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49)
EP.350)잠에서 깨어나다 # 3
350 – 긴 잠에서 깨어나다 # 3
아이라가 잠에서 깨어난 나무의 요일로부터 하루가 더 지났다.
황금의 요일.
꿈에서 깬 아이라는 하루라는 시간이 더 지났음에도 딱히 평소와 다를 게 없어보였다.
언제나처럼 도도하게 굴고, 또 가끔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를 느낌으로 창문을 바라보거나 했다.
굳이 달라 보이는 점을 꼽자면 신체의 상태가 꽤 좋아보였다는 것이다.
긴 숙면을 취했던 것이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라의 몸은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 돼 있었다.
그녀가 싱그러운 젊음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마치 가장 화사하게 피어난 꽃.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누가 봐도 인생의 황금기였다.
지금 그녀를 마주하게 된다면 평생을 금욕에 몸 담아 왔던 고승들도 얼굴을 붉히고 사랑에 빠져버리리라.
“잠깐 몸을 풀고 싶은데. 엘가,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점심을 먹고 난 이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오후. 아이라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비무제를 준비한다는 명목에 엘가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나도 도전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테니까. 만전의 상태로 그들의 앞에 나서주는 것이 여왕으로서의 책무지 않겠니?”
나름 정론이었다.
그에 가느다란 눈을 뜬 엘가가 묻는다.
“마법이 아닌 검으로만? 그래서야 나와는 격이 맞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어림잡아 상대해주는 거 잘 못하니까, 저 녀석에게 부탁해 보던가.”
슥.
엘가의 손이 가리키는 것은 차를 홀짝이고 있던 미르나였다. 아마 엘가는 뱃속에 아이가 있기 때문에 쉬이 대련을 승낙해주기가 좀 어려웠던 것이겠지.
정작 꿈속의 여정을 지니고 와서 변한 건 아이라보다 엘가 쪽이 컸다. 더욱 몸을 지키는 쪽으로 변해서 위험한 일은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됐기에 한 편으로는 몹시도 미안했다. 양심이라는 이름의 종이거미가 내 마음을 따끔하게 물어오는 기분.
“누구, 저요? 대련을?”
갑작스럽게 자신이 지목된 것에 미르나는 불쾌한 것처럼 미간을 좁힌다.
“싫어요.”
똑 부러지는 대답.
그에 엘가가 흐흐-웃는다.
“하긴, 명예직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라는 왕국에 몇 없는 소드 마스터지. 마법의 도움 없이도 어지간한 기사들은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으니까. 미르나 네가 겁내는 것도 이해해.”
엘가의 말처럼 아이라는 소드 마스터라는 칭호로 불렸다.
비록 당대의 왕에게 헌사 하는 아첨과 아부가 담겨 있다고는 하나, 염동력의 마법으로 날붙이를 다루는 아이라의 솜씨는 검술의 대가 그 이상.
또 염동력의 도움 없이도 아이라는 제법 검을 잘 다루는 편이었다. 그래서 혹 그녀가 칼로 사람의 몸을 찌르는 건 아닐까 나는 늘 전전긍긍했었지.
아무튼.
엘가의 명백한 도발에 미르나는 미간을 좁혔다.
“제가 마법도 사용하지 않는 여왕에게 질 거라 생각하나요? 저 미르나 역시 검을 다루는 것이라면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요.”
미르나 또한 이게 도발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렇지만 알고도 넘어가 줄 만큼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지 미르나는 슥 손을 내밀었다.
“준비해두는 것이다…!”
그러자 저 멀리서 무언가를 손에 쥔 임프 타르타르가 뒤뚱뒤뚱 뛰어온다. 자세히 보니 그 손에 들린 것은 편안한 모험가용 복장과 검집이었다.
“잘했어요, 타르타르.”
“드레이코 가문에는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우리 임프 자매단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미르나는 임프들과 사이가 꽤 좋은 듯하다. 몹시도 바람직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짓게 됐다.
문득 하나의 광경이 떠올랐다.
모든 유력 가문에 임프 메이드들을 한 명씩 붙여주는 건 어떨까.
무엇보다 임프들은 귀여우니까 앙그마르 귀족들의 마음도 평화로 가득해질 터. 한 가구에 한 명의 반려 임프를 보내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세상에 전쟁 같은 게 없어질 지도 모른다.
물론 임프들은 본디 사악한 녀석들이고, 마르마르와 함께하는 녀석들만이 저렇게 심성 착한 임프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덧 옷을 전부 갈아입고 온 미르나가 검 한 자루를 허공에 던졌다. 그것을 착 받아 든 아이라.
“이 서늘한 감각…. 오랜 만이네.”
저 말, 벨모트의 목을 베어내려고 했을 때도 하지 않았나? 그때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떠올리니까 갑자기 위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함께다.
그래서 나도 굳이 피를 끓어 올리며 말릴 필요가 없었다.
“그럼 나 타르타르의 신호와 함께 시작하는 것이다…!”
* * *
캉, 카칭, 캉!
넓은 공터에 날카로운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히 났다. 소리와 함께 튀는 불똥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번쩍번쩍 눈이 부신다.
미르나와 아이라의 검술 대련은 대략 몇 합 이상 이어지고 있었다. 한 방 한 방 서로를 쓰러트리기 위해 휘두르는 검기.
기교나 기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마법이나 주술의 도움 없이 단순히 검극만을 부리는 그녀들의 실력은 꽤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내 옆에서 이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던 엘가가 말했다.
“제법 잘 상대하네.”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일까? 엘가는 검이나 무기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나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녀에게 나는 가볍게 해설을 요구했다.
“누가 이기고 있는 겁니까?”
“아무래도 이런 승부에서는 미르나 쪽이 55대 45정도로 우세하겠지. 보면 알잖아. 미르나 쪽이 유효한 공격 횟수가 많아.”
“오.”
의외라고 해야 할까. 사실 미르나의 재주는 주술과 지식을 다루는 데에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녀가 부리는 검의 기예는 대단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술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이라 여왕을 우세하게 상대하는 걸 보면 역시 대단한 사람이기는 한 것 같았다.
“문제는 저 녀석이 실전에서 저 실력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는 거지. 저 녀석도 스스로 인정할 거야. 실전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그렇습니까?”
“미르나 녀석, 막상 중요한 순간이 되면 얼어붙잖아. 그런 면에서 동생 쪽인 나르미는 가차 없지. 오히려 그 녀석은 좀 절제가 필요하니까.”
“확실히 나르미 아가씨는 냉혹한 부분이 많죠.”
슥.
나는 저기서 임프들과 꼬리잡기를 하고 있는 나르미를 슬쩍 바라봤다. 자신의 자매가 여왕과 대련하고 있음에도 그다지 관심 없는 건지 들판을 뛰 놀기 바쁘다.
“아앗-! 가르가르의 꼬리가 나르미에게 붙잡힌 것이다-! 이제 가르가르가 술래인 것이다-!”
“가르르르, 가르르르!”
몹시 보기 좋은 광경이구나.
평화롭다.
그때 엘가가 말했다.
“내가 놀란 건 오히려 아이라야. 저 녀석, 합이 더해질수록 상태가 좋아지고 있어. 검을 잡은 건 몇 년 만일 텐데. 감각을 깨우고 있다고 해야 하나.”
감각을 깨우고 있다-. 확실히 그런 느낌이었다.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아이라는 자신이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 이번 대련을 신청한 것 같았다.
엘가가 계속해서 말 한다.
“몸 상태도 매우 좋아 보여. 적어도 신체만 보자면 그래. 마치 마음에 짐이라도 털어버린 것처럼 거침이 없어.”
“…문자 그대로 일수도 있겠죠.”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 만약 그 거대한 거미가 아이라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족쇄였다면.”
엘가는 그녀답지 않게 약간 걱정을 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 마음도 이해는 됐다. 아이라의 강함에 제약을 걸기 위해 벌였던 일이 반대로 아이라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면….
물론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다.
“아무리 고생해도 정작 태오, 네가 우승하지 못하면 말짱 꽝인 거 알지? 네 마법이 대단한 건 알지만. 어디까지나 꿈속 2년 전 아이라를 상대했을 때의 이야기잖아.”
“그렇긴 하죠.”
“지금의 아이라는 그때랑 비교할 수가 없어. 너도 알겠지만 8위계의 마법사라는 건 성채 하나를 홀로 박살낼 수 있을 수준이니까.”
엘가는 그 뒤로 아이라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존재인지 설명했다.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일단 대화의 머리를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엘가 님. 제가 부탁했던 것은 확인해 보셨습니까?”
“장벽에 균열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거?”
엘가의 물음에 나는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쉿. 목소리가 너무 크다. 만에 하나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 게 다른 사람에게 들리면 그야말로 대 패닉이겠지.
다만 엘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별 문제 없다더라. 그 거대한 탑들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 리가 없지.”
“그렇긴 하겠습니다만….”
바엘을 쓰러트리면 장벽이 무너질 거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바엘을 쓰러트렸다. 그래서 혹시 진짜로 장벽이 무너지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만 엘가의 말에 따르면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유예기간이 있는 걸지도.
아니면 바엘을 온전히 쓰러트리고 죽인 게 아니라 내가 흡수했기 때문에 무언가 변수가 생겨난 건지 모르겠다. 가장 확실한 건 본인에게 물어보는 일.
슥.
나는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바엘, 어떤 것 같냐.
━히오옹.
역시 뭐라는 지 모르겠다.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잡은 바엘은 계속 이런 상태였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느낌. 어쩌면 아이라의 마음속에서 패배해 크게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잘 먹이고 살찌우다 보면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려나.
━히오옹!
그래도 녀석이 내 안에 깃든 건 꽤 도움 되는 일이었다. 일단 경험치를 잔뜩 받아 내 마법 실력을 7위계로 상승시킬 수 있었다.
가장 큰 장점은─.
까앙!
그때 무언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그에 먼저 반응한 것은 미르나.
“엇!?”
동시에 엘가가 손을 뻗는 기분이 느껴졌다.
“위험하다.”
미르나가 쳐낸 아이라의 검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걸 나 또한 감각 좋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걸 엘가가 손으로 막아주려는 것이겠지.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사아아아아.
불어오는 바람이 검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으니까. 곧 빙글빙글 높이 올라갔던 검이 아무것도 없는 공터 바닥에 푹 꽂혔다. 그때서야 엘가가 미르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검을 튕겨내려면 똑바로 했어야지. 주변 사람들 말려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하여간 조심성 없기는.”
따지고 보면 우리가 위험하게 근처에 관람하고 있었던 게 문제긴 하다만 엘가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에 미르나가 자신의 검을 검집에 도로 꽂아 넣으며 말했다.
“태오 경 괜찮나요? 그보다 방금, 영창도 없이 마법을 구사하지 않았어요? 주문이나 수인을 맺는 것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역시 감 좋은 미르나는 알아차렸던 모양이다.
미르나의 말대로 방금 나는 주문의 영창이나 수인을 맺을 필요 없이 3위계의 ‘번개돌풍’을 시전 했었다.
마법사의 빈틈과 약점이 되는 캐스팅 시간. 그것을 극복해냈다고 봐도 좋은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도 이번에 얻게 된 고위 영창주문 바엘 덕분이었다. 내가 마법을 상상하면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바엘이 여덟 개의 다리로 대신 수인을 맺어준다는 느낌.
━히오옹…!
마력 소모는 평소보다 높지만 5위계 아래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사전 준비가 필요 없어졌다는 건 내게 큰 이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상태가 좋았던 건 나도 마찬가지.
마치 깊은 숙면을 취한 것처럼 모든 것이 생생하다.
그리하여 며칠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모든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몰려드는 비무제.
그 개막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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