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38)
EP.239)여름방학 # 4
239 – 각자의 여름방학 # 4
내가 벨호크 가문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가 많지만.
엘프라는 족속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
이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엘프들은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족속이다.
그것은 사람의 관계에서도 통용이 된다.
엘프들이 친구나 사람을 사귈 때에는 철저히 ‘내게 이득이 되는가?’라는 논리에 따른다고 그러던가?
엘프들이 만약 누군가를 부하로 삼는다면 ‘부하로 삼아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녀석.’이 될 것이고.
누군가를 보스로 모신다면 ‘우두머리로 삼았을 때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녀석.’이 될 터다.
그런 의미에서 전 벨호크 가문의 가주 오팔 폰 벨호크는 오팔이라는 보석의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찬란히 빛나는 남자였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엘프들의 수장이었다나.
앙그마르 마왕과의 마지막 혈전에서 홀로 장검과 활을 통해 천여 명의 군세를 막아낸 이야기는 엘프 검사의 무용을 나타내는 전설로 남을 정도라고.
덕분에 ‘엘프 검사와는 싸우지 마라’라는 격언이 모험가와 전사, 용병들 사이에는 정설로 퍼져 있다.
하지만 오팔이라는 보석을 잃고 그의 후계로 내세운 동생 스텔라 폰 벨호크는 별빛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아둔한 엘프였다고 했다.
내가 직접 만나 봐서 잘 알지.
덕분에 벨호크 가문의 여러 이사진들은 그녀를 가주로 인정하지 않고 내쫓다시피 했다. 그리하여 스텔라가 정착한 곳은 아크의 연구동.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옛 일.
“스텔라 폰 벨호크.”
“…….”
깐깐한 엘프들의 약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름을 내가 언급하자 데네브의 안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금방 평온을 되찾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보였던 ‘아차’싶은 감정을 놓칠 만큼 나는 호락호락 하질 않았다. 돈 문제라면 몰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는 나름 자신이 있단 말이지.
“스텔라 교수, 그녀가 아크에서 최근 어떤 혐의로 추궁을 받았는지. 엘븐디너 상회의 대표이신 데네브 씨라면 잘 아실 거라 봅니다.”
“…….”
데네브는 말을 멈추고 찻잔을 들이켰다. 나는 그 찻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조금 더 밀어 볼까?
“모르시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말씀을 드리자면 여왕의 암살 미수죠. 그 외에도 여러 혐의가 있긴합니다만.”
“으흠.”
내 말에 데네브는 찻잔을 내려놓고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는 곧 비오듯 쏟아지고 있는 이마에서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후, 그렇죠. 하지만, 예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벨호크 상회나 가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이에요.”
“그러나. 스텔라 교수가 불러들인 모험가 파티가 여왕에게 탄환을 쏘았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스텔라 교수는 벨호크의 사람이구요.”
“흐으….”
“그들을 불러왔던 스텔라 교수, 아니 벨호크 가문이 여왕을 암살하려 했다-라는 소문을 듣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덕분에 벨호크 상회도 안팎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들었습니다. 국가사업으로 진행되던 이런저런 계약이 해지되고…, 아니, 이런 이야기는 데네브 씨가 더 잘 알고 계시니 설명이 필요 없겠죠.”
“그래서 제게 하고 싶은 말씀이…?”
데네브는 을의 대화를 길게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서 이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것 같아서 나는 그녀를 향해 특별히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이자 없이, 75만 골드의 융자를 부탁합니다.”
“네에-?”
데네브의 시선이 커졌다. 동공이 열리고 입도 내 손가락을 집어넣을 수 있을 것처럼 뻐끔거리기를 잠시.
“푸후훕-.”
결국 빵 터져서 웃는다.
한참 웃던 그녀는 이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태오 경. 그건 말도 안 돼요. 현명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막무가내를 부리신다니. 차라리 스텔라 아가씨의 목을 내어드리는 게 좋겠네요.”
가차 없구만.
스텔라 벨호크.
가문 내에서 입지가 너무 적잖아.
그러나 이곳에서 물러날 수는 없는 법.
“벨호크 상회에서도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이미 깨진 신뢰에 아교라도 붙일 수 있을 것이고. 또 앞으로 앙그마르에서 시행 될 여러 사업들에 대한 여러 권리를 가져가실 수 있을 테니까요.”
당근과 채찍은 중요하다.
내가 지닌 직업 ‘조교사’가 나름대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느껴지고 있을 즈음, 데네브는 마침내 후-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제가 벨호크 상회의 이사진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이런 커다란 이야기를 저 혼자서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겠네요. 안건으로 올려보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답변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시다시피 저희의 여왕님께서는 조금 성격이 급한 분이신지라.”
* * *
벨호크 상회로부터 답장이 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아이라와 나르미 그리고 엘가를 비롯한 아가씨들과 한적한 정원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조잘조잘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피르륵.
어디선가 커다란 맹금 한 마리가 날아와 나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갔다.
그 편지에 찍힌 인장은 냉혹한 매의 문양.
“벨호크 상회로부터 편지가 왔네요.”
그 말에 가장 먼저 인상을 찌푸린 것은 엘가였다.
“엘프놈들이 편지를?”
잘은 모르겠지만 엘가는 엘프들에게 달리 좋은 감정이 없는 듯했다.
“좋은 엘프들은 죽어서 얌전해진 엘프들 뿐인데.”
그것은 나르미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언제나 명랑한 나르미답지 않게 인상을 구긴다.
“죽은 엘프들도 문제를 일으켜! 엘프들 시체는 항상 밴시가 되어서 통제하기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니야.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울기나 하고.”
밴시인가.
밴시는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엘프나 님프 같은 요정들이 커다란 한을 품고 죽으면 밴시라는 이름의 망자가 되어 되살아난다지.
리치나 데스나이트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중˙고위급으로 취급 되는 망자라고.
나르미는 밴시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지 좔좔 이야기를 읊었다.
“항상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문제를 찾아가보면 밴시들이 연관되어 있다니까? 몇 년 전에는 탈바나스라는 밴시가 언데드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망자들을 파업시켰어!”
그렇군.
언데드의 강점이 휴식과 돈이 필요 없는 일꾼들을 부리는 것인데. 밴시들이 멋대로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망자들을 파업시킨다면 문제가 생길만 하다.
한참 나르미가 엘프들의 나쁜 점에 대해서 언급할 때, 나는 허리춤에 꽂고 있었던 단검을 통해 편지 실링을 뜯어냈다.
그 안에 금박으로 장식된 종이를 불가에 비춰보자 아름답고 유려하게 적혀 있는 글자들이 보였다.
「스텔라 상회의 이사진들과 회의를 거쳐본 결과. 아래와 같이 일정이 잡혔음을 귀하에게 전해드립니다.」
「X월 X일. X시. 아크의 대성전 귀빈 회의실.」
그렇군.
이때 이 시간에 나와서 회의에 참가하라 이건가. 아마 벨호크 가문의 높은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나와 이런저런 조정을 거치고 협상하려 하려는 모양이었다.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얼추 예상했던 바였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냥 올 것이 왔는데. 생각보다 빨리 전달을 받았구나-싶은 감상 정도. 이런 이야기는 빨리 결정을 내려주는 게 좋지.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
“그래서, 비무제의 우승자를 남편으로 맞이하겠다는 게 진짜야?”
그때 누군가 입을 열어서 우리의 시선과 이목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건 아까까지 한참 밴시에 대해 떠들고 있었던 아가씨 나르미다.
“낭만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 아르카디아 왕국의 아탈란테 공주도 그랬다고 했었지? 자기를 이길 수 있는 자와 결혼하겠다고 그랬었다잖아…!”
아르카디아 왕국의 공주 아탈란테가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나르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라와 같이 막무가내인 왕족이 세상에 이미 있었던 모양이다.
당장 엘가도 “나보다 강해져야 결혼해준다-.”라고 내게 엄포를 놓았던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이 세상의 강한 아가씨들에게는 더 강한 남자에게 패배 후 지배당하고 싶은 취향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게 아닐까?
엘가가 들고 있던 마른 장작을 모닥불에 왕창 집어넣으며 쯧 혀를 찼다.
“시간만 낭비하는 일이지. 널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긴 하겠어?”
그 말에 후후-웃는 아이라.
“후후, 엘가. 내 사촌 에르가네스가 자신 없는 소리를 다 하네. 너와는 좋은 대결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와 싸울 자신이 없니?”
그에 엘가가 와락 인상을 찌푸린다.
“뭐래, 물론 나야 자신이 넘치지. 근데 나는 너랑 결혼 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거든? 그런 바보 같은 비무제는 참가 안 할 거야.”
엘가가 비무제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얼추 예상하고 있었다. 비무제의 개막은 한 달 정도 후. 그때쯤이면 이제 엘가의 배는 어느 정도 불러오기 시작하겠지.
당연히 싸움 같은 걸 할 상태가 아닐 터.
그렇게 생각하니 조바심이 났다.
시간이 없구만.
“어떤 사람이 우승하게 될까?”
우리들의 대화는 낭만과 로맨스를 좋아하는 나르미가 모닥불을 향해 은근한 한 마디를 질문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휘우우우-.
그때 어딘가에서 큰 돌풍이 불었다. 덕분에 나는 머리에 눌러쓰고 있었던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허둥지둥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인지 내게 몰린 시선들이 어딘가 오싹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손을 좀 씻고 오겠습니다.”
* * *
나른한 여름 방학의 저녁 파티가 끝나갈 즈음. 엘가가 잠깐 손을 씻으러 가는 나를 따라 나와서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무슨 일이세요?”
“오늘 대화해보고 확실히 알았어. 아이라, 그 녀석. 무언가 숨기는 게 있어. 꿍꿍이가 있다고 봐도 좋아.”
“꿍꿍이요?”
“그래, 꿍꿍이.”
꿍꿍이.
그 익숙한 단어가 엘가의 입에서 나오니 무척 기묘한 느낌으로 와닿았다. 무슨 아기 태명 같네. 꿍꿍이. 이런 걸 게슈탈트의 붕괴라고 하던가.
엘가와 내 아이의 이름을 꿍꿍이로 지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디링-.
==============================
이름 : 꿍꿍이 lv. 1
직업 : 요정 lv. 1
재능 : 《가만히 있기》
성향 : 중립
응애.
===============================
이게 뭐야.
눈앞으로 떠오르는 글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건 누구의 상태창이지?
아니, 물어서 뭘 할까. 이건 분명 엘가의 뱃속에 깃든 아이의 상태가 확실했다. 그보다 이름이 ‘꿍꿍이’가 되어버리다니! 이 놀라운 상황에 나는 경악했다.
내가 지은 이름이 상태창에 박혀버린 건가?
화들짝 놀란 나는 침착한 사고를 발동시킨 후에 엘가가 미리 지어두고 있었던 이름인 ‘레오노르’에 대해 떠올려 봤다. 그러자 눈앞으로 떠올렸던 글자들도 스르르 변한다.
==============================
이름 : 레오노르 lv. 1
직업 : 요정 lv. 1
재능 : 《가만히 있기》
성향 : 중립
응애.
===============================
그렇군.
이름이 지어지기에 따라서 상태창의 표기도 변화하는 것이구나.
그때서야 무언가 이해가 됐다.
내 상태창에 표기되어 있는 이름.
「이름 : 태오 가스펠 앙그마르」
이것은 내가 내 스스로의 이름을 태오 가스펠로 지었기 때문에 이런 것이었구나. 상태창의 표기라고 절대적인 건 아니었어.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그럼 원래 이 몸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고 있으려니 엘가가 내 옆구리를 다시금 쿡 찌른다.
“뭐야, 지금 내 이야기 듣고 있어?”
“네.”
“내가 방금 뭐라고 말했는데?”
“…아이라 님에게 꿍꿍이가 있다는 거요?”
“그건 한참 전이잖아. 그 다음은?”
“음….”
“너, 왜 내 말에 집중 안 해?”
엘가는 화가 난 것처럼 으르릉거렸다.
자기 말에 집중 안 하면 화가 날 법도 하지. 하지만 방금 눈앞으로 떠오르는 글자들이 너무 흥미 넘치는 것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애 이름이 꿍꿍이가 될 뻔했단 말이야.
엘가는 마지못해 후-하고 한숨을 내쉰다.
“아무튼, 아이라 그 계집애가 정말 결혼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 거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그 커다란 행사를 마녀 숲의 타란테라 영지에서 할 것이라 공표한 것도 그렇고. 무언가 느낌이 올 듯 말 듯한데…. 아니, 그건 그렇고.”
스르륵.
엘가가 손을 뻗었다.
그 손이 향하는 곳은 내가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 밀짚모자다.
“그 꼴 보기 싫은 건 대체 언제까지 쓰고 다닐 거냐? 이리 내. 요 며칠 눈감아 줬다만 이제 정말 못 참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