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65
제164화
마차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마엘에게 향했다.
“저, 정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지금….”
“…….”
순진하게 묻는 차멜리도 차멜리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이 정보가 절실한 사람은 바로 프래넌이었다.
마엘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프래넌을 똑바로 바라보고 얘기했다.
“저… 성위님. 제가 유물회 소속인 것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당연한 말을.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일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겠지. 왜 그러나?”
“유물회에는 온갖 기록들이 모여듭니다. 지식의 보고는 조디악이지만 유물회도 그에 못지않은 방대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죠.”
“그 고문서도 그곳에서 가져왔다는 건가?”
“맞습니다.”
“여기… 이 문서를 좀 보시죠.”
프래넌이 두꺼운 종이를 받아들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음? 유물회에 이런 자료가 있었다고?”
“알카트론 관련 자료 수집을 위해서 유물회의 서고를 밤낮으로 전부 뒤졌습니다. 그중에는 내용 파악이 되지 않는 고문서들도 상당수 있었죠. 그중 하나입니다.”
“내용 파악이 되지 않다니… 어째서?”
“이유는 여럿입니다. 종교적인 의미로 만들어진 것들은 그 내용이 상당히 난해합니다. 대부분이 그런 것들이고요. 보통은 그 내용이, 뜻이 일치하지 않는 엉터리 문장들과 언어로 가득 채워진 것이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뭐… 다른 이유도 몇 가지가 더 있지만, 이 책에 해당하는 경우는 일치하는 언어가 없다는 것.”
“흐음… 존재는 하는 것 같은데 해석을 못 하는 경우겠군그래?”
“맞습니다!”
뭔가 알 듯 말 듯 한 얘기를 나누는 둘.
학문적으로도 성취가 대단한 프래넌과 그 지식의 끝이 어딘가 궁금해질 정도인 마엘의 대화였기에 다른 일행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아마도 너무나 오래된 언어기에 소실된 것이겠죠.”
“단순히 한 지방의 언어가 소실된 거라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강설이 책을 대충 곁눈질하고는 그림자 공간에 있는 쌍둥이 기사에게 물었다.
‘저 언어, 몬트라의 언어야?’
들려온 대답은 강설이 기대하던 대답과 전혀 딴판이었다.
– 아니, 몬트라의 언어는 아니야.
‘음….’
마엘이 다른 미심쩍은 점들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그 종이의 재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군. 처음 만지는 재질이야. 자네는 뭔지 아는가?”
“유물회에서도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 종이의 재질을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알아낸 것은 여기….”
마엘이 내민 것은 종이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알카트론의 모습인가?”
“네. 발굴 당시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것 중 하나입니다.”
“음, 책에 비슷한 그림이 있군.”
“예. 개개의 잠긴 방 앞에 새겨진 문양인 걸로 봐서 방의 용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맞습니다. 책에서 문양을 일정한 틀에 맞추어 설명한 점과 더불어 알카트론의 방 앞에 문양이 혼재되어 배치된 점까지. 이거 꼭… 우리가 쓰는 숫자 같지 않습니까?”
“가능성이 있는 말이야, 방 앞에 숫자라… 잠겨있다고?”
차멜리와 강설, 쟈마드와 프래넌이 동시에 마주 보았다.
“감… 옥?”
“달리 다른 건 떠오르지 않는군.”
“알카트론이 뭔가를 구속하는 감옥일 수 있다는….”
“끄으응…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군. 그보다, 감옥이라는 걸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확신하기는 어렵지 않나?”
“여기… 이걸 가져오긴 했습니다.”
마엘이 줄곧 봇짐에 꽁꽁 감춰두었던 뭔가를 꺼냈다.
끼끽… 우끼끽…
새장 같은 우리에 든 원숭이였다.
프래넌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평범한 원숭이일 리는 없고… 이거 설마 내가 짐작하는 그건가?”
마엘이 싱긋 웃었다.
“맞습니다. 탐닉자죠.”
“이럴 수가… 탐닉자는 유물회에서도 몇 없는 희귀한 자원이지 않은가?”
탐닉자, 강설도 익히 알고 있는 희귀한 생물이었다.
‘유물회가 탐닉자를 가져왔다고?’
차멜리가 마엘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을 걸었다.
“윽… 옆구리는 약합니다.”
“죄, 죄송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 사회에서처음 만난 트롤이라 낯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어느샌가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탐닉자가 뭐예요?”
“교구장님은 탐닉자를 모르시는군요.”
“예, 교구 운영에 관해서 유물회랑은 크게 접점이 없어서….”
“탐닉자는 생각하는 원숭이입니다.”
“그게 전부예요?”
“그게 전부였다면 이름이 남겨지지도 않았겠죠. 이 원숭이의 학습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뭐든 지식을 함양하고 있는 자료를 던져주면 매우 빠른 속도로 그것을 습득합니다.”
“오….”
우끽… 우끼끽…
탐닉자는 마엘이 건네주는 열매를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근데 왜 말을 못 해요?”
“흥미가 떨어지면 모든 걸 기억 저편에 묻어둬서 평범한 원숭이가 됩니다.”
“뭐야, 그게….”
“그렇기에 새로운 것을 탐닉할 수 있는 겁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이니까요.”
승려가 할 만한 말에 모두들 살며시 웃었다.
프래넌이 물었다.
“한데, 유물회가 그 원숭이까지 자네한테 딸려 보냈다고?”
“그렇습니다. 제가 신임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알카트론 그 자체에 관심이 매우 많은 모양이더군요.”
“그놈들은 앞에 고대라는 단어만 붙으면 바지춤도 추켜올리다 말고 뛰어올 놈들이니까. 아무튼, 그놈이 활약을 좀 했는가?”
“건네드린 기록이나 다른 고문서에는 아직 반응이 없는 데 반해, 제가 개인적으로 챙겨온 문서에는 반응이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챙겨왔다고?”
툭.
마엘은 또다시 뭔가를 꺼냈다.
“윽… 무슨 책에서 이런 냄새가.”
차멜리가 코를 부여잡았다.
“하하하… 조금만 참아주시죠.”
프래넌이 물었다.
“그게 뭔가?”
“지난 발굴 때 습득한 고서적인데 발굴 현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알 수 없는 언어로 기술되어 있었기에 탐닉자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해석에 성공했는가?”
“…키키야, 거기 뭐라고 적혀 있든?”
원숭이가 책을 잠시 바라보더니 인간의 언어로 말했다.
〔이름이 아직 붙지 않은 유적의 발굴 상황을 이곳에 기록한다.〕
“원숭이가 마, 말을 해요!”
“조용….”
“읍…”
탐닉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유적의 이름은 알카트론이다. 왜 알카트론인지는 모른다. 그저,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카트론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이거… 유물회의 기록이랑 똑같은 거 아닌가?”
“맞습니다. 알카트론이라는 명칭의 유래도 그곳의 발굴 조원들이 직접 그렇게 부른 것부터가 시작이었으니까요.”
“설마… 유물회보다 먼저 알카트론에 도달한 자들이 있었다는 건가?”
“그건 앞으로 탐닉자가 알려줄….”
그때였다.
끼이익…
돌연 마차 행렬이 멈추었다.
“무슨 일이냐?”
“그게….”
마부가 꾸물거리고 대답을 못 하자 일행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왔다.
야영지의 흔적,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모닥불.
놓고 갔다간 고초를 겪을 만한 물건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야영지?’
모두가, 마차에서 내렸다.
“이곳이, 알카트론입니다.”
“거짓말… 입구가 사라졌잖아?”
“다른 인원은 어딨지? 이곳에 야영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우회로 인원들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데?”
프래넌이 천천히 턱을 매만지다가 피식 웃고 말했다.
“일단 힘들게 숙영 준비할 필요는 없겠군. 일부는 주변을 수색하고 일부는 필요한 휴식을 취해라.”
“예!”
숙영 준비가 알차게 되어 있었던 터라 따로 뭔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의 원래 주인들이 돌아온다면 그때 야영지를 확장하거나 알카트론 진입 계획을 세우면 될 노릇.
‘그런데… 알카트론이 사라졌다고?’
강설은 알카트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마 이 원정에 참여한 대부분의 인원과 비슷한 정도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을 뿐.
“입구가 사라진 건가?”
사토가 나부껴 알카트론의 진입로를 메웠다는 가정도 말이 안 됐지만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기이한 일에 모든 이들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이때, 누군가 소리쳤다.
“사람!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천칭의 마법사다! 우회로 쪽으로 향했던 녀석이야!”
“어디!”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모여들었다.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누워있었다.
프래넌이 그자에게 물었다.
“요란, 너냐?”
“프래넌… 님….”
“왜 그러느냐? 어디 아픈 게냐?”
“가벼운 탈진 증상입니다… 곧 회복될 거예요.”
“네 입으로 가볍다고 말하니 다행이구나, 한데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게… 설명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요란이라는 마법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정확하게 사흘 전입니다.”
* * *
3일 전.
요핌바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거짓말이지?”
“기껏 개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지 요핌바?”
“그러니까… 나도 지금 머리를 막 굴리는 참이야. 뭐지? 입구가 사라졌어.”
“흐으음… 여기가 맞아?”
“확실해. 군데군데 발굴 흔적들이 남아 있잖아. 뭐지, 도대체?”
알카트론의 입구가 사라졌다.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요핌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니 그럼 천칭 그 노친네는 어디로 사라졌다는 얘기야?’
천칭을 수색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유물회가 도맡아서 발굴을 진행했던 알카트론이 송두리째 사라졌다는 사실이 요핌바를 혼란스럽게 했다.
“유적이 사라졌다니….”
“어쩔 거지? 이대로 수색을 포기해야 하나?”
“보상은 제대로 지급되는 거야, 이거?”
웅성웅성하는 사람들.
“일단 야영지부터 구축하고, 성위님이 오시면 결정하자고. 결정권자는 어차피 그분이시니까.”
“그래. 근데 저 요란인지 뭔지 하는 마법사는 어떻게 해?”
“마탑 인원들이 알아서 돌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행여나 문제가 생겨도 우리 잘못은 아니니까.”
“너무 속도를 높였나? 하여튼 마법사들 체력 저질인 건 알아줘야 해.”
그들은 그렇게 별 탈 없이 밤을 지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어 문제가 일어났다.
“…인원이 빈다고?”
“네, 불침번들도 몇이 사라졌습니다.”
“이럴 수가….”
요핌바와 용병대의 대주들은 일단 불침번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다음 날이 되어, 더 많은 사람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어떻게 할까요?”
“아무도 잘 생각하지 마!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
* * *
시간은 다시 현시점으로 되돌아와, 프래넌이 물었다.
“요란,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모두… 홀린 듯이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그곳이라니, 설마….”
요란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카트론. 그 유적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밤이 되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아가리를 들이밀며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모두… 그곳으로 향했어요.”
“……결국, 밤이 되길 기다려야 한다는 거군. 요란, 밤까지 몸을 회복할 수 있는가?”
“순례자님들께서 한동안 저를 돌봐주셨으니 아마 곧 기운을 차릴 겁니다.”
“다행이군.”
강설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밤에만 나타나는 유적이라고?’
판데아에 그런 장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 조금 당혹스러울 뿐.
강설과 일행은 곧장 논의에 들어갔다.
“어쩌죠? 밤이 돼서 알카트론이 나타난다고 해도….”
“먼저 들어간 수색조가 되돌아올 확률이 있을까?”
“없겠죠?”
“전력이 반 토막이 됐군.”
“알카트론에 들어간다면 다시 회복하겠지만요.”
“제길… 곤란한데….”
프래넌이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나는 들어갈 생각이다. 고민해봤자 답이 없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수많은 형제님이 그곳으로 향했어요.”
“여기까지 와서 물러서기는 좀 그렇죠.”
“그럼 늦기 전에 오늘 밤, 진입을 준비해야겠네요.”
회의는 그렇게 끝.
강설은 이미 이 상황 자체가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형국이라 판단했다.
‘알카트론… 뭘 숨기고 있는 거냐? 천칭은 어째서 이곳으로 향한 거지?’
처음에는 그저 거래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점점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자 그도 알카트론 그 자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뭐가 됐든, 오늘 밤에는 확실히 알 수 있겠군. 원정대가 어떻게 된 건지, 알카트론이 무엇인지도.’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야영지는 시커먼 어둠으로 물들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그… 러게요?”
“일단 다들 잠들지 말고 대비하고 있자고.”
밤이 된 후로 꽤 시간이 흘렀다.
요란의 말과는 달리 상황이 급변하거나 이런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후룩… 후룩…
야영지 내부의 횃불들이 모조리 꺼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아주 자연스럽게.
“저, 저길 봐!”
“알카트론이다! 알카트론이야!”
“유적이 나타났어!”
기이하게 조각된 유적의 입구가 드러났다.
유적의 입구는 처음부터 지하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위대한 경험! 알카트론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 증가합니다.]
알카트론이 모습을 드러냈고, 일행이 준비한 짐을 나눠 멘 채로 그 앞에 섰다.
“정말이지… 늘그막에 아주 좋은 추억 하나 생기겠군.”
“마엘, 옆에 있죠?”
“제가 안 보이십니까? 이렇게 큰데?”
강설의 등불에서 비탄이 꿈틀거렸다.
【큭큭큭… 계단을 내려가다가 수상한 바람 소리를 내주지. 아아… 상상만으로도 짜릿하군. 콧물 범벅이 된 채로 우는 네 모습이 떠오른다고.】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얘 좀 말려주세요!”
프래넌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횃불을 든 이들 몇 명이 선두에 서고 나머지는 서로 멀어지지 마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저벅… 저벅…
그들이 알카트론의 입구로 발을 들이밀었다.
끼끽…
우끽…
차멜리가 마엘을 꼬집었다.
“뭐, 뭐예요!”
“탐닉자가 다음 문장들을 해석한 모양입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키키야, 다음 구절을 읽어줄래?”
[알카트론에 진입했습니다.]
[보상이 책정됩니다.]
[연계 모험이 이어집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모든 모험이 끝나야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탐닉자라 불리는 원숭이가 말했다.
〔알카트론은 감옥이다.〕
“역시!”
이어지는 다음 구절에서, 사람들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곳에는 분명, 아주 끔찍한 무언가가 잠들어 있다.〕
그들의 발걸음이 서서히 어둠을 밟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