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98)
EP.399)앙그마르 컴퍼니 # 4
399 – 블랙 앙그마르 컴퍼니 # 4
이곳은 왕성에 위치한 응접실 중 하나.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이렇게 됐다는 겁니다.”
내 설명에 엘가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뭐라고?”
내 설명이 너무 간단했나? 하는 수 없이 엘가를 위해 내가 겪은 이야기들을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해주었다.
“잠깐 왕도를 벗어나야겠어요.”
“아니, 그건 알겠는데. 왕도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도시를 떠나려고 하냐 이거지. 왜 이렇게 사람이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를 못해? 몸도 아직 온전치 못하면서.”
엘가의 말대로였다.
시간이 꽤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이라와 비무제에서 다투었던 여파는 아직 내 몸에 독소처럼 남아 있었다.
꾸우욱.
허공에 주먹을 쥐어본다. 그것으로 내 몸에 마력을 전체적으로 돌려 몸 상태를 스스로 진단해보았을 때….
“…….”
그래도 80퍼센트 정도는 회복 된 것 같네.
“가끔 편두통이 오거나, 근육이 당기거나 하는 정도밖에 안 돼요. 칼리라 영애로부터 약을 받았으니까 앞으로 괜찮아지겠죠.”
“흐응….”
탐탁지 않다는 것처럼 턱을 괴는 엘가. 그 옆으로 찻잔을 홀짝이며 대화를 듣고 있었던 미르나가 한 마디 입을 연다.
“그냥 심통이 난 거에요. 내일, 태오 경과 드레스를 맞춰보러 갈 거라고 했었거든요. 그 일정이 틀어진다 생각하니까 맘에 들지 않는 거죠.”
스스슷.
미르나의 이야기에 발끈한 건지 엘가가 머리칼을 곤두세웠다.
“내가 정말 그것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
“아닌가요?”
“끄응…. 그러는 미르나 너도 내일 모레에 함께 결혼 초상화 그릴 거라 했었잖아. 그 일정도 뒤로 미뤄야 한다? 먹물의 님프들은 바빠서 다시 일정잡기 어려울 텐데.”
“그건 어쩔 수 없죠.”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이는 미르나를 보며 생각했다. 먹물의 님프는 또 뭘까. 화가 같은 건가?
이 세상에서도 결혼 전에 드레스를 고르거나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거나 하는 일이 흔한 모양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할 일은 굉장히 많겠지.
그런 와중에 일을 보겠다고 도시 바깥으로 나가는 나를 탐탁지 않게 대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말했다.
“만약 싫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죠. 도시 바깥으로는 꼭 제가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에 엘가가 발끈했다.
“야, 가지 말라는 말은 안했거든? 그렇게 말하면 내가 꼭 남자를 구속하고 못살게 구는 여자 같잖아. 나 속 좁은 여자로 만들지 마, 인마!”
그리고는 내 볼을 잡아 주욱 끌어당긴다.
“히에엑…! 아픕니닷…!”
불쌍한 느낌으로 버둥버둥거리니 비로소 엘가는 내 뺨을 놓아주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슥슥 만지고 있을 때, 후우-가벼운 한숨과 함께 엘가가 말했다.
“갔다 와. 어차피 우리가 하지 말라고 해도 네가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뭐. 요새 교단에서 안 좋은 소문이 있다며? 그거랑 관련 되서 다녀오는 거잖아.”
“그게, 비슷하긴 하죠.”
“대신 문제를 해결할 거면 확실하게 해결해. 괜히 결혼식 때까지 질질 끌어서 사건 키우고 하면 그때는 진짜 잡아 뜯을 거야.”
“…잡아 뜯는다니, 어디를요?”
“전부 다!”
엘가는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나는 엘가가 너그러운 마음을 발휘해서 내 무모한 이야기를 허락해줬다는 걸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새근새근 졸고 있는 아이라나, 손톱을 다듬고 있는 스텔라, 손에 올려놓은 클라우드링 잉잉이에게 물을 주고 있는 나르미를 바라봤다.
다른 여성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엘가가 흥-코웃음을 치며 가슴을 당당하게 내밀었다.
“다른 애들 말은 들어볼 것도 없어. 지금은 다들 내 의견에 따라야 하거든. 내 정실 점수가 가장 높아서, 지금은 내가 하렘의 안주인이니까.”
미르나가 한 마디 끼어든다.
“안주인이라고 해도 임시에요. 다 같이 공평한 시작을 위해, 결혼식 이후부터는 점수를 초기화하기로 했잖아요.”
점수를 초기화 한다니.
그럼 지금까지 점수를 가장 많이 쌓아왔던 엘가가 억울하지 않을까? 그래서 결혼식 때까지 엘가를 임시 안주인으로 임명해준 모양이구나.
나는 약간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말했다.
“제가 없어도 다들 각자 이야기를 잘 나누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내가 없는 곳에서 아내들끼리 친하게 지낸다면 걱정할 게 없다. 다만 내 이야기에 가만히 앉아 있던 여성들 모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이야기가 잘 안 되는 게 있나?
물어보진 말자.
* * *
“아무튼 그렇게 돼서, 한 이틀 정도는 시간이 났어. 그냥 간단하게 어떤 곳인가 보고 오는 데에 이틀이면 충분하겠지.”
내 설명에 마르마르는 몹시도 무안한 느낌으로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어쩐지 몹시 미안해지네.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데 이런 일까지 도와주게 하고. 나는 그냥 발란 교수랑 같이 가도 되는데.”
슥.
마차에 탄 마르마르는 마부석에 앉은 발란을 슬쩍 바라봤다. 발란은 양 손에 채찍을 쥔 채 말들과 씨름하기 바쁘다.
“이, 이 녀석들. 왜 저 발란의 말을 듣지 않는 거죠? 어서 출발하는 겁니다. 이랴, 이랴-!”
역시 발란과 둘이 보내는 건 불안한 것 같아.
아무튼 나와 발란 그리고 임프 마르마르 셋이서 왕도를 빠져나가게 됐다. 발란의 설명에 따르면 마르마르의 수도원까지는 마차로 쉴 새 없이 달려서 한나절 정도 걸린다고 했나.
도착했을 때는 저녁 정도겠네.
그때까지 마차에 앉아 가만히 있는 것은 꽤 심심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짐들을 다 챙겨왔나 인벤토리 《다람쥐 저장고》안을 잘 살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비상식량부터 야영에 필요한 물건들까지 다 있다. 그때 무언가를 뜨개질 하고 있던 마르마르가 입을 열었다.
“다른 영애들은 결혼 준비 때문에 왕성에 있기로 한 거지?”
“아, 뭐, 그렇다더라. 결혼 전에는 정결예식을 해야 해서 하던 일을 멈추고 푹 쉬는 게 보통이래. 그런 게 없었다면 같이 왔을 수도 있겠지.”
말 해놓고도 좀 우습긴 했다.
마르마르의 옛 수도원을 찾아가는 일에 영애들을 주렁주렁 달고 가는 것은 너무 극성맞은 일 같았으니까.
그렇게 마차가 끝도 없이 달려서 어느덧 뉘엿뉘엿 노을 지는 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숲길 앞에서 멈춰 섰다.
“발란 교수, 문제 있습니까?”
“태오 님, 여기….”
마차에서 내려 전방에 꽂힌 표지판 같은 것을 바라본다.
「이곳은 바론 볼테르의 개인 사냥터입니다. 불시에 화살이 날아들 수 있으니 조심해주세요.」라고 깔끔한 필체로 적혀 있다.
내가 물었다.
“바론 볼테르라면…, 이 근방을 다스리는 남작 맞지?”
그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마르마르.
“원래 숲 사이에 수도원이 있었는데. 볼테르 남작이 그곳에 사냥터를 만든다고 숲을 몽땅 사들여서, 수도원이 철거된 거야. 그게 지금부터 한 10년 정도….”
사냥터인가.
이곳을 마차로 달리는 건 어리석은 일일 것 같다. 괜히 말을 향해 화살이 날아오면 안에 타고 있던 우리가 크게 다칠지도 모르니까.
내가 물었다.
“그 남작 볼테르란 사람은 어디 살아? 여기가 사냥터면, 집도 이 근처에 있나?”
내 머릿속에는 하얀 승마바지에 코트를 걸치고 중절모를 쓴 남자가 그려졌다.
외안경에 뾰족한 콧수염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겠지.
내가 만난 남작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겼으니까. 이 어딘가 그런 신사가 살 저택이 있을까 싶어서 고개를 두리번거릴 때 우리 앞쪽 풀숲이 파스슥 거렸다.
혹시 사슴이라도 튀어나오는 건가?
살짝 경계하고 있으려니 풀숲에서 활과 화살통을 멘 사내가 나타났다. 나이는 이제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쯤 됐을까.
“뉘시오?”
그의 물음에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나를 못 알아보나? 여왕의 비무제까지 끝난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반요정이라 할 수 있는 나를 모른다니.
“그게, 저는….”
내가 무어라 설명하려 할 때였다.
“파루 아저씨, 혹시 파루 아저씨 맞습니까…?”
마르마르가 무척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소리쳤다. 그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의 얼굴이 흐릿해지다가….
“너 혹시 마르마르니?”
“파루 아저씨! 저 마르마르입니닷…!”
“세상에, 마르마르. 살아있었구나!”
서로 아는 사이인가. 덕분에 내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던 경계심은 크게 가라앉았다. 마르마르가 저렇게 기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여기는, 수도원에서 이것저것 일 해주던 급사 파루 아저씨야.”
“지금은 이 사냥터 숲에서 숲지기를 하고 있어. 마르마르, 우리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 이렇게 보니 몹시 반갑구나. 꽤, 많이 컸나?”
숲지기 파루는 마르마르를 보며 몹시도 반가워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돌아온 걸 목도한 것처럼 말이다. 마르마르도 꽤 유명한 임프인데. 이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숲지기 파루가 말했다.
“다들 반가워 할 거야. 특히 나르나르가….”
무어라 말하려다가 급히 입을 다무는 파루. 그 급격한 안색의 변화에 내가 잠깐 주목하고 있을 때 마르마르가 기쁘게 소리쳤다.
“나르나르도 있는 것입니까? 우리들의 으뜸 임프, 나르나르…!”
“어, 응, 그래. 나르나르 님도 계시지. 지금은 수도원의 원장님이셔. 아무튼, 그래, 다들 반가워 할 거야. 이 숲은 해가 저무니까 일단 가자. 마차는 여기 두고 가시오.”
우리는 말들을 숲 입구 쪽 나무에 잘 묶어둔 후에 파루를 따라 숲으로 들어섰다. 해가 금방 저무는 계절이 왔기 때문인지 숲 특유의 날씨 덕분인지 세상은 금방 어둑어둑해진다.
━호우우우우.
━메우우우우.
괴상한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오싹함을 느끼고 있을 때, 발란 교수가 내 옆구리를 슬쩍 붙잡아왔다.
“태오 님, 아무래도 태오 님을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제가 봐도 그런 것 같네요. 수도원에 사는 사람들은 바깥과 단절 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하물며 이런 깊은 숲에 위치한 수도원이니까.
* * *
수도원은 숲으로부터 한참 더 들어가야 할 정도로 깊은 곳에 있었다.
매우 험하고 험준한 길들이 잔뜩 있어서 말을 입구에 묶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한참 힘들게 걷고 있으려니 울타리가 보였다.
“아앗…!”
마르마르의 걸음이 점점 더 빨라진다.
이윽고 마르마르는 우리를 안내해주는 숲지기 파루를 지나쳐 달렸기에 우리는 혹 마르마르를 놓칠 새라 그 뒤를 분주히 따라가야 했다.
“마르마르, 같이 가!”
“동지! 저거 봐! 수도원이다! 정말 수도원이 있어! 내가 옛날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야!”
마르마르는 두 팔을 들고 높이 소리쳤다. 그런 녀석의 작은 어깨 너머로 건물 한 채가 보인다.
건물은 3층 높이의 크기로 넓은 정원이 있고 근처에 밭이나 과수원, 우물을 두고 있어서 자급자족하는 형태였다.
낮에 보면 더욱 자세히 둘러볼 수 있겠지. 당장 보이는 것은 횃불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불타오르고 있는 모닥불 정도.
곧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를 향해 몰려든다.
“파루, 그쪽은?”
“여기는, 그, 마르마르라고…. 예전에 수도원에서 함께 살던 자매이올시다.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밤이 늦었고 하니까…, 그대로 내버려두기는 좀 그래서….”
파루는 몹시 진땀을 뺐다. 거친 숲길을 왔기 때문에 호흡을 들썩이는가 싶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이 보인다.
━하필 지금 시기에 외부인이…. 내일은 남작님이 오시는….
━임프는 둘째 치고 저 나머지 둘은 누구지…?
사람들이 숙덕거린다. 나와 발란 교수를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예민한 요정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폐쇄적인 환경 특성상 외부인에게 경계심을 갖는 걸까.
그때였다.
“다들 무엇하고 있는 건가요? 어서 각자 자리로 돌아가세요.”
━워, 원장님.
━죄송합니다….
누군가 사람들의 무리를 가르며 우리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검은 빛의 머리 수건을 머리에 쓰고 있는 사람으로 얼굴에는 딱딱해 보이는 나무가면까지 쓰고 있었다.
나이는 모르겠지만 키는 꽤 크다. 팔다리가 늘씬한 것이 아이라와 비슷할 정도. 하지만 허리춤에서 살랑거리고 있는 밤송이 모양 꼬리는 영락없는 임프의 그것이다.
임프…?
아니, 임프 치고는 너무 키가 큰 것 아닌가? 내가 직접 보고듣기로 임프들은 대략 초등학생에서 다 자라봐야 중학생 정도의 발육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달라붙는 재질의 수녀복 아래로 보이는 볼륨은 적어도 스물 중반 이상. 단순 풍만하기라면 발란 교수에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내 옆에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발란이 “호오….”라고 작게 감탄했다.
그것도 잠시.
“나르나르, 혹시 너 나르나르야? 밤송이 꼬리 나르나르! 맞지!”
임프 마르마르가 가면을 쓴 검은 수녀를 향해 아는 척을 했다. 꼬리와 손을 흔드는 모습이 꼭 오랜만에 사람을 본 강아지처럼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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