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76)
EP.77)싸움 # 3
077 – 호랑이들의 싸움 # 3
「가미긴 : 고위 강령주술. 살아있는 자들을 꼭두각시로 삼을 수 있다. 술자의 위계가 높아질수록 그 영향이 증대된다.」
이상이 가미긴의 설명이다.
살아있는 자들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기술.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부하로 삼는 주문이라는 것인데. 아직 이 주술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실험도 적어서 사용을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엘가의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이 내 머리를 내려칠 것이라고 생각되자 나로서는 주문을 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금단의 주문 가미긴을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지?
“…….”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던 나는 슬쩍 한쪽 눈을 떠 봤다.
그런 나의 얼굴 앞에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처럼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엘가가 파르르 떨고 있는 게 보였다.
부들부들-.
그 오른손 주먹은 높이 들어 올려져 언제라도 나를 향해 내려칠 것만 같은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좀 이상하다.
입술도 꾹 다물고 움직이지도 않고….
혹시 내 주문이 먹혀 들어간 건가? 내 세뇌마법 가미긴이? 지금 상황으로 보면 그것 외에는 다른 추측이 없는 것 같다.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역시 그렇구만!
나는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
엘가의 옅은 꽃잎과도 같은 입술이 천천히 움찔거렸다.
“야, 너 무슨 짓. 한 거야. 진짜, 죽을래?”
“히에엑…!”
그 말에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뒷걸음질 쳐서 거리를 벌렸다.
“이리, 와.”
스륵, 척.
나를 향해 무거운 한 걸음을 내딛는 엘가. 그녀는 마치 뻣뻣하게 굳은 기계가 녹슨 몸을 움직이려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뭔 지 몰라도. 빨리. 이거 풀어…!”
지금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내 주술 가미긴은 완벽하지가 않다는 것.
세뇌를 통해 상대를 완벽한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은커녕 사람을 몇 초 정도 묶어놓는 속박정도가 한계였던 것이다.
아무리 앙그마르 마왕의 위대한 주술을 사용한다고 해도 10위계에 달했던 앙그마르 마왕과 겨우 마법사 3위계 정도 되는 나의 마법이 같을 수는 없겠지.
하물며 주술이 쓰여진 상대는 정신력 강한 엘가고.
저벅, 저벅.
엘가가 나를 향해 터미네이터처럼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는 황급히 왼손에 팔찌처럼 휘감겨 있던 완드를 집어들고 엘가를 향해 겨눴다.
─가미긴-!
파지직-.
기묘한 분홍빛 번개가 엘가를 향해 쇄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에 얻어맞은 엘가는 “읏-.”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다시금 움직임을 멈춘다.
“후, 후으….”
그리고 내 입에서는 절로 앓는 듯한 한숨이 뿜어졌다. 이 가미긴이라는 주문이 생각보다 훨씬 체력과 마력을 소모하는 탓이다.
만전의 상태인 나여도 2번 정도가 한계인 것 같다.
정신력을 쥐어짜내면 3번 정도는 가능할까?
“야아, 이, 이상한 술수 치우고. 빨리 이리 와…!”
엘가는 갑작스럽게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에 성질이 난 것 같았다.
괜히 엘가의 화만 돋군 게 아닌가 싶은데. 이대로 그녀를 멈추지 않았으면 나는 꿀밤을 맞고 머리통이 뽑혀나갔을 게 분명했다.
어찌됐든 나는 이 겨우 얻은 수초의 시간에 나를 전력으로 부딪혀야 할 뿐-!
나는 허둥지둥 엘가를 달래듯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소문이 돌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제가 드레이코 가문에 접근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거짓말로 구혼을 하게 된 겁니다.”
“드레이코 가문에 접근해야만 하는 이유가 뭔데.”
“그야, 앙그마르에 대한…, 뭐 그런 거죠. 저는 사실, 드레이코 가문과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것에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으니까요.”
“그래? 눈치 채고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폐쇄적인 드레이코 가문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다소 거짓말을 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청혼 비슷한 게 된 겁니다.”
내 설명은 내가 생각해도 횡설수설이었다.
그렇지만 마법의 세뇌효과로 잠깐 움직임을 멈춘 엘가에게 내 이야기가 뜻밖에도 잘 먹혀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
내 마법에 저항하기 위해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진격해오고 있던 엘가의 걸음걸이도 멈추고, 꽉 쥐어진 채 높이 들어 올려졌던 주먹도 천천히 밑으로 내려온다.
“그러니까, 미르나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 이거야?”
“그렇습니다. 제가 어찌 엘가님을 두고 다른 여성을 만나거나 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제 마음을 열어서 보여드릴 수 있다면, 정말 제 결백함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심장이라도 꺼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과장된 거짓말이었지만 이렇게 서로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는 이 정도로 과격한 말이 딱 알맞게 먹혀 들어갈 터.
스르륵.
마침내 엘가는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동시에 연기자와 조교사 그리고 마법사의 경험치가 50씩 상승하는 게 보였다.
* * *
나와 엘가는 옥상의 난간에 나란히 앉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크의 풍경과 저 멀리 붉은 노을이 구름 사이로 저물어가는 모습은 꽤 운치가 좋다.
이대로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면 좋을 텐데. 나의 눈은 풍경보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엘가의 표정을 캐치하기 바빴다.
엘가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 청혼이라는 것도 사실은 미르나의 오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냥 혼자 멋대로 오해를 하신 거고, 그게 또 소문으로 퍼지게 된 겁니다. 저도 그걸 모두 앞에서 밝힐 줄은 몰랐어요.”
나는 엘가에게 아주 약간의 사실을 밝혔다.
내가 미르나 드레이코에게 청혼한 게 사실 미르나가 가진 도끼병에 의한 오해라는 걸 말이다.
그렇지만 의외로 그 오해로 비롯된 상황이 내게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는 점까지 이야기했다.
그러자 엘가는 방금까지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깔깔 웃는다.
“미르나, 그 멍청한 녀석. 남들이 다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아. 얼른 사실대로 말해서 녀석의 얼굴이 새빨갛게 일그러지는 걸 보고 싶네.”
“아니, 그건 좀….”
그랬다간 이번에는 엘가 대신 미르나 드레이코가 나를 죽이러 찾아올 테지.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
─제게 청혼했던 것이 거짓말이라구요? 죽어요!
진짜로 미래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엘가를 향해 내 의견을 부딪쳤다.
“저는 앙그마르의 조사관이라서 지금 상황을 조금 더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드레이코 가문은 아직 좀 더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마왕의 핏줄이라는 것에 대해서?”
엘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만약 지금 진실을 밝힌다면 겨우 협조적으로 굴기 시작한 드레이코 가문과 또 단절되겠죠. 그럼 엘가님과 리오네스 가문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도 번거로워질 겁니다.”
“결백?”
흥-하고 코웃음을 치는 엘가.
“결백이고 뭐고, 나는 마왕의 핏줄이라는 거랑 아무런 관계도 없거든?”
관계가 없기는. 지금 네 옆에 있는데.
실제로 관계도 했잖아.
엘가는 방금 자신이 꿀밤 때려죽이려고 했던 남자가 사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악의의 후예라는 것을 절대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웃겼다.
엘가가 미르나 드레이코에게 구혼이 거짓말이었다는 진실을 밝히고 그 표정을 감상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나도 엘가에게 진실을 밝히고 “짜잔, 사실 나는 앙그마르였다.”라고 말했을 때 엘가가 과연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 몹시도 궁금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엘가가 작은 앙그마르들을 다섯 명 정도 낳았을 때-.
더 이상 뒤로 돌아갈 수 없어졌을 때 밝혀야 앙그마르 가문에 대한 복수가 되는 법이다. 군자의 복수는 아무리 기다려도 늦지 않는 법.
그래서 나는 짐짓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
“엘가님은 아무런 연관도 없을지 모르지만. 엘가님의 아버님이신 라인하르트 공과 드레이코의 전 가주였던 알레이스터 공. 그 둘과 마지막 앙그마르의 후예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
그건 엘가도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하지 않았다만 엘가는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듯 하더니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내 아버지가 반란 같은 걸 생각했을 리 없어. 우리 가문이 타란테라를 왕위에 앉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알기나 하냐?”
“알죠. 엘가 님의 조부님이신 황금기사 델라크 리오네스부터, 그 아들들인 호반, 다르칸, 고르서스 리오네스 등등. 다들 앙그마르의 잔당과 싸우다 전장에서 전사했으니까요.”
내 이야기에 엘가는 슬쩍 나를 내려다봤다. 그 표정이 마치 “이 새끼, 역사 공부 좀 했네.”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역사서와 기록들을 들여다보길 잘했구만.
엘가가 말했다.
“당장 타란테라의 왕위를 위해서 그렇게나 많이 죽었는데. 굳이 그걸 우리 손으로 다시 깨부술 이유가 뭐가 있어?”
엘가의 이야기는 몹시도 정론이었다.
리오네스 가문은 타란테라 왕가의 가장 커다란 방패이고 창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라인하르트는 어째서 앙그마르의 후예가 살아있다는 것을 숨기고 있던 걸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앙그마르의 수도, 모나크 시티로 돌아가 궁정에서 일하고 있을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서구를 보내놨지만 거기에 그 남자가 사실대로 답할지 어떨지는 미지수니까.
스륵.
그때 엘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난간에 살짝 몸을 기대며 저 멀리 저물고 있는 황혼을 바라봤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뒤로 묶인 엘가의 머리칼이 금빛 실타래처럼 붉게 흩날릴 즈음 그녀가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도 내 아버지도 결백해. 아이라도 그걸 모를 리 없을 거야. 그런 내게 반역자의 오명이라니. 태오 가스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결백을 증명시켜. 알았냐?”
스륵.
나 역시 엘가의 옆에 섰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엘가님이, 혹은 리오네스 가문이 정말 마왕의 후예를 숨겨주는 것에 동조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엘가가 나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런 나에게 자신이 속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과연 엘가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 번 넌지시 물어보니까 엘가는 황혼으로부터 등을 휙 돌린다.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아? 절대 없어.”
저 당당한 얼굴이 어떤 감정으로 물들게 될지 생각하니까 매우 기대가 됐다.
“배고프다. 그럼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자. 미르나, 걔 도끼병 때문에 괜히 열만 냈네. 사실, 네가 날 내버려두고 다른 누구에게 구혼이라니. 안 믿었어.”
뭘 안 믿어.
“앞으론 그런 소문 안 나게. 다른 여자들에게는 딱딱하게 대해. 알았어? 함부로 웃지도 말고.”
딱딱하게 대하라니. 마치 질투심 강하고 소유욕 강한 연인들이 상대방을 구속하듯이 엘가는 나를 구속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엘가가 느으읏-하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긴 다리를 쭉쭉 뻗어 스트레칭을 하는 통에 나는 그녀의 돌핀팬츠 아래로 노을에 반짝이는 허벅지와 종아리를 적나라하게 바라보게 됐다.
그것으로 나는 딱딱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옥상에서 내려가려는 그녀의 소매를 슥-붙잡고 그녀의 뒤쪽 허벅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사르르.
차가운 바람에 오래 노출되어 서늘하면서도 매끄러운 허벅지에 내 손바닥이 닿자 엘가는 걸음을 우뚝 멈췄다.
***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