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423)
423화
“그래서.”
카르페는 바로 앞에는 털 뭉치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들고 있었다.
한 대 얻어맞고 정신을 차린 털 뭉치가 자진해서 벌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저 짧은 팔다리로 무슨 의미가 있는 행동인가 싶었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도대체 뭔데?”
“쿠리는 쿠리라고 한다요. 죽이지 말라요…….”
“아니, 이름 물어본 거 아닌데…….”
“쿠리는 나쁜 악마가 아니다요! 똑똑하고 무해한 악마다요. 믿어 달라요!”
“방금 전까지 잡아먹느니 마느니 했던 녀석이 나쁜 악마가 아니라고 해 봤자 믿겠냐고.”
“너,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다요. 미안하다요.”
“으음.”
카르페는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쁜 악마가 아니란 건 둘째 치고 무해하다는 건 어느 정도 맞는 말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약해빠져서 해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기에 무해하다는 의미였다.
이 눈앞의 털 뭉치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약했다. 딱히 공격이라 할 수도 없는 발차기만으로 빈사 상태에 빠질 만큼.
-흐음. 신기한 놈이군. 나도 모르는 개체인데……. 이벤트 몬스터나 특수 몬스터 계열인가? 그런데 그렇다기엔 또 너무 하찮은데…….
“신기하긴 하네. 마계에도 이렇게 허약한 몬스터가 있구나.”
“아니다요! 쿠리는 허약하지 않다요!”
“……진짜로?”
“……조금 허약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 인간이 너무 강한 것이다요! 어째서 이렇게 멀쩡한 것이다요? 마계에 휘말린 인간은 마기 때문에 해롱해롱해야 한다요!”
“뭐, 타고난 체질 같은 거지. 인간이라고 다 마기에 취약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냐. 인마! 인간은 다 마기에 약해!
“그런 것이다요? 신기하다요…….”
한 인간과 한 털 뭉치가 서로를 신기해하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아무튼 이놈을 어찌해야 하나.’
일반적인 RPG의 흐름이라면 ‘몹 발견 → 죽인다!’가 맞겠지만, 이런 저렙 몬스터를 솔직히 잡을 가치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 또 모르지. 특수 개체로 추정되는 놈이잖아. 희귀한 아이템을 드랍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의외로 폭발적인 경험치를 줄 수도 있는 거고.
“아이템과 경험치라…… 그런가?”
천마의 혹하는 말에 다시 털 뭉치를 쳐다보았다. 죽음의 위기를 직감한 털 뭉치가 필사적으로 항변하기 시작했다.
“쿠리는 맛없고 가난하다요! 죽여 봤자 경험치도 안 줄 거다요! 그러니 살려 달라요!”
“뭐, 그 말이 맞다 쳐도 그게 살려 줄 이유는 아니지. 먼저 공격해 온 건 너잖아.”
“쿠리…….”
반박할 수가 없었는지 털 뭉치는 입을 웅얼거렸다.
커다란 눈에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겉모습만 보면 귀엽고 불쌍하긴 한데…… 아무래도 그런 이유로 살려 주는 건 좀 찜찜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악마 아닌가.
하찮고 귀엽다면서 방심했다가 뒤통수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처리해서 후환을 남기지 않는 쪽이 더 현명한 플레이 방식이었다.
“다른 쓸모가 있다면 또 모르지만.”
“쓰, 쓸모가 있으면 살려 주는 거다요?”
“들어 보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면.”
“쿠리는 똑똑한 악마다요! 분명히 도움이 될 거다요!”
털 뭉치는 그렇게 말한 후, 끙끙거리며 자신의 쓸모를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던 쿠리는 뭔가를 떠올리곤 카르페에게 말했다.
“인간! 인간은 마계가 처음이인 것이다요?”
“그렇지.”
“그렇다면 쿠리가 마계를 안내해 주겠다요! 쿠리는 마계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다요!”
“오? 그래?”
-뭐야. 생각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쓸모인데?
‘그러게요. 그냥 툭 던져 본 거였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카르페가 관심을 보이자 쿠리는 필사적으로 입을 놀렸다.
“쿠리는 떠돌이 악마다요. 그래서 마계 곳곳 안 가 본 곳이 없다요!”
“떠돌이 악마?”
“설명하겠다요. 마계는 강자존의 세계다요. 약한 악마는 강한 악마에게 종속되어 살아간다요.”
힘이야말로 곧 정의.
상위의 악마가 하위의 악마를 지배하고 하위의 악마는 더 하위의 악마를 지배한다.
그렇게 형성된 계급 피라미드는 곧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 되었고, 마계는 그런 수많은 세력이 모여 일종의 전국시대를 이루고 있었다.
-맞아. 마계는 영역 싸움에 미친 곳이지. 마계 대공 한 놈 한 놈이 다 각자 세력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아닌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그리고 악마의 세력에 속하지 못한 악마들을 ‘떠돌이 악마’라고 불렀다.
마계에서 떠돌이 악마의 취급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다.
세력에서 받아 줄 이유가 없을 만큼 도태되었다는 의미였으니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어느 한쪽, 혹은 둘 모두에 큰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도피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홀로 다니길 좋아해서 자의적으로 떠돌이 악마를 하는 경우도 있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경우였다.
“쿠리의 경우는 가는 세력마다 얼마 가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다요.”
“으음…… 고생 많았네.”
카르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드렛일조차 제대로 못 할 수준의 약골을 받아 줄 리 없었겠지.
사정이 딱했다.
“쫓겨난 떠돌이 악마는 세력에 속하지 못하고 마수의 사체 같은 걸 주워 먹으며 이리저리 살아간다요.”
“그러다가 날 만난 거고?”
“그렇다요! 마기에 해롱해롱한 인간은 최고 손쉬운 먹이라고 들었는데…… 완전 잘못된 정보였다요!”
쿠리는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는 듯 폴짝폴짝 뛰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쿠리가 아주 아주 오래 살아남은 떠돌이 악마라는 거다요! 마계에서 쿠리가 가 보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요.”
“오래 살았다고? 얼마나 오래 살았는데?”
“400년이 조금 넘는다요!”
“헐?”
쿠리의 말에 카르페가 깜짝 놀랐다.
이 험한 마계에서 털 뭉치가 400년이나 살아남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놀랐다요? 후후. 그럴 것이다요. 떠돌이 악마는 사실 수명이 아주 짧다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력 밖에는 위험한 마수들이 드글거렸고,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악마가 심심풀이로 떠돌이 악마를 사냥하곤 했으니까.
그런 극악의 환경에서 쿠리가 400년 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바로.
“쿠리가 약골에 겁쟁이이기 때문이다요.”
“……뭐?”
“조금이라도 위험한 것 같으면 재빨리 도망쳤다요. 다른 멍청한 악마들은 일단 싸우고 보지만, 똑똑한 쿠리는 그러지 않았다요.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요.”
전투력이 거의 전무했기에 다칠 가능성이 백만 분의 일이라도 존재한다면 자리를 피하고 봤다.
아이러니하게도 약해빠졌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런 녀석이 나한테는 용케 덤볐네.”
“인간은 최하급 마수보다도 약한 게 상식이다요. 인간이 이상한 거다요. 반칙이다요! 그러니 살려 달라요!”
아무튼 요약하면 이렇다.
400년 넘게 떠돌이 생활을 했기 때문에 견문이 아주 넓다.
그러니 마계에 대해 잘 모르는 카르페를 대신해 자신이 길잡이 역할을 해 줄 테니 살려 달라.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카르페가 고개를 끄덕이자, 쿠리는 살길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카르페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죽고 싶지 않다요. 쿠리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요.”
“꿈? 뭔데?”
“……말해야 한다요?”
“말하면 생존에 가산점이 붙을지도 몰라.”
사실 이미 살려 줄 거라 내심 결정을 내린 상태였지만, 궁금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쿠리는 잠시 고민했다가 슬며시 카르페를 쳐다봤다.
“우, 웃으면 안 된다요?”
“알았어.”
“쿠리는 사실 마계 최강의 존재 마왕이 되고 싶은 거다요. 그 꿈을 위해서 매일 매일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거다요.”
“…….”
-…….
도대체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어, 음…… 그래. 열심히 해 봐. 응원할게.”
“너무하다요! 지금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거다요!”
“솔직히 그렇지.”
“쿠리는 그 어떤 악마보다도 오래 살 수 있다요! 지금은 약하지만 1000년이 지나도록 열심히 수련하면 결국 강해질 것이다요!”
“…….”
카르페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자 쿠리는 시선을 슬며시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2천 년?”
“아니, 기간 때문에 쳐다본 거 아닌데.”
솔직히 10만 년으로도 안 될 것 같다는 게 카르페의 심정이었다.
“좋아. 쿠리. 살려 줄게. 그 대신 네가 말한 대로 길잡이가 되어 줘.”
“살았다요! 고맙다요! 그런데 인간은 뭐라고 부르면 된다요?”
“카르페. 카르페라고 불러.”
“쿠리보단 못하지만 좋은 이름이다요!”
그렇게 카르페는 마계에 도착한 후, 첫 일행(?)이 생겼다.
“그런데 카르페는 어디에 가고 싶은 거다요? 말만 하라요. 바로 안내해 주겠다요.”
“어, 잠깐만. 형. 마신기가 어디에 있다고 그랬죠?”
“누구랑 말하는 거다요?”
“내 안의 또 다른 나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잘 모르겠지만 멋있다요…….”
카르페의 물음에 천마가 대답했다.
-마신기 중 하나는 마계 대공 발라크의 보물고에 있다. 그걸 조심히 들어가서 훔쳐 나오면 돼.
“아하. 그렇군요. 쿠리. 우린 지금부터 마계 대공 발라크의 보물고로 가야 해.”
“마계 대공 발라크! 유명한 세력이다요! 당연히 쿠리는 그곳을 알고 있…….”
말을 하다 멈춘 쿠리는 떨리는 음성으로 카르페에게 물었다.
“……발라크 대공에게는 왜 가는 것이다요?”
“그 양반이 내가 찾는 물건을 가지고 있다길래.”
“아하! 맡겨 놓은 걸 돌려받으러 가는 것이다요! 쿠리가 오해했다요!”
“응? 아닌데? 훔쳐서 나올 건데?”
“미쳤다요! 인간이 미쳤다요!”
쿠리는 눈이 골뱅이 표시로 변해선 팔짝팔짝 뛰었다.
“발라크는 목숨보다 보물을 아끼는 걸로 유명하다요! 절대로 주지 않을 거다요!”
“그러니까 훔쳐야지.”
“그러다 걸리면 어쩐다요!”
“음…… 싸워야겠지?”
“꼬르르륵.”
카르페의 말에 쿠리가 거품을 물었다.
“이건 자살이다요! 그냥 죽으러 가는 거다요! 쿠리는 아직 살고 싶다요!”
“괜찮아. 안 죽어. 안 죽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쿠리를 죽이는 것이다요. 그 편이 더 편안하게…….”
그 순간이었다.
“크르르르. 카오오오!”
쿵쿵!
저 멀리서 거대한 짐승 한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두 개의 머리가 달린 검은색의 거대한 개. 흔히 켈베로스라고 하면 떠올리는 모습에서 머리 하나만 줄어든 형태였다.
-호. 오르토스로군. 중급 마수야. 대충 중급 악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돼.
“중급 악마? 그럼 쉬운 녀석이네요.”
-꼭 그렇지는 않지. 여기는 마계잖아. 인간계에서 디버프 떡칠된 중급 악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하지.
“아, 하긴. 그러네.”
-뭐, 그래도 상급 악마 수준은 아닐 테니…… 충분히 잡을 만하겠지.
“그거는 지금부터 확인해 봐야죠.”
카르페가 씨익 웃으며 오르토스에게 달려들었다.
강화된 중급 악마라. 마계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딱 좋은 상대였다.
“주사위 토스!”
[주사위를 던집니다.]카르페가 새로운 장비의 기능을 사용하자 머리 위로 주사위가 떠올라서 팽그르르 굴러갔다.
[주사위가 멈췄습니다! 숫자 1]“아오. 운빨…… 쯧. 어쩔 수 없지.”
카르페가 아쉬움에 한숨을 쉬는 그 순간.
다시 한번 알림이 떠올랐다.
[반복하시겠습니까?]“……어?”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