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4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34화
34. 새로운 구역 대표
칼 같은 거절에 조중식의 사고가 잠시 정지했다.
설마 검은 낫이 거절할 줄은 몰랐다.
“자, 잠깐!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제안을 받아들인다니까?”
“필요 없어.”
“네가 한 제안이잖아!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날 호위해 주겠다며!”
“기회는 지났다.”
지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말해주듯 검은 낫이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보란 듯이 거절당하자 조중식이 자기도 모르게 울컥했다.
“대체 왜! 네놈 밑으로 들어가겠다는데 왜 거절하는 건데!”
그 목소리에 검은 낫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통솔권도 없는 부하는 필요 없다.”
그 말만 남긴 채 검은 낫은 떠났다.
멍한 표정의 조중식을 내버려 둔 채로.
그 모습을 본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변했다.
“다들 봤어? 제안 거절하는 거?”
“검은 낫이 결국엔 인생은 다큐도 버린 모양인데?”
“다행이야. 검은 낫이 도와주면 어쩌나 싶었는데.”
“정말 인생이 다큐네.”
“이제 마음 놓고 죽일 수 있겠어.”
플레이어들이 흉흉한 얼굴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하이에나에 둘러싸인 사자처럼 조중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통솔권을 다 써서 이용 가치가 없어졌다는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검은 낫의 제안을 받아들일 걸 그랬다.
그랬으면 통솔권을 쓸 일도 없었을 테고 이렇게 위기를 겪지도 않았을 텐데.
욱씬-
옆구리의 통증이 심하다.
더 이상 도망은 무리다.
‘X발, 어떻게든 싸워보는 수밖에 없나?’
조중식이 뒤돌아 검을 움켜쥐었다.
검투사 전직 기념으로 받은 숏소드였다.
‘갈 땐 가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가주마.’
서른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조중식이 각오를 다졌다.
이길 자신은 없지만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어떻게든 되리라.
‘쳇, 호위들을 뿌리치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이럴 때 한 명의 아군이라도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록 통솔권으로 지배한 녀석들이라 해도 말이다.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 혼자서 이 상황을 벗어나야…….’
그때 조중식 앞에 잊고 있던 한 사람이 나타났다.
“선배님!”
“황용민?”
갑자기 나타난 덩치에 조중식이 반색했다.
“어디 갔었어, 후배야!”
“힘드시죠?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그래, 고맙다! 나중에 살아나가면 내가 확실하게 챙겨줄…….”
조중식은 말을 잇지 못했다.
별안간 눈앞이 번쩍하더니 하늘이 보였으니까.
“선배님.”
조중식의 시야에 주먹을 들고 있는 황용민이 보인다.
“제가 편하게 죽여드리겠습니다.”
“너 이 샊…….”
뻑! 뻑! 뻐억!
벽돌도 부수는 힘이 조중식의 안면에 여러 번 내리꽂혔다.
의식을 잃기 직전 보인 것은 악귀처럼 웃고 있는 황용민이었다.
‘X발…… 나 조중식이 저딴 새끼한테 배신당하다니…….’
빠악-!
마지막 결정타에 의식을 잃으며 조중식의 숨이 멎었다.
메시지가 뜨고 나서야 황용민이 주먹질을 멈췄다.
피 칠갑이 된 주먹을 들어 올리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하하하! 이젠 내가 구역 대표다! 내가 왕이라고!”
새로 얻은 스킬인 통솔권도 확인했다.
비록 열 번밖에 못 쓰지만 비 전직자를 대상으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지! 마음만 먹으면 서아린도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거니까. 흐흐흐!’
사실 대표가 되고 싶은 목적은 여기에 있었다.
자신의 이상형인 서아린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나도 이제 막 9레벨을 찍었으니 서아린도 아직 전직 못 했을 거야. 후후.’
서아린에게 통솔권을 쓸 생각에 황용민이 싱글벙글 웃었다.
그 천진난만한 웃음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저 녀석, 조폭에게 붙어먹던 놈 아니었어?”
“처음부터 배신하려고 접근했었던 거야?”
“무서운 놈이네…….”
“무서운 게 아니라 악질이지.”
“저런 놈이 구역 대표가 되다니…….”
비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황용민은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일진 친구들을 향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할 뿐이다.
“얘들아! 봤냐? 내가 막타 치는 거?”
“어어…….”
“분명 승산 있다고 말했지?”
“그, 그러네.”
“자, 잘됐네.”
친구들이 웃으며 말했지만 내심 떨떠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새끼…… 맨주먹으로 사람을 죽였어.’
‘지금 뒤통수치면 구역 대표가 될 수 있다고 하더니 정말로 죽일 줄이야…….’
‘미친 싸이코 새끼.’
황용민의 또X이 같은 행동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친구들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계획적인 모습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하지만 황용민도 처음부터 배신할 생각은 없었다.
조중식이 목숨에 연연하며 구차한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는.
‘실망이군요. 중식이파 보스라는 분이 도망이나 치고 있다니.’
황용민은 기억했다.
플레이어를 피해 도망 다니던 조중식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이래 가지고 제가 어디 가서 롤모델이었다고 말할 수나 있겠습니까? 쪽팔려서 원.’
닿을 수 없는 우상처럼 느껴졌었는데 알고 보니 한낱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보내드린 겁니다. 구차하게 발버둥 치느니 저한테 죽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통솔권이 없는 구역 대표는 가치가 없다.
카리스마를 잃은 조중식 또한 가치가 없다.
그래서 황용민이 나선 거다.
조중식의 뒤통수를 치고 자신이 구역 대표가 되기로.
‘통솔권은 제가 잘 쓰겠습니다. 흐흐.’
조중식의 시체를 향해 짧게 묵념한 뒤 고개를 들었다.
주변의 살기 어린 시선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다.
표적이 바뀐 탓이다.
‘이젠 날 노리는 건가? 크큭.’
그런데도 황용민은 겁먹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다름 아니라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검은 낫님!”
황용민은 곧장 류민에게 달려갔다.
기척 감지를 통해 진즉에 인식하고 있던 류민이 뒤늦게 고개를 돌리며 의아한 표정을 연기했다.
“무슨 일이지?”
“메시지 보셨습니까? 이젠 제가 구역 대표입니다. 통솔권이 있다고요.”
“그래서?”
황용민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아까 인생은 다큐에게 했던 제안을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시키는 일은 뭐든 하겠다는 겁니다. 그 대신 절 호위해 주시죠!”
황용민은 류민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중식과 했던 대화를 들었으니까.
‘조중식이 버림받은 건 통솔권이 없어서야. 그러니 내 제안은 받아들이겠지.’
검은 낫에게 당한 게 있는 터라 두 번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검은 낫의 반응은 냉랭했다.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군.”
“예?”
“엎드려서 부탁한다면 받아들일지 말지 생각해 보지.”
“…….”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던 황용민이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제 말 제대로 들으셨어요? 저한테 통솔권이 있다니까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류민의 차가운 반응은 황용민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아쉬운 건 너지, 내가 아니야.”
“…….”
“내 호위를 받고 싶어? 그럼 엎드려서 빌어.”
“…….”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황용민이 주변을 돌아봤다.
하이에나들의 매서운 시선이 느껴진다.
굴욕적인 상황이었지만 황용민은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털썩-
곧장 자존심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검은 낫님! 시키는 건 뭐든지 할 테니 제발 저를 부하로 써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외치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류민은 속으로 조소를 머금을 따름이었다.
진절머리나도록 봤던 장면이었으니까.
‘예상대로 황용민이 구역 대표가 됐군.’
류민이 황용민을 살려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조중식을 죽이는 변수 카드가 바로 황용민이었으니까.
‘조중식은 죽어도 상관없어. 내게 필요한 건 명령에 잘 따르는 장기 말이니.’
조중식은 자존심을 꺾지 않은 데다 통솔권마저 없었다.
그를 지켜줘야 할 이유가 티끌만큼도 없다.
‘반면 황용민은 이용 가치가 있다. 아직은.’
간절한 마음으로 절하고 있는 황용민을 보며 류민이 못 이기는 척 받아줬다.
“좋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검은 낫님!”
황용민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그만해라. 꼴 보기 싫다.”
“예? 아, 예…….”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황용민을 뒤로 세운 채 류민이 앞으로 나섰다.
척-
황용민을 지키듯 대형 낫을 들고 서 있자 플레이어들이 다가올 엄두를 못 냈다.
이름값만큼이나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겨, 결국 저렇게 된 거야?”
“검은 낫이 황용민을 호위해 준다고?”
“젠장…….”
황용민을 처치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검은 낫은 달랐다.
그 존재만으로도 심히 부담스러웠다.
그럴 만도 했다.
5차 웨이브가 진행 중인 지금까지 검은 낫이 보여준 무용은 같은 인간이라 부르기 힘든 수준이었으니까.
“어떡하지? 조금 있으면 웨이브가 끝날 텐데…….”
“그냥 한꺼번에 덤비는 게 어때요?”
“당신, 검은 낫이 싸우는 거 못 봤어? 혼자서 입구를 지키며 수백 마리를 상대하던 자야.”
“그래, 저런 괴물을 우리가 무슨 수로 이기냐고.”
“하지만 구역 대표가 되려거든 지금이 기회라고요.”
류민을 앞에 두고서 플레이어들이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물러날지 아니면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공격을 강행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답답했는지 류민이 선택지를 줬다.
“내가 선택에 도움을 주지. 너희에겐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구역 대표를 포기하고 이대로 돌아가서 몬스터라도 잡고 기록을 세울지, 아니면 내 손에 죽을지.”
“…….”
“웬만하면 전자를 추천하지만, 후자도 상관없다. 나한테 칼을 들이대는 놈은 더 이상 인간으로 봐주지 않을 테니.”
류민의 그 말이 결정타였을까?
“나, 난 빠지겠어.”
“나도.”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황용민이 큭큭거리며 웃음을 삼켰다.
‘대단하잖아? 검은 낫의 말 한마디에 다들 물러나고 있어!’
황용민은 새삼 검은 낫의 위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적이었을 때는 두려웠는데 아군이 되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일종의 대리만족마저 느껴질 정도.
황용민이 어깨를 펴며 우쭐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민은 상황을 살피며 남은 몬스터를 세봤다.
‘슬슬 끝나가는 분위기군.’
놀들이 플레이어에 밀려 죽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면 5차 웨이브도 무사히 클리어하리라.
‘그리고 전원 보상을 받고 라운드가 종료되겠지.’
하지만 류민이 바라는 바는 그게 아니었다.
‘이대로 끝내면 섭섭하지.’
그는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서브 퀘스트를 드러내야 할 타이밍을.
황용민을 부하로 받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황용민.”
“예, 검은 낫님!”
“약속대로 내가 시키는 일을 시행해라.”
“어떤 일입니까?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활기차게 말한 황용민이지만 잠시 후.
명령을 들은 그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