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67)
EP.168)밤 # 9
168 – 낮과 밤 # 9
나는 나르미를 위해 꽃을 선물했다.
그것은 달맞이 꽃.
노란 꽃잎에 연한 줄기가 달라붙어 있는 연약한 꽃이다. 꽃말은 기다림이고, 여러 동화 같은 이야기가 얽혀 있는 식물이기도 했다.
그것을 받아 든 나르미가 무척 우물쭈물했다.
“태오야, 네가 날 좋아한다는 말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나르미는 똑똑한 여성이다.
젊은 나이의 남성이 또래 여성에게 꽃을 선물한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를 리가 없겠지. 실제로 여러 남성들로부터 무수한 구혼과 꽃을 받아왔을 터.
깜빡, 깜빡.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리는 루비색의 눈동자. 곧 나르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숙숙 훑었다.
“남자한테서 꽃을 받아본 거 처음이야. 그래서, 조금 당황스러워. 오해하게 될 거 같잖아.”
“꽃을 받아본 게 처음이라뇨?”
“물론, 정확하게 따지면 처음은 아닌데. 그 선물은 내가 아니라 사실 언니에게 주는 꽃이었으니까. 언니인 줄 아는 나에게 주는 거라서-.”
무언가 횡설수설하는 나르미. 곧 나르미는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후,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런 것도 일일이 풀어서 설명해야 한다니. 정말 이 체질은 불편하다니까.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나, 나르미 드레이코에게 꽃을 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는 거야.”
“아하.”
단박에 이해가 됐다.
나르미 역시 아름다운 여성으로 여러 번의 구혼과 꽃을 받았지만.
그것은 나르미 자신이 아닌, 그녀가 연기하고 있던 가면 미르나 드레이코를 향한 고백과 구혼이었던 모양이다.
나르미는 가족들을 제외하면 그 존재가 대부분 비밀에 가려져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나르미 또한 미르나로 보였겠지.
나르미가 나무 테이블의 결을 손가락으로 계속 따라 훑으며 말을 덧붙였다.
“혹시 이것도 언니에게 주려는 거야?”
“아니요. 그건 정말 나르미 님만을 위해서 드리는 겁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것은 미르나 님이 아니라, 동생 분이신 나르미 님이잖아요.”
“…….”
나르미는 대답하는 것 대신에 어색한 침묵을 택했다. 생각을 고르려는 것일까. 나도 그렇게 생긴 여유를 틈타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미르나와 나르미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녀들의 개성은 각각 확실한 부분이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충분하게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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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미르나 폰 드레이코 & 나르미 폰 드레이코 lv. ??
직업 : 여군주 lv. 6 → 7
강령술사 lv. 8
암흑사제 lv. 9
요조숙녀 lv. 5
[잠금] lv. 3
재능 : 《이면성》 《고귀한 피》 《순진함》
성향 : 혼돈-중립.
명성만으로 우는 아이를 뚝 그치게 만드는 대가문의 자매입니다.
그들은 둘이서 하나. 하나로서 둘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합니다.
동시에 서로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며 경쟁합니다. – New!
[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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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
위처럼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통해 찰싹 달라붙어 있는 레고 조각이라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사람이란 자신에게 없는 부족함을 채워 넣고 싶기 마련.
새로 생겨난 문장.
「동시에 서로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며 경쟁합니다.」
이것처럼 나르미와 미르나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동시에 서로의 것을 부러워하고 또 그것을 통해 발전해나가는 라이벌 그 자체였다.
본디 형제라는 건 그런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하나의 몸에 이면성을 지니고 태어난 나르미와 미르나에게 있어서 그러한 점은 더 컸겠지.
실제로 미르나는 나르미를 부러워하고 있었고.
또 여동생인 나르미는 나르미 나름대로 언니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햇살에 밝게 빛나는 것처럼 아름답고 행복하기 만한 것인 줄 알았던 듯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소녀들이 응당 꿈꾸는 연애의 행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겠지.
일찍이 미르나는 모든 사내들이 자신보다 나르미 쪽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그랬었다.
밀실에서 오랫동안 함께 있을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르미가 연기하고 있던 자신에게 반해 접근해오는 남자들이, 미르나의 고고한 태도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물러갔다나.
━나르미는 잘 웃어요. 남성분들은 그런 걸 좋아하죠. 그에 비해 저는 잘 웃지 않죠. 아마 남성분들은 갑작스럽게 변한 태도에 혼란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군요.
확실히, 잘 웃는 여성들은 좋지. 내가 해주는 말에 잘 웃는 여성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여러모로 알록달록한 반응으로 가득할 것 같으니까.
또 그런 미소란 미르나에게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르나는 명랑한 나르미를 향해 은근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던가.
그러나 요즘 보면 여동생인 나르미 쪽도 언니에게 큰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밝은 낮을 살아가고,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도 일을 척척 해내는 모습부터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요소들까지-. 분명 자매들이 서로에게 갖는 감정은 복잡하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미르나 님이 아니에요. 제 앞에 나르미 님이 계신다는 게 중요해요. 다른 사람들은 미르나 님을 보고 있을지 몰라도. 저는 나르미 님만을 보고 있어요.”
나르미의 빨간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지금까지 안절부절못하던 느낌은 조금 진정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울음기를 머금고 있어서 촉촉한 눈이었다.
“정말 내가 보여?”
“네.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고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겠죠. 저도 잘 알아요. 누군가 진짜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도.”
나는 나르미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당장 나 역시 따지고 보면 나르미와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가 나를 보며 태오 가스펠을 떠올리겠지. 하지만 그 반요정의 내면에 있는 것은 요승도 앙그마르의 마왕도 아닌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그것을 누구도 모른다.
솔직히 그까짓 거, 몰라도 상관없다. 당장 중요한 일도 아니고.
하지만 누군가가 나의 내면을 바라봐준다면. 진실 된 내 모습을 알아차리고 손을 내밀어온다면 나는 그 누군가에게 여러모로 감동하리라.
아름다운 여성이면 반할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지니고 있는 ‘호색한’의 직업 특성이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기회는 지금이라고.
그래서 나는 입을 열어 나의 주사위를 던졌다.
“저는 지금-.”
* * *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오직 나르미 님만을 보고 있습니다.”
반요정이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나르미의 머릿속은 아득한 오래전의 일들을 눈앞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르미 폰 드레이코.
그녀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왔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직 사촌과 가족들이 살아있을 무렵이었던가. 많은 친척과 가족들이 나르미를 아껴주고 칭찬해줬었지. 그것은 미르나가 아닌 온전한 나르미의 몫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영문 모를 병-발란 교수의 음모에 의해 모두 숨을 빼앗기게 된 지금. 세상에서 나르미 자신을 좋아하고 알아봐주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아니, 손에 꼽는다고 해 봐야 언니 정도 뿐. 그러나 그 언니는 매일 자신의 일들로 바쁘고 벅차서 나르미와 이야기할 시간도 없어보였다.
━그어어어-.
━다시, 자!
나르미 또한 바빴다. 매일 밤 가족이 잠들어 있는 무덤을 돌봐야 했고, 반디불도 잡아야 하고, 온갖 독충들을 모아서 고독도 만들어야 하고, 허공에 돌멩이를 던져보기도 해야 했으니까.
따분한 시간.
홀로 무덤가를 지켰던 천 일 가까운 시간의 새벽에 나르미는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됐다.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없었으니.
책에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고. 햇살을 듬뿍 받아가며 살아가는 나날의 행복에 대해 적혀 있었다.
나르미와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일상의 나날들. 시끌벅적하면서도 나른한 오후들.
하지만 책을 덮으면 자신의 앞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음침하고 어두컴컴한 무덤뿐이다.
그러한 나날이 천 일 가까이 이어지자, 나르미는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의 삶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그래선 안 되는 일이지만, 언니가 자신의 삶을 빼앗고 있다고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르미는 기이한 남자를 만났다. 자신과 눈높이가 비슷하지만, 자신과는 다르게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그 푸른 눈은 무척 맑아서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릴 것 같지 않는 눈이었는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 남자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미르나 영애가 아니군요. 나르미. 맞죠? 나르미 드레이코 아가씨.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수긍하게 됐다.
눈앞의 남자는 미래를 본다고 전해지는 요승. 미래시, 즉 신비로운 눈의 소유자라면 자신을 알아본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르미와 반요정의 특별한 관계가 시작됐다. 자신의 언니인 미르나에게조차 비밀로 한, 오직 나르미만의 비밀이었다.
모든 것을 공유해왔던 자매 사이에서 오직 자신만의 것을 갖게 되는 것이 짜릿한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기도 했다.
그런 남자가 말해주었다.
오직 자신만을 보고 있노라고.
또, 다른 이를 연기해야 하는 삶에 공감하고 있다고.
나르미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때때로 혀를 무기처럼 사용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남자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져 왔다. 영혼의 파동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 오로지 진심만을 말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의 눈에는 정말 나르미, 자신만이 보이고 있겠지. 여러모로 잘난 언니도 드레이코 가문의 여군주라는 허울도 아닌 그저 평범한 여자애 나르미.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삶을, 이 남자의 눈앞에서라면 살아갈 수 있겠다고 느껴지는 순간 나르미는 이미 자신이 그에게 반해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아주 오래 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그 달빛 어린 신전의 계단에서 나르미와 부딪혔던 그 순간. 스스로 소개하지 않았음에도 나르미를 먼저 알아봐준 순간 이미 모든 것은 끝나 있었으니까.
근데 어떻게 대답하면 좋지?
이런 상황에서는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슥.
나르미는 슬쩍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 오가는 사람들. 그들 중에는 남녀가 쌍쌍이 짝을 지어 앉아 서로 웃고 손을 잡고 있는 자들도 많았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게 사랑을 하는 사람들.
저들이라면, 만약 나르미 자신이 평범한 여자였다면 여기서 어떻게 말했을까.
평소 생각해두었던 것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낯선 상황 때문인지 처음 마셔보는 맥주 때문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하지만 남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을 언니의 상의 없이 멋대로 결정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언니의 상의가 꼭 필요한가? 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중요한 문제인데….
다만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돌아가죠.”
돌아간다니.
그럼 이렇게 둘만의 시간도 끝인 걸까? 나르미의 심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쿵쾅거리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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