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43)
EP.244)사위 ? # 4
244 – 데릴 사위 ? # 4
교단의 도시 그라시아.
그 고급 주택가의 근처에는 오직 예약으로만 입장할 수 있는 고급 식당이 있다고 했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요정의 술잔」. 도시를 방문한 외부의 귀족이나 귀빈들이 한 번 씩 들려보고 싶은 장소 top3 안에 들어가는 곳이라고.
한 사람 앞에 50만 코인 씩, 단순한 물만 해도 2만 코인을 받아먹는 매우 비싼 가게라 앉자마자 부담이 느껴진다.
“A 디너 코스. 2인. 확인했습니다.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멋지게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엘프 지배인이 내게 찾아와 예약을 확인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당황하지 않고 익숙한 느낌으로 답할 뿐.
“아직 상대가 안 온 것 같으니, 오면 그때 식사를 내주세요.”
“그러죠.”
멀어지는 엘프 지배인을 보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상대, 스텔라 벨호크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지각이구만.
스텔라 벨호크, 정실 점수 10점 감점.
시간 약속은 철저히 지킬 줄 알아야지. 엘프들은 시간에 깐깐하다고 들었는데 스텔라는 또 다른 모양이다. 일단 한 30분 정도 혼자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엘프 지배인은 계속해서 나를 찾아와 메뉴를 추가하겠냐고 물어오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킥킥댔다.
━어떻게, 저 사람, 바람맞았나 봐. 푸흐흡-.
━아직 어린 신출내기처럼 보이는데. 모처럼 큰 맘 먹었을 예약대금이 아까워서 어쩌나.
“…….”
영 안 오네.
혹시 진짜 내가 바람을 맞은 건가 싶어서 화가 나기 이전에 당황스럽기 시작할 때였다.
또각, 또각.
누군가 높은 굽 소리를 내며 내게로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민소매에 가슴이 잔뜩 파이고 허벅지의 옆이 트인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엘프가 내 앞에 마주 앉았다.
━누구야? 이 근방에 저런 엘프가 있었나?
━몰라. 저 애송이 놈이 어떻게 저렇게 예쁜….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자신을 한껏 꾸민 엘프는 무척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이라 순간 오래 기다리고 있던 화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젊고 건강한 남자라는 것은 미인을 보면 생각과 모든 오감이라는 것이 그쪽으로 확 쏠리도록 만들어져 있는 법이니까.
“태오 군, 내가 좀 늦었지?”
“많이 늦었습니다.”
“이럴 때에는 아니라고 해주는 거야.”
“그렇지만 진짜 너무 늦으셨는데요.”
“여성이 꾸미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잖아. 내가 예쁘게 하고 오면, 나랑 같이 있는 태오 군의 어깨도 올라갈 테니까 좋고. 안 그래?”
그녀의 말대로였다.
예쁜 여성과 함께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 이 고급 레스토랑의 자리에서 나의 위치는 드높이 올라간다.
아까까지만 해도 홀로 처량하게 앉아있는 애송이였는데. 지금은 대체 뭐하는 녀석인지 모를 젊은 귀공자 같은 느낌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아, 저 녀석. 이제 보니 그 마법사야. 몇 주 전에 했었던 결투재판. 그 마법사…!
━그래? 그 초신성이라 불리는?
순식간에 주목이 몰리는구만.
이렇게 부담스럽게 시선을 받을 바에야 차라리 아까처럼 혼자 처량하게 앉아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먹고 이 자리를 파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자리에 앉았던 스텔라 벨호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태오 군, 장소를 좀 옮기는 건 어떠니?”
“여기는 예약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리는 가게라면서요? 전 괜찮지만 아깝지 않으십니까?”
“괜찮아. 우리 상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니까.”
아, 그래서 가게의 이름 앞에 요정의-어쩌구 하는 이름이 붙었던 것이구나.
“윌터, 오늘 있었던 예약은 취소해도 돼.”
스텔라의 말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엘프 지배인은 쯧-하고 혀를 찼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여긴 듣는 귀가 많았던 모양이구만.
결국 나와 스텔라는 가게를 나섰다.
“내가 잘 아는 곳이 있으니까. 그곳으로 가는 게 어때?”
“…….”
“내가 살게. 아까 거기만큼 좋은 곳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거긴 듣는 귀도 없어.”
“그럼, 안내하시죠.”
이 도시가 나보다 몇 배는 익숙할 스텔라가 또각또각 굽 소리를 내며 잘 정돈된 가도를 걸었다.
저녁이 어둡고 컴컴하지만 고급 식당가의 치안은 주정뱅이 한 명 없을 정도라 마음이 안정 된다. 마치의 21세기의 현대를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
다만 스텔라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옷가지와 시선이 점점 불온해지더니, 마침내 뒷골목에서 우리를 노려보는 사람이 가득한 구역까지 이르렀다.
괜히 시비가 걸려오면 최악인데.
━얘들아, 저거 봐. 요정이 길을 잘못 들어온 모양인데? 우리가 안내 해줄까?
━냅둬. 저 여자, 스텔라잖아.
그래도 다행인 점은 우리들을 향해 쉬이 다가오는 건달이나 강도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귀를 기울여보니 이곳에서 스텔라는 꽤 유명해 보였다.
왜지.
불온한 뒷골목과 스텔라.
어울리지 않는 두 속성의 조화에 내가 추론을 하고 있을 즈음.
그녀가 도착한 곳은 간판도 없이 시끄럽고 무질서한 소리가 왁자지껄 떠들려 오고 있는 불법 주점이다.
순간 ‘혹시 뒤통수 맞고 원양어선 같은 곳으로 팔려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설마 그럴 일이 일어나겠나 싶어서 안으로 따라 들어가 보니 가게 안은 더 난장판이었다.
━이 달콤주먹 펀치노이의 허니피스트 맛을 보는 것입니닷…! 벌꿀 붕권-!
━그아아아앗-!
━와우, 방금 그건 명치에 크게 들어갔는데!
━나 펀치노이는 지상 최강의 님프 유지노이와의 싸움까지 끝없는 단련…하는 것입니닷…!
가게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즉석으로 만들어진 간이 경기장에서 심판도 없이 싸우는 사람들. 여기저기 내기를 걸어대는 모양새와 바닥에 흩날리는 동전들-.
“무질서하네요.”
“그래도 딱딱한 레스토랑보다는 낭만이 있지?”
낭만은 모르겠다만.
나도 이렇게 막되 먹은 식당이 한 결 편하긴 했다. 괜히 격식 차릴 것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있으면 되니까. 내게 싸움이 걸려오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여보쇼.”
그때 험상궂은 얼굴을 한 거한이 내게로 다가왔다. 순간 오거인 줄 알았는데, 애꾸눈에 흉터 가득한 얼굴이 무섭긴 했다만 인간이었다.
시비라도 걸러 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할 즈음 그가 웃으며 말했다.
“누님, 오랜만이외다. 그간 재미 좀 보셨나? 상품 팔러 왔소?”
“아니, 오늘은 손님. 늘 먹던 걸로 줘.”
“헤헤, 맡겨만 주쇼.”
가게 주인이구나.
족발을 구운 듯한 고기와 얼음 띄운 음료가 나왔다. 청포도 향이 나는데, 아주 약간이지만 쌉싸름한 알콜의 향기가 났다.
“저 녀석이 예전부터 하이볼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들었거든. 마셔 봐.”
“죄송하지만, 저는 술을 안 합니다.”
“그래? 맛있는데. 아쉽게 됐네.”
“냄새만 맡아도 취하거든요.”
“냄새만 맡아도?”
이야기의 템포라는 게 있다. 이런 술자리에서는 특히 대화의 템포라는 것이 꽤 중요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술을 마시지 못한다.’라고 말하면 그 템포라는 게 잠깐 깨질 때가 있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면 이내 다들 ‘아, 그럴 수 있지.’하고 넘어가준다만. 스텔라의 경우 막무가내로 술을 권해오는 게 아닐까 싶어서 조금 긴장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순순히 납득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한 명 있었지.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웃긴 남자였는데─.”
스텔라의 표정이 잠깐 회상에 잠긴 듯 보였다.
* * *
요리는 순수하게 맛있었다. 사실 소스에 찍어 먹는 고기는 어떻게 먹어도 맛이 있다.
“맛있네요.”
“맛이 없을 것 같았으면 이곳으로 데려오지도 않았지.”
대강 식사를 하며 우리는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의외로 대화는 평범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공룡들에게 깃털이 달려있다는 가설도 이제 슬슬 사장되는 추세지. 이제 학자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몸이 빛나는 야광 공룡들이야.”
“그렇군요.”
한참 공룡 얘기를 신나게 듣고 있었던 나는, 의외로 대화가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혼자 깜짝 놀랐다.
스텔라 벨호크가 그래도 ‘교수’라는 직책을 달고 있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긴 청춘을 구가해왔던 요정이기 때문인지 잡다한 지식이 많아 대화 폭이 넓었다.
어떠한 이야기를 꺼내도 대화가 술술 진행되는 경험은 무척 오랜만이라, 나도 가볍게 아무 이야기나 할 수가 있어서 편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평범하구나.
평범한 남녀가 만나 대화를 나눈다면 이런 기분을 느낄까. 귀족 가문이나 정략결혼 같은 것은 제쳐 두고 이야기하니 스텔라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태오 군, 한 잔만 더 시킬게.”
“그렇지만, 벌써 네 잔을 드셨는데요. 이대로 있다간 인사불성이 되실 겁니다.”
“벌써 네 잔이나 마셨다고? 내가?”
“네.”
스텔라의 호박색 눈동자는 약간 나른하게 풀려 있었다. 내가 말했던 것처럼 연거푸 술을 마셔서 먼저 취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앞에 놓인 빈 잔들을 바라보던 스텔라는 작게 후하하-웃었다.
“그렇네. 언제 이렇게 마셨지. 누가 내 이렇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 적은 오랜만이라. 나도 모르게 마셨나보다. 옛날에는 이런 것 열 잔 쯤은 문제도 없었는데.”
옛날이면 몇 년 전일까.
“아, 싫다. 취해버리면 옛날 얘기, 해버리고 만다니까.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막, 그런 거. 요즘 애들은 그런 거 싫어하잖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안 좋아하는 사람이 많겠죠.”
“그래, 그렇겠지. 그래도 예전엔 즐겁고 두근거리는 일이 많았어. 이 가게도 좀 더 작고. 손님도 나나 선배들밖에 없었던 시절이지만….”
스텔라의 눈빛이 별빛처럼 빛났다. 평소의 눈이 흐리멍텅했다면 술에 취한 스텔라는 오히려 지적으로 보였다.
술은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준다는 말을 들어본 것 같은데.
어쩌면 스텔라가 아직 오빠였던 오팔과 함께 대동소이 경쟁했던 그 총명함이 덜 마른 우물처럼 뿜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넌지시 물었다.
“함께 했었던 선배들이라면, 학부생 시절 모험 동아리요?”
“그래. 재미있었지. 라인하르트도, 지금은 없지만 알레이스터도 그때는 말이야, 다 젊고 패기가 넘쳤어. 다들 꿈이 있었지. 꿈이 있었다구.”
그 뒤 스텔라는 내가 묻지 않았음에도 모험 동아리가 어떤 모험을 하였고. 또 어떤 주문과 고대의 유적들을 발견했는지 좔좔 읊었다.
“그때 동굴 아래로 자라난 거대한 나무를 발견했는데. 그 높이와 두께가 상상을 초월해서…!”
그 내용들은 꽤 판타지해서, 현실감이 없었다. 과장이 섞인 건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자유롭게 모험을 했다-라는 사실은 꽤 희망차서 부러운 점도 있다.
다만 이런 식의 과거에 대한 넋두리는 “그땐 좋았지-.”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끝나기 마련.
빛나는 과거에 비해 비교적 초라한 현실을 지닌 스텔라는 이내 눈빛을 잃고 얼음 띄운 술잔을 빙글거릴 뿐이었다.
“모험이 끝난 건, 이사야 가스펠이 실종되었기 때문이죠?”
내가 그녀의 긴 주정을 끝까지 들어준 것은 하나의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게서 언급된 이름에 스텔라는 눈꺼풀을 반쯤 감고는 가볍게 말했다.
“그래. 참 제멋대로인 남자였지.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정말….”
“그렇지만, 제가 들은 이야기로는 스텔라 교수께서 그 남자와 함께 마녀 숲에 들어갔다고 그러던데요.”
“…….”
얼음잔을 돌리고 있던 손이 우뚝 멈춘다.
“그 이야기는 어디서?”
“저도 믿을만한 정보통이 있는지라. 반응을 보니 사실인 것 같네요. 스텔라 교수, 혹시 그때 이야기를 자세히 해줄 수 있습니까?”
“숨겨지는 이야기들은. 숨겨지는 이유가 있는 법이야. 태오 군, 아쉽지만 네게 그 이야기를 해줄 의리가 내게는 없어.”
“제게 그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면?”
나야말로 다른 누구보다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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