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165)
하지만, 나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내 뒤에 숨은 여자는 10대 후반에서 스무 살 사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여자애였다.
키는 160cm 정도 될까? 마치 ‘스트리트 파이터’의 여자 캐릭터 춘리처럼 양머리에 커다란 만두를 얹은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누구지?’
날 보고 쌤이라고 부르기에 혹시 우리 반 애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지만, 역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혹시 헌터 아카데미생일 수도 있으니까 도와주도록 하자.
“넌 뭐냐니까! 지금 날 무시해?”
“저기, 스티브 최 씨? 여자 분이 싫어하시는 거 같으니까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봉식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야, 지금 내가 이 꼴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너도 헌터 전용 병원에 있는 걸 보니 헌터 나부랭이인가 본데, 너랑 나는 급이 달라!”
고오오!
봉식이의 전신에서 사나운 투기가 일렁였다.
그 꼴을 보자니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봉식아.”
나는 나지막하게 봉식이의 이름을 부르며 지그시 그의 눈을 응시했다.
“계속 까불면 맞는다?”
“히이익!”
내가 살짝 손을 위로 들어 올리자, 봉식이가 갑자기 몸을 움츠리더니 비명을 질렀다.
때리지도 않았는데 왜 저래?
나뿐 아니라 봉식이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두, 두고 보자······.”
봉식이가 힘없이 중얼거리더니 꼬리만 강아지처럼 절뚝거리며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조금 측은하게 보이기까지 하다.
어쨌든 잘 해결된 것 같아서 뒤에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아카데미 학생이세요? 절 어떻게 아시죠?”
“어? 쌤? 왜 그러세요? 호, 혹시 절 잊어버리셨어요?”
그러자 당황한 여자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 그럴 리가! 그냥 농담한 거야, 하하! 오랜만이구나!”
“네! 오랜만이에요! 쌤!”
분명 뭔가 이 가냘파 보이는 목소리는 귀에 익기도 한데.
조금 반칙 같지만 난 황급히 내 권능을 써 보았다.
띠링!
-‘눈먼 신의 눈’ 고유 권능이 발동합니다.
[허저]암컷 인간이다. 사용한 지 19년 되었다.
특이 사항 : ‘한없이 베푸는 풍요’의 축복을 받았다.
헐.
그러니까 지금 얘가 허저라고?
분명 내가 알던 허저는 기골이 장대한 장군 같은 녀석이었는데.
띠링! 띠링!
갑작스런 허저의 변신(?)에 내가 멍하니 있을 때, 갓메이커가 격하게 반응했다.
-일호가 유일신님께 간절히 구원을 요청합니다!
일호? 설마 우리 일호에게 무슨 일이!
놀라서 황급히 갓메이커를 실행했다.
딴다다다~ 딴따다다~♬
‘이, 이게 뭐야?’
뭔가 예상과는 다르다.
화면 너머로 울려 퍼지는 경쾌한 결혼행진곡과 함께, 문어 공주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일호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문어의 촉수에 휘감겨 있던 일호가 날 보더니 애절하게 외쳤다.
-유일신님이시여! 제발 저를 도와주소서!
······시바.
혼란스럽다.
허저.
내가 지키지 못했었던 제자.
그리고 내가 다시 살린 제자.
그녀가 다시 살아 돌아온 모습을 보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 일이었다.
비록 그 겉모습이 내가 알던 모습과 조금, 아니 사실 심하게 다르다 할지라도.
하지만, 지금 나는 마치 대형 트럭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있었던 터라 허저의 변신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느껴졌다.
문어와 결혼이라니!
게, 게다가 촉수물이라니!
나는 일호가 탑을 등반하는 이야기를 종종 소설로 쓰기도 하는데, 이런 마니악한 내용을 썼다가는 틀림없이 연재 중지를 당할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멘탈을 수습했다.
“허, 허저야. 내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미안한데 병실에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을래?”
허저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넵! 쌤! 시원하게 보고 오세요!”
허저야, 그렇게 응원까지 해 줄 필요는 없는데.
아무튼 그녀에게 내 병실을 알려 주고 부리나케 화장실을 향해 달렸다.
철컥! 그리고 좌변기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끔찍한 결혼식이 벌어지고 있는 갓메이커를 들여다보았다.
“일호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 *
용사의 탑 44층 시공의 시련.
부활한 파괴신의 권속으로부터 ‘대우주 연맹’을 구원하는 시련.
대우주연맹이라고 하면 엄청난 규모가 상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병력 대부분이 이미 파괴신의 권속들에게 전멸당하고, 뿔뿔이 흩어져 현재 남은 것은 대우주연맹의 수장 에스메랄다 공주가 지휘하는 낡은 전함 1척뿐.
그들에게는 용사를 도울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흉측하고 강대하며 그 숫자도 압도적인 파괴신을 섬기는 괴수들.
일호는 우주를 가득 메울 기세인 그 끔찍한 존재들에게 맞서 홀로 싸웠다.
그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다.
“받아라! 필살 근육기갑포!”
-영혼기갑포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하아, 편할 대로 하십시오.
포기한 듯 낮게 중얼거리는 영혼기갑 NT2512R-1004의 음성과 함께 드래곤 머리 형상으로 변한 일호의 건틀렛에서 웅혼한 황금 광휘가 쏟아졌다.
번쩍!
콰아아아!
소행성처럼 거대한 눈깔 괴수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황금 섬광을 막으려는 듯, 전신의 촉수를 방패처럼 뭉치며 그것을 막으려 했다.
콰르르 콰콰쾅!
하지만, 일호의 근육기갑포는 종이처럼 촉수를 찢어발기며 괴수의 거대한 눈알을 꿰뚫었다.
-끼에에에에에엑!
끔찍한 단발마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았던 파괴신의 권속이 절명했다.
사방으로 흩뿌려진 괴수의 잔해 속에서 일호가 근육을 불끈거리며 힘차게 포효했다.
“근유우우욱! 마침내 승리하였도다! 보고 계십니까! 신이시여! 이 승리를 위대하고 자비로운 유일신 님께 바치나이다!”
결국 일호는 불굴의 투지와 영혼기갑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영혼 에너지 잔량이 1% 남았습니다! 파일럿 일호, 경고합니다! 더 이상 생명 유지 장치를 가동시키기 힘드니 속히 귀환하십시오! 우주에서는 유기 생명체인 파일럿 일호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알았다!”
영혼기갑의 경고를 들은 일호가 속히 전함으로 귀환했다.
슈우욱!
일호가 다가가자 전함의 출입구가 열리며 군인들이 그를 맞았다. 선두에 있던 장교가 손을 번쩍 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전군! 우주를 구한 대영웅 일호 님께 경례!”
척!
질서정연하고 절도 있는 자세로 군인들이 경의를 담아 일호에게 경례했다.
“고맙소! 근유욱!”
일호는 잠시 뻘쭘한 듯 당황했지만, 곧 그들의 동작을 흉내 내어 화답했다.
“결국 해내셨군요. 전설의 용사 일호 님.”
옥구슬처럼 낭랑한 음성이 울려 퍼지자 도열한 군인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대우주연맹의 수장이자 크툴루니아 왕국의 공주인 에스메랄다가 커다란 눈망울에 감격의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일호에게 다가왔다.
스륵, 스르륵.
그녀가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끈쩍한 촉수에서 흐르는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전 우주를 대표해 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일호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그리고 나 혼자 이룬 일이 아니오. 다 유일신께서 하사해 주신 이 신성한 갑옷이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터. 그러니 감사라면 유일신 님께 하시오.”
“유일신 님이라면 용사님이 모시는 신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일호가 신앙심으로 가득한 눈빛을 빛내며 유일신을 떠올렸다.
“참으로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분이지. 오늘따라 그분께서 내려 주신 설탕이 당기는구려.”
그때 영혼기갑이 일호에게 말했다.
-파일럿 일호, 영혼 에너지를 모두 소모했습니다. 더 이상 합체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영혼 에너지의 충전에 12시간의 쿨타임이 필요합니다.
“그러한가? 그 쿨타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이겠지. 고생하였다! 갑옷!”
-······제 코드명은 NT2512R-1004입니다. 파일럿 일호, 제 에너지 충전이 끝날 때까지 가급적 전투를 자제하시기를 권고합니다.
철컥, 철컥!
스스스스.
일호의 몸에서 영혼기갑이 분리되더니 그의 인벤토리로 사라졌다.
그러자 동시에 페어리퀸 아란의 거대화 스킬로 불렸던 일호의 육체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에스메랄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개미처럼 작아진 일호를 내려다보았다.
“언제 봐도 신비한 광경이군요. 이것이 용사님의 원래 모습인가요?”
“그렇소. 그런데 공주, 파괴신의 권속은 더 없소?”
“네, 반경 10광년 이내에 파괴신의 권속의 흔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바라 마지않던 평화를 찾은 것이죠. 전 우주를 대표해서 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건 좀 이상하군.”
일호는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
분명 파괴신의 권속들을 모두 쓰러뜨렸다면 시련이 끝났다는 메시지가 들렸을 텐데, 아직이었던 것이다.
혹시 아직 남은 파괴신의 잔당이 있다는 말인가?
에스메랄다가 촉수를 뻗어 일호의 몸을 잡아끌었다.
“용사님의 승전을 기념해 연회를 열었습니다. 함께하시죠.”
“공주, 아직 기뻐하긴 이른 것 같소.”
일호가 정중히 에스메랄다의 촉수를 뿌리쳤다.
“본인은 아무래도 아직 남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구려. 방심은 금물.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해 근육을 단련해야겠소.”
그리고 성큼성큼 훈련실로 이동했다.
“아아, 일호 님. 어찌 저리 늠름하시고 귀여우신지.”
에스메랄다가 그런 일호의 뒷모습을 몽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전함의 트레이닝 룸.
“근육 일만! 근육 일만하나!”
일호가 집채만 한 크기의 아령검을 검지 하나만으로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구슬땀을 흘렸다.
쿵!
그러나 곧 일호가 불만 어린 표정으로 아령검을 내려놓았다.
“이 우주란 곳은 참으로 불편하군!”
창밖으로 보이는 시커먼 먹물 같은 어둠이 가득한 밖에서는 숨을 쉴 수도 없는 데다가, 전함 내의 중력도 약해서 그가 원하는 만큼의 훈련 효과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서 이 시련을 끝내고 단단한 땅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고 싶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쇠질을 잔뜩 할 수 있을 테니까.
위이잉!
그때 트레이닝 룸의 문이 열리며 에스메랄다가 나타났다.
“일호 님, 훈련도 좋지만 식사를 거르시면 안 돼요.”
그 말을 들은 일호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사실 전함에서 주는 무미건조한 우주식은 별로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호의 마음을 읽었는지, 에스메랄다가 호호 웃으며 촉수에 든 커다란 뚜껑이 달린 접시를 일호 앞에 내려놓았다.
“이번 건 다를 거예요.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요리랍니다. 짠~!”
에스메랄다가 접시의 뚜껑을 열었다.
“오오!”
번쩍번쩍!
접시에 담긴 것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은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 찜 요리였다.
아름다운 겉모습뿐 아니라, 코를 찌르는 향긋한 냄새는 그 어떤 육고기도 따라오지 못할 깊은 풍미를 담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은하수를 유영하는 우주어(宇宙魚)랍니다. 산란기를 맞을 때마다 짝짓기를 위해 무려 1광년이나 되는 거리의 우주를 유영하는 낭만적인 물고기죠.”
“자, 잘 먹겠소!”
일호가 허겁지겁 물고기를 베어 물려 하자, 에스메랄다의 촉수가 그를 막았다.
“잠시만요, 아직 중요한 소스가 하나 남았답니다.”
“중요한 소스?”
일호가 의아해할 때 에스메랄다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아악!
일호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에스메랄다가 요리에 갑자기 검은 먹물을 뿌려 버린 것이다.
“자, 이제 드세요.”
“······.”
일호는 검은 먹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요리를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사나이가 어찌 여인이 자신을 위해 만든 요리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잘 먹겠소!”
일호가 눈을 질끈 감고 시커먼 먹물이 묻은 우주어의 몸통을 크게 베어 물었다.
오물오물!
꿀꺽!
순간, 일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먹물을 뿌려서 끔찍한 맛이 날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최상급의 조미료를 뿌린 것처럼 감칠맛이 아주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육즙이 잔뜩 배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우주어 요리의 밸런스를 적절히 잡아 주었다.
“오오, 엄청난 맛이오! 내가 여태 먹어 온 요리 중 최고요!”
“호호,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뜨거울 때 많이 드세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