑에서 밤새고 혜민원에는 아침에 왔어.”
나 때문에 깬 건가. 멋대로 방에 들어온 것에 살짝 죄책감이 일었다.
‘다시 자도 되는데.’
……사실 나한테 이러지 말고 다시 돌아가서 잤으면 좋겠다.
키네미아는 심장이 잦게 떨리는 걸 에이얀이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숨을 깊게 마셨다 내쉬었다.
“저기, 에이얀. 계속 어지러워?”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에 에이얀은 나직이 웃었다. 왜 웃어, 라고 묻자 그가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어지러워. 계속 어지러울 예정이야.”
이 자식이. 주먹을 쥔 키네미아가 에이얀의 팔을 가볍게 때리며 밀어냈다.
“아야.”
맞은 팔을 어루만진 그가 힘없이 밀려났다.
약한 척은. 키네미아가 못마땅한 기색을 역력히 내보이자 에이얀이 피식 웃었다.
“미아, 잠시만 앉아 있어. 잠 좀 깨고…….”
에이얀은 앉아서 기다리라면서 키네미아를 방 안쪽으로 이동시켰다.
‘앉을 데라고 해 봤자 침대뿐인데?’
얘도 어지간히 청소 안 한다.
방 안은 연금술사들에게서 갈취해 온 동대륙의 책으로 어지러웠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키네미아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쥬디스는?”
잠에서 깨기 위해 물을 들이켜던 에이얀이 눈매를 좁혔다. 그는 무언가를 고심하듯 뜸을 들이더니 이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안 죽었어.”
“엥.”
“안 죽였어.”
“엥!”
에이얀은 ‘이것도 아니야?’라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종종 에이얀에게선 일반인과 다른 기묘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키네미아는 처음 에이얀을 만났을 때 적었던 비고를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골렘이 네 손에 있어?”
“재설계 때문에 바쁘다고 하던데. 그래서 내가 대신 가져다주기로 했어.”
“그으래?”
“응.”
“구동하는 방법이나 주의 사항 같은 건?”
“내가 다 들었어.”
“……그으래?”
“그으럼.”
키네미아가 따라 하지 말라 타박하니, 에이얀은 귀여워서 그랬다며 애교를 부렸다.
“셰넌벨 가게 준비나 해.”
“네에.”
키네미아는 에이얀이 욕실에서 준비하는 동안 베개를 품 안에 안고 발끝을 모았다.
‘아직 조금 불편한데.’
에이얀을 만나는 건 고백을 받았던 날 이후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지, 에이얀은 마탑에 잠시 머물러야 한다고 했었다.
키네미아는 당시 울프만이 에이얀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에이얀. 네 계약이 어그러지고 있으니 한번 보수를 해야겠구나.”
‘그러고 보니 계약이라면…….’
쥬디스가 걸었다던 그 계약 마법 같은 건가? 그런 걸 왜 걸고 있지?
키네미아가 미심쩍다는 시선으로 욕실을 응시하는데-
“……!”
마침 욕실에서 나온 에이얀과 눈이 마주쳤다.
에이얀이 생긋 웃자 키네미아는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가 흠, 소리를 내며 근처로 다가왔다.
“성에 기사단이 왔다면서. 별일 없었어?”
“응, 아직은? 조용히 있다가 새벽부터 나가긴 했는데, 지켜봐야겠지.”
고개를 돌린 채 말하는 키네미아 앞에 에이얀이 앉았다. 딱, 그가 주의를 환기시키듯 손을 튕겼다.
“미아, 어디 봐?”
“으응?”
귀를 쫑긋 세우고 되물으면서도 시선은 그에게서 빗겨 나 있었다.
그에 에이얀이 손으로 키네미아의 턱을 자신이 있는 정면으로 돌렸다.
“여기 있는데, 나.”
“……!”
눈이 마주치자 키네미아가 반사적으로 에이얀의 얼굴을 밀었다. 손바닥에 밀려 얼굴을 뒤로 젖혔던 에이얀은 키네미아의 손을 포개 잡았다.
부산히 눈동자를 굴리던 키네미아는 잡힌 손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떨궜다.
“미아.”
“응.”
키네미아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에이얀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긴장했어?”
“아아니?”
완전 평소 같아. 나는 널 신경 쓰지 않아. 절대. 키네미아가 녹슨 로봇처럼 삐걱삐걱 얼굴을 옆으로 움직이면서 말했다.
“그래?”
“어.”
“난 했는데.”
“……어?”
순간 얼빠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에이얀이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미아, 내 냄새는 마음에 들어?”
갑자기 뭔 소리야. 키네미아는 에이얀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제가 안고 있는 베개로 또르륵 눈을 내렸다.
“……!”
화르륵 얼굴이 달아올랐다. 키네미아가 입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왜 이걸 안고 있어! 미쳤어?! 그녀가 전력으로 베개를 집어 던졌다.
“왜, 이제 싫어졌어?”
그가 시무룩하게 물었다.
“그때는 분명히 좋다고-”
기겁을 한 키네미아가 매몰차게 손을 빼내서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안 들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과거로 돌아가 날 죽이고 싶다.
* * *
숲 너머에서 마물이 고성을 내질렀다. 이른 새벽부터 토벌에 나선 이글의 기사들이 하나둘씩 검을 뽑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계하는 기사들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워맥 자작이었다.
“두고 행군하라.”
“예?”
“하지만 이대로 가면 아래에 있는 마을이…….”
“어차피 모험가들이 즐비한 마을이 아니냐.”
“그래도 떼를 지어 내려가면 마을이 위험할 겁니다.”
계속되는 반박에 워맥 자작이 성마르게 말했다.
“상관의 명에 불복할 셈인가? 두고 행군해! 명령이다!”
“예!”
크게 대답한 기사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검을 다시금 집어넣었다.
이를 확인한 워맥 자작은 검으로 마물의 알을 부수고 나무에 냄새를 묻혔다.
지나친 마을에서부터 줄곧 같은 행동을 이어 온 참이었다.
‘지겨운 리온. 지긋지긋한 리온의 계집.’
저를 아둔하다 표현한 키네미아 리온은 케네스 리온을 쏙 빼닮아 있었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토벌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리온의 영지에서 마을 사람들 몇이 희생되는 것쯤, 그의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워맥 자작은 제 부관을 불러 명했다.
“버나드, 나는 기사들을 데리고 쭉 행군을 시작할 테니, 자네는 뒤따르면서 마을까지 길을 트게.”
마을까지 길을 트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한 버나드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 * *
셰넌벨.
키네미아의 명에 따라 셰넌벨 마을의 대표는 빈 공터로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다들 놀라겠지.’
모르긴 몰라도 마탑의 마력 기계를 밖에서 구동하는 일반인은 키네미아가 최초이리라.
그것이 제법 뿌듯해서 키네미아는 흥분을 애써 감춘 채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골렘인지 뭔지 하는 신문물보다 영주의 얼굴이 더 신기했는지, 키네미아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간간이 저들끼리 속닥거리고 있었다.
‘……!’
순간 키네미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가씨, 꼭 잊지 마세요. 영지민들은 전부 아가씨를 사랑해요! 아가씨는 훌륭하세요!”
유모는 피해망상증에 걸린 키네미아가 걱정이었는지, 틈만 나면 세뇌하듯 이런 말을 반복했다. 덕분에 제법 자존감을 키워 놨건만.
그러나 직접 마주하는 느낌은 또 달랐던 터라 유모의 말을 곱씹으면서도 키네미아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였다.
돌연 마을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새파랗게 질려서 고개를 푹 숙였다. 아예 키네미아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못하는 것처럼.
엥?
갑작스러운 반응에 키네미아가 의아해하는데 마을 사람들 뒤편에 서 있던 에이얀이 이제 시작하라는 듯 생글생글 웃었다.
‘뭐 했어?’
‘뭘?’
그녀가 입 모양으로 묻자 에이얀은 천연덕스럽게 모르쇠를 고수했다.
‘……바보.’
어쨌든 도움은 됐으니까…….
난처한 기색을 지운 키네미아가 동그란 구슬이 모두에게 보이도록 들어 올렸다.
“이게 바로 골렘의 코어야.”
골렘의 본체는 이 코어. 골렘이 부서져도 코어만 상하지 않는다면 모래와 마정석으로 얼마든지 재구동이 가능했다.
키네미아는 준비된 모래 더미 위에 코어를 올려 둔 후, 새로운 마정석을 코어에 댔다. 그러자 코어가 마정석을 흡수하더니 모래가 꿈틀거리며 이리저리 뭉치고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으, 그녀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살짝,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곧 2m 정도 크기의 덩치 좋은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골렘이 만들어졌다.
‘시험 삼아 이 정도면 될까.’
키네미아는 제 가슴께까지 오는 바위를 지정했다.
“이걸 부숴.”
그러자 골렘이 손바닥으로 툭, 무심히 바위를 내리쳤다.
이내 쩌저적- 하고 거대한 바위가 갈라졌다.
……엥?
직접 시험해 보는 건 키네미아도 처음이었던지라 골렘의 파괴력에 놀라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뭐지? 이렇게 세단 말이야?’
대체 마탑에서 뭘 만들고 있는 거야, 기술 개발부는…….
가슴이 살짝 벌렁거렸던 키네미아는 제게 쏟아지는 선망의 눈빛에 하나도 놀라지 않은 척, 마치 처음부터 의도한 척 어깨를 으쓱였다.
“……골렘은 이런 거야.”
“오오!”
이에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호위로 나섰던 기사들까지 전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게 바로 마탑의 기술이군요……!”
“엄청납니다!”
“대단하십니다, 영주님!”
그렇게 모두가 골렘을 둘러싸고 감탄을 금치 못할 때였다. 한 노인이 키네미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기사들과 에이얀이 동시에 몸을 움직이려 하자 키네미아가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키네미아의 손을 꼭 잡았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영주님.”
진심이 가득 녹아 있는 목소리였다.
단두대 걱정으로 시작해서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었기에, 순수한 인사를 받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들뜨고 부끄러워진 키네미아가 볼을 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되지. 머리가 복잡해지는 바람에 입만 벙긋거리던 키네미아는 겨우 고개만 두 번 끄덕였다.
노인은 그런 영주가 귀엽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주님 덕에 저 같은 늙은이도 마을에서 계속 여생을 보낼 수 있겠어요.”
평소 대공 성에서 영지민들이 이렇단다, 저렇단다, 전해 듣는 말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가슴 안에 몽글몽글한 것들이 잔뜩 부풀어 올라 있는 기분.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야…….”
키네미아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