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44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44화
44. 착하게 좀 사세요.
류민과 헤어지고 난 뒤.
마경록은 자리에 남아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이 정도 정보면 제 능력을 증명하기에 충분하겠지요?
충분하다마다.
4라운드에 관한 정보는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으니까.
‘물론 정보가 들어맞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겠지만.’
류민에게서 들은 4라운드 정보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정말로 그런 참극이 벌어진다고?’
만약 사실이라면 시작부터 조심해야 한다.
주변 경계에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그때 옆에 있던 안상철이 갑작스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까는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소리를…….”
“괜찮습니다. 안 실장이 저를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요?”
“그럼…… 생각난 김에 한 말씀 더 올려도 되겠습니까?”
“가감 없이 의견을 말해보세요.”
“저는 솔직히 류민이라는 사람이 의심스럽습니다. 미래를 본다니…… 그런 능력이 있으면 혼자서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지 뭐하러 저희를 돕는답니까?”
“우리 회사와 같이 성장하고 싶다잖아요? 돈을 더 벌고 싶은가 보죠.”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2,800억이나 가졌으면 이미 평생을 놀고먹어도 다 쓰지 못하는 금액인데.”
“그거론 부족한가 보죠.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으니까요. 저 같아도 확실하게 돈 되는 정보가 있으면 당장 발 벗고 투자할 겁니다.”
“그렇다 해도 저 사람의 정보만 믿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그런 엄청난 룬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고요.”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마경록의 눈빛이 변했다.
흡사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빛처럼.
“정말로 미래를 보는 예언자라면 확실하게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매 라운드 정보를 얻고 대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도움이 될지. 그 과정에 회사가 성장하는 건 덤이고요.”
“하지만 예언자가 확실할지…….”
“그거야.”
마경록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두고 보면 알게 될 일 아니겠습니까?”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류민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름 아니라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됐으니까.
‘전 회차처럼 마경록이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어.’
비록 마경록을 설득하진 못했지만 걱정할 건 없다.
‘어차피 4라운드가 끝나면 내가 예언자라는 걸 확신하게 될 테니까.’
서브 퀘스트 같은 중요한 정보는 말하지 않았다.
순위권에 드는 법에 대해서도 일부러 숨겼다.
‘내 밥그릇 챙기기도 바쁜데 남에게 퍼줄 이유는 없지.’
그저.
[4라운드는 몬스터를 잡는 퀘스트가 아니고 플레이어 간의 학살이 벌어진다.]그 정도만 이야기해 줬다.
알맹이는 쏙 빼고 껍데기만 알려준 셈이다.
‘그 정도만 해도 내가 예언자라는 걸 증명하기엔 충분하겠지.’
예언자?
틀린 말은 아니다.
수십 번의 회귀로 미래를 내다보고 있으니까.
미래시의 룬?
그런 룬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류민이 말한 것처럼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룬은 아니다.
‘고작해야 몇 초의 미래를 보는 룬이지.’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순 없다.
이 역시 필수로 얻어야 하는 룬 리스트에 들어가니까.
‘8라운드는 돼야 얻을 수 있는 룬이다. 아직은 시기상조야.’
어쨌거나 자신이 말한 정보가 들어맞으면, 마경록은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마경록과 안상철에게 집 주소가 노출되고 예언자라는 것까지 밝히게 됐지만…….’
류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위험하지는 않다고.
그들이 자신이나 동생에게 상해를 가하거나 협박하진 않을 거라고.
‘오히려 예언자라고 극진히 대접하고 지켜줄 거다. 적으로 만들기보다 아군으로 곁에 두는 편이 마경록의 입장에서도 더 좋을 테니.’
예언자라는 아군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든든할 터.
‘그러니 지금이라도 민주리에게 말하는 게 좋겠지? 내가 예언자라고.’
예언자 컨셉을 잡기로 했으니 앞으로 쭉 밀고 나가야 한다.
숨겨서 좋을 건 없다.
자칫 너무 늦게 말하면 신뢰도가 깨질 우려도 있으니.
‘내가 검은 낫이라는 건 숨기는 편이 좋겠지만.’
검은 낫이라는 걸 밝히면 이계에서 행동하는데 제약이 생긴다.
‘내 잔인한 면모에 잘못하면 비호감으로 찍힐 수도 있어.’
검은 낫의 정체는 숨겨야 좋다.
하지만 예언자라는 건 밝히는 게 좋다.
그래야 민주리에게 다음 라운드에 대한 정보를 주며 대놓고 도움을 줄 수 있다.
‘언젠가 직업을 물어볼 텐데 지금이라도 말하는 게 좋겠지.’
갑작스럽겠지만 민주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주리야.”
-웬일이야? 먼저 전화를 다 하고?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편의점 앞으로 갈게.”
-어? 지, 지금?
“응. 1시간 후에 보는 거 어때?”
-아, 알았어! 그때 보자.
약속을 잡고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아탔다.
“GS24 연희점으로 가주세요.”
“옙! 안전벨트 부탁드립니다, 손님.”
창밖을 보며 상념에 잠기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민주리인가 싶어 쳐다보니 낯선 번호가 찍혀 있었다.
‘아, 이 번호는…….’
벌써 인도받을 때가 됐나?
그런 생각으로 전화를 받으니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슈퍼카 딜러 최태국입니다! 다름 아니라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슈퍼카가 입고돼서요.
‘딱히 기다리진 않았는데.’
그래도 여러모로 차가 필요하니 오늘 인도받는 편이 좋았다.
-당장 인도해 드릴까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어쩌지? 지금은 주리를 만나야 하는데.’
당장 집으로 오라고 하기엔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편의점으로 오라고 하기에도 껄끄럽다.
눈에 띄기도 하고 골목이라 장소가 협소하다.
“서대문구로 오실 수 있나요? 문자로 주소 보내드릴게요.”
-예! 금방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주소를 보낸 뒤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GS24 연희점 말고 서대문구 소방서 인근 주택가로 가주세요.”
“예입!”
류민이 말한 곳은 다름 아닌 이사 가기 전의 옛집, 허름한 다가구주택이었다.
‘거기라면 차 댈 공간은 있으니 괜찮겠지.’
혹시라도 우편물 온 게 있나 한번 가봐야겠다.
* * *
“여기서 세워주세요.”
“알겠습니다, 손님.”
택시비를 계산하고 차에서 내렸다.
차를 인도받기 위해 옛 골목길을 걷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이사한 지 고작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옛날처럼 느껴지네.’
숲이 울창한 100평대 아파트에 살다가 허름한 주택가에 들렀다.
동네의 괴리감이 느껴지다 보니 고향이라도 온 기분.
딜러에게서 온 문자를 보면서 산책하듯 걸었다.
‘10분 있으면 도착한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
우편물이나 확인해 볼 생각으로 집 앞에 이르렀는데.
‘응?’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집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다.
“아빠, 저기 봐! 류민이야.”
“음? 민이?!”
자신을 발견하고 다가오는 두 사람을 보며 류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는 마주치기 싫은, 남보다 못한 친척들이었으니까.
“오랜만이다, 민아. 잘 있었느냐?”
“큰아버지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싸늘한 목소리로 되묻자 옆에 있던 찌끄래기 같은 친척 형의 인상이 구겨진다.
“야, 이 새끼야. 우리 아버지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오랜만에 봤으면 허리부터 숙여야지!”
“내가 왜?”
“뭐?”
“아빠 엄마가 돌아가시고 세상이 무너져내릴 때 큰아버지가 곁에 있어 주기를 했어? 아니면 후견인으로 보호해 주기라도 했어? 큰아버지한테 무슨 은혜를 입었다고 허리를 숙여? 나 몰라라 등 돌리기밖에 더했어?”
“이, 이 새끼가!”
“큰아버지도 기억나시죠? 툭하면 저희 아버지에게 돈 빌려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래놓고 돌아가시니까 일언반구도 안 하시던데. 너무하다는 생각 안 하세요?”
“…….”
촌철살인 같은 말로 몰아붙이자 두 사람이 당황한다.
“표정들이 왜 그래요?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이, 이 새끼가 뒈지려고! 그, 그리고 너 왜 형한테 반말이야?”
“형은 무슨. 형 같지도 않은 게.”
“뭐? 이 새끼가……!”
“그만해라, 둘 다!”
큰아버지의 제지에, 류민이 순간 자신을 돌아봤다.
‘이런, 울컥해서 나도 모르게 쏘아붙였네.’
그만큼 큰아버지를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보는 것도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답지 않게 흥분했어.’
반성한 류민이 금세 흥분을 가라앉혔다.
큰아버지가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한다.
“그래. 내 잘못이 있다는 거 인정한다. 그러니까 뭐 하나만 부탁하자.”
부스럭-
큰아버지가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낸다.
“여기에 동의한다고 서명해다오.”
“이게 뭔데요.”
“알 거 없잖아, 새끼야.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
옆에서 친척 형이 짖어댔지만 무시했다.
탁-
서류를 낚아챈 뒤 살펴봤다.
“보험금 수령 동의서?”
고개를 들어 큰아버지를 쳐다봤다.
‘아, 이 인간.’
류민은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었다.
그새 속마음을 전부 읽었으니까.
“그게 뭔지 얘기해 주마. 이번에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들었니?”
“들었을 리가요. 누구 하나 연락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그래, 그렇겠지. 아무튼 너희 할아버지가 사망보험금을 들어놨단 말이야? 보험금 수익자는 할머니로 지정해놓고. 근데 할머니마저 돌아가셔서 보험금 받을 사람이 없어졌지 뭐냐?”
“…….”
“그래서 보험회사에 물어봤더니 다행히도 할머니의 법정대리인인 우리 친척들이 대신 수령할 수 있다더구나. 너를 포함해서 말이다.”
“…….”
“단, 법정대리인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 수령할 수 있다고 하니, 여기에 서명 좀 해줬으면 한다.”
‘집 앞에 찾아와 서성이고 있던 이유가 이거였어? 보험금 받으려고?’
가만히 듣고 있던 류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제가 동의하지 않으면? 큰아버지를 포함한 친척들은 보험금을 못 받는 건가요?”
“응? 그, 그렇지. 우리뿐만이 아니라 너도…….”
“그럼 동의하지 않을래요.”
큰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왜?”
“등 돌린 친척들이 돈 받아먹는 게 싫으니까요.”
“후우…… 민아. 잘 생각해라.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너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야. 돈 나갈 데가 많을 텐데 보험금을 나눠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동생도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구닥다리 같은 집에서 살 거냐? 응?”
“제 동의 얻으려고 큰아버지가 구차하게 이러는 꼴도 보기 싫네요.”
“나만 좋자고 이러는 거겠냐? 너도 한 푼이라도 건지라고 내가 배려해 주는 거 아니…….”
쫘악- 쫙-
더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류민이 들고 있던 동의서를 찢어버렸다.
“무, 무슨 짓이냐!”
“말로 해서 못 알아먹길래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이 부모한테 배운 것도 없는 멍청한 새끼가!”
우습다.
고작 종이 하나에 흥분하는 큰아버지의 꼴이.
‘내가 한때 저런 돈벌레를 믿고 의지하려 했다니.’
류민이 탄식을 흘리는 사이.
“내 이럴 줄 알았어! 아빠, 봤지? 이 새끼, 말로 해선 못 알아먹는다니까?”
친척 형이 류민을 보며 뚜둑뚜둑 주먹 관절을 풀었다.
“새끼야, 좋은 말로 할 때 동의서 써라?”
“왜? 치게? 자신 있어?”
“이놈 봐라? 못 본 사이에 자신감이 대단해졌네? 꼴에 너도 플레이어라 이거냐?”
피식 비웃음을 흘리던 친척 형이 험상궂은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깝치지 마, 새끼야. 일찍 안 뒤진 걸 보니 너도 용케 3라운드까지 살아남은 모양인데, 난 너랑 수준이 다르거든?”
“레벨이 몇인데.”
“11이다, 새끼야. 직업도 벌써 가졌고.”
“11? 풉.”
“X발, 지금 비웃었냐?”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던 아들의 어깨를 큰아버지가 붙잡았다.
“잠깐 기다려라. 일 치르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해보마.”
큰아버지가 질책하는 듯한 눈빛으로 류민을 쳐다봤다.
“후우, 민아. 대체 왜 이러는 거냐? 다 지난 일 가지고 일을 왜 복잡하게 만드는 거야.”
“…….”
“돈이 부족한 거냐? 내가 네 아버지 빚을 갚지 않아서 불만이었던 거야?”
“…….”
“그래. 네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지만 조금이라도 변상하마. 얼마면 돼? 얼마면 만족하겠냐? 일단 들어보고 생각해 보…….”
그때였다.
부르르릉- 부르르르릉!
시끄러운 엔진음에 세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시선에 보인 것은 초라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슈퍼카였다.
“저, 저건!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모델이잖아?”
몇 번이고 찾아봤던 드림카가 눈앞에 나타나자 친척 형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 X라 부럽다. 저 비싼 걸 타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네 앞에 있잖아.”
류민이 툭 내뱉자 친척 형이 인상을 찌푸린다.
“뭐래? 이 병신이.”
“착하게 좀 살아, 어디 가서 형 대우받고 싶으면. 욕도 좀 하지 말고.”
덕담을 던져준 류민이 큰아버지를 쳐다봤다.
“큰아버지도 마찬가지예요. 착하게 좀 사세요. 돈만 좇지 말고. 자식 교육도 잘하고요. 언젠가 자식에게 똑같이 뒤통수 맞습니다.”
“그래, 알겠다.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 같이 보험회사에 가서 동의한다고만…….”
“아, 됐어요. 더는 들어주기도 힘드네요.”
“어디 가냐! 내 말 아직 안 끝났……!”
큰아버지가 말하다 말고 눈을 끔뻑였다.
아닌 게 아니라 류민이 슈퍼카에서 내린 운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
“뭐지? 아는 사인가? 아니면 친구?”
그러나 아는 사이나 친구라기엔 운전자가 류민에게 90도로 인사한다.
심지어 차 키까지 건네주고 사라진다.
“뭐야? 서, 설마…….”
류민이 자연스레 운전석에 앉았다.
지켜보던 친척 형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큰아버지는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부르르르릉-
류민이 두 사람 앞으로 람보르기니를 끌고 왔다.
지이이잉-
차창을 내리고 마지막으로 충고를 남겼다.
“얼마 살지도 못하는 인생, 착하게 좀 사세요. 아셨어요?”
“…….”
“…….”
그 말을 끝으로.
부와아아아아아앙-!!!
람보르기니는 굉음을 지르며 동네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