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02
당문전생 (101)
당신, 나 알아?
잠룡각으로 들어서자마자 탕약 냄새가 코를 찔러서 당찬일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문 출신이라 어지간한 약재 냄새는 면역이라고 자부했건만 이곳에서 풍기는 그것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잠룡각에서 기거하는 사람들.
여태 지나친 다른 건물이나 별채들과 달리 잠룡각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는데, 이들은 의원 복장의 사람들과 날렵한 무인들로 나뉘었다.
‘무인과 의원이라.’
당찬일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눈동자만 돌려서 쳐다보는데 동모가 발을 멈추었다.
“이곳입니다.”
커다란 문 앞에 선 동모가 좌우에 시립해 있는 시비 차림의 여인들에게 물었다.
“어떠시냐?”
“한결같습니다.”
“그렇군.”
여인들의 답을 들은 동모가 나지막이 침음했다.
“들어가실까요?”
드르륵―.
문이 좌우로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동모가 거대한 침상을 응시했다.
“제가 왔습니다.”
착잡한 눈빛으로 침상에 누운 사람을 보면서 동모가 억지로 입을 뗐다.
“밤새 강녕하셨는지요?”
동모의 물음은 간절함이 가득 배어 있어서 급살(急煞)을 맞은 사람이라도 벌떡 일어설 지경이었다.
그의 애타는 마음이 통했을까?
부스럭.
이불과 이불이 마주치며 소소한 마찰음이 장내에 내려앉자 동모가 눈을 치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침상에선 더 이상의 음향이나 움직임도 없었기에 동모가 눈을 내리깔았다.
“이불이 풀을 너무 잘 먹었나 봅니다.”
당찬일을 보며 희미하게 웃던 동모가 곧 마른침을 삼켰다.
“진맥을 해 주시겠습니까?”
이들이 의원을 원했다면 자신을 데려왔을 리는 없다.
자신이 당문 출신이긴 하지만 의술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조사했고, 콕 짚어서 자신을 데려왔다.
이들이 자신을 지목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럼.”
수많은 질문을 뒤로하고 당찬일이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손목을 짚었다.
“음…….”
손목을 진맥한 당찬일이 동모를 바라보았다.
“우선 저는 가문에서 체계적인 의술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환자를 진맥한 적도 없거니와, 처방전이라든가 기타의 의료적인 행위를 한 적도 전혀 없지요.”
“예.”
순순히 응대하는 동모를 직시하던 당찬일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모든 진료의 기본은 문진(問診)이다.
“환자는 어떤 상태입니까?”
“간헐적으로 가사 상태에 빠지십니다.”
얼마 동안의 기간을 두고 혼절을 되풀이한단다.
“주기적인가요?”
“반복적으로 정신을 놓으시지만 일정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비주기적이란 것이군요.”
침상을 내려다보던 당찬일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이랬나요?”
“태어나셨을 때부터…….”
말꼬리를 늘이던 동모가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줄곧 이런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동모가 그를 침상 옆의 다탁으로 인도했다.
“진맥 결과는 어떻습니까, 당찬일 소공자님?”
이 사람은 정말로 나의 진료 소견이 궁금할까?
생각은 마음의 한구석에 미루어 두고 당찬일이 자세를 바로 했다.
“전형적인 허기성(虛氣性) 증상이 보입니다. 그 이외에는 어떤 이상도 느껴지지 않고요.”
“체내에 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로군요.”
동모가 자신이 뱉은 말을 반추(反芻)하자 당찬일이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정도는 의술을 공부한 이라면 누구나 내릴 수 있는 결과지요. 굳이 저를 부를 필요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장광설처럼 긴 이야기를 풀어낸 당찬일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자신을 초대한 이유를 들어야겠다.
“대체…….”
당찬일이 입을 열려는 순간!
우우웅.
어디선가 막강한 잠력이 들이닥쳐 다탁을 구석으로 날려 버렸다.
콰직!
솟구치듯 몸을 일으킨 동모와 당찬일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둥실.
누군가를 감싼 이불이 통째로 둥둥 떠 있는 광경이라서 당찬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공중부양(空中浮揚)?”
공중부양은 일정한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라면 무리 없이 펼칠 수 있는 몸놀림이다. 당장 동모만 해도 공중부양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는 허공답보를 자유자재로 펼치지 않았던가?
하지만 무의식적인 공중부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전자가 의도하지 않고서도 이런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건 전설상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니까.
당찬일이 침상 위쪽으로 한 자가량 떠 있는 이불 뭉치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이불 뭉치 주변에선 어떠한 장치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말인즉슨 환자는 외부적인 동력원 없이 공중에 떠 있다는 소리다.
이게…… 가능한 건가?
“정말로 환자는 가사 상태지요?”
“그렇소이다.”
동모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응대에서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을 유추한 당찬일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일단 첫 번째,
‘환자는 공중으로 떠오르는 현상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선보였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저러다 곧 하강하실 터이니 너무 놀라지는 마시구려.”
동모가 당찬일을 안심시켰다. 역시 환자는 때때로 저런 모습을 보였나 보다.
그리고 두 번째.
‘이 노인, 초긴장 상태잖아!’
환자가 금방 안정된다면서 동모가 지나치게 긴장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쿠르릉!
엄청난 압박감!
방 밖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이 전달되었기에 당찬일은 당문이 자랑하는 가장 은밀하고, 가장 강력한 전투 조직 하나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특찰부!’
방을 호위하는 이들은 무적패왕 당암의 직할 조직인 특찰부와 매우 유사하지 않은가?
‘아니, 저들은 일정 부분에선 특찰부보다 한 수 위야.’
역시 자신을 초대한 이들은 보통 세력이 아니다.
단지 동모와 그의 하수인들이 허공답보를 구사해서 내린 결론이 아니다. 문밖의 무인들이 당문 최강의 전투 조직인 특찰부를 상회하는 힘을 지녀서도 아니다.
이러한 위력을 지닌 세력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속이면서 서안의 한 귀퉁이를 버젓이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자들이 목숨처럼 떠받는 환자는 대체 누구일까?
당찬일이 머리를 굴리는데 공중에 떠 있던 이불 뭉치가 침상으로 다시 내려갔다……고 생각한 순간!
스르륵.
환자를 덮고 있던 이불이 시냇물처럼 흘러내렸다.
그리고 드러나는 환자의 용모.
가로로 누워 있던 환자가 천천히 몸을 세우자 삼단처럼 곱고도 기다란 머리카락이 이불을 미끄러졌다.
‘여인?’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 사이로 드러나는 환자의 얼굴은 너무도 창백해서 흡사 눈의 여왕과도 같았다.
그러나 환자는 여인이 아니었다.
상의를 입지 않았기에 훤히 드러난 환자의 상체는 다소 야위었을 뿐, 여인네 특유의 가슴이 없었다.
대략 열여덟 가량의 사내.
환자는 백리천아 또래의 사내였다.
그러나 백리천아가 패도적이면서도 유쾌한 쾌남아였다면, 사내는 전체적으로 선이 얇은 미청년이었다.
우뚝!
허공에서 몸을 세운 사내가 오연하게 턱을 들어 올리자 동모의 눈썹이 크게 출렁였다.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그러나 환자의 눈꺼풀은 조개처럼 굳게 닫혀서 좀처럼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파앗!
수정보다 투명하고 겨울보다 아름다운 사내가 자체적으로 발산하는 빛 때문에 방안이 온통 하얗게 물들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지상에서 한 치가량 둥둥 떠 있던 사내가 당찬일 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번쩍!
자물쇠처럼 굳건하게 닫혔던 사내의 눈꺼풀이 올라가자 당찬일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이럴 수가!”
사내의 눈동자는 검은자위가 존재하는 지점마저도…… 아니, 애당초 검어야 할 부위마저도 하얗게 빛을 발했다.
전백안(全白眼)!
기본적으로 사람의 눈동자는 중앙에 검은자위가 위치하고 좌우를 흰자위가 차지한다.
하지만 드물게 좌우뿐 아니라 위나 아래 중 한 곳까지 합쳐 세 군데에 흰자위가 드러나는 눈이 있는데 이를 삼백안(三白眼)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좌우는 물론이고 상하까지 모조리 드러나는 눈을 사백안(四白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무시하는 눈이 하나 존재하니 그것이 바로 전백안이다.
‘특정한 순간에 검은자위마저 하얘진다는 전설상의 눈동자!’
그리고 눈동자마저 새하얗기에 옥진(玉塵)을 넘어선 순백의 미를 자랑하는 사내가 허공에서 천천히 몸을 돌려 당찬일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어찌 벌써 왔느냐.
‘뭐라고?’
사내의 목소리가 거울처럼 또렷이 들렸지만 사람의 음성이 아닌 것만 같아서 당찬일의 눈이 커졌다.
벌써 왔느냐니.
사내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 다른 거 다 떠나서…….
자신을 언제 봤다고 벌써 왔느냐는 건가?
당신, 나 알아?
당찬일이 황당해하는데 백안의 사내가 그를 가리켰다.
텁!
사내의 손이 까딱거리자 공중으로 붕 뜬 당찬일이 그의 손아귀에 목을 내줘야만 했다.
“컥!”
너무도 허무하게 목이 잡힌 당찬일이 고통으로 인상을 구겼다.
‘이, 이럴 수가!’
당찬일은 전생에서 수많은 강자와 고수를 마주쳤고, 또 상대했지만 이토록 쉽게 목을 내어 준 적은 없었다. 물론 백리무극 수준의 최강을 자랑하는 절대자는 마주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이를 만나더라도 이토록 무기력하게 패배하리라곤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사내는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틀 듯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익!”
당찬일이 사내의 손을 뿌리치려고 양팔을 뻗는 순간!
―찾아라.
“……!”
순간적으로 동모를 힐끗거린 당찬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동모에겐 이자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구나!’
그렇다고 사내의 목소리가 전음은 아니니 이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숨이 막힌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자신에게만 전달되는 정체 모를 소리가 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대체 이 음성은 무엇인가?
부우웅.
당찬일이 혼절하려는데 그가 지니고 있던 탈혼령이 사내의 소리에 화답하듯 맹렬히 진동했다.
스륵.
탈혼령이 진동하자 온통 하얗던 사내의 눈동자에 검은자위가 서서히 드러났다.
“오오!”
사내의 검은자위를 보며 동모가 합장을 하는데 당찬일의 가슴으로 다시 그 소리가 메아리쳤다.
―찾아라!
파앗!
그 말을 끝으로 사내가 당찬일의 목을 놔주었다.
쿵!
“커억!”
손으로 목을 쓰다듬으면서 당찬일이 정신을 차리는데 침상으로 서서히 내려온 사내가 몸을 다시 뉘었다.
털썩!
침상에 누운 사내가 눈꺼풀마저 굳건히 닫아걸자 동모가 합장한 채로 고개를 숙였다.
이 기묘한 사태에 목을 쓰다듬던 당찬일이 침상을 짚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당찬일이 일어서고도 얼마 동안 사내를 내려다보던 동모가 이불을 추슬렀다.
“송구합니다, 당찬일 공자님.”
“음.”
목까지 이불을 쓰고 다시 잠이 든 사내에게서 조금 전까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서 당찬일이 침음했다.
전백안.
어떠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들어 올린 허공섭물. 마지막으로 불문의 혜광심어(慧光心語)보다도 오묘한 마음의 음성.
대체 이자는 누구인가?
또한 이자가 잠을 자는 이유는?
당찬일의 눈에 복잡하고 미묘한 색채가 어리자 동모가 입을 열었다.
“차 한잔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