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7
당문전생 (67)
물건은 최상이었다
자신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절대고수라도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만나면 생명을 잃는 것이 무림의 생리다.
그렇기에 유일무이한 절대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조우하게 된다면?
체면이고 자시고 다 벗어던지고 걸음아 날 살려라 꽁무니를 빼야 한목숨 건질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안목, 다시 말해서 눈썰미다.
“내 무학이 어느 시전에서든 크게 꿇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오.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남았느냐? 그게 바로 이 기막힌 눈썰미라고 자부한다오.”
그러길 벌써 이십 년이라오, 하면서 조치목이 장탄식을 터트렸다.
“저 녀석이 무슨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말을 하시는데!”
“무림에선…….”
조치목이 곽구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나보다 한 끗발이라도 높으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오. 거기다가 저 공자는 곽 공자보다 열 끗발은 높아 보이니 당연하지 않겠소?”
“으, 으음.”
조목파 조치목의 생존 본능은 이 바닥에서 거의 전설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언제, 누가, 어떤 식으로 이 바닥에 들이닥쳐도 조목파와 두목인 조치목은 잠시 흔들릴 뿐, 결국 꾸역꾸역 제 위치로 돌아가곤 했다.
그야말로 잡초와도 같은 근성의 밑바탕엔 조치목의 귀신도 놀랄 눈썰미가 존재했다.
“조, 좋소이다. 그럼 내가 저 녀석에게 어찌하면 좋겠소?”
당연하다는 듯 조치목이 씨익 웃었다.
“꿇으시구려.”
“예에?”
“충성 서약을 하란 거요. 원한다면 저 공자의 신발에 입이라도 맞추면서.”
“에잇! 미친 인간 같으니! 뒷골목을 주름잡는 조목파라더니 이제 보니까 허접쓰레기들이었구나!”
분기탱천해서 곽구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조치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객기라고 할 것도 못 된다.
힘의 차이뿐 아니라 지력에서도 월등히 차이를 보이는데 무슨 수로 상대하겠는가.
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잎보다 빠르게 눕겠지.
“이만 가겠소!”
곽구가 쿵쾅거리면서 떠나가자 그의 등에 대고 조치목이 느긋하게 덧붙였다.
“오늘 내가 한 말, 잘 생각해 보시구려.”
* * *
하나뿐인 인생, 멋들어지게 살아 보자!
종길(鍾吉)은 큰 야망을 품고서 뒷골목에 입문했다.
원래 그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았는데, 노동이 싫고 비루한 생활이 지겨워서 다 때려치우고 뒷골목에 투신한 사람이다.
멋지게 살아 보려고.
그러나 뒷골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던 때는 눈칫밥이라도 먹지 않았는데, 뒷골목 생활을 하고부터는 윗대가리의 기분을 살피랴, 아래 녀석들의 동향을 파악하랴, 정신적인 피로도가 극에 이르렀다.
“지미…… 멋들어지게 살기는, 개코나.”
툴툴거리면서 걷던 종길이 홍루로 들어가서는 남종석을 호위하면서 홍등가로 들어서는 넙치파의 중간 대가리를 발견하고 급히 허리를 숙였다.
“수고하십니다, 형님!”
“야, 종길이, 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말이 좋아서 호위지, 중간 대가리도 이미 술이 머리까지 올라서 해롱거리는 상태였다.
“아, 저는, 그…….”
“이 새끼, 하라는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놀러는 처다니는 모양이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인마. 이런 데 놀러 올 생각이나 하지 말고 시킨 일이나 해!”
뻥―.
자신의 궁둥이를 걷어찬 중간 대가리가 기녀들을 끼고 시시닥거리면서 사라지자 종길이 벽을 주먹으로 쳤다.
쾅!
“아, 진짜…… 더러워서!”
“더러워?”
등 뒤에서 걸걸한 음성이 들려오자 화들짝 놀란 종길이 돌아섰다.
“뭐가 더러운데?”
“자, 장삼 형님.”
“그래. 뭐가 그리 더러워서 그렇게 화를 내고 있나?”
장삼은 산넙치파 소속이 아니다.
뒷골목 세계에서 손을 씻은 지도 오래라 사실 예를 차릴 이유는 없지만, 그럼에도 장삼이 사천성 성도부 뒷골목의 신화이자 전설이었기에 종길은 먼저 고개를 조아렸다.
“아, 아닙니다, 형님.”
“너무 담아 두면 속 썩어. 속 뒤집힐 말을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셈 치고 나한테 털어놔 봐. 나야 이미 그 바닥 떠났으니 벽이나 다를 게 뭔가.”
자리를 옮겨 술을 서너 잔 따라 주자 그제야 종길이 미주알고주알 쏟아 내기 시작했다.
물론 종길이 늘어놓는 변명에 조금도 관심이 없던 장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것으로 그의 기분을 풀어 줬다.
그리고 종길의 취기가 오를 즈음 장삼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너희들, 요즘 오석산 취급한다면서?”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종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 바닥을 떠났다고 그 정도 소식도 모를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장삼이 더욱 은밀한 어조로 종길에게 속삭였다.
“나한테 넘길 오석산을 구할 수 있나? 질 좋은 놈으로 구해 주면 제값 이상 쳐주지.”
“그, 그게…… 물량도 적고, 귀한 사람들에게만 넘기라는 두목의…….”
“뭐야, 이거 너무하는데? 나 같은 놈은 귀하지 않다 그건가?”
장삼이 빙글빙글 웃으며 하는 말에 종길이 마구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형님. 저는 그저…….”
“됐네, 됐어. 이거 좀 서운한데.”
“형님, 제가 한번 어떻게든 구해 보겠……습니다.”
“끌끌. 그래 주면 좋지. 그것보다 이거 알고 있나?”
장삼이 품에서 전낭 하나를 꺼내며 물었다.
“오늘부로 누구에게나 은자 두 냥이 지급된다는 거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무슨 말은 무슨 말. 몰랐나? 추원에서 돈 준다는 말?”
“예? 알죠. 그건 거짓부렁 아닙니까? 추원이 미쳤다고 그런 돈을 주겠…….”
“거짓부러엉?”
어처구니없다는 듯 종길을 내려다보던 장삼이 전낭을 열었다.
반짝!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은자 두 냥!
“요 예쁜이들을 오늘 점심에 내가 직접 추원에서 받아 왔는데 무슨 거짓부렁.”
“서, 설마……?”
“못 믿겠으면 직접 가 보든가.”
추원을 나서는 종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다 자신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두 냥!
그렇다. 정말로 추 대인은 그가 성도에 거주하는 주민이란 확인을 마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은자 두 냥을 덥석 안겨 주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은자 두 냥이면 네 식구가 열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런 거금을 성도에서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지급하다니.
“어때, 내 말이 맞았지?”
장삼이 슬그머니 다가와 귀띔했다.
끄덕끄덕.
“이래도 관심 없나? 성도부의 성인 남녀라면 모두가 두 냥을 지니는 판국인데?”
“그, 그러게요.”
“어때? 판을 좀 크게 벌여 볼 생각 없어?”
“크게 판을 벌여요?”
“오석산 말이야.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사실이다. 오석산은 귀족 자제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서민들도 환장을 했었다.
실제 오석산을 복용할 경제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일부러 헐렁한 옷을 입고 산을 다니며[行山] 오석산 빼는 시늉을 하고 다녔다.
이런 행동을 하면 다른 이들이 오석산을 할 재력이 있나 보다, 하고 우러러볼까 봐.
한마디로 오석산은 서민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금 성도부 서민들 모두의 호주머니에 은자 두 냥이라는 거금이 들어갔지. 이때야말로 돈을 갈고리째 긁어모을 순간이 아니겠나?”
장삼의 유혹은 너무도 달콤했다.
신이 나서 골목을 벗어나는 종길을 바라보던 장삼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물까요?”
“백 중 아흔아홉은 물겠지.”
당찬일이 잘라 말했다.
“저놈을 택한 이유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겐 지독히 엄격했기 때문이야. 한마디로 종길이란 녀석은 지극히 이기적인 놈이란 말이지.”
“그 말뜻은?”
“돈을 벌 기회가 왔으니 앞뒤 잴 생각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거란 뜻이야.”
당찬일이 콧방귀를 뀌며 덧붙였다.
“남종석은 이전부터 오석산을 즐겼던 인간들에게 공급하는 놈이니 차라리 이해라도 하겠지만 저 인간은 완전히 달라.”
당찬일의 음성이 스산해졌다.
“아마 제 돈 벌 기회라면 갓난아이에게라도 오석산을 팔 거야.”
“그건 정말…… 끔찍하군요.”
“그러니 놈이 오석산 한 조각도 팔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 줬으면 좋겠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꿍짝을 맞췄더라도 이 정도면 수사하지 않을 수 없겠지.”
당찬일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 * *
……웅황과 석종유가 같이 출토되려면 음기 강한 동굴과 양지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미주산에는 이러한 지형이 대략 다섯 군데 있다.
“이런 실정입니다.”
흠차관 청년과 등을 맞대고 앉은 당찬일이 그간의 경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아직까지 당문에서는 극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가 없다는 게로군. 그나마 다행이야.”
한시름 덜었다는 얼굴로 웃던 흠차관 청년이 남종석에 관해서 듣자마자 와락 인상을 구겼다.
“역시 생각대로 관리 놈들이 끼어 있었군.”
이를 갈던 흠차관 청년이 당찬일의 계획을 듣고 엄한 음성으로 답했다.
“계획대로 진행해 주게. 또한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저항하는 자가 있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도록.”
흠차관 청년의 이 한마디로 당찬일에겐 커다란 권력이 하나 쥐어졌다.
당찬일은 고개를 끄덕이곤 객잔을 빠져나왔다.
* * *
종길이 장삼을 다시 찾아온 것은 당찬일이 예상한 것으로부터 고작 사흘이 지난 뒤였다.
그는 제법 당찬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초조한 빛을 숨기진 못했다.
“아직도 마음을 못 정한 거냐?”
장삼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정말로 안전한 것 맞죠?”
“당연하지.”
장삼이 한참을 안심시킨 뒤에야 종길은 허리춤에서 전낭 세 개를 풀었다.
촤르르르.
“물건은 최상입니다.”
“그래, 아주 좋군.”
순간 장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으나 종길은 그걸 오석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쾅!
“여기다!”
한 떼의 나졸들이 문짝을 부수고 들어왔다.
“이놈들!”
“어이쿠! 왜 이러십니까?”
나졸들에게 잡힌 장삼이 죽는다고 발버둥 치고.
“이런, 지미!”
물건을 회수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냅다 몸을 날린 종길은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붙잡히고 말았다.
“백주에 감히 마약을 거래해? 너희 놈들, 오늘 아주 잘 걸렸다!”
물론 나졸들은 장삼의 제보를 받은 인물들로서 아직 젊은 친구들이라 정의감이 넘치고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청년들이었다.
“당장 관아로 가자! 어서 압송해!”
나졸들의 수장 이혁의 눈에서 섬광이 일었다.
―형님,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이거 낭패인걸.
장삼은 할 수 있는 최선의 불쌍한 눈빛을 보냈지만 속마음은 이것이었다.
……뭘 어쩌면 좋냐? 계획대로 아주 잘됐는데.
* * *
마약의 구매자들에 대한 심문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종길이 피라미라는 건 나졸들도 알던 사실이었기에, 공급책의 물주가 남종석으로 드러나자 관아에선 지체 없이 그를 잡아들였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남종석이 관아로 들어서자마자 사정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