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27)
EP.228)# 8
228 – 발각 # 8
내가 소설의 등장인물이 되었다는 걸 처음 깨달았을 때.
가장 먼저 다짐한 것은 모든 변수를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이 내가 걷잡을 수 없는 경지까지 폭주한다면 결국 아이라와 나의 목은 교수대에 매달릴 게 분명했으니까.
그런 내게 있어서 길잡이의 존재는 특이점 그 자체였다.
‘이 새끼 뭐지?’라는 기분을 그토록 강하게 느꼈던 적이 또 있을까?
어쩌면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변수들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하나 둘 뭉친 눈덩이처럼 불어나 생겨난 균열일지도 몰랐다.
나와 아이라의 행보가 바뀜에 따라서 주인공 파티의 행보도 당연히 변했었을 것이고, 그런 와중에 어느 장소 어느 때에 원작에 없던 길잡이를 파티에 합류 시킨 것이었을 터.
그야말로 변칙(變則).
문자 그대로의 이레귤러(Irregular).
내 통제를 벗어날 지도 모르는 녀석의 존재를 나는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대체 녀석이 뭘 하는 놈인가 알아내고 싶어 근질근질해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가.
일단 내가 가장 먼저 실현한 것은 철저한 ‘격리’였다.
미르나와 엘가 그리고 특히 아이라와 같은 내 주변인물들이 녀석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격리하는 것.
녀석과 얽히는 것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으니 가능하면 녀석에 대해 묻어두고 홀로 독자적인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포르르릉-.
━계집애-!
내 심부름꾼인 앵무새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지금 엘가와 미르나가 길잡이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고.
아직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그들이 서로 얽혀서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다.
엘가가 미르나와 함께 길잡이를 만나러 간다니.
대체 무슨 조합이람.
이번에 엘가를 녀석의 앞에 데려간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는 걸 인정한다.
아이라가 깨어나지 못할 정도의 깊은 혼수에 잠기지만 않았더라도 나 역시 녀석을 무작정 찾아가는 일 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아냐, 이렇게 생각하고 후회할 시간이 없어.
무엇이 되었든 내가 그녀들보다 빨리 가서 그들의 앞을 막든 해야 한다.
“저, 아이라 님. 급한 용무가 생각나서 그런데, 좀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어지간한 일이라면 저 대신 릴리에게 맡기셔도 충분할 것이구요.”
“급한 용무?”
돌아가는 발걸음에 오르고 있던 아이라는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러나 오늘 있었던 일과도 다 끝나 할 일이 없었던 아이라는 다소 너그러운 마음을 발휘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러렴. 대신 내일은 개표의 당일이니 아침 일찍 출근하도록 해. 세라자데, 그 계집애가 엉엉 우는 꼴은 무척 보기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허겁지겁 달렸다. 그 속도는 마치 오랫동안 뭉쳐 있다가 튕겨나간 용수철처럼 재빠르고 민첩했다.
주변 풍경이 슉슉 지나가고, 내 다리가 마치 깃털처럼 가볍다는 것에서 나는 살짝 놀랐다. 원래 이 몸이 이렇게 잘 움직이고 가벼웠었나?
컨디션이 좋아.
“그래서, 둘은 지금 어디에 있다고?”
━지지배-!
“안내 해!”
포르르르릉-.
힘차게 날아가는 앵무새를 따라 나도 열심히 뛰었다.
덕분에 길잡이가 웅크리고 있을 다세대 주택에 도착하기 전,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영애들의 옆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쪽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였더라. 이쪽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리오네스 영애, 지금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절 데려가려고 한 건가요? 아까부터 같은 골목만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요?
━이상하다. 길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왜 이 거리는 표지판이 하나도 없냐?
뭔지는 모르겠다만 들려오는 이야기를 예민한 요정귀로 캐치해보니 그녀들은 길을 찾지 못해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듯했다.
후-.
일단 그녀들이 날 보지 못하는 거리에서 멈춘 후 가볍게 숨을 골랐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지만 침착한 사고와 10레벨에 달한 연기자의 특성 덕분인지 나는 금방 아무렇지 않은 사람을 연기할 수가 있었다.
“이게 누구죠? 아가씨들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손을 흔들고 그녀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응?”
“당신은….”
엘가와 미르나 둘의 눈동자가 피어나는 꽃처럼 빨갛고 파랗게 뜨이는 가 싶더니 엘가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뭐야 너, 지금 아이라 옆에서 아직 일하고 있을 시간 아니야? 여기는 어쩐 일이냐?”
“저야 이 근처에 잠깐 볼일이 있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엘가 님과 미르나 님 두 분이서 어딜 함께 가시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엘가와 미르나, 둘 사이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견원지간이다. 원숭이와 개. 개와 고양이. 어쩌면 그런 사이보다 더 나쁘지 않을까?
이 특이한 조합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넌지시 그들을 떠볼 때, 미르나가 마침 잘 됐다는 것처럼 나를 향해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글쎄, 리오네스 영애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절 데려간다고 하는 거 있죠? 벌써 20분 째 이 골목 주변만을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았어요.”
그리고는 내게로 다가와 슥 작게 속삭인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저를 끌고 가려고 한다니, 역시 리오네스 영애는 악령에 빙의된 게 틀림없어요. 흔한 증상이죠.”
그렇군.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르나와 엘가 둘이서 나 몰래 꿍꿍이를 짠 것은 아닌 듯하다. 덕분에 나는 조금이나마 여유를 되찾을 수가 있었다.
* * *
우리는 기왕 만난 김에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근처에 보이는 고급스러운 학생 식당으로 들어가서 각자 메뉴를 주문하고 달각달각 썰고 있을 때, 식사를 대강 끝낸 미르나가 입술을 손수건으로 우아하게 닦으며 물었다.
“리오네스 영애, 어째서 마늘은 하나도 먹지 않는 거죠?”
“내가 마늘은 먹든 말든.”
“…혹시 먹지 못하는 건 아닌가요?”
“흥.”
엘가는 어쩐지 뾰로통하게 화가 난 듯했다.
미르나가 계속해서 마늘을 먹이려고 강요하는 것에 화가 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와 제법 오랜 기간을 함께 했던 나는 엘가가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서 화를 내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길잡이의 집으로 가려다가 실패해서 화를 내고 있는 거야.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엘가가 어떤 이유로 그를 만나려고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엘가와 그 남자를 추가적으로 접촉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뭣보다 엘가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는 몸. 함부로 움직이다 위험을 겪게 된다면 여러모로 걷잡을 수 없는 일로 번지니까.
“태오 경, 이제야 말하는 것이지만 멋진 모자네요.”
“아.”
그때 미르나가 말을 걸어와서 나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제 밤이 저물었으니 굳이 모자를 써서 볕을 가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이건 그냥, 그 멋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멋?”
내 적당한 대답에 미르나가 재미난 이야기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후후-하고 웃었다.
“태오 경도 보기보다 어린애 같은 모습이 있네요. 멋이라니. 하지만 멋도 때와 장소에 따라야 생겨나는 법.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한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자를 벗을 생각은 없었다.
미르나도 나를 기묘한 놈 바라보듯 보더니 이내 흐응-하고 긴 콧소리를 냈다. 아마 미르나의 내면에서 ‘태오 가스펠은 패션 센스가 없다.’라고 점수가 깎였을지도 모르는 일.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실화냐?
아니, 아무래도 좋다.
이 저녁식사가 끝나면 나는 오늘 밤 안에 처리해야하는 일이 있으니까. 그래서 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 이 식사.
달각, 달각.
아주 약간의 조바심을 느끼며 고기를 썰고 있을 즈음-.
“야, 태오.”
나를 본 척 만 척 입을 다물고 있었던 엘가가 나를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너 혹시 마녀 숲에 갔었던 적 있냐?‘
마녀 숲이라.
이건 나도 아는 바가 있었다.
“마녀 숲이면, 앙그마르 북쪽의 숲을 말씀하시는 거죠? 타란테라 가문의 영지. 거미들과 도적, 이교도와 이단이 우글우글한 무법의 대수림요.”
“잘 아네. 잘 알고 있어. 그렇게 잘 아는 걸 보면 마녀 숲에 갔었던 적이 있나 봐? 혹시 궁정에서 일하기 전인가?”
“아뇨, 이번에 갔다 왔는데요. 아이라 님의 꿈속에서.”
아이라의 꿈은 마녀 숲을 베이스로 이루어진 심상 공간이었다. 덕분에 그곳에서 온갖 괴수들을 만나 고생했었지.
그때의 기억은 이제 대부분 휘발되어 흐릿했다만 ‘고생했었다.’라는 느낌만이 남아 가슴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덕분에 내게서 ‘마녀 숲’이란 위험해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인상만 남았다. 근데 갑자기 마녀 숲에 대해 묻는 건 어째서지?
“그럼 직접적으로 마녀 숲에 가봤던 적은 없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진짜로?”
“제가 이런 걸 거짓말해서 뭐 하겠습니까?”
엘가가 이렇게 집요하게 물어오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시 내가 모르는 모종의 사건이 엘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가문에서 온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했었는데. 거기서 마녀 숲과 관련하여 한 소리 들었나? 아니면 마녀 숲 너머의 장벽 쪽 문제?
추측은 많지만 답은 내려지질 않는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직접 물어보는 거다.
“엘가 님은 마녀 숲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어째서 갑자기 마녀 숲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죠?”
“그냥.”
그냥은 무슨,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냄새가 풀풀 나는구만. 어쩌면 엘가가 길잡이를 만나려고 했었던 이유가 마녀 숲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식사를 다 끝내고 난 뒤에 가게 바깥으로 나와 기지개를 펼 때였다.
계산을 치르고 있는 엘가가 가게 안에 혼자 떨어져 있을 때, 먼저 바깥으로 빠져나온 미르나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태오 경.”
“네. 말씀하세요.”
“리오네스 영애의 몸에 깃든 악령이 점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모양이에요. 오늘 오후 내내 같은 자리를 빙빙 돌기도 하고. 마녀 숲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하고.”
“…….”
“마녀 숲은 이단들의 성지. 부도덕한 강령술사들과 흑마술사들이 즐비한 곳이니까요. 악령들이 그곳에 흥미를 지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에요.”
미르나의 머릿속에 엘가는 이미 악령에 조종당하고 있는 사람 그 자체구만.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보면 미르나의 추리는 나름 합리적인 것이다.
“미르나 님, 악령에 빙의된 게 아닐 수도 있으니 일단 침착하게 지켜보도록 하죠.”
“그래야죠. 오늘 자정부터 개표에 들어가니, 오늘 하루 정도는 제가 리오네스 영애를 감시하도록 할게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미르나가 엘가를 맡아준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숨을 놓을 수가 있었다.
동시에 느낀다.
자각하고야 마는 것이다.
요새 내가 너무 안일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는 것을.
보건실의 칼리라 영애가 말했던 것처럼 궁정에서 빠져나왔던 나는 독기와 함께 이것저것 빠져 있었던 거야.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있었다. 너무 주의 깊게 행동한 나머지 곪아버리고 만 느낌.
이래서 낙관론은 안 돼.
덮어둔다고 해결 될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끔찍하고 고통스러워도 환부를 직접 보며 집도하는 게 최선이었어.
결정했다.
길잡이와는 조만간 결판을 낸다.
녀석을 이 아크에서.
아니, 나의 삶에서 아주 멀리 내쫓으리라.
그런 마음을 먹으며 나는 영애들과 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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