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12)
EP.313)이남의 후일담 # 3
313 – 장벽 이남의 후일담 # 3
장벽 너머로 떨어졌었던 요 며칠.
나는 스텔라와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다니며 이것저것 호흡을 맞췄었다.
하지만 미르나가 보기에는 ‘이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친해졌지?’라고 의아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이것을 또 내 입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게 제법 긴장된다. 미르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반쯤 예상이 갔으니까. 분명 어마어마하게 화를 내겠지.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을 테니까.”
휙.
마침내 미르나는 휙 등을 돌려 산도라의 성벽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이대로 성벽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뒤로 다시 장벽을 넘어가버릴까. 물론 농담이지만 그만큼 나는 여러모로 심리적 압박을 느꼈다.
다만 성벽을 넘어선 순간 여러 생각들이 싹 사라졌다.
마치 폐허처럼 잔뜩 부서진 도시의 경관이 내 눈을 어지럽혔다. 내가 잠깐 멍하게 있으니 머리 위에 잉잉이를 얹고 있던 마르마르가 설명해줬다.
“동지가 떨어진 후에, 와이번이 이 도시에서 마구 날뛰었거든! 아주 못된 놈이었어!”
얼마나 날뛰어야 돌로 만든 건물들의 지붕이 뜯겨나가는 걸까?
“히에엑…! 와이번…! 무서운 것이다…!”
그때의 일이 생각난 건지 임프 타르타르는 꼬리를 바들바들 떨며 하늘을 살폈다. 독수리를 무서워하는 미어캣 같다.
“아주 임프혐오적인 날개 도마뱀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와이번은 큰 부상을 입고 북쪽의 머나먼 먼 곳으로 날아갔다고 했다. 내 고위 마법 ‘별 죽이기’를 얻어맞았던 상태니까 어딘가에서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겠지.
━야, 그쪽에 간판 설치해.
━그 밑에서 망치 좀 줘.
뚝, 딱, 쾅, 쾅.
사방에서 망치질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원래 비무제의 준비를 위해 바빴던 도시였는데. 와이번에게 때 아닌 습격까지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이런 상황에서 비무제는 진행할 수 있긴 한 걸까? 왕궁으로 보낸 전서구의 답장이 와 봐야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답장이 올 때까지 우리는 이 마녀들의 도시 산도라에서 지금까지의 여독을 좀 풀기로 했다.
* * *
휴일의 시간이라는 것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앗-하고 지나가버린 후가 많다. 산도라에 돌아온 지 벌써 이틀.
나는 단순히 밥을 먹거나 쉬거나 씻는 것에 시간을 썼을 뿐인데 어느덧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장벽 너머에서 사투를 벌였던 것과 비교되게 울타리 안의 삶은 너무나도 여유로웠기 때문일까? 상대적으로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렇겠지.
당장 나의 눈에는 산도라의 공원.
그 양지바르고 너른 풀밭에서 뛰놀고 있는 임프들과 그 임프들을 향해 보자기로 눈을 가린 채 손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발란 교수가 보였다.
짝, 짝, 짝.
박수를 치는 임프들을 따라다니는 발란 교수.
“임프 녀석들, 다, 다 붙잡을 겁니다. 흐흐.”
“나 타르타르는 이쪽에 있는 것이다…!”
마침내 발란이 손을 뻗어서 주황 머리 임프의 팔을 와락 붙잡는다. 그 모습에 주변 임프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다.
“아앗-! 또 으뜸 동지 마르마르가 잡힌 것이야-!”
“왜 또 내가 잡힌 거지?”
발란 교수의 손에 잡힌 마르마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얼굴에 씌워져 있던 두건을 쓱 벗은 발란이 음흉하게 흐흐 웃었다.
“으, 으뜸 임프라니.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힘든데 말이죠. 흐흐, 으뜸 임프들은 어둠 속에서 꼬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또 여러모로 재주가 많은 법…!”
“동지! 이 교수는 상태가 좀 이상해!”
“하지만 뿌, 뿔이 없는 으뜸 임프라니. 저 발란 드 사브르나크로서도 처음 보는 군요. 꼬리를 하나 때어내 줄 수 있는지….”
“…내 꼬리는 못 줘! 모처럼 마름모 꼬리란 말이야!”
무척 시끄럽고.
평화롭군.
이런 나날들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비무제의 개막이 불과 일주일조차 남기지 않았고. 남쪽에 주둔 중이던 병사들과 교단의 용사들이 이 산도라에 속속들이 집결하고 있는 상황.
이 여유로움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
“태오 군, 얼굴이 붉은데. 아직 열이 남아 있는 거 아니니?”
슥.
그때 파라솔 아래에서 휴식하고 있던 내 이마에 누군가가 손을 얹었다.
서늘한 손길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시선을 돌리니 스텔라가 나를 제법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해열 포션을 좀 먹어볼래? 이건 맛도 나름 달고 먹기 좋거든. 그때 벽 너머에서 맛본 나무껍질이랑은 맛이 다를걸.”
뽕.
포션병의 코르크마개를 따는 스텔라. 이내 그녀는 내 입에 포션을 들이밀고 그 안에 들어있는 붉은 약을 삼키게 만들었다.
꿀꺽꿀꺽.
약이라고 해서 조금 긴장했는데 제법 달았다. 딸기 맛이네. 마침내 한 방울까지 전부 마셨을 때 스텔라가 밝게 말했다.
“잘 마셨네!”
슥슥. 머리까지 쓰다듬어준다.
다만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이 영 부끄러웠다. 마치 나를 어린 아이 다루듯이 어르고 달래준다니. 이는 사나이답지 못한 상황이다.
또 이곳에는 단 둘만이 있는 게 아니라서 문제가 생겼다. 이 모습을 침착하게 지켜보고 있던 미르나가 결국 참을 수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스텔라 교수. 태오 경은 다섯 살짜리 애가 아니에요. 물약을 마시는 것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아, 여기에 먼지도 묻었네. 정말 일은 똑 부러지게 잘 하면서, 자기 몸 챙기는 것은 어린애처럼 칠칠맞다니까.”
“…지금 제 말 듣고 있나요?”
누나나 어머니처럼 나를 챙기고 있는 스텔라가 영 맘에 들지 않은 것이겠지. 그 가운데에 앉아 있는 나는 좌불안석이다.
아직 미르나에게도 스텔라에게도 상황의 정리가 되질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산도라에 온 지 이틀 정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나질 않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냈어야 했는데.
다들 공원을 뛰놀고 있는 사이.
파라솔에 앉은 우리들 셋.
생각난 김에 지금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싶어서 나는 입을 열었다.
“미르나 아가씨. 장벽 너머에서 저희들이 무엇을 보고 겪었는지 듣고 싶었다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부터 천천히 이야기 해드릴게요.”
나는 일단 장벽에 떨어졌을 때 한 이틀 정도 의식을 잃었다는 것. 발란 교수와 스텔라 교수가 나를 돌봐주었다는 것부터 운을 뗐다.
그 뒤로는 오거 도르도르와 싸우며 발란 교수와 헤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즈음 미르나가 놀라운 듯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태오 경 혼자서, 오거를 쓰러트렸다구요?”
“혼자는 아니고. 스텔라 님과 좀 도움을 받긴 했는데. 아무튼, 그렇게 여차저차 해서 오거를 쓰러트린 후에 저희는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동쪽에 진입한 후 늑대들에게 추격 받은 것.
스텔라가 모종의 독에 당해 사경을 헤매던 것과 그 약을 구하기 위해 달맞이 꽃을 구하러 출발하는 것까지. 이야기를 들은 미르나는 후후-웃는다.
“거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달맞이 꽃을 구하러 간다니. 태오 경, 아무리 그래도 저 미르나 드레이코를 너무 우습게 아는 것 아닌가요? 나르미라면 모를까.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에 제가 속을 리 없지 않나요?”
거짓말처럼 느껴지겠지.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알아 들을 수 있겠죠?”
마치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작은 짐승을 내 앞에 내민다.
━잉잉야잉.
방금까지만 해도 서늘한 돗자리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던 잉잉이가 미르나의 손에 붙들려 내 얼굴로 내밀어졌다.
━크르릉…!
녀석은 낮잠을 방해받은 것에 화가 난 듯했다. 하지만 미르나는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 건지 내게 계속해서 물어왔다.
“자, 이 녀석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크르릉…!
“크르릉이라고 했는데요.”
“그건 저도 들을 수 있었어요.”
“사실 이 녀석 말은 못 알아듣겠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스르르.
가느다란 눈을 뜨는 미르나. 나는 이대로라면 끝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일단 이야기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엄청 커다란 지네 앙갈라와 싸우고 난 후 달맞이 꽃을 구해 열병을 치유했습니다.”
“지네 앙갈라라면, 위대한 앙갈라를 말하는 건가요?”
“맞아요.” 라고 적당히 대답하면서도 좀처럼 이야기가 진행되질 않는 것에 약간의 초조함이 생겼다.
사실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닌데. 스텔라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 그걸 말하기 위해 전초를 깔고 있는데 미르나에겐 모든 것이 흥미로운 모양이다.
“앙갈라라면, 지혜로운 거미 아르갈라와 자매라는 그? 오랫동안 고행과 선을 갈고 닦아 승천해 하늘로 올라갔다는 그 앙갈라를 말하는 건가요?”
“잘 모르겠는데 엄청 크고 강력한 지네였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에요. 아마 미르나 아가씨가 알고 계신 분이 맞을 것 같습니다.”
“…….”
미르나의 눈이 점점 더 가늘어진다. 내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약선 앙갈라는 저희 드레이코 가문이 살고 있는 무수한 산 봉우리 중 하나에 기거했다 전해지는 신선이에요. 드레이코 가문과도 꽤 연관이 깊죠.”
“그렇습니까? 드레이코 가문과 연관이 있다구요?”
“드레이코 가문의 시초는, 원래 승천에 실패한 뱀이었다는 것 같으니까요.”
수 백 년 간 스스로를 갈고 닦은 뱀들은 하늘로 승천해 자연 그 자체가 된다고 한다. 구름 사이에 숨어서 세상을 굽어보며 비나 태풍을 몰고 오는 존재가 된다고.
하지만 여러 이유로 승천에 실패한 뱀이 있었고. 그 뱀을 신부로 삼아서 함께 산 남자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들이 낳은 자식이 바로 드레이코 가문의 시초자라고 그랬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재미난 이야기네요. 왕실 가문의 창세 설화로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 들어보면 거짓말 같은 이야기겠죠. 그렇지만 저는 태오 경이 하는 말도 이것처럼 들리거든요.”
그렇군.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스텔라가 한 마디 거들어주었다.
“그래도 선술을 배워온 건 진짜야. 늑대들에게 어떤 수행을 받았는지 들어보면 미르나 양도 깜짝 놀랄 걸.”
“선술이라. 신선이 되기 위해 배우고 수양하는 도술과 주술을 말하는 것이겠죠. 새로운 기술로 설명되는 마법과는 다르게 아주 고리타분하고 미신적인….”
스르르-.
가느다란 눈을 뜨는 미르나.
“과연, 이제 보니 스텔라 교수와 태오 경의 몸에 깃든 자연지기가 더욱 증대되어 있는 것 같긴 하네요. 저는 알 수 있거든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내 물음에 미르나가 촤르르-하고 부채를 펼친다.
“저 미르나가 다루는 주술들은 본디 태고부터 이어져 내려온 주술들을 개량한 것. 정령과 요정들의 시대의 것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니까요.”
아, 과연 그렇구만.
순식간에 이해가 되었다.
나르미의 강령술과 미르나의 제령술법은 ‘마법’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마법을 측정하는 단위인 위계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이제 보니 미르나는 가문 내에 대대로 이어지고 있는 선술과 기술들을 갈고 닦은 것이었구만.
“본디 드레이코 가문의 주술들은 뱀들이 승천하기 위해 행했던 수양과 고행 그리고 정결 예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반쯤은 허풍이겠지만-이라 미르나는 보험을 두듯 말을 흐렸다.
하지만 장벽 너머에서 놀라운 광경들을 보고 왔던 나는 그것이 결코 허풍이나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수행을 하다보면.
미르나는 언젠가 용처럼 승천을 하게 되는 걸까?
멋지네.
그때였다.
“그래서 태오 군.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언제 할 거야? 태오 군과 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도 말을 해 줘야지. 안 그래?”
스텔라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이야기를 끼어 들어왔다.
여러모로 이야기를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구상하고 있던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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