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세상에는 가끔 이해를 초월하는 무언가가 탄생하기도 한다.
세상을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버그가 발생한 셈이다.
그리고 크로가가 바로 그 버그에 해당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세상에 등장한 그 괴수는 모든 생명체를 초월한 불가해의 존재였다.
그 어떤 생명체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탄생했고.
다른 누군가로부터 지식을 전달받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세상의 섭리를 깨우쳤다.
그런 그에게 이 세상은 그저 장난감이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꿈틀대고 있었으나 그 어떤 것도 자신과 감히 비견할 수가 없었으니까. 자신을 제외한 그 모든 것들이 하찮은 미물들에 불과했다.
세상에 태어난 크로가는 수많은 생명체를 학살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배가 고파서도 아니었고, 미물들을 지배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럴 수 있기에 그랬을 뿐.
수많은 장난감으로 무엇을 하든 그건 크로가의 자유였다.
그는 이 세상의 유일한 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전능했기 때문에 이내 큰 의문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어째서 이런 미물들 사이에서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이지?
갓 태어났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로웠으나,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생명이 바스라지기 전에 뿜어내는 찬란한 색마저도 더 이상 그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크로가는 고독을 알아버렸다.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의 갈증을 채워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후, 크로가는 대부분의 삶을 수면으로 보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 타이밍에 눈을 뜬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수면조차 지겨워서 잠시 눈을 떴을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을 감지했다.
사실,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찮은 미물들의 영역 싸움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정말 수없이 봐 왔던 무의하고 무가치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신경조차 쓰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을 일이었지만, 그날의 크로가는 어째선지 변덕을 부려 그 소란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변덕이 크로가의 삶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 되었다.
[…….]저건 무엇이지?
예상했던 대로 미물들의 다툼이 맞긴 했다. 한쪽의 미물은 자신과 몇 번이나 마주쳤으나 살려 줬던 그놈이다. 다른 미물들보다 큰 힘을 타고난 녀석이었기에 확실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문제는 다른 한쪽.
이 지역의 주인으로 삼은 미물과 다투고 있는 또 다른 미물.
지금까지 본 적도 없었던 붉은색의 거대한 덩어리가 그 미물을 압도하고 있었다.
[……!!!]크로가가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의문’, ‘흥미’라는 감정이다.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섭리와는 명백하게 이질적인 저 붉은색 돌을 직접 확인해 봐야만 했다.
후웅.
그리고 붉은 미물이 이곳의 주인을 쓰러뜨렸을 때, 그 근처에 있던 하찮은 것들을 전부 치워 버리고 내려와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이렇게 하면 되나?] [나의 의지가 들린다면 답하라.]하늘에서 내려온 크로가가 합일 상태의 카르페에게 물었다.
[너는 나와 같은 존재인가?]* * *
이건 갑자기 무슨 개떡 같은 소리인가. 밑도 끝도 없이 너와 내가 같냐니?
-평범한 건 아니지. 쟤 입장에서 보면 거대 고철 괴물이 말을 하는 건데, 그게 평범할 리가.
카르페의 대답에 크로가가 크게 놀랐다. 아니, 놀람을 넘어서 어딘가 감동한 기색마저 느껴졌다.
[과연! 너 또한 의지를 전달할 수 있구나. 지금까지 그런 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는 특별하구나.]언어를 말하는 거구나.
하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가 없는 게 당연했다. 다른 시대도 아니고 지구의 중생대와 같은 곳이다. 그런 시대에 크로가와 의사를 나눌 만한 지적 생명체가 있을 리 없었다.
아니면 다른 사해들은 지금보다 나중에 탄생하는 걸까?
크로가가 사해 중에서 첫째?
하지만 그런 카르페의 생각은 이어지는 크로가의 말에 끊어지고 말았다.
[크로가? 그것은 나를 가리키는 말인가?] [실로 재밌구나. 미물 주제에 감히 이 몸을 지칭할 수 있다니. 이상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이 몸을 크로가라 부르는 것을 허락하마.]사해치고 성격이 정상인 쪽이 없긴 했지만, 크로가는 유독 대화가 어긋나는 기분이다.
[누군가와 의지를 교환한다는 것이 이토록 흥미로운 일일 줄이야. 역시, 너는 특별하다. 나와 같이 이 세상에서 벗어나 있다. 너라면 나의 이 갈증을 채워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크로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앞발을 들었고, 카르페는 반사적으로 방패를 꽉 움켜잡았다.
하지만 크로가는 공격하는 대신 카르페를 앞발로 가리켰다.
[묻겠다. 너는 이 몸이 왜 태어났는지 아는가?] [이 몸이 물었다. 되묻지 말고 답해라. 이 몸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냐?] [되묻지 말라고 했을 텐데.]콰앙!
크로가의 앞발이 빠른 속도로 휘둘러진다. 그로 인해 생성된 바람이 카르페의 방패를 강하게 두들겼다.
다행히도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터라 별 피해 없이 막아 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크로가가 다시 한번 감탄했다.
[튼튼하구나. 지금까지 이 몸이 보아 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지금까지 이 몸이 부술 수 없는 돌은 없었다.] [다시 묻겠다. 이 몸의 존재 이유. 너는 답해야 한다.]존재 이유?
무슨 사춘기 애도 아니고 갑자기 자아 성찰이라도 하려는 건가?
하긴, 생각해 보면 카르페 자신도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런 고민을 해 봤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생의 의미는 뭘까.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게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나는 어떠한 꿈을 품고 살아야 하지 같은…….
-중2병이 지나고 흑역사를 되돌려보는 건 참 괴롭지.
-흐음. 아무튼 이건 좀 웃긴 상황이네.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 사해라. 내가 봤던 놈은 그냥 지 내키는 대로 다 부수는 놈이었는데.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 법 아니겠는가.
알림창은 크로가의 흥미를 사는 것이 불행이라 말했지만 또 모를 일이다. 혹시 대답이 마음에 든다고 이것저것 막 퍼줄 수도 있었으니까.
적어도 지금까지의 사해는 카르페 한정으로 사해가 아닌 사복이었다.
마지막 크로가도 한 번 믿어 볼 만했다!
이런 철학적인 질문은 영 취향이 아니었지만, 카르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뭔가 그럴싸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너무 난해하잖아!
-어휴. 넌 그것도 모르냐?
-당연하지. 크로가가 태어난 이유라면 뻔한 거 아니겠어? 내가 정확하게 말해 줄 테니 그대로 전달해.
이럴 수가.
천마가 상남자 외모와는 다르게 스마트 뇌섹남인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철학적인 분야에도 소양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그런 카르페의 감탄은 이어지는 천마의 말에 그대로 박살 나고 말았다.
-크로가가 태어난 이유. 그건 먼 미래에 유저들의 경험치가 되기 위해서다!
-뭘 이상하다는 듯이 보냐? 모든 몬스터들의 존재 이유가 그건데. 다 유저들이 잡으라고 개발자들이 만들어 놓은 거잖아.
경험치와 드랍템. 그것이 당신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걸 그대로 말했다간 아마 찢겨 죽지 않을까.
카르페는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너 또한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것인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카르페는 대충 서쪽으로 예상되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 사마귀가 나와 같은 존재인가?]착한 북염존과 동해룡은 아껴 줘야 했다.
사마귀는…… 뭐, 고생 좀 하든가 말든가.
[……그렇군. 서쪽이라. 도움이 되었다.]역시 말을 잘하면 되는 구나.
더 이상 싸울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으니, 그럼 이대로 보상을…….
[그럼 지금부터 너를 죽이겠다.]카르페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지만, 크로가는 뭐가 이상하냐는 듯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세상의 지배자.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너는 내 흥미를 위해 세상이 내려 준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너는 나를 즐겁게 해야 한다.]그리고 크로가가 가장 즐거워하는 행위는 바로 살육이었다.
[죽어라. 합당한 일이다. 네가 무슨 대답을 하든 너의 죽음은 예견된 일이었다.]알림창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크로가는 재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존재였다.
콰아앙!
크로가의 바람이 다시 한번 방패를 후려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강철합일 시간이 아직 꽤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원래의 크로가라면 그냥 날개짓 한 번에 가루가 되어 버렸겠지만, 다행히도 지금 눈앞의 크로가는 미성숙한 상태다.
레벨로 따지면…… 아마 마계 대공 이하일 것이다.
-굳이 싸우게? 여기 귀환도 먹히는 던전인데, 그냥 도망가면 되잖아.
자신을 보고 재미를 찾았는가. 사실, 솔직히 말하면 카르페도 똑같은 심정이었다.
카르페에게는 아직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었다.
보스 몬스터인 기가 티렉스를 쓰러뜨린 후, 권속의 소환 제한이 해제된 상태다.
카르페는 그중 상급 얼음 정령 서리를 소환했고.
카르페는 자신의 머리 옆에 떠 있는 서리를 향해 스킬을 발동했다.
파아아아앗!
서리의 몸이 파란 구체가 되어 카르페의 머리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띠링!
[9성 스킬 정령합일이 발동합니다!] [현재 적용 중인 다른 합일 스킬이 존재합니다. 기존 합일 스킬과의 시너지 효과로 정령 합일 스킬 효과가 증폭합니다!]쩌저저적.
거대한 로이어드의 몸체에 차가운 냉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