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88)
EP.189)자리에서 # 5
189 – 각자의 자리에서 # 5
결투재판이라는 것은 단순히 서로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싸움을 뛰어 넘어, 하나의 큰 오락거리였다.
━오, 맨 앞자리잖아. 일찍 예약해두길 잘했네.
━얼마나 잘 싸우려나?
오락이나 볼거리가 많지 않은 이 세상에서는 서로 피를 흘리는 결투만큼 자극적인 것이 또 있을까.
하물며 커다란 빅 매치.
경기가 시작되는 당일, 새벽부터 줄을 섰던 사람들이 스타디움으로 입장했다.
평소 아크 생도들의 훈련장이나 뜀걸음의 연습장으로 사용되었던 한적한 경기장은 이내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무리에 발 디딜 틈 없이 시끄러웠다.
선수 대기실은 좀 조용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곧 쳐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시끄러워지고 만다.
“야,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대기실에 손님으로 찾아온 엘가가 나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입술을 열어 치아를 확인하거나 두 눈에 촛불을 비춰보며 초점을 확인하기까지 한다.
“컨디션은 좋아 보이는데.”
“엘가 님, 오히려 정신 사납게 구셔서 더 불안해질 것 같아요.”
“뭐가 어째? 사람이 걱정을 해줬더니-.”
으르릉거리는 엘가. 다만 그에 대한 답은 내가 아닌 옆에서 자신의 얼굴에 부채를 흔들고 있는 미르나 드레이코가 대신 해 줬다.
“리오네스 영애, 그렇게 걱정이 되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싸우시는 게 어떨까요?”
“…흥.”
이내 엘가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엘가가 대전사로 나설 수 없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물론 그런 걸 알 리 없는 미르나는 붙잡은 승기에 신이 난 것처럼 한 마디 더 쏘아 붙였다.
“천하의 리오네스가 싸움을 마다하다니. 아주 기묘한 일이로군요? 이제 와서 영애로서의 몸가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나요?”
“뭐래. 조용히 해. 네가 자꾸 시끄럽게 구니까, 태오가 못 쉬잖아.”
“뭐라구요? 시끄러운 것은 괄괄한 리오네스 영애, 당신 쪽이죠.”
엘가와 미르나 둘 다 시끄러웠다.
하지만 서로 저렇게 으르릉거리고 있으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에 가득 드리웠던 긴장이 조금은 사그라지는 듯했다.
그렇다.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의 앞에서 대결을 펼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애초에 결투라는 것 자체에 익숙지 않은 나로서는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라 얘는 어딜 간 거야? 자기 재판이면서.”
한참 다투고 있었던 엘가가 이제 슬슬 대화 분위기를 바꾸려는 것인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태오 가스펠이면서 동시에 아이라 여왕이기도 했었으니까.
“어디 갔는지 모르냐?”
엘가의 물음에 나는 아까 전 아이라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글쎄요. 무대 관계자와 행사 진행자들을 만나 할 얘기가 좀 있다고 하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관중석의 VIP자리로 먼저 갔겠죠.”
“흐응-.”
“이제 두 분께서도 그쪽으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엘가와 미르나 그리고 아이라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자리는 사람이 바글바글 몰린 관중석에서도 넓고 호화롭게 마련되어 있는 천막이었다.
검투사 경기를 관람하는 로마 시대의 황제처럼 그녀들은 오늘 나와 사냥꾼의 싸움을 지켜보겠지. 나도 원래는 지켜보는 쪽이었는데.
스윽.
“친구, 어때, 몸은 좀 괜찮나? 결투란 당일 아침의 컨디션이 가장 중요한데 말이야.”
그때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머리에 보석 박힌 터번을 두른 비단 옷의 투르키의 왕제 카심이었다.
그는 내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미르나와 엘가를 발견하더니 “내가 좋은 시간을 방해한 거 아닌가 몰라.”라고 어깨를 으쓱인다.
그들은 서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했다. 왕족과 귀족이 나누는 예의란 어느 곳에서고 변하질 않는 법이니까.
“카심 타나크.”
엘가가 먼저 카심의 이름을 읊었다.
“네가 태오의 훈련을 도와줬다며? 솔직히 말해서 이번 싸움, 어떻게 보고 있어?”
“3대 7. 물론 여기서 친구가 3이고, 사냥꾼이 7이지. 잘 훈련된 궁수와 갓 태어난 배틀 메이지의 싸움이니까.”
3대 7이라.
생각보다 내 가능성이 높구만.
비리비리 하던 반요정에서 원작의 주인공과 싸워 승산이 30퍼센트나 나올 정도가 되었다는 정도면 기뻐해도 되는 거 아냐?
“저기, 태오 가스펠 경. 이제 슬슬 경기장으로 입장해주셔야겠습니다.”
행사를 관리하는 여직원의 이야기에 나는 대기실을 벗어나 경기장으로 천천히 입장했다.
그 뒤를 따라 엘가와 미르나가 함께 걸어 나오는데 그녀들의 눈은 시끄러운 관중석이나 눈부신 햇살이 비춰지는 하늘이 아닌 바로 내 앞쪽 먼 곳에 뚫린 반대쪽 입구로 향했다.
“야, 너 정말 저런 거랑 싸우려고 하는 거냐?”
엘가가 상대를 발견한 모양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오는 남자의 키는 무척 커서 멀리서도 꼿꼿하게 솟은 전봇대처럼 보였다.
온몸에 칭칭 감긴 검은 붕대들이 망토처럼 휘날리는 그 모습에 엘가가 말했다.
“…이 정도면 2대 8도 잘 쳐주는 것 같은데. 저런 놈이라고는 들어보지 못했어. 뭐 저렇게 키가 커?”
엘가가 사냥꾼과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나? 아까 전 3대 7이라고 평가되었던 경기의 예상 전적이 2대 8로 다운된다.
“태오 경, 갑옷을 입거나 투구라도 써야하는 거 아닌가요?”
나에 대한 자신이 가득해 보이던 미르나도 내게 방어구를 착용할 것을 건의했다. 그녀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냥꾼의 존재가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탓이겠지.
카심이 말했다.
“완전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이로군. 쉽지 않겠어.”
모두가 불안을 점쳤다.
나 역시 그랬다.
십 수 미터는 떨어져 있는 그의 까만 안광이 나의 얼굴을 꿰뚫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적당히 싸우다 내게 기권해주기로 약속한 건 잊은 건지, 완전 싸울 의지가 가득해 보였다.
“그럼, 이만 다들 자리로 가세요.”
나의 이야기에 엘가가 머뭇거리다가 이내 “야, 적당히 다치지만 마라.”라고 내 등을 팡-두드렸다. 그리고는 미르나와 함께 저 멀리 위치한 관중석으로 향한다.
카심이 말했다.
“친구, 요령이 통할 상대는 아닌 것 같네. 저런 자와 싸울 각오를 다지다니. 전투 마법사로서의 용기는 이 몸보다 낫군.”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상대에게만 집중하도록 해. 그리고 죽지만 말게나.”
별로 도움 되는 이야기는 아니구만.
* * *
“신과 사람들 그리고 정의의 앞에서 올바른 판결이 내려지길 바라오. 그럼 결투, 정의와 공의의 재판을 시작하도록 하겠소.”
하얀 수염 하이낙스의 이야기 아래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장은 대략 100미터 남짓한 크기. 그러나 나는 이 넓은 공간이 무척 좁아보였다.
나와 20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있는 사냥꾼의 손에서 절컥-수갑이 풀린다.
그는 자신의 손을 까닥까닥 움직여 보더니 경기장에 마련된 자신의 무기를 바라봤다. 무기라고 해 봐야 수많은 단검이 꽂혀 있는 벨트 뿐.
“내 석궁은 사용하지 못 하는가…, 좋다.”
하지만 문제없을 것이다.
그는 사실 대부분의 무기를 잘 다루니까. 그가 석궁을 애용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라서 그렇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촤르륵.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벨트를 휘감았다. 그리고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로 나를 향해 한 마디 한다.
“도망치지 않았군. 칭찬해주지.”
이제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된 것을 알고 있는 건지, 수많은 사람이 자리 잡은 관중석에 적막한 침묵이 감돈다.
꿀꺽.
덕분에 이 세상에 오롯이 눈앞의 사냥꾼과 나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상대에게만 집중하라는 말이 바로 이건가.
─마나 쉴드.
나는 가볍게 주문을 영창 했다.
우우웅. 나의 왼손에 꽃잎 모양의 방패가 생긴다. 그 꽃잎의 수는 총 일곱 장으로 지난 번 카심과 대결했을 때에 비해 무려 2장이나 증가된 것이었다.
어지간한 공격이라면 여덟 번은 막을 수 있는 물리결계. 그것의 뒤에 몸을 가리자 조금은 안심이 된다.
“일곱 장인가. 이만한 마법사와 싸워보는 것도 오랜만이군.”
사냥꾼이 상어처럼 뾰족한 이빨들을 드러냈다. 어렴풋하지만 그가 웃은 건가-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스릉-.
그가 허리춤에 꽂힌 두 개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양 손에 하나 씩 쌍수의 단검을 착용한 그의 모습은 마치 자세를 잡은 거대 사마귀 같다.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사마귀.
내가 생각한 것이지만 무척 올바른 비유였다.
별다른 감정 없이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사냥감을 낚아채는 곤충 포식자. 그것과 저 남자는 닮아 있었다.
“두려움이 느껴지는군.”
거리를 벌린 채 내가 미동도 하고 있지 않자 사냥꾼이 낮고 음울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그가 한 걸음 다가왔기에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죽음이 두렵나. 그런데도 어째서 내 앞에 서 있지? 내가 너와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는가?”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뾰족뾰족 찌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결 중에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흔들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내가 반응이 없자 남자가 흥-하고 작게 웃었다.
스슥-.
그리고는 사뿐하게 대지를 박찬다.
타다다닷.
작은 모래를 뒤로 남기며 그는 어느새 나의 코앞까지 다가와 역수로 쥔 오른손의 단검을 내 목으로 힘껏 올려 벤다.
솨악.
공기를 가르는 날붙이의 소음이 나의 귀를 스쳐지나갔다. 동시에 쨍그랑, 왼팔을 들어 막은 것에서 마나 쉴드 한 장이 깨진다.
와아아-.
여기저기 터지는 함성.
아찔하게 타오르고 있는 석양과 거칠어진 숨결, 그 사이에서 사냥꾼의 모습만이 생생하다.
“빈틈이 있어.”
그는 비쩍 마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꽉 조인 팔을 움직여 나를 향해 단검을 내리쳐오고 있었다. 쨍그랑. 덕분에 나의 마나 쉴드 한 장이 더 깨져버린다.
이제 남은 것은 다섯 장.
이 페이스라면 잔뜩 휘말리다 난도질당할 게 뻔했다. 그렇기에 나는 재빠르게 뒷걸음질 친 후 완드를 그에게 겨누고 소리쳤다.
─에어 불릿-!
퓨슈슈슉-.
네 발의 공기 총탄이 사냥꾼을 향해 날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총탄이나, 사냥꾼은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을 모두 기이한 곡예와 같이 피해버린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그와의 거리가 조금은 벌려졌다.
덕분에 나 역시 조금은 커다란 마법을 쓸 시간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지라 나는 공기탄환을 난사했다.
파바바바바밧.
그것을 피하기 위해 마침내 공중으로 붕 떠오른 사냥꾼. 그가 나의 머리를 노리는 것처럼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야말로 급강하 하는 포식자 그 자체.
다만 공중에 있는 이상 그가 나의 마법을 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터. 그에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영창했다.
─가미긴-!
파지짓.
날아간 보랏빛 번개가 이번에는 사냥꾼의 몸에 적중했다.
“…뭘 한 거지?”
바닥에 착지한 그는 번개를 맞았음에도 아프지 않은 것에 의문을 느끼는 듯했으나, 곧 상황을 깨달은 것처럼 입 꼬리를 치켜 올린다.
“이제 보니, 몸이 움직이지 않는군. 본 적 없는 기묘한 마법이다.”
“…후-.”
나는 대답하는 것 대신 호흡을 골랐다. CC기술을 걸었다는 것은 그 다음으로 큰 기술을 사용할 절호의 기회라는 소리니까.
내가 준비하는 것은 나의 절명기-.
─파천 돌개섬!
높이 들어 올렸던 완드를 아래로 힘껏 내려친다. 동시에 뭉텅 발산되는 나의 마력이 크게 회전하며 빙글빙글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휘우우우우-.
마력의 돌개바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절삭력을 가진 칼날 그 자체.
소마왕의 특전 덕분인지 그 위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거대해서-, 어느덧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고 어두운 구름들이 드리울 정도였다.
사냥꾼이 제 아무리 튼튼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무사하긴 힘들 것이 분명했다.
스윽.
자신에게 덤벼오는 용오름을 향해 남자가 두 손을 뻗었다.
“훌륭해. 와라-.”
몸을 움직이기 여의치가 않으니 단검을 쥔 손으로라도 막아보려는 심산이겠지. 다만 조금 기뻐 보이기도 했다.
내 필살기를 마주한 표정이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와 같다니.
콰가가가각-.
마침내 그의 몸에 격돌하는 칼날바람의 소용돌이가 쇠를 갈아내는 그라인더처럼 찢어지는 소음을 냈다.
지직, 지지직-하고 붕대와 살이 찢겨지는 소음 사이에서 으득 이를 가는 사냥꾼.
“그으윽…!”
제 아무리 강한 남자라도 맨 손으로 이만한 크기의 대마법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던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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