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96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96화
296. 19라운드 시작
류민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딱 봐도 둘 사이를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으니.
“잠깐만 기다려!”
서둘러 현관문을 나선 류민이 민주리를 붙잡았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말한다.
시선을 피한 채로.
“갑자기 말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해. 둘이 그러고 있는 줄 몰랐어. 좋은 시간 방해해서 미안.”
“무슨 소리야? 좋은 시간이라니? 뭔가 단단히 오해하나 본데…….”
“내가 바보였어. 이웃집에 예쁜 연예인이 살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경계하거나 의심했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정신 차리고 내 말 좀 들어봐. 네 생각처럼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거든?”
류민의 해명에 민주리가 시선을 들었다.
그러더니 진실만을 고하라는 듯 두 눈을 맞추며 말한다.
“정말 사귀는 사이 아니야?”
“아니야.”
“썸 타는 사이도 아니고?”
“아니라니까.”
“그럼 왜 한집에 있는데? 왜 같은 방에 있는 건데?”
“그냥 대화하고 있던 거야.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 오신 거라고.”
“…….”
마치 속마음을 꿰뚫어 보려는 듯 지그시 쳐다보던 민주리가 돌연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온 것이다.
류민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보아 한 점의 거짓도 없어 보였으니까.
더구나 서아린도 나타나서 류민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류민 씨 말대로예요. 방에서 그냥 얘기만 했을 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오해라는 게 확실하게 판명 난 상황.
이렇게 되자 민주리는 부끄러움에 고개도 들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아…… 둘이 아무 사이도 아닌데 내가 오해한 모양이네. 정말 미안…….”
괜찮다고 말하려던 류민이지만 그보다 서아린의 말이 빨랐다.
“오해 아니에요.”
“……?”
“서 배우님?”
“저 류민 씨 좋아해요.”
서아린의 폭탄 발언에 민주리가 홱 고개를 쳐들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류민 씨 좋아한다고요.”
민주리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간신히 되찾은 평화가 한순간에 깨지는 느낌이다.
이는 류민도 마찬가지였다.
‘뭐 하는 거야? 그걸 왜 말해?’
서아린의 마음이야 진즉에 알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터트릴 줄은 류민도 몰랐다.
정작 폭탄 고백을 터트린 서아린은 의외로 덤덤했지만.
“둘 다 놀라셨죠? 죄송해요.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요.”
“지, 진심이세요? 장난치는 거 아니고요?”
민주리가 거짓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러나 서아린은 이런 걸로 거짓말할 타입이 아니었다.
“제가 미쳤다고 이 상황에 장난치겠어요? 진심이에요. 진짜로 류민 씨가 좋아졌다고요.”
“…….”
“민주리 씨에겐 죄송해요. 저도 알고 있어요. 민주리 씨가 류민 씨를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정도는 눈치채죠.”
“…….”
“듣기로 고등학교 동창이라던데 그럼 학교 다닐 때부터 짝사랑해 온 건가요?”
민주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건…… 말하고 싶지 않네요.”
“경쟁자한테 정보는 줄 수 없다, 이건가요?”
“그걸 떠나서 기분 나쁘잖아요. 갑자기 정보를 캐내려는 것도 그렇고, 굳이 제 앞에서 민이를 좋아하네, 마네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차가운 민주리의 태도에 서아린도 쉽게 물러서진 않았다.
“죄송해요. 기분 나쁘게 할 의도는 없었어요. 다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민주리 씨도 짝사랑해 봤으니까 공감하시죠? 두 눈 뜨고 뺏기는 것보단 일단 시도라도 해보는 게 후회가 없지 않겠어요?”
“…….”
민주리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저 가만히 서아린을 노려보기만 할 뿐.
서아린도 마찬가지였다.
더는 지켜만 보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들고 당당히 시선을 받았다.
그렇게 난데없이 입찰 경쟁에 뛰어든 두 사람을 보며 류민은 탄식했다.
‘하아, 아파트 복도에서 이러지 말라고, 제발.’
* * *
7월 1일, 자정이 되기 30분 전.
류민은 침대에 누워 19라운드 진입을 대비했다.
다른 플레이어도 각자의 집에서 류민처럼 누워 있을 것이다.
다만 여태와 달리 불안할 것이다.
19라운드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니까.
‘하지만 나만큼 불안하진 않겠지.’
정보를 알고 있는 류민이 불안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만, 의외로 있다.
다름 아닌 서아린과 민주리 때문이다.
혹시나 이계에까지 와서 사고 치진 않을까 걱정됐다.
‘그때 이후로 둘이 말도 안 하는 거 같던데……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좀 좋게 좋게 지내면 안 되나?’
좋아하는 남자 하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거야 이해는 한다.
정말 뺏기고 싶지 않은 남자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자 생각은 안 하나?
둘의 마찰 때문에 뭔 사달이 날까 불안해하는 자신의 마음은?
‘이거 둘 다 싫다고 거절할 수도 없고 원…….’
괜히 밀어냈다간 심적인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영향이 파티 플레이에서 나타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20라운드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일을 그르칠 수야 없지.’
이럴 때는 이도 저도 선택하지 말고 중립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다.
둘에게 사적인 마음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
‘날 두고 죽일 듯이 싸우지만 마라. 둘 다 나에겐 소중한 동료이자 전력이니까.’
그렇게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됐다.
번쩍-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자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무채색의 공간으로, 그동안과 별다를 것 없는 광경이었다.
“우리 벌써 19라운드까지 왔네.”
“근데 인원은 이게 다야?”
“은근히 적어 보이네.”
일찌감치 도착한 플레이어들이 주변을 보며 탄식했다.
평소 같았으면 북적이고 있었을 텐데 143명이다 보니 육안으로도 머릿수 확인이 가능했다.
“이게 전 세계의 플레이어라니…….”
그래도 마지막에 백여 명이 넘게 남았다는 건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이전 회차에선 고작해야 류민 포함 3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많은 인원도 이번 라운드로 인해 절반이 깎여 나가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시스템의 힘은 절대적이니까.
그건 신격을 가진 류민이라도 다를 바 없었다.
[안녕하세요, 인간 여러분.]하늘에서 어김없이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천사가 나타났다.
[19라운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라운드까지 한 라운드만 남겨 놓고 있으신데요,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143명 전원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절반만 생존할 수 있죠.]천사가 먼저 저렇게 안타깝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저자세로 나오는 건 다름 아닌 류민 때문이었다.
행여나 기분 나쁘다고 죽일지도 몰랐으니까.
지금도 힐끔거리며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지 않은가?
천사가 날갯짓을 하자 플레이어들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 ROUND 19 ▶
└72시간 동안 판타지 세계에서 생존하기
[통합 구역 CA-EA001]└참가자 : 143
└달성자 : 0/72
처음으로 미션을 확인한 플레이어들은 눈을 크게 떴다.
“72시간?”
“꼬박 3일을 생존해야 한다고?”
“게다가 서브 퀘스트도 없어.”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한 퀘스트였다.
여기까진 수긍할 수 있는지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하지만 다음 말을 들은 순간 사람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단, 생존자가 72명보다 많으면 전원이 소멸합니다. 그러니 제한 시간이 끝날 때 72명이 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겠죠? 한 명이라도 정원을 초과해버리면 미션 실패로 모두 사망할 테니까요.]“전원 사망……?”
“그, 그럼 73명 이상만 살아도 다 같이 죽는 거야?”
[그렇습니다.]“말하자면…… 우리더러 생존자 수를 72명 이하로 맞추라는 소리네?”
“협력 퀘스트인 건가?”
“자, 잠깐만요, 천사님. 이건 말이 안 되는데요? 우리가 생존자 수를 어떻게 조절해요?”
누군가의 질문에 천사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떻게 하긴요. 서로 죽여서 조절해야지요.]“…….”
아닌 게 아니라 퀘스트는 서로를 죽이게끔 부추기고 있었다.
하지만 72시간이 지났을 때 72명을 초과해서 살아남으면 곤란하다.
그랬다간 전원 사망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
[중요한 건 라운드가 끝날 때의 인원수예요. 서로를 죽여서라도 72명 이하로 인원을 맞춰야 최악을 피할 수 있어요.]어떻게 보면 죽음의 4라운드와 비슷한 미션이었다.
살기 위해 동료를 죽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물론 몇몇 디테일한 부분은 달랐지만.
[4라운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이번 라운드는 죽어도 부활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에요.]“끝이라고……?”
“스킬도 안 먹히나?”
[물론 스킬이나 포션으로는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죽은 지 10분이 지나도 살아나지 못한다면 부활 가능성이 없는 걸로 보고 시스템이 그 자리에서 즉시 소멸시킵니다. 기존과 달리 바로 탈락하는 거죠.]보통은 마지막 정산 시간에 일괄적으로 소멸하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또 다른 점은 원할 때 서로를 추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서로를 추적할 수 있다고?”
[라운드가 시작되면 퀘스트 진행창에 여러분의 닉네임과 얼굴, 서로 간의 거리가 실시간으로 떠오르거든요. 그걸 보고 쉽게 다른 사람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 추적하기 좋게 시스템이 편의를 봐주고 있는 거죠.]말이 추적이지 사실상 살인을 조장하는 라운드였다.
‘아주 서로 죽이라고 판을 깔아주는구나.’
‘이러면 불안해서 잠도 못 자겠는데……?’
‘뜬눈으로 사주 경계해야 할 판이야.’
‘에휴, 잠자긴 글렀네.’
그리 생각하던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아무리 같은 사신교이자 생사를 헤쳐온 동료라 해도 남은 남.
인원을 줄이겠다고 갑자기 칼을 빼 들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부터 서로를 경계하는 사람들을 보며 류민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지. 언제까지고 동료로 남을 순 없으니까.’
시스템이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게 목숨이 저당 잡힌 플레이어들의 숙명.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된 마당에 류민은 자신의 지인들을 바라봤다.
겉으론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속으론 혼란스러운지 복잡한 생각들이 전해진다.
‘괜찮을까? 쓸데없는 생각만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특히 민주리와 서아린이 걱정이다.
서로 죽이겠다고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으니.
내심 불안하던 류민이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만일을 대비해 노예들에게 명령을 내려놨다.
자신도 마냥 사냥만 할 생각은 없었고.
[72시간 동안 도망을 치든 사냥을 하든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마을은 이용할 수 없으니 음식이나 물은 알아서 해결하셔야 할 겁니다. 인간 세상엔 자급자족이라는 좋은 말이 있잖아요? 킥…….]키득 웃던 천사가 류민의 무서운 표정을 봤는지 황급히 안색을 굳혔다.
[차, 참고로 순위 측정 방식은 비밀이고요.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여러분을 판타지 세계로 이동시켜드릴 건데요, 시작 장소는 골고루 랜덤으로 정해지니 칼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그럼 모두 72시간 뒤에 살아서 만나요.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