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쿠웅!
폭군 다람쥐의 돌격이 다시 한번 카르페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커다란 앞니가 동굴 벽에 부딪혔고, 굉음과 함께 돌 부스러기가 튀어 올랐다.
“뀨우우웃!”
분한 것일까. 다람쥐는 의미 모를 울음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몸 여기저기에 새겨진 자잘한 상처들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말할 것도 없이 전부 카르페의 작품이었다.
“더럽게 사납네. 이게 무슨 다람쥐야? 멧돼지가 따로 없구만.”
-투덜거리면서도 잘만 피하는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이거죠.”
난생처음 만난 야수형 몬스터에 당황한 것도 잠시, 카르페는 순식간에 적응을 마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공격 루트가 너무 단순해서 적응하고 말 것도 없었지만.
카르페는 이대로 1시간 이상 싸운다고 해도, 한 대도 맞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피하는 건 문제가 없는데…… 딜이 딸리네요. 꽤 찌른 거 같은데 끄떡도 없네.”
-레전더리 던전이니까. 강화된 건 공격력과 속도뿐만이 아니지.
방어력과 체력 역시 일반 등급 던전의 몬스터와는 비교를 거부한다.
만약, 지금 이 던전의 다람쥐 한 마리가 필드로 나간다면 초보자 도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도시로 변할 터였다.
쾅!
다람쥐가 다시 한번 카르페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카르페의 검이 다람쥐의 몸을 긋고 지나갔다. 붉은 실선과 함께 핏물이 허공에 살짝 튀어 올랐다.
“이대로 치고 빠지는 식으로 하면 안전하게 잡을 수는 있는데.”
-대신 오래 걸리겠지. 이 속도로 가다가는 게릴라 퀘스트 때까지 시간 못 맞출걸?
“그건 안 되죠. 쿨타임 최소 일주일짜리 퀘스트인데.”
던전을 포기하고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게릴라 퀘스트를 놓칠 순 없는 법. 카르페가 미간을 좁혔다.
“흐음. 어쩔 수 없나.”
-흐. 내가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여기로 데려왔을 것 같아? 걱정할 거 없다. 딜이 안 박힌다고? 저 설치류 새끼들 공통 약점이 바로…….
“형. 잠깐만.”
-응?
“하는 데까지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부탁드릴게요.”
-엥?
천마가 이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눈을 치켜떴다. 그가 파악한 카르페는 이런 소리를 할 인간이 아니었다.
“치트키도 적당히 써야 재밌지. 사람이 그렇게 전부 쉽게 해결하려고 하면 안 돼. 시련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거니까.”
-……정론이긴 한데. 네가 그런 말 하니까 왜 이렇게 어이가 없지?
“천마 형의 심성이 꼬여서 그런 거죠. 절 도대체 뭐로 보고 있었던 거예요?”
-뭐로 보긴…….
뻔뻔한 날먹 귀신, 혹은 라세 최고의 양심 리스 플레이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으나, 천마는 꾹 참아 내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모처럼 기특한 말을 하는데 굳이 초칠 필요 있겠는가.
-좋은 자세다. 그럼 전직 2위님 실력 좀 볼까?
“천마 형 머릿속에 있는 제 이미지를 확실히 고쳐 드리죠. 간다!”
팍!
카르페는 바닥을 힘차게 박차며 폭군 다람쥐를 향해 달려갔다.
“뀨?”
요리조리 피하면서 짜증을 유발하던 인간이 돌연 달려들자, 다람쥐가 당황의 울음을 뱉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뀨우우!”
다람쥐는 이내 분노의 울음을 토해내며 커다란 앞발을 휘둘러 왔다.
카르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다람쥐의 발톱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몇 가닥 머리카락이 부스스 허공에 흩날렸다.
-오?
카르페가 내린 결론은 아주 심플했다.
등이나 다리 같은 곳은 딜이 안 박힌다? 그럼 박힐 만한 곳을 때리자!
최소한의 동작으로 공격을 피한 카르페가 다람쥐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커다란 다람쥐의 얼굴이 눈앞에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렇다. 얼굴. 인간을 비롯한 생물 대부분의 급소인 곳.
카르페는 다람쥐의 눈동자를 향해 전력으로 검을 내질렀다!
“뀨웃!”
그러나 레전더리 다람쥐 역시 어처구니없는 괴물이었다. 완벽한 타이밍으로 찔러 들어간 공격을 기어코 피해 버린 것이다.
촤악!
카르페의 검이 다람쥐의 눈가를 크게 찢고 지나갔다. 하마터면 눈을 잃어버릴 뻔한 다람쥐가 비명을 질렀다.
[폭군 다람쥐가 스킬 ‘광폭화’를 사용합니다.] [공격력과 민첩이 상승합니다. 방어력이 하락합니다.]목숨에 위기를 느끼자 야수형 몬스터 특유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폭군 다람쥐가 강철 같은 앞니로 카르페의 머리를 깨물기 위해 달려들었다.
“흥!”
그러나 카르페는 이러한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찌르기를 날린 오른손을 회수하는 대신, 왼손을 다람쥐의 입속으로 뻗었다. 왼손에는 원피단을 쓰러뜨리고 얻은 소태도(小太刀)가 들려 있었다.
푹.
“끼에에엑!!”
카르페가 폭군 다람쥐가 깨무는 타이밍에 맞춰 검을 세로로 세웠고, 그 결과 소태도가 다람쥐의 입천장에 깊숙이 박혔다.
[크리티컬 히트! 폭군 다람쥐가 3초 동안 혼란에 빠집니다!]그걸로 끝이었다. 카르페는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뒹구는 다람쥐의 목에 정확히 검을 박아 넣었다.
띠링.
[폭군 다람쥐를 쓰러뜨렸습니다.] [레벨 업! 보너스 포인트가 지급됩니다.]“흐아. 죽을 뻔했네.”
카르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뭔 놈의 게임이 첫날부터 이리 빡세단 말인가.
“아니, 초보자 도시라며? 난이도가 왜 이래요? 뉴비들 게임 다 접게 만들려고 작정했어?!”
-라세가 어렵기로 유명한 게임이긴 하다만, 이 경우에는 네가 자초한 거지.
사실 지금 공략 중인 ‘대왕 다람쥐 둥지’ 던전에 정석적인 루트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 레벨이 5 이하일 것. 둘째, 그 상태에서 시작의 도시에 존재하는 목장 주인 NPC와의 호감도를 최대치까지 올릴 것.
호감도 조건을 달성하면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데, 목장 주인에게 던전의 출입 방법과 다람쥐 몬스터의 약점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애초에 닥치고 돌격해서 깨도록 만들어진 던전이 아니야. 약점을 통해서 공략해 나가야 하는데, 깡그리 무시하고 정면승부를 벌이니까 난이도가 미쳐 날뛸 수밖에.
천마가 질린 눈으로 카르페를 쳐다봤다.
이게 어딜 봐서 5레벨 싸움이란 말인가. 혈투도 이런 혈투가 없었다.
“후우. 그래도…….”
-응?
“그래도 진짜 재밌네요. 진작에 시작할걸. 인생의 절반을 손해 봤네.”
-……개드립 그만하고. 아무튼, 계속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많이 지친 것 같은데.
“후우. 괜찮아요. 요령은 알았으니까. 지금부터는 훨씬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걸요?
-흐음. 뭐, 본인이 그렇다면야.
한번 잡아 봤다고 요령을 다 파악할 수 있다면, 세상에 어느 누가 고생하겠냐만…….
천마가 우려 섞인 눈을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의미 없는 걱정이 되고 말았다.
쿵!
[레벨 업! 보너스 스테이터스가 지급됩니다.]카르페는 처음 다람쥐를 쓰러뜨린 후, 그대로 세 마리의 폭군 다람쥐를 더 사냥하는 것에 성공했다.
-어이가 없네. 이게 말이 되나?
요령을 알았다는 카르페의 선언은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다음에 만난 다람쥐는 5분. 그다음은 3분. 그리고 방금 만난 다람쥐는 2분도 걸리지 않고 쓰러뜨린 것이다. 덤으로 레벨 업도 한 번 하고 말이다.
“원래 세상사 대부분이 요령이죠, 요령.”
-……그렇다고 치자.
천마는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 회귀도 하고 영혼 박제도 되는 판국인데, 이해 불가의 게임 천재는 거기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그나저나, 드랍률 상승 적용되고 있는 거 맞아요? 뭔 죄다 도토리만 떨구…… 어?”
그때였다.
카르페가 또 한 마리의 폭군 다람쥐를 잡고 던전의 코너를 도는 그 순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물건을 발견했다.
가로 길이가 1미터쯤 되어 보이는 직육면체의 그것. RPG와 던전의 조합이라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바로 그것이었다.
“보물 상자?”
-오, 상자라고? 무슨 색인데?
“색이요?”
의미를 알 수 없는 천마의 말에 카르페가 다시 보물 상자를 관찰했다.
정말 누가 봐도 보물 상자를 떠올릴 만큼 전형적인 생김새였다. 그리고 상자 표면에 은은한 노란색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이걸 말하는 건가 보네요. 노란색이네.”
-노란색이면 레어군. 아이템에 등급이 있는 것처럼, 던전 상자에도 등급이 있거든.
“아하.”
이어지는 천마의 설명에 따르면, 던전 속의 상자는 등급에 따라 다른 색을 띤다는 모양이었다.
일반 등급은 무색, 매직 등급은 파란색, 레어는 노란색, 히어로는 보라색, 유니크는 자주색, 레전더리는 진한 주황색.
“에픽이랑 신화는요?”
-없어. 던전에서 등장하는 보물 상자는 레전더리가 끝이야. 뭐,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본 적 없다.
“그렇군요.”
고인물 끝판왕조차 모른다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으리라. 카르페는 보물 상자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좋아! 그럼 레어 아이템 하나 득…….”
-그러면 좋겠지만, 아니야. 상자의 등급은 상한선 개념이다. 레어 상자를 열면 레어 이하의 아이템이 튀어나오지.
“상자 색깔과 똑같은 등급의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얼마쯤인데요?”
-체감상 10퍼센트쯤?
“10퍼센트? 아니, 그건.”
-그래. 확률에 미친 똥겜, 그 자체…….
“너무 혜자인데?”
-……뭐?
천마나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NPC로 박제되어 있는 동안 ‘혜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바뀌기라고 했단 말인가.
-창렬을 잘못 말한 거지? 10퍼센트라니까?
“형이야말로 무슨 소리예요? 다른 뽑기 게임이나 가챠 해 본 적 없어요? 이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안 해 보긴 했지.
“쯔쯔.”
카르페가 ‘그럼 그렇지’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게임으로 치면 SSR 레어가 10퍼센트 확률로 뜬다는 말 아닌가! 혜자도 이런 혜자가 없었다.
“아이템 강화 성공 확률이 3%만 돼도 ‘흠, 해 볼 만하군’이라고 생각하는 게 게이머라는 족속들입니다.”
-……뽑기 겜을 계속하다 보면 뇌에 빵꾸라도 나냐?
“저는 지극히 정상적이죠. 0.01%라는 확률도 경험 못 해 본 애송이 같으니.”
-그냥 말을 말자. 넌 나중에 취업하면 꼭 월급도 10% 확률로 받길 바라마. 제발.
10년 넘게 라세를 했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 10%라는 확률에 얼마나 울었던가. 천마로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썩은 사고방식이었다.
천마가 질색하거나 말거나, 카르페는 콧노래를 부르며 보물 상자 뚜껑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상자를 열려고 하는 그 순간.
쿵! 쿵!
“뭐, 뭐야?”
-이건, 설마?
땅이 울렸다. 지금까지 만났던 폭군 다람쥐들과 궤를 달리하는 묵직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점점 카르페를 향하고 있었다.
-짚이는 게 있긴 한데…… 일단 숨어서 상황부터 파악하자.
“알겠습니다.”
카르페가 잽싸게 근처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멀리서 울림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그우우웃?”
이번에 등장한 녀석 역시 다람쥐였다. 다만, 그 크기가 남달랐다.
지금까지의 폭군 다람쥐가 송아지 정도 크기였다면 이번에 등장한 녀석은 성체 황소, 아니 하마보다도 더 큰 놈이었다.
-쯧, 예상대로군. 저놈은 돌연변이 개체다.
레전더리 등급의 던전에서만 희박한 확률로 등장한다는 히든 몬스터.
던전 보스보다도 강력한 놈이 하필이면 지금 타이밍에 등장한 것이었다.
“좋은 거 아니에요? 히든 몬스터면 보상 빵빵하겠네.”
-다른 게임은 그럴지 몰라도, 라세에서는 아니야. 몬스터긴 하지만 트랩에 가까운 녀석이라서 드랍템이 없어. 대신 경험치는 레벨 업 확정이고, 일대일로 쓰러뜨리면 타이틀도 주지. 어쩔래? 잡을 거야?
“잡아야죠. 드랍템은 없어도 타이틀은 준다는데.”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약점 알려 줄 테니까 인벤토리…….
“잠깐만요.”
-응?
“약점 없이 하는 데까지 해 보기로 했잖아요. 이번에도 정면승부 할게요. 그게 재밌을 것 같아.”
-……허.
천마가 할 말을 잃었다. 이놈은 도대체…….
-지금까지 만났던 다람쥐와는 비교할 것도 없고, 돌연변이는 보스보다도 세다. 정면에서 붙으면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네가 죽을 거야.
“십 중 구라…….”
카르페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씨익 웃었다.
“역시, 혜자겜이네요. 확률을 10퍼센트나 주네.”
-야, 너 진짜…….
“약점을 공략하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거, 물론 좋죠. 하지만 형. 저는 재미를 위해서 게임을 해요.”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몬스터 중 가장 강력한,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도 승리 확률이 1할밖에 되지 않는 몬스터가 눈앞에 있었다.
기가 막히게 재밌을 게 뻔했다!
데스 페널티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다.
-……재미?
약점이든 뭐든, 이득 볼 수 있는 건 최대한 이득을 보면서 최고의 효율을 찾아 성장하는 게 맞다.
천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했고, 그 결과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정점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재미이지 않은가.
-하아. 알겠다. 마음대로 해 봐.
천마의 사고방식으로는 카르페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여기서는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날수록 히든 피스가 주는 농후한 맛에 절여져서 울고불고 자신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런데요, 형.”
-왜? 나 삐쳤으니까 말 걸지 마라.
“저건 뭐예요?”
-아까 말했잖아. 돌연변이…… 어?
카르페가 가리킨 곳에는 돌연변이 다람쥐가 있었다. 그러나 카르페는 다람쥐를 가리킨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돌연변이 다람쥐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자 같은 물건을 가리킨 것이었다.
“…….”
-…….
그렇다. 상자다. 그리고 던전에 등장하는 상자는 한 종류밖에 없었다.
바로 던전의 보물 상자였다.
다람쥐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 보물 상자는 ‘진한 주황색’의 영롱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형.”
-왜?
“그, 다람쥐 애들 약점이 뭐라고 그랬죠?”
-……정면에서 싸우는 게 재미라면서?
“그 정면승부보다 재밌는 게 레전더리 상자 까는 재미라 카더라.”
-나도 네 머리 뚜껑을 까 보고 싶긴 하다.
천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약점은 간단해. 지금까지 폭군 다람쥐 잡고 모았던 도토리들 있지?
“네. 떨구라는 장비는 안 떨구고 죄다 도토리만 뱉었죠.”
-그거 꺼내 봐.
천마의 말에 카르페가 순순히 인벤토리에서 도토리를 꺼냈다. 던전의 다람쥐들 크기만큼 도토리의 크기 또한 무지막지했다.
“내 주먹보다도 크네. 근데 이걸 어디다 써요? 또 심어요?”
-너 혹시 먹자몹이라는거 들어 봤어?
“먹자몹? 아!”
지금에야 조금 보기 힘든 개념이지만, 옛날 RPG에서는 종종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인식해서 날름 집어먹는 몬스터들.
플레이어가 고급 아이템을 떨구면 그걸 먹고 도망가는 통에, 많은 유저들의 혈압을 상승시키는 주범이었다.
“보통 슬라임 계열 몬스터가 그런 경우가 많았죠.”
-그래. 그 슬라임들처럼, 여기 다람쥐 놈들은 죄다 먹자몹이다. 다만, 특정 아이템에만 반응하지.
“그게 도토리다?”
-바로 그거지.
카르페의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다람쥐가 도토리에 끌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들고 있는 도토리 전부 저놈 머리 위로 넘겨서 던져 봐. 그럼 숨겨져 있던 약점이 드러날 거다.
“약점이 도대체 뭐길래…….”
카르페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도토리를 휙휙 던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다람쥐의 머리 너머로.
“꾸우우웃?”
쿵! 쿵!
도토리에 어그로가 끌린 돌연변이 다람쥐는 쿵쿵 소리를 내면서 반대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르페에게 등을 보인 채로 말이다.
“설마, 이대로 등을 공격하는 건가요?”
-아니지. 등은 제일 튼튼한 부분이다. 지금 공격력으로는 턱도 없어.
“그렇죠.”
카르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바, 등을 공격해서는 딜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여기 다람쥐들은 웃긴 게, 죄다 이족보행을 한단 말이지? 뭐, 앞발을 무기로 쓰니까 그런 거겠지만.
그러나 그런 놈들도 두 가지 경우에는 사족보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로, 돌진 공격을 할 때. 그리고 두 번째가 도토리를 먹을 때였다.
“뀨웃!”
도토리를 발견한 다람쥐가 기쁨의 울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고개를 처박고 도토리를 먹기 시작했다.
“어?”
다람쥐가 고개를 숙였다. 자연스럽게 사족보행 자세가 되면서 엉덩이가 들렸다. 둥글게 말린 꼬리 역시 하늘을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였다.
* 모양의 약점이!!!
-약점이 어딘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자, 달려라!
“…….”
-뭐 해? 가서 쑤시라니까?
“아니…… 아니, 이건 좀. 이건 좀 아니야.”
-뭔 헛소리야? 지금 네 근력이면 쑤욱 밀어 넣기만 해도 한 방이라니까?
“당신이 사람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무 잔인하잖아!”
-잔인 같은 소리하네. 얼마나 효율적이야? 계속 질질 끌면 저놈이 다 먹고 사라진다. 아, 레전더리 상자도 같이 증발하죠?
“크윽!”
최후의 양심이 발목을 잡았지만, 카르페는 이내 번개같이 움직였다. 레전더리라는 울림은 양심마저 이겨내게 하는 마력이 있었기에.
“뀨?”
뭔가 낌새를 눈치챈 돌연변이 다람쥐가 고개를 들려고 했지만 카르페가 훨씬 빨랐다.
카르페는 온 힘을 다해 양손에 든 검을, 그곳을 향해 내지르며 소리쳤다.
“못난 적을 만난 다람쥐에게 정말…… 미안하다아아아!!!”
쑤욱!
뭔가를 찔렀다가보다는, 마치 손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크리티컬 히트! 약점을 완벽하게 공격합니다!] [일격사! 돌연변이 폭군 다람쥐가 쓰러졌습니다!] [레벨 업! 보너스 스테이터스가 지급됩니다.] [타이틀 ‘레전더리 던전 완전 정복’을 획득합니다. 타이틀 ‘레전더리를 발견한 자’가 통합됩니다.] [타이틀 ‘한 방에 주님 곁으로!’를 획득합니다.]다람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파들파들 떨더니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다. 카르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미안해. 인간이 미안해.”
-미친놈아. 작작해!
“당신은 악마야! 천마가 아니라 악마라고! 띠링! 0성 배후령 악마지존을 획득하셨습니다!”
-어휴. 또라이 새끼. 그래픽 쪼가리에 감정 이입하지 말고 얼른 상자나 까.
“아, 그렇지 참.”
카르페는 언제 슬퍼했냐는 듯 상자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천마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라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카르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어?”
-왜, 또.
“이거…… 자물쇠가 걸려 있는데요?”
돌연변이 다람쥐를 쓰러뜨리고 획득한 레전더리 상자는, 레어 등급 상자와 달리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이런. 운이 없군.
“설마, 열쇠 없으면 못 열어요?”
-뭐, 짐작대로.
천마의 설명에 따르면, 던전에 등장하는 보물 상자는 자물쇠가 걸려 있는 상자가 있고 아닌 상자가 있다고 한다. 당연히, 자물쇠가 걸려 있는 쪽이 보상이 좀 더 좋다.
-자물쇠를 열려면 상자 등급과 똑같은 등급의 열쇠가 필요하지.
“……레전더리 상자를 열려면 레전더리 열쇠가 필요하다?”
-정답. 참고로 초보자 도시 잡화점에는 매직 등급 열쇠까지만 팔아.
물론, 대도시로 나간다고 해서 레전더리 등급의 열쇠를 살 수는 없다. 보통 레전더리 열쇠는 보스몹이나 엘리트 몬스터가 낮은 확률로 드랍하니까.
“그런 게 어딨어!”
깡!
카르페가 검을 전력으로 휘둘러 자물쇠를 내리쳤다. 당연하게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열쇠 말고 다른 방법으로 여는 방법은 없어요?”
-쯔쯔. 포기해라. 레인저나 도둑 계열 직업이 상자 따기류 스킬을 익힐 순 있지만, 넌 아니…….
거기까지 말하던 천마가 돌연 뚝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건 카르페 역시 마찬가지였다.
“…….”
-…….
“우리 지금 같은 생각하고 있는 거 맞죠?”
-……설마. 안 되겠지. 그럼 너무 사기잖아.
“그거야, 해 보면 아는 거고.”
그렇게 말한 카르페는 자물쇠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해금.”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