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97)
EP.198)것들 # 2
198 – 학생다운 것들 # 2
아크에 뛰어난 교관이나 교수진들이 있다는 걸 설명했던 때가 있었던가?
그럼 지금은 각지에서 몰려온 천여 명의 생도들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세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신의 성물(聖物).
그것에 선택받은 용사.
혹은 잠재력 좋은 후보생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이곳 아크니까.
말하자면 관악의 대학교가 전교에서 1등 하던 놈들이 모이는 올스타전의 무대인 것처럼.
이 아크는 세상 각지의 동네와 마을, 도시에서 나름 싸움 좀 하고 재능 좀 있다는 놈들이 뭉치는 장소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크의 교수와 조교, 교관들이 아무리 엄숙한 과정을 통해 우수한 엘리트들을 선별하는 것이라지만 이렇게나 다양하고 포텐셜 높은 생도들을 소수인 그들이 전부 통제하기는 어려운 법.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싱글 넘버즈였다.
석차 1등부터 9등에 이르는 뛰어난 엘리트 용사들.
그들에게는 올바로 행동하지 않는 생도들을 그 자리에서 즉결 계도할 수 있는 권한을 비롯하여 여러 합법적 권리들이 주어진다나.
말하자면 그들은 생도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하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학생회였다.
조직도는 1년에 한 번 선출에 의해서 뽑히는 학생회장을 비롯해서 부회장, 총무, 회계, 서기, 문체부, 학술부 등등….
그리고 이 아크의 석차 2위. 만인지상에 위치해 있는 아이라 역시 당연히 학생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했는데.
평소 아이라가 그런 활동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직책이 무엇이고 하는 일이 뭔지 알 기회가 없었다. 그걸 신경 쓸 수 없을 만큼 바쁘기도 했고.
이제는 좀 알겠다.
싱글 넘버즈의 특권은 학생회의 의무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구만. 아이라가 전혀 내색도 하지 않으니까 알 수가 있어야지.
“아이라 님, 학생회에 소속을 두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그게 진짜입니까?”
“…학생회?”
자신의 넓은 방에서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따라 마시던 아이라는 금시초문이라는 것처럼 미간을 좁혔다.
“그런 너저분한 곳에 적을 둔 기억은 나지 않는구나. 나는 여왕이야. 앙그마르의 왕실을 제외하면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을 권리와 의무가 있지.”
그렇군. 아이라 자신도 자기가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고 있는 듯했다. 교단이나 학생회 쪽에서 연락이 온 게 없나?
“그러고 보니. 학생회에서 사람들이 오긴 왔었구나. 낮잠을 자는 데 시끄러워서 돌려보냈지만.”
“그들이 뭐라고 하셨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글쎄. 날더러 무언가 도와 달라고 하긴 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그들이 주고 간 서류나 편지가 저기 구석에 쌓여 있을 테니 궁금하면 읽어보렴.”
아이라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자그마한 새장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는 새 대신 온갖 편지들이 들어 있었는데 꽤 수북했다.
“편지가 많네요.”
“그야 편지를 읽는 일은 여왕의 일이 아니잖니.”
촤르르르.
새장 문을 열자 떨어지는 편지들.
앙그마르 왕실의 인장이 찍힌 제법 중요해 보이는 편지부터 아크의 문양인 십자 실링이 찍힌 것들까지 다양하다.
여왕에게 보낸 편지니까 당연히 중요한 것들이겠지. 그런 내 눈에 띈 것은 바로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거미 문양의 실링이 찍혀 있는 검은색 편지였다.
거미 문양의 검은색 편지….
내가 알기로 이것은 아이라의 친위대 문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이 아이라를 향해 무슨 이야기를 보내왔을지 궁금했다만 멋대로 여왕의 편지를 뜯어보는 것은 큰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참았다.
딱.
그때 아이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마 이것이 그들이 준 편지일 거야.”
스르륵, 두둥실.
편지 무더기에서 허공으로 떠오르는 종이 하나. 그게 아크의 학생회에서 아이라에게 주고 갔었던 서류인 모양이다.
그것을 펼쳐보자 거기에는 여러 인사말들과 함께 아이라를 향한 임명서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엘가에게 들었던 것처럼 아이라의 소속은 역시 회계다.
그렇다.
회계.
여러모로 예산과 장부 등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중요 역할인 것이다. 그러나 아이라는 그것을 읽어보더니 기분이 나빠진 것처럼 구깃 미간을 좁혔다.
“회계라니. 장부를 살피고 돈의 흐름을 조정하는 금융대신 같은 일 아니니? 어째서 학생회에서는 여왕의 역할을 내게 임명하지 않은 거지?”
“학생회에 여왕이라는 직책은 없는데요.”
“그럼 이제부터 만들도록 지시해야겠어.”
“…….”
아이라의 권한은 초법적인가.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던 게 아니지.
원래 앙그마르의 재무대신이었던 벨모트 경도 아이라가 ‘재무’라는 단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금융대신이라는 대출 느낌 나는 명칭으로 바꿔버렸었으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라가 대충 만들어낸 오락 담당관이라는 기묘한 직책까지 맡고 있을 정도고.
“태오야, 어서 가서 학생회에 여왕의 직책을 만들도록 지시하거라. 감히 나를 벨모트 놈과 같은 취급 한다니. 용납할 수 없구나.”
“그거는, 제가 한 번 말은 잘 해보겠습니다.”
반응을 보니, 아이라가 학생회 일을 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이것 말고 다른 쪽으로 학생들의 민심을 공략해 봐야 하는 건가?
아이라는 예쁘고 아름다우니까 사실 학생들에게 접근할 방법이야 많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뛰어난 외모는 일종의 치트키 같은 것이니까.
“그러고 보니.”
아이라의 물음에 나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러고 보니 곧 있으면 사전 투표를 실행한다고 하지? 세라자데, 그 계집애가 철저하게 져서 우는 꼴이 벌써부터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좋구나.”
후후후-웃는 아이라.
사전 투표라. 그런 게 있다는 말을 듣긴 했었지.
* * *
며칠이 지나서 그 결과가 나왔을 때. 아이라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처럼 머리칼을 곤두세웠다.
문자 그대로 그녀의 머리칼이 거미의 다리처럼 사방으로 쭈뼛쭈뼛 뻗어나가는 것이다.
까만 머리칼이 거미처럼 사방으로 뻗는 것 그것이 아이라의 진심 모드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에 얼른 그녀를 달래주었다.
“2등도 잘한 겁니다, 아이라님. 2등도 잘한 겁니다. 10명 중에 2등이면 잘한 거에요.”
“이건 뭔가 잘못 됐어. 그리고 왜 두 번씩이나 말하니?”
아이라는 이러한 결과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듯했다. 그에 함께 의자에 앉아 있던 엘가가 이야-하고 감탄한다.
“근데 어떻게 1등 2등 득표율이 두 배 차이가 나지? 야, 아이라. 똑바로 좀 해 봐. 뭘 해야 세라자데 그 조그만 계집애한테 이렇게 철저하게 질 수가 있는 거야? 말도 안 되잖아.”
“뭐라구?”
엘가의 비아냥거림에 아이라가 정말 화가 난 것처럼 엘가를 노려봤다.
아무리 친척사이라지만 진심모드로 화가 난 아이라를 자극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게 아닌가 싶어서 내가 다 불안해 진다. 엘가의 뱃속에는 쿼터 님프가 있단 말이야.
그러나 아이라의 머리칼은 스스스 가라앉았다.
“하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지.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해. 이 기사를 낸 녀석들이 누구지?”
아이라의 물음에 나는 재빨리 신문을 들여다봤다.
“선거 관리부와 님프 신문부네요.”
“이 녀석들이 무언가 부정을 저지른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리가 없잖니? 세라자데 그 계집애가 술수를 부린 거지.”
“…….”
아이라는 투표 결과가 부정에 의해 조작되어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잔뜩 표를 주었지만, 그것이 모종의 이유로 왜곡되고 변질되어 세라자데가 1등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슥.
의자에서 일어나는 아이라. 지금 상황에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불길함의 징조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황급히 물었다.
“아이라 님,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당연히 신문부에 찾아가려는 것이지. 나는 여왕으로서 거짓을 말하는 불쌍한 존재들을 계도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몸이니까.”
신문부를 뒤집으러 가겠다 이거구만. 이걸 어떻게 막을지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즈음 옆에서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미르나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지금 찾아가봤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꼴사납게 행패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텐데요? 그럼 다음 선거에서 또 질 수가 있어요.”
미르나의 말이 맞다. 아이라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긴 것인지 발걸음을 떼지 않고 침묵에 잠긴다.
덕분에 생겨난 공백.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라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또 이 전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봤다.
그러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아이라가 학생회에서 회계를 맡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님프 신문부나 선거 관리부는 학생회로부터 예산을 타는 조직. 그렇다면 회계로서 그들에게 관여할 수 있는 합당한 권리가 있을 터.
물론 보복성 감사나 감찰로 보일 수 있겠으나 그냥 무턱대고 찾아가는 것과 나름의 명분이라도 있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태오야, 아무래도 세라자데의 더러운 술수를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겠구나.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거라.”
* * *
“틀렸군요. 완전히 확증편향(確證偏向)에 사로잡혀 있어요.”
아이라와의 티타임을 끝낸 이후 돌아가는 걸음에 오른 미르나가 고개를 저었다.
미르나의 말대로 아이라는 이 선거에 ‘부정’이 개입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듯이 보였다.
만약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없는 증거라도 만들 게 분명했다. 아이라는 그런 여성이니까. 곤란하게 됐구만.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나는 언제나처럼 발걸음을 돌려 연립주택 「요정의 낙원」으로 향했다. 어느새 예쁜 꽃들이 자라난 정원을 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앗-! 동지 왔구나-!”
물뿌리개로 꽃들에 물을 주고 있던 마르마르가 나를 보고는 손을 흔든다. 언제나 밝은 모습이라 보기 좋구만.
“마르마르, 잘 지내고 있었어?”
“응! 요즘 여기저기서 잔뜩 후원이 들어와서 말이야! 이거 봐!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청소기랑, 이것저것 받았어!”
그렇군.
잘은 모르겠지만 마르마르는 나름대로 안락한 삶을 잘 꾸려나가는 것 같았다. 조용하고 한적한 요정의 낙원. 역시 여기 오면 마음이 차분해진단 말이야.
“여기, 얼음 띄운 벌꿀 홍차 마실래?”
“좋지.”
나는 마르마르가 내어주는 아이스티를 한 잔 마시며 방금까지 싱숭생숭했던 마음을 다스렸다. 한참 심신을 달래고 있을 때, 마르마르가 흐흐-하고 웃더니 내게 신문을 보여준다.
“동지, 이거 봐!”
촤라락.
마르마르가 가리키는 곳에는 여왕 콘테스트의 사전 투표 결과가 보였다. 혹시 아이라가 2등이라고 타박이라도 하려는가 싶었는데. 마르마르가 가리키는 것은 훨씬 더 뒤쪽이었다.
“기타 표에 내 이름이 적혀있어! 사람들이 나한테 32표나 보내줬어!”
“진짜네.”
이제 보니 기타 득표에 마르마르의 이름이 32표나 있었다.
순위는 25등.
아이라의 2등에 비하면 꼴지나 다름없는 득표율이었지만 마르마르는 그것만으로도 무척 기쁜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임프들이 빛을 보는 세상이 오는 모양인가 봐!”
“그러게. 대단하다.”
장작불에 구워지고 있었던 마르마르가 인기투표의 기타 항목에 이름이 오를 정도가 되다니. 그 정도면 인간승리라고 볼 수 있지.
임프들의 인식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걸까?
“다른 임프들은 뭐하고 있어?”
“푸르푸르는 발란인가 하는 사람 교수 밑에서 일하고 있고. 가르가르랑 타르타르는 저기 안에서 인형 만들고 있어. 인사하라고 할까?”
“인형?”
“임프 인형. 이게 요새 잘 나간다고 그러거든. 마루마루 인형 알지?”
“알지.”
안 그래도 엘가가 자신에게도 마루마루 인형 하나를 달라고 투덜거려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그때 므흐흐-하고 음흉하게 웃던 마르마르가 두 손을 와락 들어올렸다.
“그거 우리가 만들고 있는 거야! 자매품으로 이제 가루가루랑 타루타루 인형도 만들 거야!”
“그래?”
“그래!”
놀라움과 동시에 의아함이 생겨났다.
마르마르가 임프들과 함께 자신을 본 딴 인형을 만드는 것이 놀라웠고, 어째서 자신의 이름 그대로를 본 딴 것이 아닌 짝퉁을 만드는 건지 의아함이 생겨났다고 해야 할까?
내가 그것을 묻자 마르마르가 주변을 슥슥 둘러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임프의 이름 그대로 사용해서 상표권을 내고 하면 올바른 미풍양속을 해칠 수가 있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어. 권고를 무시하면 다 뺏어간다고 그랬거든.”
뭐야, 검열 당한 것이구나.
하긴, 세상에 있어서 임프는 마물의 한 종류. 마물을 희화화하는 일을 반대하는 보수적 단체가 하나 정도는 있어도 이상하질 않았다.
“누가 뺏어간다고 한 거야?”
돌아오는 대답은 좀 의외였다.
“님프들이. 아무리 그래도, 요새 님프들 등쌀이 심해졌어.”
“님프들? 님프들이랑은 잘 지내지 않았어?”
“그랬는데. 세라자데인가 하는 여왕이 온 뒤로 조금 달라졌어. 오늘도 올 텐데….”
마르마르가 불안한 눈초리로 파르르 떨었다.
바로 그런 마르마르의 눈에는 저기 저 멀리서 바글바글 몰려오는 작은 소녀들의 떼가 비춰지고 있었다.
━불법체류 임프 물러가라-!
━님프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뭐야 이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