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86)
EP.487)– 세상의 어설픈 이야기들을 위해 # 4
외전 – 세상의 어설픈 이야기들을 위해 # 4
아이들이 잠들고 난 이후에는 완전히 어른들의 시간이다.
저녁에 먹다가 남은 게살을 안주 삼아 하얗고 달콤한 와인들을 마신다.
“조용하니까 좋군요. 골라온 와인도 게살에 딱 어울리고.”
그 우아한 모습들은 아무리 야외에서 야영을 하고 모닥불을 쬐어도 그녀들의 본질이 귀족이고 아가씨이고 귀부인이라는 것에서 변함없다는 걸 나타내는 듯했다.
내가 아무리 폼을 잡아봤자 우스꽝스러운 것과는 천지차이다.
그렇게 시간이 더욱 지나고. 따뜻한 봄바람과 호수 특유의 물내음 그리고 와인의 취기에 얼굴을 하나 둘 붉힐 때였다.
엘가가 말했다.
“그래서, 내년이나 그 다음년 정도에 레오노이를 기숙학원에 보낼까 하는데 말이야. 이제 슬슬 또래 친구도 좀 더 사귀고 해야 하지 않겠어?”
엘가는 레오노이의 향후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평소에도 이런 이야기는 종종 했었지만, 여행을 왔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건지 평소보다 더욱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너희 쌍둥이는 좀 이른 나이부터 아크에서 생활했잖아. 어떤 것 같아? 너무 집에서 감싸고 있는 것보다는 교육시설에 입학시키는 게 좀 낫지 않겠나 싶은데.”
레오노이가 올해로 다섯 살이니까 내년에 아크에 입학한다고 치면 여섯 살이다.
아크에는 재능 있는 아이들과 세계각지의 귀족 그리고 왕족들을 받아 교육하는 유치부도 있으니 레오노이 역시 입학할 수 있겠지. 서류에서 반려되는 일도 없을 거고.
하지만 나는 겨우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을 아이를 먼 타국으로 유학 보낸다는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역시 내 의견을 피력하기로 했다.
“혼자 먼 땅에서 지내면 쓸쓸할 것 같은데요. 엄마 아빠랑 떨어져 지내니 오히려 정서적으로 불안해질 수도 있잖아요.”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지금에서야 추억이지만, 어머니 아버지 없이 지냈던 나날들은 꽤 힘들었다.
그러나 엘가는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애들이면 네 말이 맞을 텐데. 레오노이잖아. 벌써부터 혼자 차원문 마법을 사용한다니까. 타지라고 해봤자 걔한테는 이미 거리가 의미 없어.”
차원문 마법이라니. 다섯 살짜리 꼬마애가 그 좌표값과 마력을 세밀히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긴 하다.
엘가의 말대로 차원문을 마음대로 다루면 이제 지역 간의 거리는 의미가 없긴 했다. 엘가는 그래서 더욱 걱정이라는 것처럼 말했다.
“왜, 마법사들은 실력이 높아질수록 괴팍해지거나 이상해지는 놈들 많잖아. 레오노이도 그러면 어떻게 해? 그러니까 미리 교육시켜 놓으려는 거지.”
그때 스텔라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이미 가족 중에 마법사가 둘이나 있잖아? 그냥 초등교육에 입학하는 여덟 살까지 홈스쿨링 시키는 건 어때? 유치부의 간단한 선행학습이면 내가 해줄 수 있는데.”
스텔라는 오랜 삶을 살아온 장수 종에 아크의 교수진으로 활동했을 정도의 교육자였다. 스텔라가 담당해서 유치부 교육을 시켜주면 걱정 없을 테지.
하지만 엘가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가 둘이나 있지만. 둘 다 훌륭한 스승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잖아. 마법 실력만 중요한 게 아니야. 훌륭한 마법사로 가르치는 게 중요한 거지.”
그건….
그건 맞는 말이었다. 아이라도 나도 뛰어난 마법사지만, 남들을 가르치는 데에서는 별 달리 재능이 없었다. 실전은 가능하지만 이론이 많이 부족하다 해야하나.
그런 면에서는 아크의 숙련된 교수진에게 가르침을 받는 게 좋을 수도 있었다.
“음….”
고민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엘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크에서 교육을 받았던 미르나나 나르미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싶은 듯했다.
미르나와 나르미도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아크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했었으니까. 딱 지금의 레오노이 정도로 어렸을 때였겠지.
나르미가 말했다.
“일단 성향이 중요할 것 같은데. 레오노이라면 어디서든 잘 적응해서 살겠지! 레오노이는 활발하고, 겁도 잘 안 먹잖아.”
그건 맞다. 레오노이는 어디에 내버려두어도 혼자서 잘 논다. 근처 공원에 풀어두면 주변 아이들을 금방 굴복시켜서 어느새 골목대장이 되어있을 정도였다.
그런 레오노이라면 아크에 입학해서도 금방 친구를 사귀고 적응하겠지. 스트레스도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덜 받을 테고.
다만 언니인 미르나 쪽은 고개를 저었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어린아이 때 가족들과 쌓은 추억들은 생각보다 오래가고, 성격이나 자아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니까요.”
미르나의 의견도 무척 옳았다. 그런데 말하는 미르나의 표정은 제법 아쉬움이 묻어나온 다고 해야할지…조금 복잡해보였다. 어린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이려나.
이제 엘가의 시선은 아이라에게로 향했다.
아이라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이라는 잠이 많으니까 늦은 시간이 되어 졸린 것이리라.
“아이라, 네 생각은 어때?”
엘가의 물음에 아이라가 슬쩍 눈을 떴다.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중요하지.”
아이라의 말에 우리모두 살짝 놀라서 숨을 집어삼켰다. 아이라라면 분명 “나는 여왕이야. 내 선택에 따르도록 해.”라고 밀어붙일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아이라가 말했다.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야. 아무리 여왕이라도, 부모라도, 결론은 본인이 내리는 거야. 아이들도 마찬가지. 똑똑한 아이들은 자기 삶의 방향을 고를 권리가 있어. 우리는 옆에서 충고해줄 뿐.”
아무래도 아이라는 아이를 갖고 이런저런 교육서적을 들여다보며 생각의 변화를 일으킨 듯했다. 아이라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정론이었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레오노이의 장래를 레오노이 본인에게 물어본다니.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우리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다섯 살 어린아이를 깔보고 있었던 걸지도.
그러기에 레오노이는 충분히 똑똑한 아이인데 말이야.
그것으로 우리들의 진로 문제는 잠깐 끝을 맺었다.
잠깐의 끝이다.
앞으로 작은 미르나나 스타노이 그리고 아이라의 쌍둥이가 태어나게 되면 또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겠지.
그때가 기다려진다.
한 편으로는 초보 부모인 우리들의 첫째가 털털하고 씩씩한 레오노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레오노이는 강인한 야생화 같아서 콘크리트 위에 씨앗을 내려도 “음, 콘크리트. 매우 좋은 것입니닷…!”하고 알아서 잘 자랐을 테니까.
* * *
드레이코 가문의 본당이 위치한 동부는 산과 계곡 그리고 호수나 강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 굽이굽이 높은 산등성이를 순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영험한 약산의 기운을 받기 위해 오가는 약사들이나 수행자들 그리고 모험가 등등.
우리도 그 중 하나였다.
“잠깐, 쉬었다가는 게 어때요. 흐, 벌써, 이만큼이나 올라왔는데.”
허리에 구름이 걸칠 만큼 높은 산의 중턱에 다다랐을 때였다. 열심히 걷고 있던 미르나가 지쳤는지 근처의 나무를 붙잡고 주르륵 미끄러져 걸터앉았다.
“우우…. 쉬었다 가죠. 조금.”
“나도 지친다아아….”
쌍둥이인 나르미도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아무래도 고상한 쌍둥이들에게 격한 등산은 꽤 고된 일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도 크게 지쳐 있었다. 요새 운동과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다고는 하지만 역시 스텔라나 엘가 그리고 아이라와 같은 초인들은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레오노이나 작은 미르나, 스타노이 같은 아이들이 지치지 않고 펄펄 날아다니는 점이라 해야할까.
“몹시 레오노이 친화적인 산입니닷…! 기운이 펄펄 생기는 것입니닷…! 동생들, 모두 이 언니를 따라오는 겁니닷…!”
━야오옹.
“야옹이도 따라오는 겁니닷…!”
레오노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바위를 뒤져서 곤충을 잡거나 신기한 조약돌을 줍거나 했다. 지치지도 않는 건가. 어린 아이들이 원래 기운이 넘치기는 하지.
아니, 그거랑은 조금 다른 분위기다. 마치 뭐라고 해야 할까.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팔팔하다고 해야 할지. 밀림에 풀려난 사자처럼 의욕이 넘친다.
바람개비 같은 것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스텔라가 말했다.
“측정해보니 자연 에너지의 밀도가 상당히 높네. 요정들이 살기 좋은 곳이야. 실제로 요정들이 많이 살았을 수도 있고. 산의 주인이나, 영물 같은 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어.”
잘은 모르겠지만 님프나 엘프같은 요정들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모양이다. 그래서 딸들의 기운이 펄펄 뛰는 것이고, 나도 비교적 수월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이겠지.
산의 주인이나 영물이 산다고 함은 이곳에도 엄청 커다란 지네나 두루미 혹은 거대한 태양사자 같은 존재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걸까.
“있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네요.”
나는 허리를 쭉 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굽이굽이 몰아치는 산맥이 꼭 거인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장엄했다.
산맥들의 허리를 휘감고 있는 구름이나 저 멀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는 폭포,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깎아지른 계곡과 협곡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조화에 오싹할 정도였다.
그때 먼저 산길을 살펴보기 위해 올라갔던 엘가가 나타났다. 그런 엘가의 손에는 무언가 붙들려 버둥버둥거리고 있다.
━켕, 케엥-!
“이거 봐. 칠리 너구리가 있었어. 이 녀석들, 보기 엄청 어려운 희소종이라는데 말이야. 산세가 험해서 희소종도 잔뜩 살고 있나 봐.”
엘가의 손에 붙들린 칠리 너구리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건지 저항하지 않고 축 늘어졌다. 하지만 엘가는 녀석을 죽이거나 하지 않고 그저 다시 수풀에 풀어주었다.
“그럼 이제 가라.”
파스슥.
그 토실토실한 너구리 엉덩이가 수풀 사이로 허둥지둥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히히덕거리는 엘가였다.
“너구리야, 살려줬으니까 은혜 갚아라.”
“…….”
잡았다 놓아주는 게 은혜는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엘가와 스텔라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 영산의 봉우리 「하늘오름」은 상당히 영험하고 험준하면서 동시에 신비로운 곳이라 했다.
“미르나, 너희 어머니도 여기 계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레이코 가문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곳이네. 산도 많고. 돌도 많고.”
“흐응….”
미르나의 반응은 제법 시큰둥했다. 자신의 조상들의 땅이라 부를 수 있는 산에 와서도 어쩐지 기분이 좋아보이질 않는다.
그런 미르나의 눈은 신비로운 마물 클라우드링 잉잉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잉잉이는 근처를 굼실굼실 날아다니다가 자신의 앞에 내려앉은 분홍색 구름과 마주했다.
━잉잉야잉.
━잉잉야잉.
━잉?!
잉잉이는 자신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분홍색 구름에 깜짝 놀란 것처럼 자신의 솜털 몸을 곤두세웠다. 바로 그때 분홍색 구름은 하늘로 휙 날아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스텔라가 깜짝 놀랐다.
“뭐야, 클라우드링이 한 마리 더 있었나!? 엄청 대단한데! 야생 클라우드링 개체는 처음 봤어! 분홍색 구름! 다들 봤지! 응?”
확실히 놀라운 일이기는 했다. 클라우드링은 엘프 연구소에서도 S클래스로 지정되어 있는 특수한 마물.
그런 녀석이 한 마리 더 있었다니! 심지어 옅은 푸른색을 띄는 잉잉이와 다르게 방금 녀석은 분홍색이었다!
성별이 다른 건가?
아니면 색깔이 다른 희소종?
다만 스텔라의 흥분은 그런 게 종류의 것이 아닌 듯했다.
“클라우드링은 말이야. 용들이 승천할 때 생기는 구름에서 만들어진 생물이라고 해! 그 말은, 클라우드링이 있는 곳에는 진짜 용이 있을 확률이 있는 거지! 잘하면 용을 볼 수도 있겠어. 와이번이나 드레이코 말고, 진짜 용!”
그 말에는 산을 오르며 내내 시큰둥했던 미르나도 화악 인상을 폈다.
“그게 진짜인가요? 지금까지 잉잉이랑 같이 있으면서도 전혀 몰랐어요. 클라우드링이 용의 구름에서 만들어진 마물이었다니….”
“진짜야. 잉잉이가 미르나 양이나 나르미 양을 잘 따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지. 클라우드링은 용과 친할 수밖에 없어.”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놀라운 이야기였다.
우리는 스텔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굽이굽이 휘몰아치는 산맥과 구름을 바라보았다. 이 어딘가에, 전설상에만 내려오는 용이 존재한다니.
기분 탓인지 귀를 기울여보면 용들의 우렁찬 포효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크롸롸롸━━──.”
진짜 들려오네. 물론 용의 포효는 아니고, 나르미가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서 사방에 메아리치고 있는 소리다. 미르나가 물었다.
“나르미, 지금 뭐하는 거야.”
“용들이 우는 소리 흉내내봤지! 용들은 크롸롸롸-운다잖아!”
그 이야기에 스텔라가 정정해준다.
“그건 그냥 지어낸 얘기야. 용들이 어떻게 우는 지는 아무도 몰라. 누구도 살아있는 용을 본 적이 없으니까. 마지막 용은 천 년 전에 발견된 게 끝이고.”
그렇구만.
내가 그런 식으로 납득하고 있을 때였다.
우웅, 우웅.
무언가가 내 허리춤에서 크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가방을 열자 그 안에 들어있는 별빛의 눈물이나 태양 사자의 갈기, 두루미의 깃털이나 황제의 돌 같은 불로장생 영단의 재료들이 빛을 뿜어내며 웅웅 몸을 떠는 것이 보였다.
“오.”
그 모습에 나르미가 말했다.
“내 포효소리에 반응했나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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