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94)
EP.295)# 4
295 – 떨어지다 # 4
이 세상은 아주 오랜 옛날 거대한 짐승과 정령 그리고 신들의 세상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빛과 소금의 신인 광염교단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만.
아주 오랜 옛날에는 님프나 엘프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정과 족속들이 세상을 노닐고 있었다고.
또 깊은 숲과 험준한 산에는 각각의 주인들이 있어서 사람도 짐승도 마물도 모두 조화를 이루며 살아갔다고 했다.
주인.
숲과 산을 지배하는 존재이니만큼 그 강력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을 터.
“이 기척, 숲 주인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 돼. 다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감이 예민한 엘프 스텔라 폰 벨호크가 우리에게 경고를 주었다. 그녀의 말처럼 마의 숲에서 주인으로 군림하는 존재라면 끔찍한 괴물일 것이 뻔했다.
파스슥, 우직끈.
그런 녀석이 우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오고 있다.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챈 것일 터. 다만 허둥지둥하는 스텔라와 다르게 발란 교수의 태도는 자신감이 넘쳤다.
“겨, 겨우 이런 위기에 당황하다니. 스텔라 교수도 아직 멀었군요. 저, 발란 드 사브르나크가 보여드리도록 하죠. 마도의 길을 걷는 자의 자질을…!”
우직끈.
마침내 우리 코앞의 나무가 부러지고, 거대한 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치 새까만 바위 같았다. 울퉁불퉁하고 단단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바위가 아닌 근육이다. 모진 풍파와 세월에 깎여나간 피부가 바위처럼 단단하게 보이는 것이겠지.
높이는 4미터 정도.
몸에 두르고 있는 해골은 마치 갑옷과 같다. 기둥 같은 손에 들린 것도 무슨 짐승의 것인지 모를 거대한 뼈를 깎아 만든 검의 형상이다.
모든 것이 죽음을 연상하는 가운데에 도깨비 같은 얼굴에 달린 두 개의 붉은 눈동자만이 불꽃처럼 일렁였다.
“오거다-.”
내 팔을 붙잡고 있었던 스텔라가 말했다.
“우리가 자기 구역에서 소란을 일으킨 탓에 화났나 봐…!”
그녀의 말처럼 나무를 부러뜨리고 나타난 존재는 오거였다.
오거라면 이미 내 부하인 고르고르를 통해 접해본 적 있었던가.
살육무인으로 훈련된 기사들을 맨 손으로 찢어 죽이는 전쟁 병기와 같은 종족이라는 걸 잘 안다. 녀석을 쓰러트리기 위해선 마법사들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실제로 고르고르도 위대한 7위계의 마법사 아이라가 평정했었지.
하지만 고르고르와 눈앞의 존재가 같냐고 묻는다면….
개와 늑대 정도의 차이로 흉폭함이 궤를 달리하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쪽이 개고 늑대인지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터.
그것을 증명하듯 녀석은 송곳니가 흉흉한 입을 커다랗게 벌린 후에 포효했다.
━━━──!!!
포효라기보다는 폭발 같다.
“크, 역시 오거라, 목청 한 번 우렁차네.”
덕분에 귀가 예민한 나와 스텔라는 귀를 틀어막아야만 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대로 있다간 큰 소란이 벌어질 게 확실한 일.
가능하면 비상의 상황을 대비해 마력을 아껴두고 싶었다만….
“…영창 전개.”
지금이야 말로 힘을 써야 할 비상의 상황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호흡을 갈무리하며 영창을 준비했다.
그러나 마법을 완성할 수 없었던 것은 발란 교수가 우리들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물었다.
“발란 교수, 마법에 휩쓸리면 위험해 질 겁니다. 옆으로 비켜 서세요!”
다만 발란 교수는 므흐흐-음흉하면서도 여유롭게 웃었다.
“태오 님께서 힘을 쓰실 필요 없이, 저 발란 드 사브르나크가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숲 주인이라고는 하나 기껏해야 오거─.”
과연.
발란 교수가 드디어 자신의 본 실력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폭주했던 발란을 쓰러트리기 위해 나와 미르나 그리고 엘가 셋이서 고성에 향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의 실력을 보일 수 있다면 괴물 오거라고 해도 상대할 수 있을 터. 내 기대감을 충족시키듯 발란은 음울한 목소리로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Tos’d Nigle Fa Yorrrrr….”
주문이라기보다는 방언.
방언이라기보다는 짐승 울음소리 같다.
흑마술의 주문은 대강 이런식이라나.
그 원초적이고 불길한 마력이 뿜어내는 으스스함을 감지한 건지 화살을 활시위에 장착하고 있던 스텔라가 묻는다.
“뭘 하려는 속셈일까?”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있는 모양이에요.”
“발란 교수가 흑마법의 대가라고 듣기는 했다만 저 녀석, 검은 나락 부족의 오거인 것 같은데. 상대가 가능할까?”
“검은 나락 부족요?”
“저 녀석 피부가 검잖아. 피부 검은 오거들은 대부분 검은 나락 부족이거든. 마왕군 중에서도 강인하고 잔혹하기로 소문난 놈들인데─.”
스텔라가 미처 말을 끝내지 못한 것은 오거가 커다랗게 포효하며 우리를 향해 돌진해왔기 때문이었다.
━그아아아아아!!!
천둥 같은 소리에 나도 스텔라도 모두 자세를 다잡았다.
코끼리 두 마리를 합쳐 놓은 것처럼 거대한 몸체가 덤벼드는 모습은, 얼마 전에 봤던 와이번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
그런 녀석이 능수능란한 4번 타자처럼 자신의 뼈 방망이를 뒤로 힘껏 젖힌다. 바위 같은 근육이 팽팽히 긴장하는 모습에 주변 공기가 일렁일 정도.
물론 녀석이 노리는 것은 공이 아닌 발란 교수였다.
━그르으아아아아앗!!!!
후우우우우-!
마침내 놈의 방망이가 바람을 가르며 발란 교수를 향해 쇄도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발란 교수가 과연 녀석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을지 기대를 품었던 것도 사실.
빠아악!
“히이이이…!”
하지만 발란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놈의 방망이에 맞아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니….”
폼 잡더니 쓸모가 없구만. 재생능력이 워낙 뛰어나니 단순한 물리적 공격에 죽지야 않았을 것 같지만….
빙글빙글 돌면서 나의 시야 바깥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당황했던 것도 잠시.
━그아아아아!!!
발란을 쓰러트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것인지 오거의 돌진은 아직 멈추질 않았다. 녀석이 노리는 게 나와 스텔라 교수라는 것은 어린 아이가 봐도 알 수 있는 일.
─마나 쉴드.
침착하게 방호마법을 영창한 뒤 다음 마법을 구상한다.
“스텔라 님, 잠깐 시간을 좀 끌어주실 수 있습니까? 10초면 됩니다!”
“씁, 해보지 뭐!”
스텔라는 재빠른 손재주로 허리춤의 로프를 꺼냈다. 원심력을 이용해 줄을 빙글빙글 돌린 그녀가 마치 카우보이처럼 오거의 몸통을 향해 줄을 내던진다.
휘릭, 달칵.
줄 끝에 걸려 있던 갈고리가 오거의 몸에 걸쳐진 뼈 무더기에 걸리고.
그것을 잡아당긴 탄력으로 공중에 뛰어오른 스텔라 벨호크는 그대로 오거의 어깨에 올라타 단검을 뽑아들었다. 역수로 쥔 그 단검은 마치 늑대의 송곳니처럼 오거의 목덜미를 노리는데.
━쥐새끼!!!
성난 오거가 모기를 잡듯이 몸을 비틀어 손을 내밀어오는 까닭에 스텔라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윽!”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스텔라.
“태오 군! 10초 끌었어! 이제 뭐든 좀 해봐!”
━쥐새끼!!! 밟아 터뜨린다!!!
오거가 거대한 발을 들어 스텔라를 짓밟기 바로 직전. 나는 최대한 빠르게 준비한 마법을 오거의 놈에 때려 박기로 했다.
─절망의 늪, 유사지옥!
일찍이 라인하르트를 제압하기 위해 썼던 마법이었다. 발판의 모래를 늪처럼 만들어 상대를 빨아들이는 포획용 마법.
물론 그것보다 위력이 한 단계 상승했기 때문에 모래 늪에 빠진 녀석은 깊은 바닥 아래로 생매장되어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 확실했다.
스르르르-.
━으어어!!!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발판에 오거는 스텔라의 몸을 밟지 못하고 기우뚱했다. 그 틈을 타 스텔라는 허리춤의 또 다른 로프를 꺼내 근처의 나무에 휘감아 늪을 탈출한다.
“됐다!”
━쥐새끼가!!!
사냥감을 놓친 게 못내 분통스러웠는지 검은 피부의 오거는 머리칼을 곤두세우며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하지만 녀석이 버둥거릴수록 모래의 늪은 놈의 몸을 더욱 깊숙하고 진득하게 가라앉힐 뿐.
촤아악.
그때 모래에 가라앉았던 놈의 팔이 지상으로 솟구친다.
━나, 도르도르를 이런 모래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놈의 몸이 천천히 위로 솟는다.
내 뇌피셜이지만 유사지옥을 자력으로 빠져 나오려면 폭포를 헤엄쳐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강한 힘이 필요할 텐데.
역시 오거라 이건가.
사실 오거가 정도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혜로운 오거 고르고르 정도 되었어도 이 정도는 능히 탈출했겠지. 이 녀석은 고르고르보다 육체적으로 더 강한 놈일 터.
애초에 유사지옥은 시간벌기였다.
본론은 이쪽에 있다.
6위계.
살상 마법.
─죽음의 별(死星).
꽈아악.
나는 영창을 끝낸 후 허공에 손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거대 오거의 몸을 중심으로 근처의 바위와 모래가 뭉친다.
모래의 중앙에 있던 녀석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이 온몸을 칭칭 감기듯, 온갖 사물에 묶여 거대한 구체 모양으로 뭉쳐지는 것이다.
━우어어어어어!!!
콰득, 콰드드득.
놈의 몸은 흔적도 없이 가려지고 세상에는 어느덧 직경 5미터 크기의 거대한 구체만이 남았다.
완전한 고요. 적막.
그것을 깬 것은 스텔라였다.
슥.
스텔라는 단단한 구체의 표면을 슥슥 만져보더니 크게 감탄했다.
“…굉장한 마법이네. 이런 건 처음 봐. 대체 어떤 원리야? 아니, 됐다. 듣는다고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네.”
원리라고 해봐야 인위적으로 인력을 증폭시켜 중앙으로 뭉치게 만드는 마법이지만, 설명하기 복잡할 것 같아 나 역시 입을 다물었다.
꽤 강대한 대마법이었기 때문에 지치기도 했고.
문제는, 오거를 가둘 만큼 거대한 마력의 소모. 당연히 그것을 감지한 마물들이 우리를 향해 몰려오기 시작했다는 것.
━그르르르-.
━그르르….
수풀 여기저기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열 둘, 열 셋…, 아니, 세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이네. 태오 군, 마력은 좀 남아 있어? 이곳에서 달아나려면 꽤 힘 들것 같은데?”
활을 장전하는 스텔라.
다만 그녀는 곧 팽팽히 당겼던 시위를 풀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덤벼올 생각은 없어 보이네. 그것도 그런가, 인근 숲의 주인을 쓰러트린 것이니까. 어떤 녀석인가 싶어서 보러 온 건가 봐.”
“그런 겁니까?”
나는 붉은 안광들을 바라봤다.
이들은 일찍이 마왕을 따랐던 마물들 혹은 그들의 후예겠지. 그렇다면 나라고 저 녀석들을 통제하지 못할 것도 없을 터.
“저리 꺼져.”
내가 가진 재능 《카리스마》를 발동해봤다. 상하관계가 명확해질수록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재능이라고 했었지.
숲 주인을 쓰러트린 나.
저급한 마물.
둘 사이의 높낮이는 너무나도 확고해서, 놈들은 이내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쳐버렸다.
동시에 경험치가 오른다.
「압도적 힘의 차이!
‘소마왕’의 직업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50」
좋구만.
* * *
“해제.”
6위계의 마법 ‘죽음의 별’을 유지하는 건 꽤 많은 마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했다. 그래서 오거 녀석이 죽었을 것이라 예상한 30분 정도 후에, 나는 가볍게 마법을 해제했다.
바스스슥.
무너지는 인공 별.
그 사이로 거대한 몸체가 바닥에 허물어진다.
쿠우우웅-.
그것으로 땅이 커다랗게 지축을 뒤흔들었다.
━너, 강하다. 도르도르, 졌다.
“아직도 살아 있었나.”
터프한 족속이구만. 다만 내게 덤벼올 생각은 하지 않는 듯했다. 그럴 기력은 없는 것이겠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