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05
당문전생 (204)
“뭐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백리무극을 외면하면서 당찬일이 군중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마왜를 자신이 직접 육성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지요. 그에게는 많은 돈과 훌륭한 조력자 그리고 쓸 만한 견본품이 있었으니까요.”
당찬일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천마왜를 힐끔거렸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돈과 조력자와 견본품으로도 천마왜를 만들어 낼 수 없었지요. 하여 실험 장소는 폐쇄하고 실험에 쓰인 불쌍한 아이들은…….”
당찬일의 눈에서 화광이 일었다.
“죽입니다. 그것도 다른 이의 손을 빌려서. 이른바 차도살인지계라고 할까요.”
“아이들을 죽였다고? 누군데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벌였다는 건가?”
이서악의 인상이 굳어졌다. 무림을 종횡하면서 아녀자와 아이들은 손대지 않았던 그에게 이런 행동은 묵과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당연히 사주한 쪽은 처리할 아이들을 이상하게 포장했겠지요. 예를 들면 아이들의 몸 안에 사옥정이 있다든가.”
“으음.”
“아무튼 사주받은 이는 아이들을 죽입니다. 그렇지만 사옥정은 없었지요. 당연히 사주받은 쪽에서는 사주한 이에게 따졌을 겁니다. 이때…….”
당찬일이 기묘한 눈으로 누군가를 좇았다.
“아이들을 차도살인지계로 처리한 이는 또 한 번의 차도살인지계를 꾸밉니다. 이번에는 귀찮게 따지는 사람만이 아니라 평생의 골칫거리까지 일거에 처리할 계획을 세우지요.”
“설마 평생의 골칫거리란?”
“왜 아니겠습니까? 여기 계신 오존자 여러분과 바로…….”
빙글 몸을 돌린 당찬일이 능운비를 마주했다.
“마교주인 능 공자지요.”
순간의 정적. 당찬일의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라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말 그대로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
“농담이 지나치구먼.”
침묵의 사슬을 깨며 백리무극이 짐짓 인상을 구겼다.
“농담이 지나쳐. 제아무리 무림이 흉흉하고 귀계가 난무하다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네.”
“저의 농담은 이제부터 시작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백리무극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당찬일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 사주를 받은 살인자는 바로 견본품이었습니다. 견본품은 기대에 부응해서 훌륭하게 일을 처리하지요. 사주한 쪽은 곧바로 소문을 냅니다.”
“무한 진인을 살해한 놈의 배후에 마교의 잔당들이 있다?”
‘마교의 잔당들’이란 말에 빈정거림을 담아서 묻는 천원존자를 보며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문제는 오존자 측의 대응이었습니다.”
당찬일이 양팔을 벌렸다.
“마교는 어떠한 일에도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걸로 유명합니다. 정마대전 당시에도 마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요. 이참에 마교의 잔당들을 쓸어버릴 계획을 세운 사람도 마교의 속성을 고려해서 일을 도모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부인했소.”
동방존자가 당찬일을 보면서 서글프게 웃었다.
“당 공자의 충언에 천 년이 넘도록 요지부동이었던 우리 마음이 움직였소이다.”
이것이었다. 사주한 측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가. 오존자와 능운비는 당찬일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천마왜가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대혼란!
당연히 마교의 소행이라고 여겼던 정파 무림은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마교가 이례적으로 나왔으니 경거망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주자는 ‘아차!’ 싶었을 겁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가 펼쳐졌을 테니까요.”
당찬일이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수십 년 동안 몸담았기에 교의 특성을 완전히 파악했다고 자부했건만 자신의 예측과 상반된 반응을 보였으니 어찌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사주자가 흉흉해지는 민심을 달래려고 견본품을 잡아서 이 자리에 대령했다는 말인가?”
백리무극이 비꼬듯 물었지만 당찬일은 진지하게 답했다.
“그편이 싸게 먹힌다고 판단했겠지요. 십구 년 동안이나 들인 공이 아깝지만 저자로 꼬리를 자르면 훗날을 도모할 수 있으니까요. 아울러…….”
특유의 말미에 덧붙이기로 관심을 집중시킨 당찬일이 농담처럼 중얼거렸다.
“견본이 하나뿐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무림맹주님?”
순간 백리무극의 눈에서 소름 끼치도록 냉혹한 빛이 일렁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져서 백리무극의 안광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의.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군그래.”
백리무극이 고개를 가로젓자 지금까지 화를 삭이던 백리천아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이봐, 당 공자.”
백리천아가 분통을 터트렸다.
“오가연합 비무 대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름 배려했거늘 이런 식으로 되갚나? 차라리 나를 비난할 것이지, 어찌 무림맹주님이신 나의 부친을 욕보여?”
그는 당찬일의 말 속에 담긴 섬뜩한 함의를 짐작하지 못했다.
“정 이러겠다면…….”
“잠깐.”
백리무극이 백리천아의 말을 막았다.
“조금 전부터 견본품 타령을 하던데, 당 공자가 입에 올리는 견본이란 저자를 말하겠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천마왜를 보며 백리무극이 물었다.
“내가 저자에게 무한 진인의 살인을 의뢰했다면 의당 저자와 나는 구면이겠지?”
천마왜에게 뚜벅뚜벅 다가선 백리무극이 그의 아혈과 마혈을 풀었다.
“나를 아느냐?”
“으으으…….”
“이전에 나를 본 적이 있느냐?”
“끄으으…….”
백리무극이 질문을 퍼부었지만 천마왜는 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물은 백리무극이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모른다는데? 이렇게 되면 당 공자의 추론이 어긋나 버리지 않는가?”
백리무극의 당당한 태도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당찬일이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대단합니다. 아주 대단해요. 꽤나 준비를 잘하셨군요.”
“허, 그 사람하곤. 아직까지 고집을 꺾지 않겠다는…….”
“그런데.”
백리무극의 말을 막으며 당찬일이 희미하게 웃었다.
“무림맹주님께서 또 하나 간과하신 게 있어요.”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백리무극이 애써 웃었다.
“당 공자는 자꾸만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먼. 그래서 내가 간과한 것이 무언가?”
백리무극이 침착을 가장했지만 당찬일은 그의 반응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나오세요.”
장내로 천천히 걸어오는 인영은 덩치가 산만 한 중년인이었다.
“도왕?”
“늦었군요, 오라버니.”
이서악과 벽려군이 도왕에게 예를 표했다. 하지만 백리무극의 눈은 도왕의 손을 맞잡은 십 대 초반의 사내아이에게 꽂혀 있었다.
잔뜩 겁먹은 얼굴로 좌중을 돌아보는 소년.
진소운이었다.
“무서워할 것 없다.”
도왕이 진소운을 달랬지만 소년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어른들이 잔뜩 몰려 있었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불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진소운이 나무에 기댄 채로 숨을 헐떡이는 천마왜를 발견했다.
“으아악!”
갑자기 머리를 잡으면서 진소운이 무릎을 꿇었다.
스륵.
이서악이 진소운의 전면을 막아서고.
스르륵.
벽려군이 진소운의 후면을 막았다.
그리고 벌어지는 진소운의 입.
“형? 정말로 형이야?”
그러나 눈이 풀린 천마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형! 형! 왜 이래?”
천마왜의 옷깃을 잡고 마구 흔들던 진소운이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 사람은 세요! 누구보다도 강하다고요! 근데 왜 이러는 거예요?”
“소운아.”
진소운에게 다가선 당찬일이 허리를 굽혔다.
부분적으로 잃었던 기억을 부분적으로나마 되찾은 모양이다. 천마왜는 알아보는 모양이지만 당찬일, 자신은 아직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렇다면…….
“이 형 말고 아는 사람이 있니?”
당찬일이 부드럽게 말하자 천마왜에게서 손을 뗀 진소운이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천히,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진소운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망연히 중얼거렸다.
“달빛 할아버지?”
팍!
대붕전시의 수법으로 몸을 날린 백리무극이 진소운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진소운을 지켜 줄 수 없었다.
심지어는 진소운의 곁에 있던 이서악과 벽려군마저도.
콰악!
백리무극의 손길이 진소운의 심장을 노리는 순간!
휘리릭!
진소운의 손이 기이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백리무극의 수도(手刀)를 밀어냈다.
―이것이 언젠가 네 목숨을 구해 줄 거다.
유능일초(柔能一招)!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진소운에게 가르쳐 준 삼수삼보의 첫 번째 수법(手法)!
진소운이 거짓말처럼 자신의 살초를 밀어내자 당황한 백리무극이 재차 그를 노리려는데 태산처럼 강력한 기세가 둘 사이에 놓였다.
꽝!
“그쯤 해 두시지요.”
억강일초(抑强一招)!
강한 힘을 더욱 강한 힘으로 억누르는 극강의 초식이자 삼수삼보 가운데 두 번째 수법!
당찬일이 억강일초를 펼치자 이것의 창안자인 도왕의 얼굴에 회한의 빛이 일렁였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더니, 초식을 만들어 낸 자신보다 당찬일이 더욱 원숙하게 펼치고 있지 않은가.
“이상하네?”
벽려군이 중얼거리자 이서악이 물었다.
“무엇이 말이오?”
“저 꼬마, 당신의 제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도왕 오라버니에게도 무공을 훔쳐 배웠나 봐요.”
“글쎄, 내 제자가 아니라니까.”
“거짓말.”
“이익!”
당찬일의 억강일초에 가로막혀 진소운의 입을 틀어막지 못하자 백리무극이 인상을 구겼다.
“대뜸 살인멸구부터 시도하다니. 지나치게 고전적인 전개가 아닙니까?”
당찬일이 비꼬자 백리무극의 두뇌가 민활하게 회전했다.
“살인멸구라니, 그 무슨 억측인가! 나는 그저 천마왜의 식솔들을 보고 분노가 치밀었을 뿐이라네!”
백리무극의 장황한 변명이 듣기 싫었는지 벽려군이 당찬일에게 물었다.
“달빛 할아버지는 또 누구냐?”
“아아.”
씨익 웃으면서 당찬일이 몸을 돌렸다.
“달빛 할아버지는 말이지요, 매우 재미난 존재입니다. 혈해지사가 벌어지는 현장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나타나서 노래 한 자락으로 천마왜와 그의 아이들을 자극했지요.”
당찬일이 월하노인에 관해서 당인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반추했다.
“혈해지사의 현장에 누구보다 일찍 도착해서 혈겁을 참관하고 시까지 읊는 대담함. 그리고 혈겁이 끝나면 누구보다 먼저 빠져나가는 기동성.”
백리무극을 쳐다보지도 않고 당찬일이 말을 이었다.
“하여 저는 월하노인을 사연이 많은 사람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흉수를 알지만 무림맹에 신고하지 못하는 것엔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거라고 봤지요.”
당찬일은 월하노인이 혈해지사의 흉수와 한패가 아니면서도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천마왜를 미행했기에 가능했다고 예상했다.
―월하노인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요.
당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회고하며 당찬일이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제 예상은 한 가지가 틀렸더군요.”
당찬일이 눈을 빛냈다.
“월하노인은 혈겁의 방관자가 아니라 천마왜를 사주해서 적극적으로 혈해지사를 일으켰던 장본인이었습니다. 그가 혈겁을 일으킨 이유는…….”
입술을 우그러트리던 당찬일이 한숨처럼 이야기를 토했다.
“사옥정의 힘을 다시 한 번 증폭시키는 소운이의 능력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지요. 혈해지사의 현장에서 소운이만 살아남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던 겁니다.”
“아, 아니, 내가 소운이란 아이를 무림맹에 데려가려고 했던 이유는…….”
“무림맹주님께서 친히 명령을 내리셨겠지요. 총단으로 데리고 오라는.”
당찬일이 백리천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분이 특기인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는데 다행히도 소운이가 탈출했던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