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166)
일호가 걸신들린 것처럼 우주어를 탐했다. 그보다 수십 배는 커다란 우주어가 순식간에 뼈만 남고 사라지고 있었다.
“호호, 요리는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드셔요.”
그리고 점점 쌓여 가는 빈 접시들.
잠시 후, 일호가 산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볼록 내민 채 거친 숨을 헐떡였다. 그의 옆에서 에스메랄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사랑스러운 눈으로 일호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먹물을 많이 뿜은 건 처음이에요. 어때요? 제 요리는 마음에 드셨나요?”
일호가 엄지를 불쑥 들어 올렸다.
“최고였소! 미모를 겸비하신 데다 요리까지 잘하시다니! 공주님과 결혼하실 분은 참으로 행복하시겠구려!”
“아이 참, 부끄럽습니다.”
에스메랄다가 붉어진 뺨을 촉수로 어루만지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잠시 주저하더니 용기를 낸 듯 일호에게 조심스레 속삭였다.
“일호 님, 사실 저희 고향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신이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권하며 구애하는 풍습이 있답니다.”
“오, 그런 풍습이! 참으로 애정이 넘치는 좋은 풍습이구려!”
일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일호는 문득 고향의 성녀 앤티를 떠올렸다.
감히 자신이 넘볼 수 없는 성스럽고 고결하고 아름다우신 분.
감히 그분에게 구애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앤티가 드셔 주신다면 그 얼마나 행복할까.
“와아! 일호 님! 너무너무 맛있어요! 이 요리는 뭐예요?”
“껄껄껄! 이것은 제가 우주에서 배워 온 요리법이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네! 너무 행복해요!”
쿵! 쿵! 쿵!
상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스윽.
그때 행복한 상상의 나래에 빠진 일호에게 에스메달라가 가까이 다가왔다.
마침 잘됐다 싶어 일호가 이 우주어 요리의 레시피를 물어 보려 할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일호 님, 저 에스메랄다와 함께 이 도탄에 빠진 대우주를 구원해 주세요. 우리의 우주에는 용사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응? 이미 구하고 있소만?”
그러자 우주처럼 어두운 에스메랄다의 눈동자에 별빛 같은 광채가 어렸다.
“아니요. 이건 제 반려가 되어 달라는 뜻입니다. 위대한 용사 일호 님. 저와 결혼해서 대우주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어 주세요.”
“아니요. 이건 제 반려가 되어 달라는 뜻입니다. 위대한 용사 일호 님. 저와 결혼해서 대우주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어 주세요.”
갑작스러운 에스메랄다의 고백에 당황한 일호였지만, 황급히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정중히 그녀의 촉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공주님의 마음은 고맙지만, 나에게는 이미 평생을 은애하는 분이 있소. 그리고 나는 근육만 아는 무지렁이일 뿐, 감히 황제의 재목이 아니오.”
“겸손하시군요. 파괴신의 주구들을 홀로 쓰러뜨려 우주의 평화를 가져온 용사가 그 자격이 부족하다면 그 누구에게 황제의 자격이 있을까요?”
스륵, 스르륵.
촉수가 유혹하듯 은근히 일호의 몸을 어루만졌다.
“본래 영웅에게는 많은 여인이 따르는 법. 일호 님, 당신이 사랑하는 그 여인분과 맺어지세요. 저는 그저 황가의 정통성을 잇는 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저와 결혼해서 황제가 되세요. 그렇게 되면 이 우주의 모든 부귀영화가 일호 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꿀처럼 달콤한 에스메랄다의 음성과 함께 끈적한 촉수가 일호의 은밀한 부분을 향해 뻗어 갔다.
짜악!
순간 일호가 단호히 촉수를 내쳤다.
“이, 일호 님?”
“사람 잘못 보시었소! 나 일호는 영웅이 아니오! 그저 한 여인을 사랑하고 지켜 주고 싶은 평범한 한 명의 사내일 뿐!”
“너무하세요······.”
에스메랄다가 붉게 물든 촉수를 매만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공주!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하겠소! 그럼 이만!”
일호가 단호히 그녀에게 등을 돌리며 밖으로 나서려 했다.
“······일호 님이 사랑한다는 그 여자분이 부럽군요.”
동시에 에스메랄다의 음성에 서릿발처럼 차가운 감정이 서렸다.
“그리고 밉습니다. 저를 결국 나쁜 여자로 만드시는군요, 일호 님.”
휘릭! 휘리릭!
“고, 공주?!”
일호의 전신을 에스메랄다의 촉수가 휘감았다.
“으윽!”
당황한 일호가 촉수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일호는 크게 놀랐다.
설마 이 연약한 여인이 이 정도의 괴력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강체 스킬이나 거대화를 쓴다면 벗어나지 못할 것은 없겠지만, 그러다 그녀의 옥체가 다칠까 두려웠다.
일호가 간곡히 외쳤다.
“크윽, 진정하시오! 공주!”
“하아하아! 제 눈을 보세요, 일호 님.”
열에 들뜬 숨을 내뱉으며 에스메랄다가 일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파괴신의 권속이 남아 있냐 물으셨지요? 네, 아직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추악하고 어리석은 여인이!”
츠츠츠!
사이한 광채를 띤 에스메랄다의 눈동자가 일호의 영혼을 꿰뚫을 듯 빛났다.
“으아아아!”
동시에 일호의 의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 * *
잠시 후.
일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망망대해 같은 텅 빈 백색의 공간에 있었다.
‘이곳은 어디지?’
사실 그곳은 실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에스메랄다가 만들어 낸 정신 결계였다.
일호는 정확히 이 상황을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뭔가 에스메랄다에게 공격을 당한 것은 알았다.
‘어서 탈출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이곳에서 오래 머무르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유우우욱!”
일호가 전신의 근육을 개방했다.
불끈불끈!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강인한 근육을 덧씌운 육체로 변신한 일호가 철퇴처럼 주먹을 바닥에 내리쳤다.
쾅! 쾅! 콰콰쾅!
전투기가 폭격하는 것 같은 광음이 울려 퍼졌지만, 백색의 공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실 정신 계열 능력자의 암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력한 의지와 정신력이다.
일호의 행동은 그저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했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시간이 흘렀다.
정신 공간의 시간은 현실과 같이 흐르지 않는다.
반년이 흘렀다.
쾅! 콰콰쾅! 콰콰쾅!
그럼에도 일호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그의 주먹은 그 형상을 잃었다.
그것은 그저 한때 뼈와 살로 이루어졌었던 뭔가였다.
하지만, 그것에는 적에게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동포와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려는 비원이 담겨 있었다.
쩌적! 쩌저적!
처음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던 백색의 공간이, 이미 그 형체를 잃은 일호의 주먹이 내리꽂힐 때마다 균열이 일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근유우우욱 펀치다!”
콰콰콰쾅!
일호가 더욱 가열하게 균열을 향해 혼신의 힘을 퍼부었다.
채채챙!
스스스스!
그러자 균열의 파편이 흩뿌려지며, 일호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기억이 스며들었다.
‘음? 이건?’
마치 용궁을 닮은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궁궐.
“흐윽, 흐으윽!”
거대한 진주조개 모양의 침실에서 별빛 모양의 왕관을 쓴 아름다운 여인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여인이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울지 말거라, 내 사랑스러운 에스메랄다.”
아이가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촉수로 훔치며 여인에게 물었다.
“흑흑흑! 왜 저는 어마마마와 다르게 이렇게 흉측한 모습인가요?”
“그것은 파괴신의 혈족인 우리 크툴루니아 왕족의 피를 짙게 이어받았다는 증거란다. 그러니 흉측하다 여기지 말거라.”
“파괴신이라 하면 전설로 내려오는, 세계를 멸망시키는 사악한 마신이잖아요. 어마마마, 그런 존재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 자체가 저주가 아닌가요?”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본래 파괴신 님은 사악한 존재가 아니셨다. 삶과 죽음이 서로 순환하며 만물의 조화를 이루어 내듯, 그분 또한 대우주의 섭리에 따라 행동하셨을 뿐이야.”
여인의 눈에 깊은 슬픔이 어렸다.
“하지만 창조신께서 소멸하시면서 창세의 조화가 깨진 탓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곳에 이르신, 가엾은 분이시란다. 우리는 파괴신 님의 후예로서 그분을 믿고 간절히 바라야 한다. 그분께서 언젠가 잃어버린 자신의 반려를 찾아 원래의 신격을 되찾으시기를.”
여인이 울고 있는 자신의 딸, 어린 에스메랄다를 품에 소중히 안았다.
“스스로를 흉측하다 여기지 말거라, 에스메랄다. 이 어미는 믿는다. 비록 네게 혈족의 증표가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아름답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내 소중한 보물을 아름답다 해 줄 반려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파스스스.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누군가의 기억과 함께 일호의 마지막 일격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콰르르 콰콰쾅!
그러자 일호를 속박하던 정신 결계가 갈가리 찢기며, 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일호는 잠시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생한 촉수의 동상들이 사방에 널려 있고, 바닥과 벽에는 핏빛으로 자체 발광하는 해골들이 박혀 있다.
마치 저주받은 신전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장소.
딴다다다~ 딴따다다~.
하지만, 그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은 흥겨운 결혼행진곡이었다.
“깨어나셨군요.”
일호의 앞에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에스메랄다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처럼 일호 또한 몸에 딱 달라붙는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의지만으로 제 정신 결계를 빠져나오다니 과연 대단하세요.”
얼굴을 가린 베일 너머로 음울한 기운을 머금은 에스메랄다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식은 이미 끝났습니다. 일호 님.”
“겨, 결혼식?”
일호는 청천벽력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결혼을 했단 말인가?
하지만, 이 결혼식은 기묘했다.
이 음산하고 기이한 신전 같은 공간은 그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결혼을 축복해 줄 하객이 단 1명도 없는, 신랑과 신부밖에는 없는 쓸쓸한 결혼식. 그것도 신랑은 원하지도 않았던 강압적인 결혼식이다.
일호가 입고 있던 턱시도를 한 손으로 부우욱 찢어발기며 노호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공주! 이 결혼은 무효요!”
에스메랄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일호 님. 이미 우리의 결혼식은 정식으로 전 우주에 공표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저의 부군으로서 정식으로 대우주연맹의 황위 계승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이제 저 에스메랄다만 없다면 대우주연합의 황제로 즉위하실 수 있습니다.”
“닥치시오! 공주! 나는 황제의 자리에는 관심이 없다지 않았······!”
일호는 다시 격분했지만, 곧이어 들려온 그녀의 말에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지, 지금 뭐라 하시었소?”
“저를 죽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에게 물으셨지요, 남은 파괴신의 주구가 더 있느냐고? 네. 있습니다.”
에스메랄다의 촉수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바로 저 에스메랄다가 이 우주에 남아 있는 마지막 파괴신의 주구입니다. 일호 님, 어서 용사의 의무를 행하세요.”
“그, 그게 무슨 말이오? 공주. 당신이 파괴신의 주구(走狗)라니······.”
일호는 혼란스러웠다. 베일 안에서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나요? 제 기억을 엿보셨을 텐데요. 크룰루니아의 황족에게는 파괴신의 피가 흐른답니다.”
에스메랄다가 허공에 촉수를 들었다.
그러자 천장이 어둠에 감싸이며 일호가 전멸시켰던 괴수들의 영상이 떠올랐다.
거대한 눈알에 흉측한 촉수들을 두른, 파괴신을 섬기는 주구들.
“저들이 유독 우리 함대만을 노리고 공격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다 제 몸에 흐르는 피에 이끌려 나타난 것입니다. 자신들의 위에 군림하여 우주를 멸망시킬 여왕을 갈구하며!”
슈욱, 슈우욱!
허공에 떠 있던 괴수들의 영상이 빨려 들어가듯 에스메랄다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저들은 당신의 손에 죽었지만, 그들이 남긴 파괴의 원념은 그들의 주인인 저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드드드드!
그들이 있던 신전이, 아니 그것을 넘어 소행성 크기의 전함이 에스메랄다가 발하는 기운에 요동쳤다.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지만, 이 파괴의 원념은 곧 제 의지를 넘어 폭주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전에 일호 님, 당신이 끝내주세요.”
마치 신랑의 키스를 기다리는 신부처럼, 촉수를 가슴에 가지런히 모은 에스메달다. 그녀는 일호가 자신의 목숨을 끊어 주기를 애원했다.
“크윽!”
일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주먹을 들었다.
고오오!
에스메랄다에게서 뿜어지는 이 사악한 기운은 분명 파괴신의 것이 틀림없었다.
용사로서 세상을 위해 반드시 멸절해야 하는 존재!
하지만, 그는 에스메랄다에게 주먹을 휘두를 수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소······.”
일호가 피가 뚝뚝 흐르는 주먹을 아래로 내렸다.
어찌 사나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을 죽일 수 있겠는가.
“너무하시는군요, 일호 님. 제게 사랑을 줄 수 없다면 대신 죽음이라도 주시길 바랐건만······.”
흐느끼듯 에스메랄다의 어깨가 흔들렸다.
“정녕 저를 죽이지 않겠다면······.”
에스메랄다의 베일 안에서 흉흉하고 불길한 안광이 번뜩였다.
“파괴신의 혈족으로서 내가 너를 죽이겠다! 용사 일호!”
찌지직! 차아악!
에스메랄다가 입고 있던 순백의 드레스가 갈가리 찢겨 나가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수백 가닥의 촉수들이 일호를 집어삼켰다.
딴다다다~ 딴따다다~.
흥겹게 울려 퍼지던 결혼행진곡이 장송곡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죽어! 죽어라! 일호!
원독 어린 괴성을 내지르는 에스메랄다의 모습은 이미 그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