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30)
EP.131)노바 # 2
131 – 아르스 노바 # 2
검은 마법사 펠토는 하이로드의 현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남자라고 했었다.
과거형인 까닭은 그가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 구름에 가려져 있었던 햇볕이 이따금씩 지상을 내리 죄는 것처럼 아주 가끔 그 총명함이 다시금 번뜩일 때가 있다고 했다.
“펠토 경, 할 말이 있소? 방금 뭐라고 했소?”
그래서 하이로드의 마법사들은 펠토 경의 이야기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는 편이라고 했다.
모처럼 검은 마법사가 입을 열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 그의 입술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고대하게 됐다.
우리의 기대감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웅변하듯 우렁차게 소리쳤다.
“살해-! 죽음-! 파괴-! 학살-!”
그리고는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본 청색의 마법사 오션은 자신의 이마를 매만지며 “또 시작이군. 약 먹을 시간 지났나?”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검은 마법사 펠토는 사방으로 날뛰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히히-! 파괴-!”
그렇게 난동이 한참 심해질 즈음,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도 없었는지 현자회 의장 하이낙스가 허공에서 긴 지팡이를 꺼냈다.
─고위 수면 마법. 솜누스-.
기이한 빛과 함께 펠토는 이내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그에 하이낙스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야 겨우 좀 진정이 됐군. 이해하게나. 펠토 경은 원래 좀 머리가 맛이 갔어. 6위계를 돌파하며 진리를 너무 가깝게 들여다본 탓이지.”
잠들어 있는 검은 마법사 펠토를 보며 자신의 머리 옆에 손가락을 빙빙 돌리는데, 마치 아이라를 뒤에서 흉보는 엘가와 같은 태도에 나는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펠토 경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솔로몬.”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광인의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가서 다행이지만. 나는 그게 우연이었을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든다.
다만 미르나는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무슨 난동이죠? 아무튼, 당신들은 분명 솔로몬 왕의 대주술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것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제게 이야기해주셔야 할 거에요.”
“알겠소.”
미르나의 이야기에 하이낙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수염을 슥슥 쓰다듬던 그가 마침내 천천히 운을 뗀다.
“마왕 솔로몬은 세상을 위해 72가지의 마법을 만들었소. 72위부터, 1위까지. 하나같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것들이었지. 특히 최후에 완성된 네 개의 마법은 차원이 달랐소.”
“그게 인격을 지닌 네 개의 대주술 ‘아르스 노바’죠. 마법에 입문한 자라면 어린 아이들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미르나가 가볍게 설명을 시작했는데. 아르스 노바(Ars Nova)에 대한 것이면 나도 아는 게 있었다. 솔로몬 왕이 가장 공들여 만들었다는 최후의 대마법들.
그것들은 이미 하나의 새로운 질서나 마찬가지였다나.
이 새로운 질서-네 개의 대주문을 뜻하는 게 바로 아르스 노바다.
내가 획득한 마법이자 발란 교수를 괴롭혔던 마법 ‘가미긴’이 그것 중에 하나기도 하고.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나도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좀 열심히 공부했지.
스륵.
하이낙스가 긴 장죽을 꺼내더니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뻐끔거리다가 연기와 함께 말했다.
“하지만 솔로몬은 저기 저 펠토처럼 결국 미쳐버렸고. 그가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낸 주술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을 잔뜩 죽였소.”
하이낙스는 지팡이로 자신의 얼굴을 스륵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얼굴과 몸은 끔찍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해서 내가 다 숨을 집어삼킬 정도였다.
묘사가 어려울 정도로 정말 끔찍한 화상이었다. 으, 보는 내가 다 아프잖아.
“악의 대전쟁에서 나도 싸웠었소. 끔찍했지. 참혹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도 없었고. 이건 그때의 상처요. 낫지도 않아. 그렇지만, 내 삶을 희생할 만한 값어치는 있었지.”
스륵.
지팡이로 다시 얼굴을 가리키자 하이낙스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끔찍한 화상을 환각 마법으로 가렸다고 하는 편이 좋으리라.
그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미르나 아가씨의 말대로 네 가문과 많은 용사, 영웅들이 합하여 결국 솔로몬은 갈기갈기 찢겨 죽었소. 그의 몸을 이루고 있던 72가지의 마법도 갈기갈기 찢겼지. 그리고 그것들 중 많은 주문들이 이 성역 아크에 봉인되어 있고.”
“아하.”
나는 역시 그렇구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크의 돔이 어째서 이렇게 단단하게 지어져 있는지 이해됐다.
솔로몬 왕의 주술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결계를 펼친 것이구나.
그러니까 이곳이 최후의 보루가 될 수밖에 없었겠지.
그런 설정들이 있었다니.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미르나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4위의 주술 가미긴이 풀려난 것이죠?”
“사고가 있었소. 20년 전에, 모험심과 정의감 넘치는 아크의 생도 둘이 금기를 열어버린 탓이지. 그때 봉인이 풀려나간 주술이었던 모양이오.”
“금기를 열다니,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미르나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학을 뗐지만. 나는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20년 전의 사건이라는 것에 대해 아는 바가 있었으니까.
“프리가 나이트폴. 성녀님이었겠군요.”
내 의문을 담은 추측에 하이낙스는 마지못한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그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곧바로 추측해내니 할 말이 줄어드는군.”
하이낙스가 20년전에 일어난 모종의 사건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때 2위의 아가레스가 풀려나 많은 것이 쑥대밭이 되었지. 다시 봉인을 하긴 했지만 많은 희생이 있었어. 우리 현자회도 그날을 계기로 결성되었지.”
아가레스인가.
기억이 나는 글자다.
내가 입학을 할 때 아가레스라고 적힌 마법진을 봤었지. 그러나 나는 ‘아가레스’라는 이름의 주술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흡수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그 이유는 곧 이어지는 하이낙스의 설명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가레스는 지금 성녀님의 몸에 봉인되어 있다네.”
그렇게 된 건가.
대강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의 몸에 봉인되어 있거나 빙의되어 있는 주술은 내가 흡수할 수가 없는 모양이구나.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내가 사고를 굴리고 있는 사이 하이낙스가 계속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 봉인이 언제까지 알 수가 없지. 만약 가미긴처럼 풀려난 주술들이 날뛴다면 그 봉인은 약해지고 말 터. 여기서 가스펠 경, 그대에게 제안이 있다네.”
“제게 제안요?”
“제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겠지만. 가스펠 경, 그대에게도 구미가 당길만한 이야기지. 특별한 눈을 가진 자네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 * *
“그럼 가스펠 경, 잘 생각해보도록 하시오.”
“안녕히 계세요. 조만간 답을 드리겠습니다.”
나와 미르나는 이사회의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해가 어물어물 저무는 저녁이 되어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이야기가 길어졌다고 해야 하나.
미르나가 물었다.
“태오, 현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건가요?”
“음, 글쎄요.”
미르나의 물음에 나는 방금까지 오갔던 대화를 떠올렸다. 마왕의 주술들이 깊숙이 봉인되어 있는 던전들을 돌아다니며 보수해달라는 이야기였던가?
그 답례로는 현자들로부터 다양한 마법들을 개인적으로 강의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또 내 강의들을 A학점으로 올려주고, 티어 또한 활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골드티어까지 올려준다고 그랬다.
대륙에 10명도 되지 않는 대마법사들로부터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것도 모자라서 여러 혜택이 주어진다니. 이보다 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또 있을까?
골드티어 브로치면 개인실이 주어지잖아.
또 던전을 돌아다니며 솔로몬 왕의 주술들을 더 획득하고 흡수하게 될 확률이 높다. 내게 있어서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는 이야기였다만 나는 짐짓 고민하는 척하기로 했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하긴, 위험한 일이 될지 모르니 함부로 결정할 이야기는 아니겠군요. 그럼 이 이야기는 다음에 생각하고 같이 저녁이라도-.”
미르나가 내게 무언가 말을 하려 할 때였다. 누군가가 기릭기릭-하고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태오 경.”
“발란 교수님.”
그녀는 발란 교수였다. 하녀가 끄는 휠체어에 타 있었던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파르르 떨리는 무릎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갓 태어난 사슴 같은 동작에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그녀는 내 앞에 털썩 주저앉듯이 무릎을 꿇고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에 나보다 미르나가 더 화들짝 놀란다.
“발란 교수,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죠?”
“제 삶을 구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 드리고 싶었어요.”
덕분에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무릎에 닿아서 나는 무척 기분이 오묘해졌다. 이 정도면 엘가랑 비슷하지 않나.
“제가 답례로, 드, 드릴 수 있는 건 많이 없지만. 태오 경, 그대가 원하는 것이면 무, 무엇이든 해드릴게요. 제가 쌓아온 학업. 지, 지위. 아니면 제 몸이라도….”
발란 교수는 내 무릎을 끌어안은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내 허벅지에 비볐다. 덕분에 앞으로 자라나 있는 내 꼬리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발란 교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불경하군요! 어서 떨어져요!”
그때 미르나가 내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발란 교수를 일으켜 세운 뒤에 그녀의 휠체어에 다시 앉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발란 교수는 내게 정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는지 자신의 파인 드레스, 그 가슴 사이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뭐냐.
뭔가 싶어서 보니 그건 열쇠였다.
“제, 제 연구실 열쇠에요. 태오 경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궁금한 걸 물어보거나 하셔도 돼요. 언제든…. 저는 언제나, 거기에 있으니….”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 이내 발란 교수는 하녀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미르나가 화가 난 것처럼 말했다.
“불경하기 짝이 없는 여자로군요. 저렇게 마음이 나약하니 주술 따위에 지배당하는 겁니다. 태오, 당신도 저런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아시겠나요?”
“당연하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열쇠고리에 적힌 무언가를 발견했다.
「할 말이 있습니다. 제 연구실로 오세요.」
비밀얘기라도 있나.
나는 누가 볼 새라 열쇠를 얼른 주머니에 잘 챙겨 넣었다.
사실 나도 발란을 향해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있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그래서 시간이 저물고, 달이 높이 떠오르는 자정이 되었을 때. 나는 기숙사를 빠져나와서 발란의 연구실로 향했다.
그녀의 연구실은 시설이 편리하고 고급스러운 A급 연구동에 있어서 찾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기척이 들렸다.
━누구시죠?
“태오 가스펠입니다.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아, 태오 경. 물론이죠. 드, 들어오셔도 돼요. 열쇠를 드렸으니, 알아서 잘 따고 들어오도록 하세요.
안쪽에서 들려온 허락에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바깥의 풍경이 보이는 채광 좋은 창문과 넓은 실내, 그리고 그 안에 박제되어 있는 온갖 생물들의 사체와 보글보글 끓고 있는 실험도구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밤의 과학실 같아서 으스스한 걸.
그런 으스스함의 중심에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성이 보였다. 까만 네글리제를 입고 있는 창백한 피부의 여성 발란이다.
촛불의 은은한 채광 아래로 발란의 붉은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그런데 내 눈이 향하는 곳은 깊게 파인 네글리제와 가슴이었다.
그건 남자의 눈을 끌게 만드는 흑마술적인 뭔가가 있었다. 역시 대단하군.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 언제 올 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여기 앉으세요.”
“그래서, 제게 열쇠를 주신 이유는 뭐죠? 저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말입니다.”
내 질문에 발란 교수가 대답하는 것 대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게 걸어오는데. 휠체어에 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똑바른 걸음걸이였다.
스륵, 스륵.
그 하얀 맨발이 내게로 올곧게 향하는 것을 보며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완드를 뽑아들었다.
“갑자기 무슨, 모두를 속였습니까? 똑바로 걸을 수 있으면서.”
절름발이가 범인이라더니.
휠체어는 연기를 위한 도구였던 건가? 어째서 걷지 못하는 척을 할 필요가 있었던 거지?
솔직히 나는 당황했다.
그러나 발란은 붉은 눈동자를 더욱 휘어뜨리며 더욱 믿지 못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어, 없어요.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당신도 모두를 속이고 있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제가 누굴 속여요?”
“연기자의 재능을 갖추고 계시네요. 하, 하지만 제게는 무용(無用). 위대하고 지혜로운 다비드의 자손이여. 발란 사브르나크. 그대에게 경배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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