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88)
88화
라마르크 왕국.
과거 대륙을 통일한 최강국에서 현재는 대륙에서 가장 약소국이 되어 버린 비운의 나라.
그런 라마르크 왕국에 대한 유저들의 평가는 혹평 일색이었다.
‘나라가 작다 보니 컨텐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4대 강국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
‘빼어난 사냥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득템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딴 곳을 왜 가?’
‘무엇보다 NPC가 너무 빡빡해. 기껏 호감도 올렸더니 잡퀘스트나 주고…….’
칭찬할 구석이라고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
2차 전직을 갓 마친, 소위 ‘라세 물 좀 먹었다’라는 유저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뉴비 딱지를 막 때낸 이들이 아닌 라세의 정상권을 노리는 유저들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라마르크? 아…… 별로긴 한데 그렇다고 노림수가 없는 건 아니지.’
‘글쎄. 다시 시작해도 라마르크를 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나름의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긴 하지.’
‘다른 건 좀 구려도 한 방을 노릴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잖아.’
‘지금 최상위 랭커 중에 한 명이 라마르크에서 히든 퀘스트 받고 떡상한 거라는 소문이 있어. 라마르크의 장군에게 받은…….’
‘그래. 사패 눈에 들기만 하면 바로 라생 역전 한 방이지!’
평범하디 평범한 약소국을 특별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요소.
도패(刀覇) 길리안.
‘대륙 11강’의 이름값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길리안은 매우 특이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좋게 말하면 괴짜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 나간 거지.
라마르크의 NPC들은 하나같이 유저들에게 적대적이었지만, 유일하게 길리안만큼은 달랐다.
유저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면 거리낌 없이 가르침과 퀘스트를 베풀었다.
‘그럼 좋은 NPC인 거 아니에요?’
-결과만 보면 그렇긴 한데…… 그 과정에서 정신이 조금 많이 나갔지.
싹수가 보이는 유저가 있으면 일단 대련장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팬다.
패고 패고 패고 또 팬다.
아무리 통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가상 현실 게임이라지만, 반항조차 제대로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게 좋을 리 없었다.
-신나게 쥐어터지다 보면 내가 도대체 게임에서까지 왜 이러고 있나…… 현타가 오기도 하니까.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면 아무것도 못 얻는 거지.
심지어는 그 과정을 견뎌 놓고도 보상이 없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견뎌 냈더니 ‘허허. 늙었더니 내 사람 보는 눈이 많이 죽었구만. 영 못 써먹겠어’ 이러고 그냥 쫒겨나면 빡이 치겠냐 안 치겠냐? 하는 짓만 보면 저 늙탱이가 사패인지 싸패인지 구분이 안 간다니까.
‘음…… 잠깐 상상해 봤는데 현타 장난 아니네요.’
-그지? 그래서 최악의 NPC 투표 같은 걸 할 때마다 상위권에 박히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또는 존재한다.
어떻게든 버텨서 길리안의 눈에만 들면 파격적이 보상이 따라왔으니까.
자신이 모아 놨던 컬렉션이라면서 유니크 등급의 무기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기술이라며 스킬을 알려 주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길리안의 인정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
후웅!
“800년 전 전설의 후예라니. 아주 기대가 되는군!”
길리안은 직사각형 형태의 대검을 크게 한 번 휘두른 후 자세를 잡았다.
“선공은 양보하지. 이것저것 잴 필요 없이 전력으로 덤비게나.”
“흐음…….”
상황은 이해했다.
저 괴짜 노인이 싹수 있는 젊은이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병에 걸렸다는 걸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절대로 못 이긴다. 어디 보자. 지금 시점이면 길리안이 레벨이 대충 200대 후반이려나? 300은 확실히 안 될 거고…… 아마 그쯤일 거야.
‘진짜 높네.’
현재 카르페와 레벨 200 이상 차이 나는 NPC들의 최정점.
당연히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한 레벨 차이였다.
그렇기에 퀘스트에도 ‘인정’만 받으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이고.
하지만.
‘뭐, 질 땐 지더라도 최소한 한 방은 먹여야지.’
-그래. 좋은 자세다. 제발 저 늙탱이 얼굴과 명치에 한 방씩 부탁하마. 참고로 오해할까 봐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내가 전생에 개같이 두드려 맞아서 딱히 이런 말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카르페가 로브 주머니에서 티나와 미라쥬를 꺼내자 길리안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호오. 이거 영광이군. 마도왕을 호위하던 전설의 일곱 기사라니. 협공할 생각인가? 물론 본인은 상관없네. 오히려 환영이지!”
“아뇨. 격하게 움직이다 보면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요.”
“기사의 승부에 여럿이서 합격(合擊)할 만큼 기사도를 모르지 않습니다. 주군. 부디 무운을.”
“마스터. 힘내.”
티나와 미라쥬는 그렇게 말한 후 연무장을 이탈했고 그런 그들에게 드렉이 다가왔다.
“허허. 장군과 후예께서 대련하시는 동안 두 분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신지요? 뭔가 좀 드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차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달콤한 거로…….”
“마침 저에게 좋은 찻잎이 있습니다. 그럼 광휘께는 차를, 환영께는 쿠키를…….”
“뀨!”
“아, 도토리도 추가하도록 하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시종을 시켜서 내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완벽하게 구경꾼 모드로 돌입한 일행을 뒤로하고 카르페가 자세를 잡았다.
꽉 쥔 왼 주먹은 앞으로, 오른손은 그보다 살짝 뒤로.
그리고 무릎은 조금 굽혀서 언제든지 튀어나갈 수 있도록.
카르페가 마법사의 전투 자세가 아닌 격투가의 자세를 취하자 길리안이 웃을 터뜨렸다.
“으하하홧! 마권사인가! 그런 점까지 마도왕과 같단 말이지. 아주 좋군! 오게나!”
“그럼 사양 않고!”
팍!
카르페가 전력으로 바닥을 박찼다. 그리고 동시에 마법을 발동했다.
“파이어 애로우!”
한 줄기 화염의 화살이 길리안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으나.
“흡!”
길리안은 피하지 않고 검을 들지 않은 맨손으로 불화살을 쳐 내 버렸다.
쾅!
폭발음과 함께 연기구름이 피어 올랐다.
그리고 그 연기가 순간적으로 길리안의 시야를 방해하는 동안, 카르페는 다시 한번 가속했다.
휙!
길리안의 옆구리를 노리고 카르페의 발차기가 쇄도했다.
견제를 겸한 파이어 애로우가 시야를 흐트린 틈을 타서 이어지는 기습.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깔끔한 연계였으나, 길리안은 백전노장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구현한 듯한 인물이었다.
쿵!
카르페의 공격은 길리안의 대검에 너무나 손쉽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마치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쯧.’
카르페는 속으로 혀를 한 번 차고는 멀찍이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 공격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 순간, 길리안이 대검을 땅바닥에 쿵! 찍은 후 소리쳤다.
“합격!”
“……네?”
“마법의 파괴력. 순간적인 스피드. 전투 센스와 판단력. 그 전부 흠잡을 데가 없구먼! 대단해! 지금까지 내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이방인들보다 독보적이군!”
길리안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너무 격렬한 반응에 카르페가 얼떨떨할 지경이었다.
“아니, 딱 한 번 공격했는데요?”
“한 번이면 판단하기에 충분하다네. 아주 놀랍군. 단순히 마도왕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야. 그냥 타고났어. 자네 아직 제대로 된 스승 같은 건 없지?”
“이것저것 조언해 주는 귀신이 있긴 한데 전투적인 측면에서 따로 배운 건 없긴 하죠.”
“귀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스승은 없다는 거군. 그래. 어디에서 체계적으로 배운 느낌은 아니야. 날 것 그대로, 실전에서 구르면서 익힌 냄새가 나.”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가르칠 맛이 차고 넘치는 인재라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신이 라마르크 왕국을 아주 버리진 않았나 보군. 말년이 바빠지겠어. 으화핫!”
“그럼 테스트는 이걸로 끝인가요?”
“물론! 라마르크 왕국의 유일한 공작인 이 길리안의 이름을 걸고 자네에게 최대의 지원을 약속하지. 하지만 합격은 합격인 거고…….”
척!
길리안은 다시 한번 카르페를 향해 대검을 겨눴다.
“하던 건 마저 해야지? 이대로 끝내기엔 자네도 찝찝할 것 아닌가.”
“뭐, 그럴 것 같았습니다.”
길리안이라는 인물이 타고난 전투광이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르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카르페의 입가에도 길리안과 비슷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럼 다시 갑니다.”
“으음! 언제든 오게나!”
그렇게 다시 전투가 이어졌다. 그리고 공방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길리안의 감탄은 거듭되었다.
“좋군! 방금 공격은 웬만한 일국의 장군들도 허를 찔렸겠어!”
“방금 건 너무 정직했네. 하지만 실린 힘은 아주 대단해!”
“좋아! 아주 좋아!”
전투에 심취한 카르페는 무아지경으로 몸을 놀려댔다.
시야 한구석에 떠오르는 알림창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더 없이 높은 경지에 오른 존재와 전투를 행하였습니다.] [보상으로 근력이 +1 증가합니다.] [보상으로 손재주가 +1 증가합니다.] [보상으로…….]수없이 떠오르는 알림창!
다른 유저들은 그저 얻어맞는 것으로 끝나서 볼 수 없었던 알림이 카르페에게는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허억. 허억.”
카르페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간을 잊어 가며 덤벼들었지만 결국 한 대도 정타를 날리지 못했다. 카르페는 몇 번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흐하핫! 자칫했으면 몇 번은 공격을 허용할 뻔했군. 아주 훌륭해.”
“후우…… 후우. 그래 봤자 한 대도 못 때렸는데요, 뭘.”
“자네랑 나랑 레벨 차이가 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그래도 낙심하지는 말게나. 내가 그 나이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취야.”
길리안은 그렇게 말한 후 드렉을 쳐다봤다.
“그래서 알현 시간은 잡혔는가? 폐하께 전하게나. 이 길리안이 후예를 보장하겠다고.”
“애석하지만 지금 폐하께서는 몸이 편찮으시다 하셨습니다. 후예께서의 알현은 조금 더 미루셔야 할 것 같습니다.”
“거 그 놈은 하는 일도 없으면서 계속 아프다고 난리야? 이번에도 뻔한 핑계로구만.”
“……말씀을 조심하시지요, 장군.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반역죄로 몰릴 만한 발언이옵니다.”
“반역은 무슨! 할 거면 진작에 했지. 하여간 맘에 안 들어.”
길리안은 그렇게 말한 후 다시 카르페를 쳐다봤다. 그는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곳까지 와 줬는데 미안하게 됐구만. 어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대련이나 더 하지 않겠나? 내가 좀 더 자세하게 가르쳐 주지.”
“후우. 후우.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레벨 업도 해야 하니까요.”
길리안과의 전투는 매우 재밌고 유익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인 이상 레벨 업을 빼놓을 순 없었다.
“레벨 업? 흐음. 확실히 중요하긴 하지.”
길리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럼 이건 어떤가? 레벨 업을 내가 시켜 주지!”
“……네? 무슨 말이에요? 그게.”
“거 이방인들은 동료가 몬스터를 잡아 줘도 레벨업을 한다면서? 아주 편한 축복이야.”
“……설마?”
“그래. 내가 잡아 주면 되잖냐. 순식간에 레벨 업 마치고 남는 시간은 나에게 이것저것 배우는 거지. 어때?”
-……헐.
“…….”
카르페가 멍하니 길리안을 쳐다봤다.
그러니까.
“버스? 쩔? 대륙 최강의 NPC가?”
날먹 인생 카르페.
이제는 승차감 좋은 레벨 업 버스에 탑승하는 순간이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