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7)
EP.38)# 2
038 – 라이벌 # 2
주점의 근처.
주정뱅이들이 얇은 가죽을 덮고 잠을 자기도 하는 한적한 공터.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만든 일종의 경기장 안으로 이번 대회에 참전하는 두 참가자가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5년 전의 내전이 생각나네. 그때도 너희 드레이코 가문 놈들을 쳐부숴줬는데 말이지. 미르나 드레이코. 그때 너도 혼쭐이 나서 도망가지 않았나?”
“도망쳤던 건 당신 쪽 아니었나요? 리오네스 영애. 아무리 굴욕적이었던 경험이라도 그것을 왜곡시켜버리다니. 머리가 매우 나쁜 모양이군요?”
“뭐래.”
적당히 대꾸한 엘가가 공중을 향해 짝 박수를 쳤다.
그러자 그녀의 양 손바닥 사이로 거대한 쇠기둥 같은 것이 연성되듯 만들어지기 시작해 이내 거대한 도끼 할버드의 모습을 취했다.
즈우우우우웅-.
“선조들의 무기에 모처럼 드레이코 놈들의 피를 적실 수 있겠네. 항복해도 안 봐줄 거야. 내 다리 사이로 기어가기 전까지는.”
붕, 붕-.
엘가는 할버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묵직한 쇳덩이를 젓가락처럼 다루는 모습에 이를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크게 놀라 몇 걸음 뒤로 물러난다.
━저거 성물 같지? 용사인가 봐.
━드레이코. 리오네스 얘기하는 거 보면 앙그마르에서 온 사람들 같은데. 그 대가문의 딸들인가?
이제야 슬슬 사람들도 지금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파악하려는 모양이었다.
싸움은 말릴 수가 없나.
나는 어쩐지 초조해졌다.
이대로 둘이 멋대로 싸우다 둘 다 크게 다치거나 하다못해 한 명을 쓰러트려 숨통을 끊어놓으면, 나 태오 앙그마르에게 있어서는 정적을 손쉽게 없앨 호재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냥 왜인지 초조해진 것이다.
엘가가 다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계속 스멀스멀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애써 그런 감정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때 엘가가 턱짓했다.
“야, 태오. 네가 심판을 봐. 결투 중재한 경험은 많을 거 아냐?”
“아, 그럼, 저 태오 가스펠이 이 결투의 참관인 및 중재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결투의 룰은….”
“그런 시시한 것들 치우고. 시합 종이나 울려.”
엘가는 벌써 싸울 마음이 가득한 듯했다. 아까 전만 해도 침대 위에서 귀여운 소리를 내며 아르릉거렸는데, 지금의 엘가는 아까 전의 엘가와 영 다른 사람이었다.
이쯤 되니 아까 전의 일은 나 혼자만의 상상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그럼, 시-.”
나는 손 하나를 높이 들어올렸다.
“작-.”
그리고 그것이 아래로 내려짐과 동시에 엘가가 공터의 바닥을 박차고 미르나에게로 뛰어든다.
거대한 도끼를 쥔 사람답지 않게 매우 빠른 속도였다. 거의 10m 정도 되었던 둘 사이의 거리가 매우 단기간에 줄어들 정도로 말이다.
“잘가라, 멍청아-!”
엘가는 왼쪽 아래서부터 오른쪽 위로 할버드를 크게 치켜 올렸다.
수많은 역전 속에서 피를 빨아들인 성물 ‘분쇄자’가 우우우웅-하고 불길한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가른다
저것에 맞는다면 작은 체구의 미르나 드레이코는 반토막이 아니라 산산조각이 나리라.
누구도 그걸 의심하지 않는 순간에 검은 로브를 걸친 거대한 덩치가 나타나 도끼를 몸으로 받아냈다.
콰아아앙-. 날카로운 금속성이 나는 걸 보니 갑옷에 막힌 것이지 싶다.
“막아?”
━…….
엘가는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에 화가 난 듯했지만. 그대로 으득-이를 갈며 팽팽히 몸에 힘을 주었다.
“막으면 뭐 될 줄 알았냐!”
우지직, 촤아아-.
그러자 공격을 막았던 검은 로브의 몸이 그대로 반토막이 나 바닥을 뒹군다.
쿵, 쿵.
━모, 몸이 반 토막 났잖아!
━죽은 건가? 죽은 거겠지?
상체와 하체가 바닥을 뒹구는 모습에 뭇 사람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몇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엘가와 미르나의 얼굴은 여유가 감돌았는데.
미르나에게는 아직 3명의 검은 로브가 더 있었고 엘가에게는 불굴의 육신과 거대한 도끼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절그럭. 저벅.
곧 엘가의 앞으로 두 거한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창과 검이 잡혀 있다.
“하나 하나는 별 것도 아닌 놈들이, 귀찮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 엘가는 그들의 뒤에서 검은 부채를 촤락 펼친 채 여유 부리고 있는 미르나를 향해 분한 듯 소리쳤다.
“겁쟁이처럼 졸개들만 앞세우기는! 네가 직접 맞서 싸워!”
“싫어요. 자, 가서 저 계집애를 붙잡아 구두를 벗겨오세요.”
미르나의 명령에 엘가에게로 덤벼드는 두 검은 그림자.
물론 엘가는 그들이 자신의 사정거리로 들어왔을 때 커다란 할버드를 재빠르게 휘둘렀다.
후웅, 후웅.
촤악, 촤아아-.
엘가의 도끼가 좌우에서 덤벼드는 검은 괴한들의 머리통을 각각 베어 쓰러트린다.
털썩. 털썩.
그들의 몸이 허물어지고 이제 남은 것은 자세조차 잡지 않고 있는 미르나와 그 뒤에서 무게를 잡고 있는 마지막 괴한 뿐.
“저승에 가면 내 선조들에게 사죄해라, 재수없는 년아!”
후우아아앙.
매우 삽시간에 전열을 돌파한 엘가가 도끼를 높이 치켜 올렸을 때였다.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소리쳐버렸다.
“마지막 놈은 보통 녀석이 아닙니다! 조심해야 해요!”
“뭐?”
“─이미 늦었답니다.”
이미 엘가의 도끼는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을 멈추려면 상당한 근력과 순발력이 있어야 할 터.
물론 엘가에게는 그런 근력과 순발력이 충분히 있었다.
있었다만.
“흐읏-!”
엘가는 허리춤 어딘가에 바늘이 찔린 사람처럼 움찔 몸을 떨었다.
“크으, 허리가…!”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지 못한 엘가가 아주 찰나의 틈을 만들었을 때.
미르나 드레이코의 뒤에 서 있던 흑색 로브의 괴한이 엘가의 목을 움켜잡았다.
꽈악.
“그윽-!!”
“움직임이 둔해졌네요, 리오네스 영애. 타란테라의 달콤한 엉덩이를 핥느라 몸이 비대해진 모양이죠? 칠칠치 못한 가슴 부근이 특히.”
“그으으, 이, 새끼가-!”
물론 잠깐 어긋났다고 해도 엘가 역시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난전을 살아온 역전의 맹자.
엘가는 매우 유연한 동작으로 다리를 들어 올려 검은 로브의 머리를 후려 갈겼다.
파아앙-!
그것으로 구속에서 빠져나와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젠장-. 아주 박살낼 각오로 찼는데. 생각보다 멀쩡하잖아? 재밌네.”
목을 매만지며 전열을 가다듬는 엘가. 그런 엘가의 푸른 눈동자에 상대가 비춰 보인다.
스륵.
엘가의 발차기 덕분인지 검은 로브가 벗겨졌다. 동시에 사람들이 크게 숨을 집어 삼키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뼈잖아…?
━시체…?
그렇다.
그들은 검은 천에 가려져 있었던 스산함의 정체를 깨닫고야 만 것이다. 미르나 드레이코의 용아병들은 모두 언데드였다.
살아있는 시체.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기백을 뿜어내는 것은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있었던 푸른 안광의 언데드다.
━Bun’ yeuk’s An’ ha. Ket’v Jee.
푸른 안광의 망자가 앙상한 입을 벌리고 주문을 읊자 방금 엘가에게 베어 쓰러졌던 시체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의 몸을 끼워 맞췄다.
으득. 으득. 우지직. 우적.
━언데드가. 언데드를 부린다고?
━엘드 리치 아냐…? 고위 마법사나 강령술사가 언데드가 된다는….
그 모습에 엘가는 퉤-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시발. 역겨운 드레이코 놈들. 이제 알겠다. 그거 네 아버지지? 미르나 드레이코. 자기 아버지를 언데드로 사역하는 싸이코 년아.”
“…….”
미르나 드레이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서늘했던 표정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매섭게 인상을 찌푸렸을 뿐.
아이라도 그렇고 미르나도 그렇고. 미녀들의 화난 표정은 정말 갭이 커서 간담이 서늘해진다.
다만 엘가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계속해서 소리친다.
“알레이스터 드레이코-. 그 악몽 같았던 강령술사가 자신의 반푼이 같은 딸에게 사역당하는 리치가 되었을 줄이야. 코미디네.”
“닥치세요…!”
“가문에 헌신했던 아버지를 죽어서도 쉬지 못하게 한다고? 이거 완전 부모 등골 빨아먹는 불효녀 아냐? 나 같은 효녀는 상상도 못할 일이야.”
“닥치라고 했죠…!”
엘가는 다소 과격한 도발을 계속해서 감행했다.
구태여 시간을 끄는 이유는 엘가 자신의 몸 상태가 지금 정상이 아닌 것을 알아, 그것을 회복하기 위함이지 않을까 생각 된다.
주르륵.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엘가의 종아리를 타고 하얀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그리고 엘가가 낯선 하복부의 이물감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도.
나 때문인가?
내가 질내사정을 해서?
설마 그것 때문에 엘가가 자칫 미르나에게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왜인지 굉장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이 싸움은 말려야 한다.
결투 도중에 제 3자가 끼어드는 것은 굉장한 무례라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 결투의 공인 중재자가 아닌가?
스윽.
그리하여 나는 거리를 벌리고 있는 그들 사이로 다가갔다.
“중재인의 자격으로, 일단 이 결투의 중지를 요청합니다. 이 이상 상황이 커졌다간 외국에 폐를 끼치게 될 것이고. 앙그마르와 여왕폐하의 이름에도 먹칠을 하게 될 테니까요.”
외국에 민폐. 앙그마르 국가 위상과 여왕폐하.
이런 키워드로 이 둘을 막을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았다. 그렇지만 나의 혼신의 연기력과 조교 숙련도에 걸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야, 태오 가스펠. 너 지금 결투에 끼어 든 거냐?”
아니나 다를까 엘가가 모욕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나를 향해 살기를 쏘아냈다. 볼이 따끔따끔 하니 아프다.
미르나 드레이코 역시 매우 화가 난 것처럼 검은 부채를 촥-접는다.
“감히 대가문의 일에 끼어들다니. 매우 모욕적이군요, 태오 가스펠. 모욕적이고 굴욕적이기까지 합니다.”
어쩌라고.
나는 지금 너희 목숨을 살려주는 거야. 여기서 싸우면 둘 중 하나는 진짜 죽는다니까.
물론 그런 하소연은 할 수가 없다.
그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백발을 늘어트린 푸른 안광의 리치 알레이스터 드레이코였다.
━……….
그 공허한 푸른 안광이 나의 영혼을 읽어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동자도 없는 데 말이다.
심지어 그 푸른 불빛에는 일종의 지성이나 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능한 일인가? 내가 알기로 강령술사의 언데드는 그냥 꼭두각시라고 들었는데.
덕분에 살짝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를 잠시.
스륵.
푸른 안광의 해골이 이내 몸을 돌렸다.
━Bul’ue yakk.
“…어, 어딜 가는 거죠?”
그러한 움직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미르나 드레이코가 몹시도 당황했다.
“가지 말아요! 돌아와! 결투 중지가 아니에요! 아직 끝난 게 아니란 말이에요! 제 명령에 따라요! 어서!”
미르나가 아버지의 유해를 붙잡아 당겨봤으나 푸른 안광의 리치는 이미 전의를 잃은 것처럼 뒤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뿐.
갈라지는 인파들 사이로 망자들이 걸어 나아간다.
“뭐야, 도망치는 거냐? 겁쟁이 새끼들! 도망치냐?”
엘가는 그런 녀석들의 뒤를 향해 도발을 더 해봤으나 망자들은 엘가의 도발에도, 미르나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떠버렸다.
결국 자리에는 미르나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미르나는 찬물 세례를 맞은 고양이처럼 부들부들 떨더니 엘가를 부채 끝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하겠어요! 그렇지만 이 도시에 온 이상 편하게 잠잘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랍니다, 리오네스 영애.”
그리고는 그 부채끝을 내게도 향한다.
“그리고 당신…! 태오 가스펠. 오늘 있었던 굴욕은 절대 잊지 않겠어요.”
그것으로 미르나 드레이코는 자신 역시 망자들이 걸어갔던 뒤를 따라 우리들의 시야에서 아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후-.
나는 그때서야 터질 것 같은 가슴을 겨우 쓸어내릴 수 있었다. 미르나 드레이코. 악역영애의 표본 같은 여자애였구만.
십리안으로 한 번 살펴볼 걸 그랬네. 정신이 없어서 못했다.
“야, 태오. 너 왜 쓸데없는 짓을 해?”
그때 엘가가 나의 머리통에 꿀밤을 후려 갈겼다.
쿵.
눈앞이 번쩍 거리고 내 입에서는 단연 비명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히에엑…!”
「매우 님프적인 비명입니닷…!
‘반요정’의 직업 경험치를 획득하는 것입니닷…! + 50」
「계속되는 님프 친화적 행동들로 보상이 주어집니닷…!
직업 : 반요정의 레벨이 상승합니닷…!
반요정 Lv. 4 → Lv. 5
이제 좀 더 님프적이고 님프친화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닷…!」
나는 찔끔 삐져나온 눈물을 닦으며 눈앞의 글자들을 휙휙 지워버렸다.
그때 엘가가 나의 멱살을 잡아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덕분에 숨이 컥 막히고 다리가 버둥버둥 떨린다.
“누가 끼어들라고 그랬어?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엘가는 몹시도 화가 나 보였다.
결투에 제 3자가 끼어드는 것은 야동을 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보다 더 끔찍한 존재니까 이해는 된다.
“그리고 아까 뭐야. 누가 나한테 위험하다고 알려달라고 했어? 엉? 내가 네 도움이 없으면 미르나 드레이코에게 지기라도 할 줄 알았냐?”
“그렇지만, 엘가님이 조금이라도 다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완전 어이없어.”
엘가는 그때서야 나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말은 자신 있게 했지만 엘가 자신도 그대로 싸웠으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확신할 수 없었으리라.
자신의 몸 상태는 엘가 자신이 제일 잘 알 것이고.
그리고 미르나 드레이코가 사역하고 있는 리치는 전 드레이코 가문의 가주. 평범한 망자가 아니니까.
“흥.”
엘가는 어딘가에서 꺼냈는지 모를 마력초 시가를 입에 물었다. 그러다 나와 살짝 눈을 마주치더니 담배를 가슴 사이에 집어넣고 말머리를 돌린다.
“밉살맞은 드레이코 놈들. 여기에 있다고는 듣지 못했는데 말이야. 보니까 교복 입고 있는 것 같던데. 아크의 학생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드레이코 가문은 교단과 친하니까요.”
언데드를 다룬다 하면 신앙과 멀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의외로 드레이코 가문은 독실한 광염교의 신자들이다.
망자와 마물, 마법의 존재야말로 신의 존재와 이적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라나. 그런 설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엘가가 말했다.
“내가 아크에 입학하면 아까 걔랑 매일 얼굴 마주쳐야 한다는 소리 아냐?”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강의는 자율 선택이기 때문에 겹치지만 않으면 같은 학년이라도 만날 일이 없을 거에요. 아무튼,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나는 엘가를 살펴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문제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무언가가 계속 나의 신경을 쓰이게 만드는 상황.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엘가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엘가는 몹시도 얼굴을 붉히며 “잠깐 자리 좀 비웠다 돌아온다.”라고 말하며 어디론가 휙 사라져버렸다.
나는 금발의 영애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정말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타란테라에 리오네스 그리고 드레이코 가문인가.
내게 가장 위험한 가문의 중요 인물들이 셋이나 이 도시에 있다니.
이런 일이 될 것이라고는 나도 예상치 못했는데.
어쩐지 조금 위가 쓰라렸다.
이건 일종의 위기다.
그렇지만 잘만 하면 내 원수들을 일망타진 하고 가문 부흥을 일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볼 수도 있지 않나?
나의 하반신으로부터 굳센 의지가 벌떡이기 시작했다.
당장은 앙그마르가 아닌 태오 가스펠로서 숨을 죽이고 있겠지만 밉살맞은 계집애들을 반드시 내 뜻대로 길들이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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