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41)
EP.242)사위 ? # 2
242 – 데릴 사위 ? # 2
지금 와서 떠올려보지만 스텔라 폰 벨호크와의 만남은 썩 유쾌하지 못한 일들만 가득했었다.
나는 본디 얼굴을 마주하다보면 ‘아, 이 사람과 친해질 수 있겠다.’라는 감 같은 것이 잘 오는 편인데. 스텔라와 몇 번의 접점에서는 호의나 호감을 가질 만한 일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일은 많았지.
내 방에 멋대로 들어와서 내게 적반하장.
주인공파티를 아크에 들여와서 사건이나 만들고. 그 외에 자잘한 사건들까지 언급하면 화가 날 것 같아서 그만 둔다.
엘프 교수가 당황한 듯 물었다.
“태오 군, 싫다니? 그게 무슨 의미니?”
“말 그대로 싫다는 뜻입니다. 제가 스텔라 교수님의 알량한 연극에 맞춰드려야 할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가짜 결혼 같은 건 하기 싫다는 말입니다.”
“그, 그 말은 그럼 나랑 진짜로 결혼하고 싶다는….”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스텔라는 갑자기 몹시도 안절부절못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니, 매우 당황스럽네, 태오 군. 하긴, 나도 학부생까지만 해도 종종 연애편지도 받아보고. 인기도 있고 그랬었는데. 음….”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 하거나 흐르는 땀을 장갑 낀 손으로 닦거나 하는 데 바보 같이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마디 덧붙였다.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데릴사위 계약이라는 것 자체를 무효로 하고 싶습니다. 스텔라 님의 발판이 될 생각도 없구요. 이 계약은 무효로 돌려야겠네요.”
살짝의 으름장.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까?
스텔라의 얼굴에 당황이 산불처럼 번졌다.
“안 돼…! 그랬다간 내 계획이 틀어져…! 어떻게 겨우 다시 붙잡은 기회인데. 이대로 너랑 혼례를 올리지 못하면 수도원에 쳐 박히게 될 거야…!”
“그건 제 사정이 아닙니다.”
“그치만, 계약을 무효로 돌리면 여왕의 비무제는? 그 자금은 어떻게 구할 건데?”
“그건 스텔라님이 상관 할 바가 아니구요.”
“안 돼, 안 돼. 그럼 장로 영감들에게는 뭐라고 말해? 파혼까지 당했다고 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냐구…!”
와락.
그녀는 마침내 의자에서 일어나 나의 발밑에 매달렸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갑자기 무서워졌다.
“아니, 왜 이러세요? 이거 놓으세요!”
스텔라가 내 바지를 좍좍 붙잡아 당기는 바람에 자칫하다간 반라가 될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소란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도 “뭐야. 싸움이야?”라는 느낌으로 우리를 향해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스텔라는 막무가내였다.
“태오 군, 아니, 태오 경, 태오 님! 제발 도와줘. 도와주세요…! 수도원은 가기 싫어…! 거기는, 거기는 24시간 내내 기도하고 성서를 읽어야하는 곳이란 말이야…!”
자존심이고 뭐고 없나.
이 정도면 보신주의의 극치로구만.
덕분에 스텔라 벨호크라는 사람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살아가고 움직이는지 이해가 확 온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더 매몰차게 대하기로 했다.
“그럼 제게 성의를 보여 보시죠.”
“성의?”
“그때 제게 무릎을 꿇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거랑 비슷한 건 해야죠.”
“……!”
귀족의 피는 푸르다. 귀족들의 고고한 자존심과 긍지가 피를 푸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만약 엘가나 미르나, 아이라에게 무릎을 꿇으라는 말을 한다면 내 머리털을 쥐어뜯었을 게 분명했다.
━네가 감히…!
━구아악…!
다만 지금의 스텔라와 나 사이의 갑을 관계는 명확. 나는 스텔라가 자존심과 생존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하는 꼴을 보고 싶었다.
“뭐야, 겨우 그것뿐이야…?”
“네?”
“지금 하면 되지?”
자존심이 없나.
이러다간 진짜 내 앞에 무릎을 꿇겠어.
아무래도 좋지만,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다.
“됐습니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냉랭하게 말했다.
“아무튼, 자리에 앉으세요.”
“뭐야, 무릎 꿇으라면서.”
“이제보니 그건 너무 쉬운 것 같아서요.”
나는 겨우 스텔라를 진정시켰다. 이대로 이런 얘기를 끝도 없이 하면 내가 피곤해질 것 같은데. 이야기의 방향을 좀 돌려 볼까?
그래서 나는 문득 머릿속에 생각난 단어를 입에 담았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스텔라 교수님. 혹시 통나무에 대해 아십니까?”
“통나무? 우리 가문에서 통나무면 오크나 백향목, 청향목부터 오동나무 등등 이것저것 취급하지. 왜, 오두막이라도 지으려고?”
“아뇨. 제가 말하는 건 그런 통나무가 아니고. 아마 마법이나 인간의 상태를 뜻하는 통나무인 것 같은데요. 그게-.”
“시체를 말하는 거네. 주술의 재료가 되는 시체. 마녀 숲의 이단자나 불법 강령술사들이 흔히 취급하는 생체 실험체의 은어네.”
방금까지 허둥지둥거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탁탁-하고 손끝을 튕겨 불꽃을 일으킨 스텔라는 긴 장죽의 끝에 불을 붙인 후 후-하고 연기를 내뿜는다.
“통나무는 왜?”
그 표정은 무척 차분했다.
아니, 서늘했다는 표현이 좋을 것 같다. 그건 스텔라보다는, 숲의 사냥꾼 헤드 헌터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나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그냥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 * *
“강령술이나 강마의 의식에 주로 사용되는 건 인간이거든요. 주로 노예나, 납치한 소년 소녀들을 사용하죠.”
여기는 드레이코 가문의 별장 저택.
미르나 드레이코는 정원의 꽃들에 물을 주며 자신이 아는 지식에 대해 내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제물들은 탈출을 할지도 모르고. 또 변수를 일으킬지도 모르니. 특별한 약물 등을 먹여 가사상태로 만든단 말이죠. 결코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자가 되어요.”
“마치 통나무처럼 변하겠네요. 그래서 은어로….”
“맞아요. 별로 썩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죠.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400년 전 벨터스 공의회에서 이미 악행으로 규정 되었는데도 말이에요.”
그렇군.
“그래서, 태오 경, 이제 질문은 끝인가요?”
미르나의 물음에 나는 머릿속을 한 번 뒤적거려봤다.
곧 딱히 더 물어볼 건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제부터는 미르나에게 묻기보다 나 혼자 생각들을 정리해야하는 시간이었으니까.
이 신원미상의 노예는 본디 의식이 없었던 건가….
어쩌면 영혼이 이미 죽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빈틈에 나 ‘이성음’이라는 자가 깃들어서 지금의 상황이 된 건 아닐지. 그렇다면 이 몸 안에서 느껴지는 영혼이 하나라는 것에 나름대로 설명이 된다.
그렇지만.
앙그마르 가문의 마지막 후예가 어째서 통나무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던 거지? 궁금한 점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이 육체가 발견되었다는 장소를 찾아 마녀 숲으로 당장 가고 싶을 정도였다.
비무제가 마녀 숲의 타란테라 영지에서 열린다고 그랬었으니. 어쩌면 그때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주변을 탐문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딱.
“윽…!”
그때 누군가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덕분에 집중했던 생각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드니 미르나가 가볍게 볼을 부풀린 채 나를 바라보며 미간을 구기고 있다.
“태오 경, 제 이야기 하나도 안 들었죠?”
미르나가 무슨 말을 했지.
“죄송합니다.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내 솔직한 사과에 미르나는 이내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깊은 사고는 훌륭한 마법사의 자질이라고 듣긴 했지만. 저와 함께 있음에도 제게 집중하지 않는 것은 조금 서운하네요.”
“그래서, 제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제는 제가 태오 경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계속 말했어요.”
“제게?”
“그래요. 그래서 결국 벨호크 가문에서 돈을 빌리기로 한 건 어떻게 됐나요? 영악하고 손익에 계산 빠른 엘프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는데.”
미르나는 벨호크와의 계약 건에 대해서 궁금함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사실 벨호크 가문과 앙그마르 왕가의 거래내용은 엄연히 비밀. 제3 자라고 할 수 있는 미르나에게는 비밀로 해야만 한다.
“정말 공사 구분이 철저한 분이시네요. 저와 태오 경 사이에도 알려주지 않는 건가요?”
미르나는 불만스러운 건지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썼다. 하지만 원래 젖살이 도드라진 드레이코 자매의 특성 상 볼을 부풀린 다람쥐 같이 귀여운 모습이었다.
“제가 비밀로 한다고 해도 알려주지 않을 건가요?”
그 애교와도 닮은 툴툴거림을 봐서 나 역시 비밀엄수가 보장된다는 가정 하에 조금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계약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켜져야 하는 것.
아쉽게도 미르나에게는 정보를 발설할 수가 없다.
또 엘프들과의 이야기에서 ‘정략 결혼’같은 것이 운운되었다는 걸 설명한다면 미르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쏘아붙일 것이고 그걸 해명하는 데 꽤 시간을 소모하겠지.
“아쉽지만 당장은 말씀드릴 수가 없겠네요.”
“흐응,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미르나는 마음이 넓은 편이라 내 사정을 잘 이해해주었다. 이대로 토라지거나 때를 쓰면 어쩌지 싶었는데 나름 의젓해서 다행이야.
이것저것 캐묻지 않는 점은 장점.
미르나에게 정실 점수 +10점을 줘야지.
그렇게 혼자 시시덕거리고 있을 즈음, 마침내 정원의 꽃들에 물을 전부 준 미르나가 도구들을 정리하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태오 경. 스텔라 교수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는 말이 들려오던데요?”
이놈의 세상은 뭔 비밀이 없구만. 여기저기 눈이 있어서 바깥에서는 함부로 활동하기가 힘들다. 연예인들이 딱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마치 연인끼리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었다고 그러던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미르나 아가씨께서는 저와 스텔라 교수 사이가 얼마나 최악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흐응….”
미르나의 기분은 별로 좋아보이질 않았다. 어떤 이유가 됐든 내가 스텔라와 단 둘이 만나 식사를 한 것 자체가 맘에 안 드는 것일 터.
질투하는 건가?
이럴 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잘 알았다.
그것은 바로 미르나에게 스텔라의 험담을 마구 늘어놓는 것.
“미르나 님도 잘 아시겠지만. 스텔라 교수가 좀 막무가내인 성격도 있고. 안하무인에 보신주의가 강한 망나니잖아요. 대체 교수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그렇다고는 하죠.”
시큰둥하게 말하지만 미르나는 내가 스텔라를 험담하자 기분이 꽤 좋아진 듯이 보였다. 곧 마음이 풀린 것처럼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스텔라 교수가 그리 나쁜 사람만도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오랜 옛날의 이야기지만. 원래는 오빠였던 오팔과 함께 촉망받던 유망주였다고 하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오팔을 넘는 인재였다고도 하잖아요.”
인재(人才)라. 그게 스텔라와 병행할 수 있는 단어인가.
따지고 보면 인재(人災)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지 알 리 없는 미르나는 내가 험담한 스텔라를 변호하듯 조금 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오팔이 죽은 이후부터는 이것저것 걷잡을 수 없어졌다고 그러더군요. 일각에서는, 후계자의 자리에 앉기 싫어서 일부러 바보 같은 짓을 한다는 의견도 있고.”
“음….”
내가 살았던 세계의 역사를 보면 후계의 자리에 앉기 싫어 막나간 사람들이 몇 있긴 했었다. 스텔라도 그런 느낌이라고?
에이, 설마-싶다가도. 내가 그녀에 대해 모르는 사실 혹은 간극 같은 게 있다는 걸 생각하니 혹시나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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