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90)
“헐?”
***
불사 길드의 본사는 다른 길드들과는 달리 고즈넉한 멋을 풍기는 한옥이다.
길드장실.
고사득은 기분이 좋았다.
태양 길드의 백건 애송이 놈을 누르고, 드디어 김제에 발생한 사룡 던전의 토벌권을 손에 넣은 것이다.
던전 토벌권을 얻기 위한 밑작업에 돈을 수백억을 썼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가 사룡 던전에서 노리는 것은 단 하나, 그곳의 보스인 사룡이었으니까.
“끌끌, 흥분되는구나.”
전부터 꼭 가지고 싶었던 놈이었다.
사령 계열의 몬스터 중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사룡을 손에 넣는다면 불사 길드는 대한민국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로 거듭날 것이다.
시체와 교감이 가능한 자신의 스킬이라면 리스크는 있을지언정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보고 있느냐, 릴리스.”
고사득이 책상에 있는 사진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손녀인 명희를 꼭 닮은 외모의 여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곧이다. 네 원수를 갚을 날이 멀지 않았음이야.”
까드득!
부서질 듯 이를 악문 고사득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 증오스러운 나락용을 죽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룡이 필요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사역마들을 좀 더 강화할 수단이······.
“아차, 토벌권 때문에 중요한 걸 깜박하고 있었군.”
그 수단은 이미 손에 넣었다.
고사득이 하데스를 진화시킨 유일신을 떠올리며 검은 손톱이 돋은 자신의 손을 슥슥 문질렀다.
“끌끌, 지금쯤이면 정신을 차렸겠지.”
무슨 게이니 뭐니 시답잖은 핑계를 대면서 감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손녀를 거부하다니!
아무리 손녀가 귀신 꼴을 했어도 말이 안 되는 일.
그래서 벌을 주었다.
고사득이 손가락을 튕겼다.
쩌적! 쩌저적!
그러자 공간이 갈라지며 고사득의 고유 공간이 열렸다.
“그 정도면 반성했겠지. 이제 그만 나오게. 손녀사위.”
근엄한 얼굴로 유일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고사득이었지만.
조용.
침묵이 감돌았다.
고사득의 검은 입술이 살짝 뒤틀렸다.
“끌끌, 걸어 나올 힘도 없는 겐가?”
하긴 소지옥이라고까지 불리는 악명 높은 자신의 아공간에 가둬 두면 아무리 강단 있는 놈이라도 채 반나절을 버티지 못했다.
고사득이 자신의 사역마들에게 명령했다.
“야차병들아, 내 손녀사위를 데려오너라.”
하지만, 역시 조용.
“······뭐 하느냐? 내 명이 들리지 않느냐!”
고사득이 버럭 소리쳤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설마?’
드르륵!
불길한 예감을 느낀 고사득이 황급히 자리에서 갈라진 자신의 아공간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 없어?”
고사득은 자신의 아공간에 무려 일만이 넘는 야차병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단 한 명의 야차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배가 갈린 돼지 저금통처럼 텅텅 비어있던 것이다.
“야차병! 야차 장군! 게 아무도 없느냐?!”
고사득이 애타게 야차병들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순간 고사득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자신이 이곳에 가두었던 그 얼빵한 얼굴의 기생오라비 같은 놈!
유일신!
까드득!
제법 능력이 뛰어나다 생각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맞으려고 했지만, 설마 평생 모은 야차병을 도둑맞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이 도둑놈이! 네 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더냐!”
고사득이 까드득 이를 갈며 해골이 새겨진 비상벨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끼에에에에!
날카로운 귀곡성이 울려 퍼지며 검은 양복을 입은 불사 길드원들이 모두 집합했다.
“무슨 일입니까! 길드장님!”
“긴급 사태다! 지금 당장 지옥고(地獄庫)를 개방하라!”
길드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지, 지옥고를 말씀입니까? 서, 설마 SSS급 게이트라도 발생한 겁니까?”
“그보다 더한 일이다!”
고사득의 눈동자가 분노와 광기로 넘실거렸다.
감히 목숨보다 아끼는 자신의 야차병, 특히 야차 대장군을 훔쳐 간 죄는 전신을 갈가리 찢어발겨야 풀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이 야밤중에 무슨 일이에요?”
“아함, 밤에 못 자면 키 안 크는데······.”
뒤늦게 명희와 졸린 듯 눈을 비비는 명지가 그곳에 도착했다.
“너희들도 따라와라! 할머니가 납치됐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끌끌, 이 도둑놈! 어디 숨었느냐!”
고사득이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했다.
끌끌, 유일신 놈은 모르리라.
자신과 야차병들은 일심동체나 마찬가지다.
어디로 숨었든 자신과 심령이 연결된 그들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
“뭐, 뭐냐.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 서, 설마?!”
고사득의 안색이 표백하듯 새하얗게 질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의 검은 입술조차 하얗게 질려 있었다.
“리, 릴리스! 어디 있소!”
게다가 너무나 사랑했기에 차마 땅에 묻지도 못하고 사역마로 만들었던 야차 대장군, 그의 아내 릴리스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소멸한 것처럼.
주르륵!
“하, 할아버님?”
명희는 매우 놀랐다.
고사득의 눈에서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띠리리!
그때 집무실의 전화기가 울렸다.
부길드장이 소리 없이 오열하는 고사득 대신 전화기를 받았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길드장님!”
“큰일? 하하, 내게 지금보다 큰일이 날 수 있단 말이냐?”
고사득이 순식간에 몇 년은 늙어버린 얼굴로 힘없이 물었다.
“우, 우리 길드가 낙찰받은 사룡 던전이 방금 자연 소멸했답니다!”
S급의 던전이 자연 소멸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 일어났다.
하필이면 사룡을 손에 넣기 위해 불사 길드가 수백억을 쓴 그 던전에.
비틀.
쿵!
고사득이 게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꺅! 할아버님!”
“할아버지! 정신 차려요!”
***
나는 고뇌하고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나는 고사득의 아공간에서 탈출했다.
다행히 ON/OFF 기능을 가진 내 ‘짓뭉개는 검지’의 권능을 쓰자 아공간이 갈라졌다.
그 틈을 통해 이렇게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우우우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부엉이 울음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지는 깊은 산속이라는 것은 일단 별개로 치고 말이다.
이건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일이었으니까.
나는 주변을 벌떼처럼 에워싸고 있는 존재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만 너희 주인한테로 돌아가지 않겠니?”
절레절레!
그들이 일제히 고개를 세차게 젓더니 작은 날개를 파닥파닥하며 내 머리 위로 날았다.
샤락, 샤라락!
그리고 향기로운 꽃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크기는 겨우 참새만 했지만, 그 숫자가 무려 일만이 넘다 보니 순식간에 내 몸이 꽃 속에 파묻혔다.
대체 이건 어디서 꺾어온 거니?
내 눈이 나를 꽃으로 질식사시키려는 작고 깜찍한 천사들을 감정했다.
[유일신의 천사병]-본래 고사득의 시귀 사역마 야차병이였지만, 선신의 힘으로 정화되어 천사로 다시 태어났다.
특이 사항 : 당신을 사랑한다.
아아, 사랑. 그 숭고하고 아름다운 단어여.
[‘한없이 베푸는 풍요’께서 흐뭇한 얼굴로 선신의 상징인 천사들을 권속으로 삼은 것을 축하합니다.]“······풍요 누님, 애들을 뭐에 쓸 수 있는데요?”
[‘한없이 베푸는 풍요’께서 양주먹을 불끈 쥐며 천사는 귀엽다고 힘차게 외칩니다.]하아, 나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며 꽃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슥슥.
파닥파닥 내 주위를 나는 천사들이 위로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으득! 으드득!
꿀꺽!
전신에 검은 어둠을 두르고 있는 이족보행의 악어 괴물이 씹고 있는 팔을 삼켰다.
악어 괴물의 발치에는 그 팔의 주인인 30대의 남자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실로 두려운 광경이다.
하지만, 그 남자의 정체를 안다면 그 공포는 배가 될 것이다.
남자는 바로 극한의 냉기를 조종하는 이능으로 명성 높은 브라질의 S급 헌터 카를로스였으니까.
콰드득!
악어 괴물이 손을 뻗어 그의 오른 다리를 산채로 뜯어냈다.
“끄아아악!”
으적으적!
카를로스의 다리를 씹는 악어 괴물의 눈동자가 자신의 발아래 있는 작디작은 곤충을 담았다.
“다시 말해봐라, 거미야. 네가 내 어미의 원수를 갚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거미, 제국의 신녀 아라크네가 고개를 조아리며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위대하고 잔혹한 파괴신의 사도 구스타프. 그분의 적자 알파시여.”
유혹하는 색정의 밤과 릴리스
93화.
“그렇습니다. 위대하고 잔혹한 파괴신의 사도 구스타프. 그분의 적자 알파시여.”
파충류 특유의 서늘한 눈동자가 자신의 발치에 있는 아라크네를 담았다.
피로 젖은 알파의 송곳니가 섬뜩하게 드러났다.
“크륵!”
휘리릭!
알파의 꼬리가 채찍처럼 아라크네를 내리쳤다.
“히익!”
자신을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에 아라크네는 죽음을 느꼈다.
콰콰쾅!
“헉! 헉!”
아라크네가 가쁜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지척에 구스타프의 꼬리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만약 꼬리가 한 치만 옆으로 움직였다면 그녀의 몸은 흔적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알파가 주저앉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아라크네를 내려다보며 오만하게 말했다.
“크륵, 내가 겨우 너 같은 벌레 따위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나? 벌레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신기하지만, 너 같은 미물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
크륵, 크륵!
알파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던 악어 괴물 셋이 동조하듯 아라크네를 비웃었다.
아라크네가 이를 악물었다.
‘이 빌어먹을 괴물 도마뱀이!’
제국의 신녀인 자신이 벌레 취급이나 받다니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이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으니.
무려 천억의 제국군과 신의 사도를 셋이나 잃었다.
황제와 제국의 신들이 자신을 총애하긴 했지만, 이 실수는 죽음으로밖에 만회할 수 없는 크나큰 실책.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미국의 잔혹한 악신 유일신의 목을 베고 돌아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 덩치만 커다란 도마뱀은 안성맞춤인 존재다.
사도 급의 실력을 갖춘 데다 구스타프의 다른 자식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아라크네가 그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
치이이익!
알파의 꼬리가 박힌 주위로 서릿발 같은 냉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