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81
당문전생 (180)
마경(魔境)의 건너편
“그럽시다.”
도왕이 시원시원하게 나왔다.
‘원래 이랬던 녀석이었지.’
도왕은 제 잘난 맛에 취해서 뒤를 몰랐다. 본인이 옳다고 믿으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일직선으로 나갔다.
사내다울지는 모르지만 귀계(鬼計)가 난무하고 음모로 얼룩진 강호에서 이런 성품은 이용당하기 딱 좋다. 그래서 자신도 도왕의 이러한 점을 적당히 자극해서 장문인의 지위에 오르지 않았던가.
지금도 마찬가지.
평생의 존재 가치였던 무학에서 패배하자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기세다.
그런 모습이 사내다운 줄로만 알고.
속으로 그를 비웃던 무한 진인이 도왕의 시금털털한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사형은 그 아이가 사옥정을 전부 흡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소이까?”
도왕이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자 그의 장대한 체구가 다시금 드러나서 무한 진인이 살짝 위축되었다.
자신은 천고의 마물인 사옥정을 머금었다. 그래서 도왕과는 눈높이 자체가 달라졌다. 하지만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조건반사처럼 어깨가 움츠러든다.
‘빌어먹을.’
열등감과 수치심이 절로 발현되었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한 무한 진인이 도왕의 질문에 맞장구쳤다.
이제야 원하는 결론으로 향한다. 대답을 듣고 나서 그를 처리해도 늦지 않다.
“만약 그 아이가 오래전에 당협이 건넨 사옥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면 감룡자 정도는 새끼손가락만으로 짓눌렀을 테니까.”
“그래서 그랬나?”
“그래서라니? 그 아이가 무슨 비밀이라도 털어놓더냐? 아니면 뭔가를 눈치채기라고 했느냐?”
“아아!”
손을 들어 무한 진인의 말을 제지한 도왕이 문득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그랬군.”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도왕이 반으로 부러진 파벽도로 바닥을 콩콩 찍었다.
“그랬던 거였어.”
파벽도를 지팡이 삼아 ‘끙차!’ 하며 몸을 일으킨 도왕이 고개를 위로 젖혀 하늘가를 올려다보았다.
“아쉽구나.”
“뭐?”
“이곳도 꽤나 정이 들었는데.”
도왕의 목소리에 담긴 섭섭함을 감지한 무한 진인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놈!”
펑!
하지만 도왕은 연기처럼 꺼졌고 그 자리엔 느닷없이 자욱한 연무가 피어올랐다.
방약무인(傍若無人).
열등감을 정상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비겁한 방법을 통해서 헤치고 나온 자들이 겪는 후유증.
수십 년 동안 자신에게 드리워졌던 도왕의 묵직한 그림자에서 이제야 벗어났기에 마음껏 잘난 척을 하느라 무한 진인은 이곳이 그의 소굴이란 사실을 잠시 잠깐 잊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마경(魔境)의 건너편에서 도왕의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왔다.
“십 구 년 전의 정마대전이 과연 정마대전이었을까?”
뜬금없는 질문이라서 가뜩이나 혼란한 무한 진인이 이를 갈았다. 암수를 써 놓고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사기를 일삼던 놈들일수록 본인이 사기당하면 광분한다. 뒤에서 남을 헐뜯던 놈들일수록 제가 당하면 미쳐 날뛴다.
원래 그렇다. 비겁하고 교활한 놈들일수록 자신이 그러한 일을 당하면 못 참는다.
“어서 나와! 일단 나와서 이야기하자꾸나!”
콰르르릉!
말로는 군자연했지만 당황하고 열받아서 무한 진인이 망망한 허공에 무시무시한 검초를 남발했다.
서걱! 서걱!
하지만 베이느니 공간이요, 잘리느니 바람이었다.
무한 진인이 고삐 풀린 말처럼 폭주한 반면 도왕의 음성은 차분하다 못해 차가워졌다.
“그때의 그 싸움은 정정대전이나 마마대전이 아니었을까?”
“나오란 말이다!”
무한 진인이 거칠게 울부짖었지만 도왕의 목소리를 점차 멀어져 갔다.
“당신은 백 년이 지나도 한결같을 거요.”
“무성(無聲), 무성아.”
“한심한 인간.”
다급해서일까? 무한 진인은 예전에 잊힌 도왕의 도명을 불렀다.
“무성! 네 이노옴!”
* * *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움직이는 이의 정체는 틀림없는 도왕이었다. 장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그가 가녀린 누군가에 기댄 모습은 부조화의 극치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궁하면 통한다고, 도왕이 정상적인 몸이 아니니 이런 식으로라도 움직일 수밖에.
“훌쩍.”
어깨로 도왕을 지지하며 열심히 발을 놀리는 이가 가끔씩 눈물을 훔쳤다.
“걱정하지 마라. 이 아비가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그 간사한 인간에게 맞섰겠느냐?”
냉막하고 정이 없던 평소의 도왕과 다르게 지금 그의 음성에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자는 내가 전력을 기울였다가 패한 줄로만 알겠지만 실상은 아니다.”
파리한 안색과 어울리지 않는 굴강한 눈빛. 이로 미루어 도왕은 다소의 부상을 입었지만 절체절명의 상태는 아닌 듯했다.
“그는 자신이 잘나서 나를 꺾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도왕이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나는 그가 마귀의 힘을 부릴 때부터 대부분의 내력을 돌려서 수비에 집중했단다. 그도 명색이 화산의 장문인데 사옥정까지 사용하면 내가 감당할 도리가 없을 테니.”
아무리 사옥정의 위력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무한 진인이 그것을 사용하자마자 그전까지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던 도왕이 맥없이 당했던 이유.
그것은 도왕이 패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은신처를 공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니. 어찌 보면 순진한 건가.”
화음에 위치한 도왕의 은거지는 초라한 모옥이 전부인 것처럼 보였지만 기실 거대한 기관진식의 토대 위에 건축된 구조물이었다.
적이 아무리 강해도,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최소한 탈출은 가능하게끔 설계된 가옥.
그것이 도왕의 모옥이었다.
“멍청한 인간.”
길길이 날뛰던 무한 진인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젓던 도왕이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잠시 쉬자꾸나. 이곳은 그가 절대로 찾지 못한다.”
“우.”
커다란 나무에 도왕을 내려놓고 그의 앞쪽에 쪼그려 앉은 사람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이십 대 초중반이었는데 대단히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몸매가 훌륭했다.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와야 할 곳은 나온 전형적인 호리병 몸매.
흔히들 말하는 남정네 여럿 잡을 몸이었다.
“훌쩍.”
또다시 여인이 소매로 눈물을 닦자 도왕이 솥뚜껑만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 아비는 괜찮으니까.”
세상 자애로운 음성으로 여인을 응시하며 도왕이 덧붙였다.
“아령아.”
여인은 삼 년 전에 장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변설자 노인을 부축하며 관현을 떠돌던 농아 소녀였다.
그렇다면 변설자 노인은? 당연히 도왕의 변장이었다.
“내가 너의 실어증을 고쳐 주지 않고 어찌 눈을 감겠느냐?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
끄덕끄덕.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아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도왕이 곧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런데 그는 왜 그리 당찬일이란 아이에게 집착하는 걸까? 당찬일이란 아이가 낙화수에게 사옥정을 전달받았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관심이거든.”
턱을 쓰다듬던 도왕이 묵직한 한숨을 토했다.
“여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교활하고 사악한 그가 그토록 매달린다는 것은 당찬일이란 아이에게 거대한 무엇이 감춰져 있다는 소리야.”
끙차, 하며 도왕이 몸을 일으키자 아령이 황급하게 그를 부축했다.
“그것을 풀어내면 무림사의 헝클어진 매듭을 풀어낼 단초를 찾을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알아봐야겠어.”
아령의 부축을 받으며 도왕이 천천히 사라졌다. 석양으로 발을 담그는 부녀를 낙조는 말없이 품어 주었다.
두 사람의 길게 드리운 그림자마저도.
* * *
섬서성에 위치한 서안비림(西安碑林).
역대 왕조의 귀중한 비석을 수집하여 모아 놓은 곳이다. 특히 당(唐), 송(宋) 시대 이후의 석비(石碑)와 법첩(法帖)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장소다.
“헉! 헉!”
수많은 석비와 법첩들 사이를 내달리던 궁장 여인이 힐끗 고개를 돌렸다.
“어, 없나?”
눈동자만 돌려서 주방을 훑는 여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없지?”
나지막이 종알거린 여인이 가슴을 눌렀다.
“휴우, 이제 따돌렸네.”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여인의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
깜짝 놀란 여인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크크크.”
모습을 드러낸 인영은 사내였다. 작은 키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튀어나온 배는 보기에 좋지 않았다.
“흐흐흐.”
넝마 같은 웃옷은 걸치지 않은 편이 나았고, 허벅지가 꽉 끼고 밑단이 짧은 바지를 입은 탓에 흡사 어린아이의 바지를 입은 것만 같았다.
“크크크.”
결정적으로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입가에선 연신 침이 흘러내렸기에 여인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변태. 사내의 기괴한 생김새와 입성을 요약한다면 오로지 이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왜, 왜 이래요?”
방수(帮手)를 찾는 것일까?
슬금슬금 물러서며 여인이 눈동자만 돌려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예, 예쁘다…….”
여인은 아름다웠다.
서늘하면서도 요염하게 빛나는 눈매와 꽃봉오리처럼 도톰한 입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간간이 드러난 백옥 같은 살결은 어딘가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얼굴을 뒷받침하는 몸매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들어갈 곳은 쏙 들어가고, 나와야 하는 부위는 아낌없이 돌출했기에 찢어진 궁장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특정 부위의 윤곽은 고혹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너무 예뻐…….”
앞섶이 찢어져서 반쯤 드러난 여인의 터질 듯한 가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사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익!”
뒤로 물러서던 여인이 탄력적으로 나서며 작은 칼 두 개를 양손에 나누어 들었다.
“타앗!”
교갈을 지르며 여인이 달려들었지만 뚱보 사내는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다.
“에잇!”
여인이 작은 칼로 뚱보의 배를 찔렀다.
챙!
챙이라니? 어찌 칼로 사람의 배를 찔렀는데 금속성이 난다는 건가?
여인이 낭패한 표정으로 물러서자 뚱보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섰다.
“이리 와.”
손짓으로 여인을 부르며 뚱보가 혀를 날름거렸다.
“조금만 놀자.”
성인 남녀가 무엇을 하면서 놀까?
대답은 사내의 거대해진 물건에 있었다. 여인의 교태로운 몸을 보고 흥분해 버린 사내의 물건이 바지를 찢고 나올 기세로 커졌다.
“이익!”
역겹고 혐오스러워서 외면하고 싶었지만 언제 사내가 달려들지 몰라서 여인이 두 개의 소도(小刀)로 자신을 보호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변태 뚱보.
하지만 너무 강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보기 싫은 목을 따 버리고 싶은데.
“안 올 거야?”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뚱보 사내가 여인에게 다가섰다.
불쑥 솟은 물건을 자랑스레 앞세우고서.
“그럼 내가 갈게.”
술래잡기하는 아이처럼 뚱보가 천진난만하게 다가오자 공포와 혐오감이 교차했기에 서둘러 몸을 뺀 여인이 그를 주시했다.
아름다운 얼굴과 뇌쇄적인 몸매가 유난히 두드러져서 종종 오해를 받지만 기실 여인은 괜찮은 외모로 뭇 남성들에게 대접이나 받으려는 여왕벌들과 달리 진짜배기 무인이었다.
“차아앗!”
앙칼진 교갈과 함께 다시 몸을 날린 그녀가 작은 칼을 열십자로 휘두르며 뚱보를 스쳐 지나갔다.
조금 전의 일검으로 뚱보의 서른여섯 개 대혈을 찌른 여인이 숨을 몰아쉬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익!”
뚱보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표정으로 헤벌쭉거리던 뚱보가 소처럼 투레질을 했다.
“안 되겠다. 이젠 못 참는다.”
당황한 여인이 주춤거리면서 그녀의 가슴이 파도치자 결국 광분한 뚱보가 그녀에게 쇄도했다.
“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