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44)
EP.245)사위 ? # 5
245 – 데릴 사위 ? # 5
스텔라 벨호크는 조잘거리던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몇 초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던 대화가 끊겼던 것이기 때문에 꽤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이내 푸하하-하고 꽤 호탕하게 웃는다.
“태오 군, 자격이라면. 설마 여왕이 감찰관인지 하는 그걸 말하는 거니? 앙그마르의 후예를 찾기 위한 어쩌구 하는 것.”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좋아, 뭐. 정 듣고 싶다면야.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오랜 예전이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 다들 각자 방학으로 내려갔던 때였지.”
“방학요?”
“그래, 지금과 같은 여름 방학이었어. 한적한 때. 모험 동아리의 부실에 남은 사람은 몇 없었어. 나는 집에서 쫓겨나다시피한 몸이었고. 이사야 선배는 알다시피….”
“돌아갈 집이라고 할 게 없는 사람이었겠죠.”
“그래.”
그래서 둘은 방학 때 이곳저곳 함께 돌아다니며 잘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마녀 숲’에 가보자는 의견이 나와 곧바로 진행이 되었다고.
“결단력 하나는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으니까. 이거다 싶은 일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았지. 그래서 우리는 함께 마녀 숲으로 간 거야.”
그들은 마녀 숲에서 강도와 싸우거나 마물과 싸우는 등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태고의 비밀이 간직된 숲의 비경을 발견하거나 고대의 주문이 적힌 비석들을 수집하며 나름대로 즐거운 방학을 보냈다고.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그 숲에서 슬슬 떠나려고 하던 어느 날. 개학을 앞둔 날이었어. 그때 어느 님프를 만난 거야.”
“님프요?”
“그래. 그건 분명 님프였어. 아직도 생생히 기억 나. 밤색 머리에, 파란 눈동자…. 강도단에게 쫓기는 녀석을 구해주고….”
“구해주고 어떻게 되었는데요?”
“…….”
스텔라 벨호크는 테이블 위에 허물어지듯 엎드렸다. 곧 쿨쿨-하고 일정한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술을 잔뜩 마셔서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교수 님. 스텔라 교수 님. 스텔라 벨호크. 야. 깐프.”
내가 아무리 뒤흔들어도 스텔라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이쿠, 이런. 큰일 났소. 누님이 이렇게 취하게 마시는 건 또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마차를 불러드릴까?”
가게 주인이 내 난처한 사정을 듣고는 위와 같이 제안했다. 마차를 부르면 스텔라를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겠지.
다만 누군가가 허겁지겁 찾아와 가게 주인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가게 주인의 험상궂은 얼굴이 더욱 찌푸려지는 것을 보니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다.
“누군가 마차를 전부 다 대절했다고? 온도시의 마차를 전부? 그게 말이 되나? 엘프 상회? 뭐?”
그러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고는 빡빡 깎은 뒤통수를 긁적인다.
“이게, 안타깝지만 마차가 없다고 하는데. 여기 위층에서 하루 머물고 가는 건 어떻겠소? 얼마 전에 새로 이불과 침대를 바꾼 방이 하나 있는데.”
“…….”
무언가 함정에 낚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스텔라가 잔뜩 취할 걸 알고 벨호크 상회 사람들이 미리 손을 써놓은 건 아닐까?
서로 한 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도록?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너무 노골적이잖아.
근데 잘 먹혀 들어갔다.
내가 인사불성으로 취한 스텔라를 혼자 업고 집까지 돌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렇다고 스텔라를 혼자 내버려두었다간 어떤 일이 발생해서 내가 덤터기를 쓸지 모른다.
결국 나는 취한 엘프를 방에 모셔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너저분한 불법식당 치고 2층의 여관은 잘 운영하고 있는지 방도 깨끗하고 창문에 비춰지는 야경도 좋다.
쿨, 쿨-.
물론 스텔라는 그저 잤다.
“…….”
마지막에 님프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대체 뭐였을까? 밤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님프라. 생각이 나온 김에 나는 방에 놓인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정수리 부분이 단풍잎 내려앉은 것처럼 붉긴 하지만 머리는 전체적으로 밤색. 그리고 눈동자는 푸르다.
이사야는 이 몸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 앙그마르 가문의 사내였으니 붉은 머리칼을 가진 사내였겠지.
그렇다면 이 밤색 머리와 푸른 눈동자는 어머니가 될 님프에게서 왔을 가능성이 높을 터. 어쩌면 스텔라가 말한 것은 나의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라니….
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실제로 나를 낳아준 사람은 다른 어머니지만. 문득 나 인간 ‘이성음’에 대한 기억이 휘몰아쳤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는 나를 보육원에 두고 갔었는데.
이제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매일 창밖만 들여다보고 있던 그 기분은 생생히 기억난다. 아직도 그 자리에 갇혀있는 것처럼.
이렇게 창문 바깥을 바라볼 때면 항상 그때의 기억이 난다.
* * *
스텔라가 눈을 뜬 것은 아침이었다.
숙취 때문에 얼굴을 잔뜩 찌푸린 그녀가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뭐야, 같은 방에서 잔거야?”
“아무 일 없었으니까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됩니다.”
“나처럼 예쁜 엘프와 함께 자는데 아무 일 없을 리가 없잖아. 태오 군, 나를 잔뜩 취하게 만들고 한 방에서 자다니. 보기보다 야수 같네.”
한 대 때리고 싶네.
내 표정이 안 좋은 걸 눈치 챘는지 스텔라도 “농담이야.”라고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가 떠온 물로 세수를 하거나 양치를 하며 푸념한다.
“으, 큰일 났네. 오늘 안에 확실히 답변 받지 못하면 들어오지도 말라고 했는데. 태오 군, 나랑 어떻게 잘 했다고 말해주면 안 될까?”
“뭘 잘해요.”
“섹스말이야.”
눈앞이 아찔하구만. 아무래도 스텔라는 어제 데이트 이전에 가문의 장로들로부터 단단히 엄포를 듣고 온 모양이었다.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대체 그렇게까지 비굴하게 굴어서 가문에 남아있으려는 이유가 뭡니까?”
“비굴하게?”
“그래요. 비굴하게. 어제 교수님께서 제게 이야기해주셨던 모험의 이야기들을 보면. 스텔라 교수님께서는 그리 보신주의 성향이 강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오히려 스텔라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 쪽이었다.
술에 취한 스텔라는 자기 한 몸 살겠다고 자존심도 버리고 버둥버둥 거리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그것이 사실 그녀의 본심일 수도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간극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그게 내가 요 며칠 스텔라 벨호크와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해낸 결론이었다.
“사실대로 말씀해주시면 협조해드리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대로라고 말 해봤자. 지금 이게 나인 걸. 돈 좋잖아. 돈 싫어하는 엘프가 어디있어? 나도 마찬가지야. 가문의 유산. 막대한 돈. 그게 다 전부 내께 될 수 있는데.”
이건 거짓말이다.
스텔라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나의 ‘연기자’ 직업 덕분에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화가 났다. 연기인 줄 알고 있음에도 화나는 악역들을 보듯이.
이젠 정말 못 참겠구만.
나는 주먹을 들어서.
침대에 앉아 있는 스텔라 벨호크의 머리를 후려쳤다.
빡-.
“악!”
그러자 짧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 스텔라 벨호크. 그녀는 곧 자신의 머리를 쥐고는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태오 군! 대체 무슨 짓이야!?”
“앞으로 바보 같은 말.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때마다 때릴 겁니다.”
“때려?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오빠한테도 맞아본 적이 없는 나인데…! 네가 대체 무슨 권리로…!”
“권리라면 있습니다. 사실 어제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잡담이 길어지느라 정작 중요한 얘기를 하나도 못했었죠.”
촤륵.
나는 내 인벤토리인 《다람쥐 저장고》에서 서류 뭉치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것은 얼마 전 이사진들로부터 받은 계약서.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스텔라 폰 벨호크의 꿀밤을 때려도 좋을 권리에 대해 적혀 있었다.
“을은 병을 올바른 아내로 만들기 위한 훈육을 취할 권리 일체를 갑에게 양도한다…? 말도 안 돼. 이런 게 어디 있어?”
“갑은 저고, 을은 벨호크 상회. 병은 스텔라 님이십니다. 그리고 거기 밑에도 읽어보세요.”
“병이 훈육을 거부하였을 경우. 갑은 이 계약을 취소할 권리가 있다. 또한 을은 병을 가문에서 파문하고 수도원으로─.”
스텔라는 말을 멈췄다. 그 아래로 보이는 것은 그녀가 그토록 끔찍이도 싫어했던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혀있기 때문이리라.
“좋아, 알았어. 말하면 되잖아. 말하면 되는 거야. 네 말이 맞아, 태오 군. 과연 내가 직접 가르친 학생답게 통찰안이 좋아. 하지만 그 전에-.”
슥.
스텔라 벨호크가 검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
“미리 경고하는데. 태오 군, 이걸 들으면 너도 나와 같이 한 배를 타게 되는 거야. 빠져나갈 수 없게 될 거고. 괜찮겠어?”
그 뒤로도 계속 몇 번이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느니, 서로간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길게 이어갔다.
“대체 뭔데 그러는지 이야기 해보세요. 비밀로 하겠습니다.”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이기에 이리도 뜸을 들이는지.
“아무튼, 일부러 망나니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시는 건가요?”
“뭐…, 전부는 아니지만. 의도한 바가 있다고 보일 여지가 있지. 사실 어쩔 수가 없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죽어요?”
“그래. 너도 봐서 알겠지만. 벨호크 가문에서 내 취급은 좋지 않아. 내다 놓은 사람. 버림패 취급이지.”
자기도 아는구나.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됐다니까. 녀석의 눈에서 벗어나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어.”
“녀석이요?”
내 질문에 스텔라는 주변을 살폈다. 혹 듣는 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한참 이곳저곳 살피던 그녀는 내게로 고개를 기울이고 작지만 선명하게 말했다.
“오팔.”
“네?”
오팔은 스텔라의 오빠다.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는 나로서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그 이야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팔 벨호크는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닙니까?”
“그래, 내 오빠는 죽었어. 동시에, 죽지 않기도 했어. 공식적으로는 죽었지만 아직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대체 무슨 말인데요?”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스텔라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네 가문이 마왕의 몸을 갈기갈기 찢을 때, 솔로몬의 숙원은 거의 완성되어 있었어. 몇 걸음의 차이로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지.”
솔로몬의 숙원?
내가 설명을 이해하고자 할 때 벨호크가 마저 말을 덧붙였다.
“다른 영웅들 몰래. 오팔은 그것을 가져왔어. 다른 녀석들에게 들켰으면 세상이 뒤집어졌을 테니까. 고결한 마음에 자신이 숨기기로 한 거지. 그게 문제였어.”
혹시 요승 바사고가 말하던 솔로몬의 보물이 바로 이것인가? 엘프들이 가져갔다던 보물에 대해 관심이 있긴 했는데 이렇게 곧바로 언급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어쩐지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게 대체 뭡니까?”
“복음서.”
“…복음서?”
“하지만 장로들은 사자의 서로 불렀지. 죽은 자를 온전히 부활시킬 수 있다는 대마법이 적혀 있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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