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74)
EP.75)싸움 # 1
075 – 호랑이들의 싸움 # 1
“평민. 언제 한 번 다시 저택으로 초대하도록 하죠. 당신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미르나 드레이코는 그 말을 끝으로 후후후-웃으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폭풍처럼 나타났던 그녀가 내 통제와 계산을 벗어나 이것저것 헤집었던 통에 나는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뭐였지.”
내가 발란을 쓰러트렸다고 과장한 것도 모자라서, 자신에게 고백하고 구혼했다는 것을 전부 밝혀버리고 말다니?
이게 퍼져서 아이라나 엘가의 귀에 들어갔다간 정말 어떻게 될지 나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일단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나는 자신의 기숙사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라를 데리고 오늘 오후에 있는 강의로 향했다.
“자, 오늘은 기르는 반려 짐승과 친해지는 법에 대해서 강의 할 거야. 다들 기르는 짐승 한 마리 씩 데리고 왔지?”
수요일의 늦은 오후, 스텔라 벨호크 교수가 넓은 훈련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처럼 슬림한 사냥꾼처럼 가죽옷으로 몸을 가린 그녀의 팔에는 두꺼운 아대 같은 것이 착용되어 있었다.
━뀌이잉-!
그 위에 발톱 날카로운 푸른수리 트위티가 얌전히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듯 좌우로 고개를 까닥였다.
강의에 새를 데리고 오는 교수라니.
그런데 오늘의 강의, ‘테이머들을 위한 조련 강좌’는 원래 그런 강의였다.
교수 벨호크 뿐만 아니라 이 훈련장에 모인 학생들 모두 목줄을 맨 엽견이나 매, 멧돼지와 늑대 같은 짐승들을 데리고 와서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켰으니까.
━그르르르.
━컹컹-!
━뀌이이잉-! 뀌이이이잉-!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짐승소리와 헐떡임이 내 반요정 귀에 선명히 들어오는 통에 나는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었다.
━가루루, 진정 좀 해. 왜 이렇게 성났어?
━가르르르르르르-.
저 늑대가 어째선지 날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러다 목줄을 놓치면 나한테 휙 덤벼오는 거 아니겠지?
“자, 자, 아무튼. 모두 데려온 반려동물을 좀 내게 보여줘 봐.”
벨호크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는 학생들의 애완짐승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멋진 사냥개네. 하운드 브링어지? 몇 살이야?”라고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학생들은 교수에게 자신의 펫이 가진 기예나 재주를 선보이며 훌륭함과 우수함을 뽐냈다.
불을 뿜어내는 도마뱀.
두 발로 걷는 늑대 등등, 기이하고 괴상한 짐승들이 정말 많았다.
“음, 훌륭해. 다들 상태가 좋아. 그렇지만 기숙사에서는 기를 수 없으니까, 다들 꼭 관리처에 연락해서 우리에 집어넣어야 해.”
벨호크 교수가 내 쪽을 향해 점점 다가올수록 나는 약간의 긴장을 느꼈다. 이유인즉슨 나는 반려동물 같은 걸 데려오지 못했으니까.
마치 다들 숙제를 검사받고 있는데 나 혼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느낌이었다.
“태오 가스펠, 너는 아무 짐승도 데려오지 않았어? 네 짐승은 어디에 있니?”
“그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수는 흐음-하고 탐탁지 않은 것처럼 침음했다.
“분명 오늘은 짐승들을 데리고 수업한다고 전달했을 텐데? 하다못해 야생 멧비둘기라도 잡아오지 그랬어? 이거 지시사항 불이행으로 감점이야.”
“…….”
끙, 앓는 소리가 나올 것 같은 걸 겨우 참았다. 이번 강의 시간에 짐승을 데리고 오라고 했던 말을 내가 들은 적이 있던가?
내 예민한 기억의 뉴런 속에 그런 정보는 없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내게로 전달되어야 할 정보가 누락된 게 분명하다.
“다음에는 꼭 데려와. 알았어?”
“주의하겠습니다.”
“자, 그럼 아이라 여왕. 음…, 폐하께서도 아무것도 데려오지 않으셨군요?”
벨호크의 시선은 이제 아이라에게로 향했다. 다만 아이라는 무슨 소리냐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벨호크 영애, 그대의 심미안에 조금 실망이구나. 이미 나에게는 최고의 반려파트너가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어디에 있다는 거죠?”
스텔라 벨호크 교수가 아이라의 주변을 샅샅이 뒤져봤다. 그러나 아이라 역시 나처럼 아무것도 데리고 오지 않은 몸. 아이라에게 반려동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이라 여왕님, 죄송하지만 감점을 받으셔야겠네요.”
“무슨 소리. 내 반려 파트너는 여기 있는 모든 짐승을 합친 것보다도 대단하다고 단언할 수 있노라!”
아이라의 호언장담에 주변의 시선이 확 몰렸다.
본디 아이라는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체질인데 거기다 대고 괴상한 소리까지 하고 있으니 당연히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투명 드래곤이라도 데려 왔나? 뭐 얼마나 대단한 반려동물이길래 그렇지?
━한 나라의 왕이잖아. 분명 굉장한 생물일 거야.
그렇지만 그럴수록 나의 간담은 서늘해져만 갔다. 아이라가 왜 저렇게 당당히 말하는 지 조금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아이라가 내 머리에 손을 척 얹었다.
“나의 태오는 불을 뿜어내는 도마뱀이나, 두 다리로 걷는 늑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녀석이지.”
“아-.”
스텔라 벨호크 교수는 그때서야 전부 이해했다는 것처럼 짧게 탄식했다. 하지만 그런 납득의 얼굴 표정은 금방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다가 다시금 밝게 변한다.
“제가 대학원생과 조교들을 대하는 것처럼 한다는 거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렇다면 인정이죠. 아주 훌륭한 노예…, 아니. 반려동물이네요.”
벨호크 교수는 후후후-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음 학생을 향했다.
━들었어? 저 녀석이 애완동물인가 봐!
━과연, 여왕쯤 되면 기르는 짐승의 범위도 넓어지는구나.
그리고 나는 아이라에게 내가 어떤 위치인지 다시금 알게 된 기분이었다.
역시 아이라에게 있어서 나는 편리한 애완동물 비슷한 위치.
내가 아이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 아이라는 그 답례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턱을 만져주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무척 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라가 마왕 앙그마르의 생존자에 대해 알게 된 지금, 나는 이 얕잡혀 보이는 관계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설마 자신에게 머리가 쓰다듬어지고 있는 내가 태오 앙그마르라고는 생각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잔뜩 방심하고 있다가 내가 송곳니를 드러내 콱 물어버리면 그때서 화들짝 놀랄 아이라의 얼굴이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짝짝.
벨호크 교수가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다.
“자, 오늘은 동물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동물처럼 행동을 할 거야. 자, 여기 목줄을 하나씩 나눠줄 테니까. 각자의 목에 걸고. 반려짐승처럼 행동하는 거야. 알았지?”
벨호크 교수는 자신의 목에 목줄을 걸고 그 손잡이를 푸른수리 트위티의 입에 물렸다. 그리고 나서 네 발로 바닥을 기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해?
━수강 취소 못하나? 아무래도 강의를 신청한 것 같은데.
━벨호크 교수 강의가 괴상하기로 유명하긴 하잖아….
저런 짐승 같은 행위를 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일정한 크기를 넘어서자, 벨호크 교수는 특단의 조치처럼 말했다.
“이것도 전부 평가로 들어가는 거야. 내 지시대로 따라하지 않으면 한 명 무작위로 뽑아서 아크 대학원에 진학시킬 거야.”
교수의 권한은 막강하다. 사람들은 툴툴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주섬주섬 자신의 목줄을 착용했다.
다들 자신의 파트너 짐승을 이해하기 위해 정말 짐승과도 같이 바닥을 기는 것이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나는 이 환경에서 일종의 광기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자신의 손에 들린 목줄에 아이라는 무척 재미있다는 것처럼 까만 눈동자를 유리처럼 반짝인다.
“내 목에 걸릴 목걸이 치고는 초라하구나.”
“감히 여왕님의 목에 짐승과 같은 목줄을 멜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저 태오의 목에 걸도록하겠습니다.”
“아니야. 태오 네 기분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기꺼이 무릎과 손바닥에 흙을 묻힐 각오가 되어 있어.”
스륵, 스륵.
아이라는 목에 가죽으로 된 벨트 같은 목줄을 착용했다. 그리고는 내 손에 그 손잡이를 쥐어주는 데 나는 저걸 정말 잡아도 되는 지 좀 걱정이 들었다.
“어서, 태오.”
나는 아직 아이라 여왕의 재촉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라의 목줄을 잡고 흙바닥을 네 발로 기는 아이라를 데리고 이 훈련장을 한 바퀴 돌았다.
스륵. 스륵.
아이라는 네 발로 부드러운 잔디 바닥을 걸었다.
맨 무릎이 흙바닥에 닿고 있는 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녀의 육체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면서도 동시에 튼튼한 것이다.
이런 것으로는 상처조차 나질 않겠지.
“이제 태오 너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네 발로 기면서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아이라의 사고회로가 어떻게 되어있는 것인지 오히려 궁금하다.
“태오, 너 역시 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겠어?”
“제가 감히 어떻게 바다와 같은 아이라 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보는 경치 역시 제법 굉장한 것이었다.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아이라가 내게 목줄이 잡혀 천천히 네 발로 걷고 있는 모습이라니.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허리와 골반이 씰룩거리며 그 예쁜 조형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이 내 시선을 빼앗기 충분했다.
이런 각도에서 보는 건 처음이구나.
또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아이라를 동물처럼 다루고 있다는 게 묘한 느낌으로 나를 뜨겁게 달궜다.
━저거 봐, 앙그마르의 여왕이 짐승처럼 걷고 있잖아…?
━세상에, 굉장하다.
그토록 나를 고생시킨 아이라를 이렇게 마치 노예나 짐승처럼 다루고 있는 것에 대한 배덕감이 묘하게 스멀스멀 가슴을 잠식한다.
노예와 주인의 뒤바뀐 관계.
언젠가 내가 도달해야 할 목표점이 이곳에 있다.
나는 아이라 뿐만 아니라 모든 영애들을 이렇게 목줄 채워서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야말로 앙그마르 마왕에 걸맞게 위풍당당하고 웅장한 모습이겠지.
스르륵.
그때 아이라가 걸음을 멈췄다.
“그만 하시겠습니까?”
“…….”
내 불안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 대신 아이라는 갑자기 내 다리와 무릎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향해 자신의 냄새를 묻히는 고양이 같은 행동이라서 나는 무척 당황하고야 말았다.
평소의 아이라, 내가 알고 있는 여왕이라면 절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얼어붙은 몸에 입술만을 간신히 움직여 물었다.
“여왕님, 뭘 하시는 거죠?”
“짐승의 흉내. 그렇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 썩 재밌지는 않구나.”
그렇구나. 그렇지만 정말 깜짝 놀랐었다.
* * *
“자, 그럼 다음 강의 시간에는 반려짐승의 울음소리 해석하기에 대해 강의하도록 하겠어. 늦지 않게 다들 잘 오도록 해.”
어느덧 반려동물에 대한 강의가 끝이 났다. 아이라는 무릎을 탁탁 털며 몸에 묻은 먼지들을 떨어트렸다.
“재미있는 강의였어. 태오, 네가 어떤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방금 있었던 일들로 나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는 할까? 그렇지만 나도 아이라의 의외스러운 면을 볼 수 있어서 그리 나쁘지만도 않은 시간이었다.
「채찍과 당근. 목줄과 쇠사슬!
직업 : 조교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호색한 Lv. 5 → Lv. 6
당신 앞에서는 사나운 호랑이도 고양이와 같습니다!」
조교사 레벨도 올랐다. 그것 때문인지 내 안에서 아이라를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넘쳐나기 시작한다.
스륵, 스륵.
목에 착용되어 있던 목줄을 푸는 아이라.
하지만 금방 귀찮아진 것인지 그녀는 손을 놓고 나를 불렀다.
“태오, 이것을 좀 풀어보도록 해.”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 목에 걸린 목줄을 풀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백자처럼 하얗고 가느다란 목에 어울리지 않는 짐승의 목줄.
그걸 보자 문득 아이라는 본디 이맘때 쯤 빌런 사냥꾼 파티와 격렬하게 싸우다 결국 처형장으로 갔어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러 사람의 목이 매달렸던 거칠거칠한 올가미가 이 하얀 목을 조이고,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분노의 민의가 온 나라를 뒤엎고….
우울해진다.
“태오야.”
아이라가 나를 불러서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 뒀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러고 보니 재밌는 이야기가 들려오던데.”
재밌는 이야기?
나는 잔뜩 긴장하게 됐다. 아이라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와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이것저것 상상되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연덕스럽게 되묻기로 한다.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겁니까?”
“태오, 네가 드레이코의 영애인 미르나에게 구혼을 했다는 이야기였어.”
“…….”
아무 얘기 없어서 모르는 줄 알았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구만.
나는 사악한 주술 가미긴을 상대했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서늘함이 내 등을 타고 흐르는 걸 느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