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132
상상도 못한 방법.
하지만 그 누구도 내 방법보다 나은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저기 한 검사님 말씀의 뜻은 알겠습니다만, 저희가 파악한 통화 내용은 별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냥 친인척들에게 한국이 좋다는 말과 보좌진들의 업무상 통화 말고는.
“그건 김수철 장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전기 속에서 들려오는 K1 국장의 목소리에 답했다.
“만약 클럽과 방산비리에 관한 비밀 통화를 위해 일본에 갔다면, 내각정보조사실에서 듣기엔 별 볼일 없는 내용입니다.”
― 그건 그렇지만… 정보의 질이 다릅니다. 참의원 통화 내용은 정말 아무것도 없지만, 검사님 말대로라면 김수철 장관의 통화 내용은 꽤 중요한 것입니다. 일본 쪽과는 상관없다 해도 말이죠. 만약 나중에 한국에서 이번 사건이 붉어진다면 내각정보조사실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는 꽤 중요한 자료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입니다.
“네. 국장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내각정보조사실에서는 아직 모르죠. 참의원 통화 내용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요.”
정보는 제목만 보고 살지 말지 결정한다.
내용을 공개하는 순간 정보의 값어치는 0원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런 순리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교환하자고 제안만 해 주십시오. 분명 반응이 있을 겁니다.”
― 흠… 일단 차장님 생각은 어떠신지.
무전기를 듣고 있던 백성원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괜히 문제될 일을 하려 할까?”
“내각정보조사실에서 김수철 장관의 통화 내용을 유출시킬 수 있을 정도의 직급이면 국제부장 정도입니다. 즉 위쪽 보고 없이 차장님과 국제부장의 대화만으로도 문제없이 교환할 수 있을 겁니다. 일본 쪽에서 판단하길 김수철 장관의 통화 내용에 이상이 없으니 중요 문서로 분류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하하… 도저히 반박을 할 수가 없네. 자네 진짜 정체가 뭔가?”
톡톡.
유리창을 치며 눈치로 밖에 있던 K1 국장에게 신호를 주는 백성원.
신호를 받은 K1 국장이 자신에 옆에 있던 핫라인 전화를 들어 일본말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게 핫라인으로 통화하고 있으니 금방 답이 올 걸세.”
이윽고, K1 국장이 한 장의 서류를 들고 회의실로 직접 들어왔다.
“내각정보조사실에서 답변이 왔습니다.”
* * *
― 접니다.
― 대기하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 지금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가만히 있으란 말입니까! 국회와 청와대까지 클럽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 대기하시죠.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 이봐요!
회의실에 흘러나오는 목소리.
김수철 장관과 남자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이었다.
― 목소리 낮추시죠. 한국은 못 들어도 일본 측은 듣고 있으니.
― 당신과 전화 한 통 하려고 비행기 타고 두 시간을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고작 답변이 대기하라뇨.
― 머리가 나빠 이해를 못 하시는 것 같으니 말씀드리죠. 당신 이미 꼬리가 밟혔습니다. 그리고 클럽은 당신이란 꼬리 때문에 정체가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 그래서… 지금 저를 버리겠다는 겁니까?
― 지금 하시는 행동을 보니 그래야 될지도 모르겠군요.
― 하하, 제가 혼자 죽을 것 같습니까?
일본의 정보기관인 내각정보조사실에서 보내온 김수철 장관의 통화 내용 녹음 파일 중 가장 최근 파일.
그 내용을 듣고 있던 우리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집중하고 있었다.
― 하하, 그럼 저희는 장관님 혼자 죽일 것 같습니까?
― 뭐……?
― 저희에게 있어 장관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파렴치한 거짓말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닙니다. 또한 클럽은 법의 구속을 받지 않죠. 즉,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설마… 가족이라도 건드리겠다는 건가?
― 그건 장관님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하하.
딸깍.
남자의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와 함께 녹음 파일은 끝이 났다.
“하…….”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국장님, 김수철 장관과 통화하는 남자 성문 분석 가능한가요?”
어느새 회의실로 들어와 녹음 파일을 같이 듣고 있던 K1 국장에게 물었다.
하지만 내 제안의 답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씁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는 K1 국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각정보조사실에서 파일을 받자마자 성문 분석을 해 보았는데 신원 파악이 안 됩니다.”
“그렇다는 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꼭 그런 건 아니고요. 국가인재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이 안 된 사람이거나 평범한 국민 혹은 미성년자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한 검사님 말대로 한국말을 능숙하게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사람일 수도 있고요.”
“조금 더 자세히 파악해 볼 수는 없을까요?”
“일단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통화 내용에 성문을 대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나와 K1 국장의 대화가 끝나자 백성원 차장은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 통화 내용이 한 검사가 김수철 장관이 클럽 소속이라는 걸 알고 난 뒤였어.”
“정확히 언제입니까?”
“삼일 전.”
우리 내부의 프락치가 있다는 건 이제 확실하다.
김수철 장관의 통화 내용을 되짚어 보면 국회와 청와대에 클럽 얘기가 돌고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운영위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 혹은 국정원 내부의 고위 관계자가 흘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높은 가능성은 지금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일 것이다.
일단… 그건 천천히 생각하고.
지금 중요한 건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이다.
“최근 순서보다 가장 처음 통화 먼저 듣는 게 어떻습니까?”
끄덕끄덕.
회의실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지.”
백성원 차장 역시 모두의 끄덕거림을 보고는 K1 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탁.
― 급한 용무가 있으시면 일본 공항에서 보안 번호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어차피 연결 안 되는 번호이니 꼭 보안 사항 지켜주시고요.
― 네! 알겠습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김수철 장관의 목소리.
무언가 기대감이 잔뜩 들어 있는 목소리였다.
“가장 처음 통화는 언제죠?”
“3년 전입니다.”
“그럼…….”
“네. 김수철 장관이 육군참모총장 시절에 처음 통화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육사 수석 졸업에 야전을 돌다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김수철.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고, 능력 또한 출중했다고 평가받았다.
국정원에서 파악한 바에 의하면 말이다.
“육군참모총장 임명 후 일주일 뒤에 처음 통화를 했군요.”
“네, 맞습니다.”
모니터에 표시된 김수철 장관의 프로필을 보며 말했다.
통화 내용을 듣는 것에 집중해 몰랐던 게 있었다.
백성원 차장보다는 어리고, 나보다는 한참 위인 K1 국장.
어림잡아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나보다 컴퓨터를 만지는 게 능숙했다.
“이건… 국방부에 있는 김수철 장관이 육사 졸업 후 지금까지의 평가 내용이 담겨 있는 서류입니다.”
그는 즉각적으로 타자를 두드리며 모니터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바로바로 띄워 주었다.
“국정원에 접근 권한이 어디까지 있는 거죠?”
“하하… 보안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국가 기관의 모든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또 국정원의 정보력에 놀랐다.
K1 국장의 속도가 빠른 것도 있지만 어떤 정보든 모니터 화면에 띄우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혹시 검찰도……?”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하하”
“휴…….”
다만, 그런 사실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국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또 그게 무조건 국민을 위해서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 검사님.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희도 시도 때도 없이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처럼 강남전단에 저희가 들어올 수도 없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여러분이 계신 여기 고려전단은 국정원 블랙요원들이 작전 회의를 위해 모이는 곳입니다. 즉, 대한민국 국익에 위협이 생겼을 때나, 혹은 대한민국 국민이 위험에 빠졌을 때만 열리는 곳이란 말입니다.”
“이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이군요.”
“네, 맞습니다. 대한민국 곳곳에 블랙요원들을 위한 지부가 있지만, 특히 여기 고려전단은 대한민국 국가기관 어디나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정원에서 20년 넘게 일을 해 왔지만 고려전단 컴퓨터를 만진 건 지금이 두 번째입니다.”
“그렇군요…….”
그의 말을 백퍼센트 신뢰하지는 않는다.
결국 국정원은 한 사람의 뜻으로 움직이는 기관이고, 그 사람의 말이 곧 법으로 정해지는 곳이니까.
또 한 그 한 사람의 말로 움직이는 기관의 권한 역시 너무도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들어 볼까요?”
“네.”
탁.
― 정기 회의는 백숙집에서 이루어지며, 회의 내용은 부띠크 호텔에서 알려드립니다.
― 네, 알겠습니다.
K1 국장이 컴퓨터 엔터를 치자, 다시 김수철 장관과 남자의 목소리가 회의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 모쪼록 클럽의 일원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그리고 클럽의 일원이 된 걸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식.
김수철 장관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과거 조폭 시절 많이 들어본 말투.
나에게 무릎을 꿇고, 큰 목소리로 말하던 어떤 조직원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똑같지 않은가.
클럽이든 조폭이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인 범죄단체.
한쪽은 주먹을 쓰고, 한쪽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한다.
누가 더 나쁘다 경쟁할 순 없지만, 한쪽은 선량한 시민들에게 다른 한쪽은 대한민국 전체에게 피해를 주고 있을 것이다.
“이건 여기서 끝이고… 다음 통화 재생하겠습니다.”
탁.
그 뒤로도 몇 번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
다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클럽 역시 일본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 말을 아꼈다.
“일단 시간부터 아끼죠.”
쓸데없는 내용에 지루해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시간을 아끼다니요?”
그리고 내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정대필 수사관이었다.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인원이 쓸데없는 통화 내용을 듣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걸.
“국장님, 일단 처음 통화 내용에 나온 부띠크 호텔과 백숙집 위치 좀 알려 주시겠어요?”
“잠시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위치.
여의도에 있는 고급 호텔과 산속에 있는 오래된 백숙집이었다.
“특별한 점은 없어 보이네요.”
“아니요. 두 곳 다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게 왜 이상한 거죠?”
나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고, K1 국장은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한다.
“호텔이야 회원제로 운영된다 치지만, 30년 된 백숙집을 회원제로 운영한다?”
“오래됐으면 그럴 수도 있죠.”
“국장님, 회원제로 운영되는 호텔이나 음식점에 가 보신 적 있으십니까?”
“네, 있죠.”
“그럼 잘 아시겠네요. 저기 나와 있는 매출이 말이 안 된다는 걸.”
여의도 한복판 노른자 땅에 세워진 호텔.
사업 신고서를 보면 땅값은 100억이 넘고, 건물을 세우는 데 역시 수백억을 들였다.
하지만 방 100개짜리 고급 호텔의 연매출은 고작 5억.
적은 돈이 아니지만 투자 규모로 보았을 때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다.
“어, 그러게요…….”
“매출이 저런데도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회원제로 운영될 필요도 없는 호텔이죠. 자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의도에서도 가장 좋은 위치에 있거든요.”
“한 검사님 말씀 들어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백숙집 역시 월이 아니라 연 매출이 100만 원도 안 나오고 있습니다.”
즉, 평범한 호텔과 백숙집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 그럼 저희는 나가 보겠습니다.”
나와 K1 국장의 대화가 오가는 순간, 정대필과 지성한 수사관, 그리고 박하준 사무관은 짐을 싸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하하, 그건 한 검사님한테 여쭈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피식.
당황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보였다.
“역시 우리 정 수사관님이랑 같이 일하니까 정말 편하다니까.”
“검사님 덕분에 대검까지 왔는데 밥값은 해야죠.”
부띠크 호텔과 백숙집에 대한 정보, 압수 수색과 클럽에 관한 연관성.
또 김수철 장관과의 관계까지.
그 모든 걸 알아보라는 지시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눈치챈 것이다.
쾅.
“어디들 가시는 거죠?”
“부띠크 호텔과 백숙집 가시는 겁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하다보면 눈빛만 봐도 통할 때가 있죠.”
“하하하!”
그들이 나가고 그들의 목적지를 말하자 회의실 안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하다 대단해. 이제 2년차 검사가 수사관들한테 눈빛으로 지시를 하다니.”
“제가 대단한 게 아니라 수사관님들이 능력 있으신 겁니다. 그리고 부장님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하여튼 가끔 재수 없을 때가 있다니까.”
분위기는 가벼워졌고, 김수철 장관의 통화 내용은 계속 들려왔다.
― 지시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 잘하셨습니다. 곧 합참의장 후보에 총장님 이름이 거론될 겁니다.
그리고 가벼워졌던 분위기는 다시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