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05)
EP.306)공주 # 4
306 – 요정 공주 # 4
장벽 너머의 마물들은 북쪽을 두려워했다.
그곳에 가면 마물들조차 견딜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마경이 펼쳐져 있다나.
그리고 그곳에 군림하고 있는 것은 북쪽의 주인이라고 했다.
얼굴도 생김새도 모르지만.
엄청나게 끔찍하고 강대한 존재라서 다들 북쪽으로 향할 엄두조차 내질 못한다고.
또 많은 강자들이 호승심을 부리며 북쪽으로 향했지만 모두 돌아오지 못하고 소식도 끊겼다 했다.
그런 북쪽의 주인에게 님프는 싸움을 걸기로 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과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병을 낫게 할 만한 무언가를 북쪽의 주인이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우리들이 말릴 틈도 없었어.
님프는 더욱 북쪽으로 떠났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한다.
누구는 인근 개울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봤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느 새들은 북쪽의 멸망해버린 도시 근처에서 목격했다고도 하지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나.
일찍이 오거 도르도르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와 비슷했다.
모든 숲을 아우르는 강한 숲 주인이 있었는데. 끝내 북쪽의 주인에게 도전해서 쓰러졌다고 했었지. 사실,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얼추 예상하고 있었던 걸지도….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난다.
“그럼, 아이는 어떻게 된 거죠?”
북쪽 주인과 싸우는 것에 아이를 데리고 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혼자 남은 것이 된다.
늙은 늑대 타사간은 허공을 슬며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때 이 숲은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어. 아직 자신의 앞가림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반요정이 살아남기에는 조금 힘들었겠지.
하지만 살아남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겠지.
아무튼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이 녀석은 아주 버림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큰 병을 앓았던 건가. 적산가리로 마나회로를 지져져 있었던 것이 어쩌면 그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앙그마르의 피에 짙게 흐르는 붉은 마나.
그것은 그릇이 되는 인간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들었다. 이 몸은 그 수치가 앙그마르의 평균을 훨씬 웃돈다고 했었지. 솔로몬의 수치보다 높았다고.
그 강렬한 마력을 어린 아이의 몸으로는 견딜 수 없었을 터.
어쩌면 그것을 알아차린 님프가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마력회로를 태웠던 걸지도…. 병을 낫게 하지는 못했어도 생명을 연장시키긴 했을 터다.
하나 둘 맞춰지는 퍼즐.
나는 일종의 개운함과 나름의 감동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 몸은 비정함에 버림받은 게 아니구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나도 큰 애정을 받았기에 혼자가 된 것이었다. 아이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을 정도의 애정이라니.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뱃속의 꿍꿍이를 위해….
그런 생각에 이르자 나는 한 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못한 궁금증이 있었던 것도 사실. 노예 시장에 팔리고 있었던 이 녀석이 발견되었던 것은 도적떼의 전리품 사이라고 했었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비어 있는 한 칸이 살짝 불편하다. 물론 그런 것을 물어봤자 백색 늑대 타사간은 이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물론 알고 있을 만한 사람도 모른다고.
그 말은,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 * *
우리는 동쪽의 성벽을 향해 떠나기로 했다.
그에 스텔라는 아주 살짝이나마 아쉬움을 표한다.
“이제 겨우 늑대들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들리는 것 같았는데 말이야. 또, 선술이라는 것도 아직 배운 게 없는데.”
“그럼 스텔라 님 혼자 남아서 배우고 오시면 되겠네요.”
“으, 그건 싫어.”
흐흐-웃는 스텔라.
그런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나왔던 거대 늑대 쿠빌라이가 거대한 몸을 일으킨 채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가르칠 수 있을 만 한 건 다 알려줬다. 일어나 걷는 법을 배웠으면 뛰는 건 저절로 할 수 있게 되듯이. 너희는 이제 스스로 훈련할 수 있을 거다.
그런가.
오늘 아침 긴 명상에 빠졌던 때를 떠올렸다. 확실히 조금 더 해보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때 스텔라가 말했다.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다 가르쳐주었으니까 이제 하산해라-. 방금 저 큰 늑대가 그런 말을 한 거지?”
이건 좀 깜짝 놀라게 되네.
“스텔라 님도 이제 동물들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습니까?”
“아니, 그냥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냥 막연히 그런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같은 느낌?”
그렇군.
본디 짐승 길들이기를 좋아하는 스텔라답게 이 기묘한 요정 능력에 대해서도 슬슬 감을 찾고 있는 듯했다.
역시 꽤 긴 삶을 살아온 요정답게 능력도 좋고 요령도 좋구나.
그때 늑대 쿠빌라이가 한 마디 더했다.
━그래서, 반요정. 새로운 숲의 주인으로서. 언젠가 저 북쪽의 주인에게 도전하러 또 찾아올 것인가?
그의 물음에 나는 강력한 괴물이 저 균열 가까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어떤 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 녀석과 싸워야 할 이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글쎄.”
내가 두루뭉술히 대답하자 녀석이 웃는다.
━하긴, 아직 네 실력으론 힘들 거다. 여담이지만 실력을 높이고 싶으면 둘이 방중술을 시험하는 것도 좋지. 강체술사와 법술사. 둘 사이에 흐르는 음양의 조화는 제법 상성이 좋으니까.
방중술이라니.
혹시 내가 아는 그건가 싶어서 살짝 긴장하고 있을 즈음 스텔라가 “이번에는 잘 못 알아 듣겠네. 뭐라고 한 거야?”라고 내게 통역을 부탁한다.
그래서 나는 짧게 답했다.
“실력을 높이고 싶으면 저랑 아기를 만드셔야 한데요.”
“그건 거짓말이네.”
진짠데.
아무튼 우리는 그것을 끝으로 동쪽 성채로의 길을 향했다. 가는 길을 늑대 무리가 알려주었기 때문에 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그래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 이 동쪽 끝에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나. 그 때문인지 숲이 묘하게 조용했다.
“동물들 사이에서 훈련도 하고 기이한 열매도 따고. 동화 같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 모처럼 재미있었다. 성벽을 넘어가면 당분간은 이런 일, 또 없겠지?”
느으읏-기지개를 켜는 스텔라.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말했다.
“이런 경험은 굳이 두 번하고 싶진 않네요. 목숨이 몇 개 있었어도 위험한 일들이 잔뜩 있었으니까요. 거대한 지네랑 맞붙었던 때를 생각하면….”
조잘조잘.
우리들은 우리가 경험했던 일들을 하나 둘 떠들며 길을 걸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지만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매일 매 시간 마다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 평화롭게 살아왔던 내게는 자극의 수치가 너무 높았던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여러모로 실력이 상승되었으니 좋은 일이긴 한가.
촤르르르-.
그때 내 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요정의 감으로 보건데 이 근처에 큰 개울이 있어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근처에 물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 개털 냄새 잔뜩 나서 좀 씻고 싶었는데. 잘 됐다! 안내 해!”
스텔라가 등을 떠미는 통에 나는 그녀를 근처에 흐르는 개울물로 안내해 주었다. 수풀과 수풀 사이.
나무들이 잔뜩 자라난 숲 사이에 맑게 흐르는 계곡을 발견한 순간 방금까지의 더위가 조금 가시는 것처럼 머리가 청량해진다.
슥슥.
내가 감상을 느끼고 있을 때 스텔라는 긴 부츠를 벗고 맨발로 물에 뛰어들었다.
풍덩!
“으, 차가!”
참방, 참방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행구기 시작하는데. 그 목까지 물에 푹 잠기는 것으로 보아 생각보다 물이 깊었던 것 같다.
바로 그때였다.
휘리릭.
무언가 내 발에 감기는 감각이 생생히 느껴진다.
“엇!”
생각지도 못한 강한 힘에 끌어당겨져서 그대로 풍덩 계곡에 물에 입수를 하고 말았다.
“흐엑, 흐아프, 히에엑…!”
발이 닿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었나!?
이리저리 허우적거리며 물을 잔뜩 집어삼키고 있을 즈음, 누군가 나의 옆구리를 슥 붙잡아 들어 올려준다. 덕분에 나는 물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리 안 깊어. 다리 닿아.”
“…….”
“태오 군, 저번에 강에 빠졌을 때도 그랬지만. 이제 보니 물 무서워하는 구나? 반요정 치고는 이상하네. 님프들은 대체로 물 좋아하잖아.”
“저는 반요정이면서, 동시에 반은 인간이거든요. 수영 못하는 인간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푸우우-.
입에서 물을 뱉어낸다. 이제 보니 물은 생각했던 것 정도로는 깊지 않았다.
내 가슴과 목까지 오는 수심. 하지만 발밑에 매끌매끌한 돌들이 많고 자칫 삐끗했다간 그대로 빠져버릴 터.
수영을 못하는 나로서는 다리에 온 힘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물 바깥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데. 누군가 나의 몸을 뒤에서 휙 잡아당긴다.
“안 돼.”
물론 그건 스텔라였다.
나와 물장난을 치고 싶은 건가?
“태오 군도 좀 씻지 그래. 늑대들 냄새가 잔뜩 나잖아.”
“음.”
그건 그렇긴 해. 내 몸에서는 며칠 씻지 못한 땀과 늑대 무리에서 지낸 짐승 냄새가 잔뜩 나고 있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코가 좋은 스텔라는 내 냄새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었겠구나.
결국 나는 흐르는 물에 입고 있는 옷 째로 몸을 씻기로 했다. 씻는다기보다는 세탁한다는 편이 더 가까웠지만.
촤르르, 촤르르-.
물을 몸에 끼얹고 있으니 스텔라가 내 얼굴에 물을 뿌린다. 씻는 도중에 물을 끼얹는다니.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야.
“님프 하이드로 펌프!”
푸우우우-.
“꺅! 태오 군, 감히 내 얼굴에 물을 뱉어!?”
그렇게 얼마간 서로 물장구를 친 후.
생각보다 차가운 물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서, 역시 바깥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이대로 있다간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았으니까.
* * *
“흐엣취-!”
작은 반요정이 계속해서 재채기를 했다. 그 얼굴은 몹시도 붉고 푸른색으로 맑았던 눈동자는 제법 몽롱하다. 감기에 걸린 것이다.
“흐엣취-!”
감기에 걸린다니.
스텔라는 여러 마물들과 싸우며 힘든 내색 하나 보이질 않았던 녀석이 감기에 걸려서 으슬으슬 떨고 있다는 것에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 이유야 별 것 없다.
스텔라가 억지로 작은 반요정을 물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설마 개울물에 몸을 좀 집어넣었다고 감기가 걸리는 님프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영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물놀이도 잘 하지 않았나?
“으으….”
‘괜히 미안해지네.’
재채기와 기침 소리가 늘어날수록 스텔라 폰 벨호크는 마치 자신을 책망하는 것만 같아서 영 마음이 찜찜해졌다.
그래서 감기에 좋다는 약초나 열매 등을 따서 반요정에게 먹여봤지만 효과는 별로 없다. 애초에 약효라는 게 그리 빨리 도는 것도 아니고.
“여기, 활력 벌레야. 모양도 좀 그렇고, 맛도 엄청 매운데. 먹으면 몸에 기운이 좀 솟을 걸?”
“으엑.”
몸에 좋은 벌레를 먹이려 들었더니 이제는 약초나 열매도 먹으려 들지도 않는다.
“…….”
평소 아무 이야기나 조잘조잘 잘 떠들어대던 반요정은 어느덧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안 했다. 말할 기력이 없는 건가. 침묵 속에서 걷고 있으니 몹시도 낯선 기분이 든다.
‘조용하니까 또 딴 사람 같아.’
스텔라는 이대로 계속 걷기도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동쪽 성벽으로 가서 모두와 합류하는 게 급하다고는 하나, 어차피 늦어진 것 하루 정도는 일정을 더 늦춰도 괜찮겠지.
거대한 고목나무에 뚫려 있는 나무 동굴을 발견한 건 꽤 운이 좋았다.
사람 서넛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구멍. 바닥에 짚단을 깔고 웃옷을 잘 덮으니 나름 하룻밤 머물 만한 곳은 되었다.
“어차피 해가 저물고 있으니까,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갈 거야.”
“…으….”
반요정은 정신을 못 차렸다. 이마는 마치 불덩이 같다. 혹시 요즘 유행하는 님프 독감이라는 것에 걸린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태오 군, 이마가 완전 불덩이네. 일단 여기 눕도록 해.”
반요정을 일단 바닥에 뉘이도록 한다. 방금까지 걷고 있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흐물흐물 녹아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퍽 가엾기도 하다.
‘이렇게 얌전히 있으니까, 착해 보이네.’
평소 반요정 주변에 감돌고 있는 묘한 긴장감과 분위기에 가려져 있었지만. 이렇게 얌전해진 상태에서 지켜보니 녀석의 얼굴은 마치 잘 세공된 유리조각 같았다.
청년과 소년 그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을 타고 있는 모습에, 속눈썹은 가늘고 턱과 콧대는 갸름하고 선이 얇다.
이정도면 미소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많은 여자들을 울렸겠지.
물론 이 반요정의 팔자는 퍽 기구했다. 그 증거로 오른쪽 눈에 새겨진 기이한 칼자국이 꽤 흉흉하다.
‘어쩌다 난 상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 칼자국이야.’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걸까?
잘 만들어진 도자기에 멋대로 자국을 새겨 놓은 것처럼 불쾌함이 느껴지는 흉터라니.
스텔라는 슬쩍 손을 들어 오른쪽 눈을 가려봤다. 흉터가 없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누군가 떠오를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얼굴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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