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53
당문전생 (53)
내가 얻을 건 뭔데?
눈짓을 주고받은 당찬일과 당쾌풍이 험준한 계곡 사이로 스며들었다.
“엄청나군.”
겉으로 봤을 때는 그저 계곡이었는데 안쪽으로 접어드니 풍경이 달라져서 당찬일이 눈을 빛냈다.
“놀랐지? 여긴 내 은밀한 장소라고.”
계곡 속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굴은 입에서 김이 날 정도로 서늘했으며, 또한 어두웠다.
그렇지만 동굴 특유의 음습함은 없었으니 당쾌풍 말처럼 천고의 장소라 할 수 있었다.
“발견한 사람이 임자지, 뭐.”
먼저 깃발 꽂은 놈이 주인이라면서 낄낄거리는 당쾌풍을 지나친 당찬일이 동굴 곳곳을 장식한 잡동사니들을 둘러보았다.
당문의 자손답게 암기들은 종류별로 있었으며, 이름 모를 풀 더미와 약탕기 그리고 수많은 호리병과 곤충 집까지.
이곳은 그야말로 작은 실험실이자, 연무장이었다.
“야야, 함부로 만지지 마.”
묘한 빛깔의 물이 담긴 호리병을 집어 들려는 당찬일을 제지한 당쾌풍이 인상을 구겼다.
“전부 내 건 아니니까.”
“그럼?”
하지만 당쾌풍은 답을 하지 않았기에 당찬일도 곧 흥미를 잃고 시신이 보관되었다는 석실로 향했다.
“알아낸 건?”
“없어.”
뒷머리를 긁으면서 당쾌풍이 다가왔다.
“내가 아는 모든 독을 검사해 봤지만 시신은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더라고.”
“고작 열흘 남았는데 난감하군.”
곤란하다.
위협을 무릅쓰고 시신 탈취라는 강수까지 두었거늘 성과가 없다니.
―이번 괴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대가주께서는 민심 수습 차원으로 우리 가문에서 희생양 하나를 만들어 낼 거야.
당숙정의 귀띔을 떠올린 당찬일이 숨을 들이켰다.
―그게 누가 될 것 같으냐?
희생양은 당문이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가주의 직계 자손이어야만 한다.
또한 직계지만 자리를 비워도 당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존재여야만 한다.
이른바 계륵(鷄肋).
이런 조건에 부합되는 인물이라면?
조금은 씁쓸할 표정을 지은 당숙정이 이렇게 속삭였었다.
―나, 아니면 네 아비겠지.
“정녕 방법이 없는 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말 그대로 괴질이 맞다면 방법이 없긴 하다.
당문이 독와 약을 잘 다루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인 관점에서의 이야기일 뿐.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질병까지 찾아내서 치료할 정도는 아니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야.”
“흠.”
낙담한 당찬일이 묵직한 한숨을 토해 냈다.
당인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지금껏 누리던 독점적인 지위와 특혜를 상실하게 된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이대로 손 놓고 당해야만 하나.’
당찬일의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던 당쾌풍이 습관처럼 양손을 깍지 껴서 뒤통수에 붙였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자꾸만 자신의 한계라는 말을 강조하는 당쾌풍에게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 당찬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누가 더 있다는 소리인가?”
“관아 동굴에서 말했잖아.”
당쾌풍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놈이 있다고.”
“그런 놈? 아!”
“그놈이라면 저 빌어먹을 독무가 무엇을 태워서 만들어졌는지 하나하나 짚어 낼 테니까.”
“그가 누군데?”
당찬일이 묻는 순간 누군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바쁜 사람을 왜 오라 가라 해?”
모습을 드러낸 이는 자그마한 소년이었다.
당찬일보다도 작은 신장. 체구는 적당했으며 무척이나 귀여운 외모를 지닌 소년.
특징이라면 날카롭게 올라간 눈초리였다.
성깔이 장난 아닌 새끼 고양이.
하지만 놀랍게도 소년의 나이는 당찬일보다도 두 살이나 더 많았다.
당호민(唐虎珉).
소년은 당호민이란 이름을 지닌 당문의 방계 혈족이었다.
“여어, 갑장(甲長). 드디어 등장하셨나?”
당쾌풍이 양팔을 벌려 당호민을 환영했다.
“됐고.”
당쾌풍의 손을 쳐 낸 당호민이 당찬일을 응시했다.
가뜩이나 사나운 눈초리인데 한곳에 집중하자 당찬일은 당호민이 자신을 노려본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혹시 얘가 대라속…… 읍, 읍!”
당호민의 입을 틀어막은 당쾌풍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하! 때때로 이 친구가 흰소리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서.”
당찬일에게 억지 미소를 지은 당쾌풍이 당호민에게 사나운 눈짓을 보냈다.
―비밀이라니까!
―뭘 그런 걸 숨겨? 아무튼 별스럽다니까.
뚱한 표정으로 당호민이 수긍하자 당쾌풍이 그를 놔주었다.
“에잇, 더러워, 진짜.”
수건을 꺼내서 입술을 벅벅 닦은 당호민이 자신을 부른 용건을 물었다.
“네가 좀 알아봐 줄 게 있어서.”
“내가? 뭘?”
“이 시신이 독살당한 건지 알고 싶거든.”
“독살 여부? 그건 사약처(死藥處)에 문의하면 되잖아?”
“그걸 누가 몰라?”
당쾌풍이 은근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근데 이건 비밀을 요하는 사안이거든. 해서 우리 당문의 떠오르는 천재를 초빙한 거지.”
“혹시 그 시신이란, 괴질로 사망한……?”
“쉿!”
잽싸게 검지를 입에 붙인 당쾌풍이 나지막이 뇌까렸다.
“갑장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독의 천재께서 나서 주면 최고지.”
‘이 아이가 독의 천재?’
눈초리가 사나운 새끼 고양이가 당문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독을 잘 다룬단다.
“비밀을 요한다고? 왜?”
당호민이 집요하게 추궁하자 당쾌풍이 여러 가지 의혹에 관해서 쏟아 냈다.
“우리 대가주님이 사천성주랑 작당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너, 요즘 상태가 영 안 좋구나?”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찬 당호민이 몸을 돌렸다.
“이런 건 그냥 어른들한테 맡겨. 괜히 수선 부리지 말고.”
“아니.”
당호민의 말을 자른 당찬일이 그를 직시했다.
“이번만큼은 우리가 처리하는 편이 낫다.”
묵묵히 자리만 지키던 당찬일이 끼어들자 당호민의 고개가 돌아갔다.
‘얘, 갑자기 왜 이래?’ 하는 눈빛.
그렇지만 당찬일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보통 이런 일은 어른들이 처리하는 게 맞지. 하지만 이번 괴질은 성격이 달라.”
호오, 하는 표정으로 당찬일을 바라보던 당호민이 다시 몸을 돌렸다.
“성격이 다르다? 어떻게?”
“통상적으로 질병은 나라에서 관리해야 마땅하다. 거기다 역병이라면 더더욱. 그렇지만 이번 괴질은 묘하게도 당문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분위기로 흐른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시신을 넘기라는 거잖아? 사약처라면 사인을 정확히 밝혀낼 테니까. 그럼 우리 당문도 자연스레 누명을 벗을 거고.”
당호민이 날카로운 눈초리를 빛냈다.
“너희들이 봐 달라는 시신, 관아에서 몰래 훔쳐 온 거지?”
당호민의 지적을 받은 당쾌풍이 멀리 있는 동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니, 뭐…….”
“미치겠네. 왜 자꾸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잠깐만…….”
당호민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당쾌풍과 당찬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설마 관아에 불까지 지른 놈들이 너희였어?”
“아냐!”
당쾌풍이 강하게 반박했다.
“우리가 돌았냐? 관아에 불을 왜 내?”
“정말 아니지?”
“아니라고!”
“휴. 그럼 됐어.”
제 가슴을 쓸어내린 당호민이 손을 내저었다.
“일 커지기 전에 시신을 처리하든가, 아니면 사약처에 넘겨. 누구 말처럼 우리 당문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분위기니까 사약처 사람들이 목숨 걸고 사인을 밝힐 거야.”
“글쎄.”
당찬일이 고소를 짓자 당호민이 콧등에 주름을 잡았다.
“뭐가 글쎄야? 그게 최선이라니까!”
“그들이 과연 공정할 수 있을까?”
또 한 번 시의적절하게 당찬일이 끼어들자 당쾌풍에게 열변을 토하던 당호민이 말을 멈췄다.
“지금 당문은 대가주의 영도력을 발판 삼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혼란기라고 할 수 있다.”
“패왕파와 낭군파의 대립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이제 지겨우니까 관두라고.”
당문의 지도층이 차기 가주로 당문패왕 당암을 미는 쪽과 당문낭군 당진을 옹립하려는 파로 갈라져서 서로를 적대시한다는 걸 누가 모를까.
“그게 전부는 아니지.”
“뭐?”
“과연 당문에 패왕파와 낭군파만 존재하겠느냔 말이다.”
당찬일의 송곳 같은 질문을 받은 당호민이 가뜩이나 사나운 눈초리를 더욱 올렸다.
당연히 아니다.
당문 사람들 중에서는 당암과 당진 모두를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더러 존재했다.
당암의 지나칠 정도로 패도적인 지도력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당진의 권모술수에 가까운 친화력에도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
그런 이들은 패왕파와 낭군파 어디에도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당문패왕이나 당문낭군의 입장에선 중립을 견지하는 이들이 눈엣가시일 거다. 지금이야 중립이지만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준다면 선택받지 못한 쪽은 곤란해지니까.”
패왕파와 낭군파의 세력 구도를 산술적으로 본다면 대략 사 점 오 대 사 정도.
현재로는 당암이 약간 우세한 형국이지만 중립을 견지하는 나머지 일 점 오가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구도는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중립이 패왕파를 택한다면 후계 싸움은 그대로 끝나겠지. 그러나 중립파가 당문낭군을 지지한다면 싸움의 양상은 판이해진다.”
얘기가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당쾌풍이 주섬주섬 차를 끓였다.
맨날 술타령을 하는 것과 달리 당쾌풍이 끓인 차는 향과 맛이 매우 좋았다.
“네 말대로 우리 당문에서 후발 주자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당문패왕과 당문낭군이야. 그렇지만 어느 한쪽이 탁월한 실력을 보여 주진 못하거든.”
당쾌풍이 찻잔을 건네자 그것을 받아 든 당호민이 인상을 살짝 구겼다.
“그래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아직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중립파를 확 휘어잡는 실력을 보여 주면 좋을 텐데.”
당호민이 중얼거리자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당찬일이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실력이 아니라 안도감의 문제가 아닐까?”
다시 한 번 당찬일이 날카롭게 지적하자 입을 벌린 그대로 당호민이 그를 멀뚱멀뚱 응시해야만 했다.
“패왕의 지도력은 비록 막강하지만 당과로 대가주의 그것보다는 뒤처지지. 또한 낭군의 친화력은 대가주의 그것보다 덜 끈끈하거든.”
찻잔을 옆으로 밀어낸 당찬일이 단도직입적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사실 중립파는 본인들의 미래를 믿고 맡길 만한 압도적인 힘을 원하지만 이들은 한 가지를 착각하고 있다.”
당찬일이 당호민을 직시하며 입을 달싹거렸다.
“우리야말로 당문의 주역이란 사실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쿵!
“당문패왕이나 당문낭군이 아닌, 우리야말로 당문의 미래라는 소리다.”
벙쪄 버린 당호민에게서 눈을 뗀 당찬일이 돌로 만든 탁자를 짚으며 일어섰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해결한다.”
“뭐?”
당호민이 말 같은 소리를 하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당찬일은 단호했다.
“중립파가 입장을 정리하지 않는 실정이라서 당문패왕이나 당문낭군 측에서는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당문군주나 나의 부친인 당인을 경계한다.”
“그래서?”
“그래서…… 양측에서는 이번 괴질 사태를 기회로 당문군주나 나의 부친을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려고 들 소지가 다분하다.”
당찬일이 당쾌풍과 당호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직계 후손들조차 서열이 이런 식으로 정해진다면 당문의 신분 격차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매우 좋지 않지.”
“태생적인 자리매김 말이야?”
“그렇다. 이는 반드시 타파해야 할 악습이다.”
신분이 아니라 실력을 대우하는 가문만이 험난한 무림에서 살아남는다!
“끄응.”
당찬일의 논리는 너무도 정연해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당호민이 옆머리를 긁었다.
“내가 얻을 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