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62
당문전생 (161)
호법(護法)은 존자를 넘지 못한다
진소운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신을 데리고 가는 사람들은 낯설고 무서웠지만 적어도 거칠게 굴지는 않아서 몸만큼은 편했는데 느닷없이 등장한 이들 때문에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마차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싫어서 몸을 웅크린 진소운에게로 누군가의 부름이 들린 건 그때였다.
―가야지.
어디를?
―가야지.
대체 어디를 가자는 거야?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진소운을 건드리는 소리는 그의 귓전이 아니라 뇌리를 파고들었기에 귓구멍을 막아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가야지.
지겹지도 않은지 내면을 울리는 소리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때…….
콰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차 밖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진소운의 등을 어루만지던 사람마저 나섰다.
홀로 남은 진소운이 알 수 없는 감정에 몸을 떠는데 내면의 소리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대로도 상관은 없어.
뭐?
이대로라니? 이대로가 어떤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은 내면의 음성에 짜증마저 솟구친 진소운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가 올 테니까.
쾅!
순간 내면의 속삭임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어떤 순간을 엿본 진소운이 어깨를 푸들푸들 떨었다.
‘그는, 그는, 그는……!’
싫다.
사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다. 진소운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며 야단치지도, 구박하지도 않았다. 그는 진소운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을뿐더러, 변변한 말 한번 걸지도 않았다.
하지만 싫다.
그와 있으면 자신이 싫어져서 그가 싫다.
그가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싫어지니까 싫은 거다.
어쩌면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논리.
아이에게 이보다 확실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싫으니까 싫은 거다.
“우에엑!”
그를 떠올리며 그가 보여 주었던 광경을 복기하다가 토가 쏠려서 입을 벌린 진소운이 입가를 타고 흐르는 침을 응시했다.
싫다. 그도 싫고, 이 순간도 싫다.
모든 게 싫다.
차라리…….
‘사라졌으면.’
자신이라도 세상이라도 상관없다. 둘 중 하나라도 사라지면 좋겠다.
둘 중에 하나라도 없어지면 이토록 괴로운 광경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고, 이렇게 불편한 감정을 품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때 음성이 말했다.
―그럼 가자.
어디로? 어딜 가자는 거야?
잠시 침묵하던 음성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알잖아.
파앗!
* * *
양학이 패퇴했다!
피가 흐르는 어깨를 거머쥔 양학이 뒤로 물러서며 입술을 깨물자 그를 몰아붙이던 노인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늘었구나.”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양학을 응시하던 노인이 곧 손을 빙글 돌렸다.
“하지만 아직 멀었느니라.”
쾅!
노인은 키가 작았다.
얼마나 신장이 작았는지 양학의 무릎 근처에도 미치지 않았다. 물론 양학이 보통 사람보다 우월한 신장을 자랑했지만 그래도 노인은 너무 작았다.
하지만 노인의 무위는 신장과 정반대였다.
작은 노인의 손이 번뜩이자 양학이 급급히 손을 들어 대응했다.
콰릉!
노인의 손바닥에서 파생된 기세가 폭주하는 화룡처럼 일렁이자 양학이 만들어 낸 냉기의 사슬을 눈처럼 녹였다.
팟!
뒤로 빠진 양학이 양팔을 돌리면서 앞으로 진격했다.
“얼마나 실력이 늘었나 볼까?”
작은 노인이 발을 ‘쿵!’ 굴렀다.
촤촤촤촤!
노인의 발바닥이 내려앉은 지면을 중심으로 두 가닥의 균열이 발생하며 양학에게로 쭉 뻗었다.
스르륵.
빙판을 짓치듯 발을 놀리며 양학이 옆으로 방향을 틀자 작은 노인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발재간이라…….”
스륵.
양학의 동작을 흉내라도 내듯 작은 노인이 그에 맞춰서 신형을 틀었다.
콱!
갑자기 몸을 멈춘 양학이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노인을 응시하다 돌연 사라졌다.
스팟!
눈앞에서 양학이 꺼지듯 자취를 감추었기에 놀랄 법도 한데 노인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전진하던 신형을 한 번 멈췄을 뿐이었다.
스르륵!
노인의 전면으로 유령처럼 나타난 양학.
양학이 오가연합 비무 대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경악에 빠트렸던 그 몸놀림을 다시 한 번 재현하자 작은 노인이 몸을 틀었다.
키이익!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양학은 노인을 중심에 두고 그의 주변을 너울너울 떠다녔는데 너무도 빠르게 움직여서 동서남북과 사방사유를 그가 점하는 형국이었다.
온통 양학이 점유한 대지.
땅으로는 양학의 그림자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하늘로도 그의 잔영이 솟구쳐 오를 것만 같았기에 이 세상은 양학의 춤으로 얼룩졌다.
귀기(鬼氣) 어린 달빛. 그보다 요사스러운 윤무(輪舞).
양학의 춤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었다.
무공의 범주를 넓히겠다는 확장성을 담은 몸짓이자 천지와 합일을 이루겠다는 소멸적인 의미를 담은 양가적인 움직임이었다.
무학이 아니라 철학.
양학의 몸놀림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라 고등한 사상을 담은 동작이었다. 이 말은 양학의 몸짓을 만든 사람이 무학만큼이나 철학에도 달통했다는 방증이다.
연약과 귀납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모조리 함유한 양학의 무공은 매우 뛰어난 사상을 포함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공덕을 기린다는 소림의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이나 팔괘의 오묘한 뜻을 녹였다는 무당의 양의신공(兩儀神功)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노인도 이를 알아보았을까?
양학의 움직임을 대하자마자 노인의 태도가 싹 바뀌었다.
경건함을 담아서 양학의 몸짓을 응시하던 작은 노인의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무엇이 그리 아련하고,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몰라도 양학의 움직임을 하염없이 응시하던 노인이 작게 뇌까렸다.
“교주천세(敎主千歲). 천천세(千千歲).”
으드득.
갑자기 화가 치밀었는지 이를 으스러지게 깨문 작은 노인이 숨을 들이켰다.
“세상이 미쳐도 한참을 미쳤구나. 어디 감히 호법 따위가 교주님의 신공을 흉내 낼까.”
호법이라니? 그렇다면 양학이 호법이라는 말일까?
만약 양학이 호법이라면 그가 속한 단체는…….
마교.
쿠오오오!
양학의 몸짓에 분노한 작은 노인이 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리자 그의 기세가 사뭇 바뀌었다.
사천에서 당찬일과 당숙정이 만났던 정체불명의 괴노인!
대하는 것만으로도 당숙정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던 어마어마한 신위를 갈무리한 절대적인 노인!
그가 바로 양학과 상대 중인 작은 노인이었다!
“호법은 존자를 넘지 못하노니. 이는 세세토록 내려온 본교의 전통이자 역사이니라.”
우웅―.
절대적인 위엄!
동모와 장난칠 때 보였던 개구진 모습을 완전히 던져 버린 작은 노인이 일대종사의 기도를 선보이면서 앞으로 나섰다.
콰르릉!
너울너울 춤을 추는 양학의 주변으로 엄청난 강기의 벽이 쳐졌지만 작은 노인은 아랑곳없다는 듯 무형의 기세를 가르며 나아갔다.
쾅!
양학이 불러온 기세는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지닌 터라 작은 노인의 입가에서 실 같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좋구나.”
양학의 강기 벽에 휘말려서 머리는 온통 봉두난발, 착용한 옷가지도 찢어지고 헤졌지만 작은 노인은 오히려 양팔을 벌렸다.
“더 때려 봐라, 더.”
그렇다. 노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호신강기조차 발현하지 않고 양학의 강기 벽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맞았다.
뚜벅!
거지꼴이 되어 버린 작은 노인이 힘겹게 걸음을 떼었다.
“그게 다였더냐?”
뚜벅!
“고작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교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더냐?”
작은 노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뚜벅!
“머저리 같은 너희들 때문에 교가 회생 불가능의 타격을 입었다는 것은 아느냐?”
뚜벅!
노인의 눈물은 피눈물로 화했다.
얼마나 원통하고 한스러운지 몰라도 두 눈에서 굵은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작은 노인의 모습은 처절함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만들어 낸 강기 벽에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음에도 작은 노인이 거침없이 다가서자 양학이 입술을 깨물었다.
콰르릉!
양학이 마지막 기세를 끌어올리자 작은 노인이 양팔을 올리며 만세를 불렀다.
“그것이 진정한 천마의 무학이라면 이 자리에서 백골로 화해도 여한이 없다!”
쾅!
“쿠헥!”
결국 양학이 입에서 한 사발의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완연한 내공력의 차이. 그리고 기세의 차이.
마지막으로 호법과 존자의 차이.
“쿨럭! 쿨럭!”
땅바닥에 널브러져서 연신 피를 토하는 양학을 굽어보던 작은 노인이 한탄하듯 입을 열었다.
“사호법(四護法)아, 사호법아…… 네 그릇은 고작해야 종지 축에도 못 미치거늘 어찌 대접의 물을 담으려 하느냐.”
노인이 혀를 찼지만 양학은 그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양학은 그저 가슴을 부여잡고 툴툴 웃을 뿐이었다.
“실력은 여전하십니다.”
양학이 탄식처럼 입을 벌렸다.
“남방존자(南方尊者) 어르신.”
작은 노인의 정체는 마교의 호교오존자 가운데 남방존자였다. 그래서 그가 이토록 막강한 무위를 지녔던 거다.
교주를 제외한다면 최강이라는 오존자.
오가연합 비무 대회에서 무적에 가까운 신위를 선보였던 양학이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잊었느냐? 호법(護法)은 결코 존자를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작은 노인, 남방존자가 양학을 굽어보며 씹어뱉듯 입을 열었다.
“백응(白鷹).”
마교는 교주 휘하로 오존자와 사대호법(四大護法)이 존재한다. 오존자는 호교오존자로서 마교의 원로였고. 실질적인 대외 업무는 사대호법이 담당한다.
양학은 사대호법 가운데 네 번째인 백응이었다.
“어찌 백(白)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막아서려 들었더냐.”
남방존자가 뒷짐을 지었다. 그가 기세를 풀자 삭막하던 오존자는 간 곳이 없고, 뒷산으로 마실 나온 동네의 촌로만이 자리했다.
“황룡(黃龍)이라면 모를까.”
기도 안 찬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던 남방존자가 고개를 들어 달을 올려다보았다.
언젠가 자신들은 저 달을 보면서 한마음으로 교의 부흥을 꿈꾸었다.
당금이 아니더라도 다음 대…… 아니, 그다음의 다음 대라도 제대로 된 교주를 밀어 올려서 온 세상을 발아래 굽힐 진정한 천마를 탄생시키자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지난날의 맹세는 낙엽처럼 스러졌고, 오존자와 사대호법은 건널 수 없는 강을 마주하는 사이가 되었다.
‘시작은 단순한 의견의 차이였거늘.’
잠시 숨을 들이켠 남방존자가 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희 사대호법이 추존파를 이끌면서 우리와 대척점에 선 것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너희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남방존자가 말하는 우리란 오존자를 중심으로 하는 교주파를 일컫는 것일 터.
“긴말하지 않겠다. 소옥(小玉)을 내놓아라.”
“흐흐흐.”
“아직까지 웃음이 나오는 걸 보니 조금 더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남방존자 어르신.”
양학…… 아니, 백응이 남방존자의 말을 잘랐다.
“호법은 결코 존자를 넘보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백응이 이토록 무기력하게 당할 성싶습니까?”
“무기력하지 않으면? 발악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남방존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데 양학이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또각또각.
달빛을 머금고 천천히 다가오는 이륜마차.
놀랍게도 마차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면서 바퀴 소리나 말발굽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재미난 마차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