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76)
76화
라세의 주 무대가 되는 아크룩스 대륙은 흔히 ‘판타지 세계’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세상이었다.
검과 마법. 엘프와 드워프. 수인과 정령을 비롯한 이종족들이 인간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그런 세계.
하지만 아크룩스 대륙만이 라세 세계관의 전부인 건 아니었다.
천계, 그리고 마계.
유저들의 무대가 되는 아크룩스 대륙은 흔히 ‘인간계’ 혹은 ‘중간계’라 불리는 세 개의 거대한 세계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와. 진짜 판타지 소설에서 마르고 닳도록 본 설정이네. 그놈의 천계 마계는 안 나오는 곳이 없구나.’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
‘형은 가 봤어요? 천계랑 마계.’
-당연히 가 봤지. 아, 참고로 환계(幻界)나 명계(冥界) 같은 곳도 있는데 자잘한 세계라서 번외로 취급한다.
‘진짜 어디서 들어 봤을 법한 것들은 다 있구나. 스케일 참…….’
그리고 악마라는 존재는 당연히 마계의 주민이다.
원래대로라면 200레벨쯤에 특수한 퀘스트를 마치고 나서야 조우할 수 있는 존재였다.
-39레벨에 마주칠 만한 놈은 절대로 아니라는 거지. 뭐, 이 경우에는 상황에 맞게 조절되겠지만.
‘그렇죠. 아까 퀘스트 성공 시에 악마가 약화돼서 등장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인 것은 퀘스트를 실패했을 때였다.
악마가 완전한 힘을 가진 채로 현계하고, 루아나가 ‘마기’로 오염된다는 문구.
루아나는 라세 유저들이 초보자 마을을 벗어나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며, 게임 설정 상 ‘루인데리아 연방국’의 가장 큰 무역도시이기도 했다.
‘그런 곳이 오염되면 너무 대형 사고 아니에요?’
-대형 사고 맞지. 그런데 실제 게임 스토리도 그래.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앞으로 반년 뒤에, 그러니까 라세 출시 1년째에 대형 이벤트가 터지거든.
바로 악마의 ‘인간계 침공’ 이벤트였다.
유저들에게 악마라는 존재가 최초로 알려지게 되는 사건이었는데, 그 임팩트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악마의 군대가 루아나를 침공하는 것이다!
-이벤트에 돌입하면 유저들과 NPC가 협동해서 악마들을 몰아내는 퀘스트가 전 유저에게 발생하지.
이벤트 동안 악마를 얼마나 쓰러뜨렸냐를 공헌도로 측정해서 보상이 차등으로 주어지는 초대형 이벤트였다.
그동안에는 루아나의 레벨 제한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10대 길드를 주축으로 한 초고렙 유저들이 선두에 서서 싸웠다고 했다.
-참고로 전 회차에서 1등 먹었던 건 나였지. 후. 옛날 생각나는군. 온 커뮤니티가 내 정체 찾아내겠다고 난리였는데…….
‘그건 그것대로 썰이 궁금하긴 한데…… 아무튼 그래서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되는데요?’
-별거 없어. 이벤트 마지막 날에 ‘용사’ NPC가 악마 군단장을 쓰러뜨리고 악마들은 퇴각하는 거로 이벤트가 끝나지.
하지만 악마의 침공을 막아 냈다고 해서 상처가 남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전장이 되었던 해변 도시 루아나는 폐허가 되어버렸고 동시에 마기로 오염되어 생명체가 살아가기 힘든 지역으로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난리도 아니었다. 루아나가 대형 도시인 만큼, 거길 기반으로 자리 잡은 길드도 꽤 많았거든. 한순간에 기반을 잃어버린 길드들이 라세를 고소하니 마니 했지.
하지만 라세 유저 대부분이 파격적인 이벤트였다고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런 소수의 불만은 힘없이 묻히고 말았다.
애초에 루아나가 저렙 지역이다 보니 소형 길드밖에 없어서 큰 피해가 아니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 이후, 초보 유저들이 처음 밟게 되는 도시가 루아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변경돼. 그리고 한 1년쯤 뒤인가? 루아나 재건 이벤트가 생기는데 그게 또 재밌지.
‘와, 라세가 스케일은 진짜 미쳤네요.’
게임 경제의 큰 기반이 되는 초대형 도시를 고작 이벤트 하나로 소모해 버리다니.
다른 게임이라면 엄두도 못 낼 미친 짓이었다.
-이제야 이해가 되네. 사실, 그 악마 침공 이벤트가 굉장히 뜬금없었다는 이야기가 많았거든.
이벤트 자체는 충격적이고 재밌었지만, 너무 복선 없이 막 등장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이벤트의 밑밥이 이런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을 줄이야. 라세 이 미친 것들. 이런 곳에 숨겨 두고 무슨 수로 찾으라는 거야!
‘흐음. 그럼 제가 지금 이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그 악마 침공 이벤트가 취소되는 걸까요?’
-글쎄. 확신할 수는 없지. 다른 곳을 통해 침공할 수도 있는 거니까.
‘아주 마음에 드는 퀘스트네요.’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미래를 사전에 차단하는 영웅!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던 포지션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정화를 돕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카르페가 퀘스트를 수락하자 실피루아네가 환호했다.
그리고 그녀는 카르페를 어떤 장소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마기에 홀린 아이들은 제힘으로도 정화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정화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급 정령을 정화해도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일시적이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또다시 마기에 홀려 버렸으니까.
[결국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저까지 마기에 이성을 잃고 말았죠. 지금은 정신을 차렸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마기에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큰일이네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만 합니다.]카르페를 인도하던 실피루아네는 이동을 멈춘 후 동굴 벽 앞에 섰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오?”
-호오. 이런 공간이 숨어 있었군.
동굴 벽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통로가 드러났다.
[최대한 마기를 막기 위해 임시로 해 놓은 조치입니다.]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막다른 벽이 나타났다.
그 벽에는 검은색의 커다란 균열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기는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 마기의 근원을…… 제거해야만 합니다.]균열과 가까워질수록 마기가 농밀해지는 탓인지 실피루아네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마기의 근원이라는 건?”
[마핵…… 보시면 바로 아실 수…….]“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얼른 이곳부터 벗어나요. 그러다 또 오염되겠네.”
실피루아네를 이끌고 통로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정령이란 본디 자연의 기운이 형상화한 것이라 또 다른 기운에 쉽게 물들 수밖에 없어서…….]“아하. 어쩐지.”
실피루아네의 말에 카르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균열의 코앞까지 갔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왜 그녀는 유달리 취약할까 의문이 생겼던 참이었다.
“그럼 저 균열 안으로 같이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아마 들어가는 순간 즉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 거예요.]“으음.”
그리고 아마 자신을 공격하게 되겠지. 그럴 바에는 아예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럼 균열 속은 제가 들어갈게요. 마핵이란 걸 찾아서 부수면 되나요?”
[그렇습니다. 아주 눈에 띄는 물건이니 찾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당연한 말이지만 천계나 마계에서 인간계로 넘어오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각 세계의 법칙이 다르기 때문에 넘어가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다. 무리해서 넘어가다간 세계의 억지력으로 인해 강력한 페널티를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유저는 그딴 거 없고 퀘스트만 클리어만 바로 넘어갈 수 있다. 애초에 이방인이라서 세계의 법칙이 안 먹힌다나 어쩐다나.
‘흐음. 그런 막 넘겨도 될 것 같은 부분도 나름 설정이 있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자잘한 설정이 아닌 마핵이었다.
[마핵은 드넓은 마계에서도 백여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귀물(貴物)입니다. 주위 공간을 마계의 환경과 유사하게 만들어 주는 물건이에요.]실피루아네의 설명에 따르면 마핵은 악마들이 다른 세계를 침공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았다.
1. 침략할 세계로 일단 마핵을 먼저 던져 놓는다.
2. 주변 환경이 마계와 유사해지기를 기다린다. 이 시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3. 마핵의 세계 침식이 완료되면 거리낄 것 없이 침략 가능.
[그래서 부서지면 안 되기 때문에 마핵은 가장 은밀한 곳에 배치하는 편입니다. 주위에 수호자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수호자라. 그렇군요. 대충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퀘스트는 한마디로 균열 안으로 들어가서 수호자를 처치하고 마핵을 부수는 퀘스트라는 것.
‘심플한 퀘스트네요. 맘에 든다.’
-그 수호자가 어떤 놈이냐에 따라 난이도는 천차만별이겠군.
‘뭐, 최악의 경우에는 마핵만 부숴 버려도 되는 거니까.’
수호자가 얼마나 강력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금 자신의 힘이라면 최소한 마핵을 부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 저는 여기서 아이들을 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세요.]실피루아네는 그렇게 말한 후 다른 곳으로 떠나갔고, 카르페는 권속들을 호출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됐으니까 이제 균열 속으로 들어갈 거야.”
“이해했습니다. 주군.”
“뀨!”
“흐이잉. 악마라니…….”
“자, 그럼 출발…….”
“주군.”
“응?”
“출발하기 전에 드릴 것이 있습니다.”
티나는 그렇게 말하며 카르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작은 직사각형의 물건을 카르페에게 내밀었다.
[초급 광휘의 스킬팩]“어? 오오!”
그녀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스킬팩이었다. 그것도 그녀의 이명이 붙어 있는 특수한 스킬팩이었다.
카르페가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자 티나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바람의 정령을 처치하다 보니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15레벨을 달성한 보상으로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권속들도 스킬팩을 깠었지, 참. 오래돼서 까먹고 있었네.”
-흐음. 보통 권속들은 레벨 10에 스킬팩을 얻는데 특이하네. 전용 스킬팩이라 그런가?
“그런 거예요?”
-나도 모르지. 마도왕의 인형을 가진 사람이 너밖에 없으니까.
“하, 그런데 어이없네. 티나를 얻은 지가 언제인데 이제 15레벨이야?”
-말했잖아. 권속들은 원래 레벨 올리는 게 진짜 극악이라고. 너 정도면 엄청 빠른 거지.
카르페는 너무 느리다고 투덜댔으나 사실 이건 실상을 너무 모르는 소리였다.
보통 다른 일반 유저들의 경우 유저가 레벨 100을 달성하는 동안 펫 레벨이 30이 될까 말까 하는 게 평균이었으니까.
“아무튼 좋은 징조네요. 수호자 상대하기 전에 전력을 올릴 기회니까.”
-얼른 까 봐라. 나도 처음 보는 거라 뭐가 나올지 궁금하네.
“주군. 부탁드리겠습니다. 주군의 손이라면 필시 좋은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맡겨 둬.”
카르페는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카드팩을 부욱 뜯었고.
팟!
짧은 섬광과 함께 5장의 카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거다!”
그리고 첫 번째 카드를 집는 그 순간이었다.
빠빠밤!
카드에서 환한 이펙트가 터져 나왔다.
“……어?”
-헐.
이펙트는 찬란한 은빛도, 영롱한 금빛도 아니었다.
무지개.
실시간으로 카드의 색깔이 변하는 무지개색 이펙트였다.
카르페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지개? 무지개 이펙트도 있었나? 무지개가 몇 성이에요?”
-……성.
“네? 잘 안 들려요.”
-8성이라고 미친놈아! 와, 씨. 이 똥 같은 게임이 또 사람 기만하네! 이게 게임이냐!
“와, 씨. 8성?! 이게 게임이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