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99)
EP.400)앙그마르 컴퍼니 # 5
400 – 블랙 앙그마르 컴퍼니 # 5
사실 나는 임프들의 존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었다.
대체 임프들의 이름은 누가, 어떠한 규칙을 통해 붙여주는 걸까?
마르마르와 나르나르. 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이름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으리라는 건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나르나르 맞지! 밤송이 꼬리 나르나르! 꼬리가 밤송이처럼 뾰족뾰족하잖아! 겉모습은 많이 달라져서 깜짝 놀랐지만…, 이 꼬리는 틀림없이 나르나르야!”
마르마르는 이 수도원의 원장님이라 불린 여성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마르마르의 반가움과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원장의 엉덩이 쪽에서 돋아나 있는 꼬리다.
성게 혹은 밤송이처럼 가시가 뾰족하게 돋아난 꼬리 끝이 제법 인상 깊었다. 내가 보아왔던 임프들의 꼬리는 대체로 특색 있지만 저렇게 뾰족한 꼬리는 또 처음이네.
“나르나르처럼, 뾰족뾰족한 꼬리야!”
마르마르는 꼬리모양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걸까?
그러고 보면 별 꼬리의 모르모르도 그런 말을 했었다. 멀리 떠나간 주인이 별 모양 꼬리를 보며 자신을 알아봐줄 것이라고 했었지.
어쩌면 임프들에게 있어서 꼬리라는 것은 정체성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화분에 심으면 임프가 자라날 정도니까….
문득 내 손목에 감긴 마르마르의 하트꼬리 완드가 생각났다. 지금 이걸 화분에 심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마르마르가 또 한명 생겨나는 걸까?
스르륵.
그때 밤송이 꼬리가 위로 들어 올려졌다.
그것이 그대로 마르마르의 머리를 꿀밤처럼 내려친다.
빡!
갑작스럽게 꿀밤을 얻어맞은 마르마르는 “히에엑…!”하고 불쌍한 비명을 내질렀다. 마르마르가 공격을 당한다니. 이 상황에 내가 당황했을 때 수도원 원장이 말했다.
“수도원에서는 조용히 하세요.”
“흐으으….”
마르마르는 머리를 감싸 쥐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다만 그런 마르마르를 신경 쓰지도 않고 수도원 원장은 차갑고 냉철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저를 부를 때는 이름이 아닌 원장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워, 원장님….”
“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오시죠.”
휙.
원장은 고개를 돌려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우리와 원장의 눈치를 보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그녀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자취를 감춘다.
자리에 남은 나는 머리를 슥슥 매만지고 있는 마르마르에게 물었다.
“괜찮아?”
“으, 응. 소리는 크게 났지만, 사실 별로 아프진 않았어. 그냥 소리가 커서 깜짝 놀랐을 뿐. 해가 저문 수도원에서는 조용히 해야지. 그 규칙도 그대로인 모양이구나….”
머리를 맞았던 사실은 훌훌 털어낸 건지 마르마르가 작지만 씩씩하게 말했다.
“나르나르가 원장님이 됐다니. 정말 깜짝 놀랐어. 물론 나르나르는 우리들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어른스러워서 으뜸 임프라고 불릴 정도였긴 했지만…!”
“그런 것 치고는, 마르마르, 너한테 엄청 딱딱하게 굴던데.”
“나르나르는 원래 그랬어.”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임프라는 걸까?
임프 치고는 덩치도 키도 컸다.
마르마르와 나르나르가 같은 소악마 종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어째서 신체 발육의 차이가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그런 걸 물어볼 때는 아닌 것 같아 그냥 입 안으로 삼켰다.
마르마르가 말한다.
“그럼 우리도 안으로 들어가자! 만약, 내가 기억하는 곳이랑 위치가 똑같으면 내가 이곳저곳 소개해줄 수 있을 거야!”
씩씩하게 건물 안으로 향하는 마르마르.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향해 말했다.
“아 참, 저녁 시간에는 대부분 묵언수행을 하니까 시끄럽게 굴거나 떠들면 안 돼. 그럼 원장님이나 다른 수녀님들이 크게 혼냈었거든.”
“그렇구나.”
그래서 마르마르가 꼬리로 얻어맞았던 건가.
수도원이란 본디 수양을 위한 곳. 저녁 이후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라는 규칙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 * *
수도원의 어느 방 하나에는 긴 식탁이 있었다.
식탁 위에는 촛불이 몇 개 놓여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어둡고 캄캄해서 눈이 나빠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보육원 겸 수도원을 병행하는 곳 특성상 근검하고 절약적인 생활이 다들 몸에 익숙한 듯했다.
이제 보니 촛불에 비춰지는 그들의 옷은 대부분 기워지고 덧대어져서 오랜 시간을 입어온 것처럼 보였다. 테이블도 그 위에 올려 진 식기도 모두 낡았다.
가장 좋은 자리에 앉은 수도원의 원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까 전에는 바깥이었고 정신이 없어서 알아볼 수 없었지만, 원장의 수녀복은 잔뜩 기워졌음에도 헤진 곳이 많았다.
옷이 묘하게 착 달라붙는 느낌으로 제작된 것은 옷감을 아끼기 위해 사이즈를 줄였기 때문일까? 곧 원장이 짝짝-박수를 친 후에 말한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신 아버지와, 수도원을 위해 지원을 해주시는 후원자님들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슥.
다들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이제 갓 다섯 살, 많게는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잔뜩 있었는데. 그들 모두 산만하게 굴지 않고 기도의 자세를 취하는 게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 어린 시절 생각나네.
마침내 원장이 말한다.
“자, 그럼 식사를 시작하죠.”
곧 어디선가 나타난 수녀들이 바구니에 담긴 빵들을 사람들 앞에 하나 둘, 놓기 시작했다.
빵이라고 해 봐야 평소 내가 먹는 부드러운 것들이 아니라, 딱딱하고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빵이었다. 이런 걸 매일 먹다간 이나 입천장이 아파오겠어.
슥.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빵을 이리저리 만지는 발란 교수.
“이스트 없이 만들어지는 빵이라…. 이곳의 문명은 대략 3세기는 더 과거로 도, 돌아간 기분이네요. 그 흔한 마력 발광석도 없고 온통 구식에….”
발란의 말은 충분히 일리 있었다.
21세기의 문명이라는 것을 맛보았던 내게 앙그마르 왕성에서 생활은 ‘중세’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졌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면 중세의 것들이 아닌 것도 많았다.
이를 테면 발란의 말처럼 여기저기 화려하게 빛나는 발광석등이나, 발달한 사교회.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먹는 디너. 쾌적한 욕실과 이런저런 처리시설, 상하수도 등.
그렇지만 이곳은 암흑시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연히 느껴졌다.
“침실과 욕실 등의 수준도 보나마나….”
“쉿.”
나는 무어라 중얼거리는 발란 교수를 향해 주의를 주었다.
애초에 이곳은 가난한 자들과 부모 잃은 아이들을 위한 보육원을 겸하고 있다. 그런 곳의 시설을 평가하는 건 조금 무례한 것 같았다.
이렇게 낙후된 시설에서는 음식이라는 것도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는 거야. 그저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겠지.
우물우물.
실제로 아이들은 자신 앞에 놓인 빵을 무척 맛있는 음식처럼 먹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맞은 편 옆 자리에 앉은 마르마르도 딱딱한 빵을 이리저리 씹고 있다.
“이 딱딱한 빵. 오랜만이네. 그때랑 맛이 똑같아. 추억의 맛.”
생각보다 맛이 있는 건가?
나 역시 한 입 먹어볼까 생각했던 때였다. 나는 어딘가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시선에 슬쩍 눈을 움직였다.
“…….”
“…….”
그러자 내 앞 자리에 앉은, 이제 갓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금발의 소년이 내 빵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인다. 이미 자신 몫은 다 먹은 건가?
한참 자라나고 있을 때의 소년이니까 빵 하나로는 배가 안차겠지. 어차피 나는 점심을 잔뜩 먹고 와서 별로 생각이 없었던 바.
“네가 먹으렴.”
아이를 위해 빵 하나를 주었을 때였다. 살짝 들어 올린 가면 아래로 나름 경건한 태도로 식사를 하고 있던 원장이 말했다.
“몰리, 네 몫의 빵은 이미 먹었잖니. 그러고도 손님 몫을 또 먹으려고 한다니. 규칙 위반이란다. 일어나 반성의 방으로 가렴.”
“그, 그렇지만 원장님. 저는 아무런 말도….”
“어서.”
몰리라 불린 소년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녀석에게 빵을 주려고 했던 것 때문에 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
괜히 엄청 미안해지네.
* * *
식사가 끝난 이후 우리는 원장실로 초대를 받았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온 손님들을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었던 것이겠지.
원장의 깐깐한 모습을 몇 차례 보았기 때문인지 괜히 긴장하게 된다. 그렇게 들어선 원장실은 가구도 책상과 침대 하나가 끝으로 무척 살풍경이었다. 꼭 감옥 같네.
의자에 앉는 우리에게 원장이 말했다.
“대접해 드릴 것이 마땅치 않아 죄송합니다. 올해는 장벽 너머로의 원정이 있어서, 후원이 작년에 비해 줄어들었거든요.”
아이라의 원정이 만들어낸 여파 같은 걸까? 꼭 나를 향해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서 가슴 한 쪽이 개미가 문 것처럼 따끔거렸다.
━히오옹…!
바엘, 네가 깨물은 거구나.
아무튼.
원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마르마르, 설마 너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이렇게 만나니까 정말 반갑다. 네가 어딘가에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슥.
자신의 얼굴에 덮어져 있던 가면과 머릿수건을 벗는다. 그렇게 나타난 얼굴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청초한 인상이었다.
화장기 없음에도 반짝거리는 주홍빛 눈. 그리고 세련된 도시 여성처럼 잘린 숏컷은 제법 이지적으로 보인다.
와락 손을 들어올리는 마르마르.
“나르나르! 아, 아니, 원장님….”
반가움을 표했다가 금방 태도를 숙이는 마르마르가 우스웠던 건지, 원장은 곧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 전까지의 깐깐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모습이다.
“그만해. 너랑 나의 사이잖아, 마르마르. 아까 전은 사람들이 있어서 딱딱하게 군 것 뿐이야.”
“그, 그래?”
“그래. 그보다, 마르마르. 꽤 변했구나.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 키는 별로 크지 않아서 아직 어린애 같지만. 아직 어린애 같아.”
“그러는 나르나르, 너는 엄청 커졌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랑 비슷했었는데!”
마르마르는 성인 여성처럼 커다랗게 자란 임프 나르나르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나르나르는 “글쎄….”라고 얼버무릴 뿐.
잠깐 정적이 감돌았던 것도 잠시, 마르마르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금방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것들을 조잘조잘 떠드는 거다.
“나르나르는 우리들의 대장이었어! 항상 자기가 힘들고 궂은일을 다 했고. 덩치도 몇 배나 더 큰 남자애들도 막 물리치고 했었어! 그래서 나는 나르나르를 닮고 싶었거든!”
나르나르는 마르마르에게 있어서 롤 모델 같은 친구였던 모양이다. 과연, 마르마르의 굳은 의지가 어디서 비롯된 건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물론 당사자는 “과장이 심하구나.”라고 어딘가 부끄러워 할 뿐. 그러다가 이야기를 돌리고 싶었던 건지 “그래서 마르마르, 대체 그 동안 어떻게 살았던 거야?”라고 묻는다.
그에 마르마르의 기구한 이야기가 좔좔 읊어졌다.
“그래서, 막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서, 불태워질 뻔했는데. 여기 있는 동지가 날 구해줬어! 금화를 잔뜩 내서 말이지! 태오 동지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흐응, 그랬구나. 역시 뿔뿔이 흩어졌던 뒤로 다 힘든 구석이 있긴 했나보네. 나도 뭐, 비슷한 일을 겪긴 했지. 내 경우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무는 원장 나르나르. 얼핏 스쳐지나간 그녀의 눈에 비춰지는 감정은 다른 임프들에게서는 느껴본 적 없던 어른만의 것이었다.
후회나, 증오심 같은 것.
그 낯선 빛에 문득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내가 이 수도원에 찾아온 것은 마르마르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로몬의 주술에 대해 연구하고 있을지 모르는 곳을 찾아와 직접 확인하고 조사해보기 위함이었지. 일단 이 장소를 이탈해보기로 할까?
“저기, 이야기 중에 죄송합니다만, 잠깐 일을 좀 보고 오겠습니다.”
가벼운 연기와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도원 원장실을 빠져나온다. 원장실의 문을 뒤로하자 갑갑한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수도원이지만, 커다란 임프가 있다는 것과 유난히 폐쇄적인 환경에서 살짝 경계하고야 만다.
별 일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지만 말이지.
마르마르의 친구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실험 같은 걸 하고 있다면 나로서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얘들아, 빨리 와.
━쉬잇….
그때 내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이야기들이 들렸다.
무척 수상한 그 대화에 나는 기척을 죽이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아까 전에 만났던 숲지기 파루다.
그와 몇몇의 아이들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모습에 나는 그들을 뒤따라 가보기로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