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15
제414화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되고, 강설은 한소미와 따로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된 일이야?”
“저도 직전에 알았어요. 이번 일에 조력자로 오빠가 점찍혔다는 걸.”
“…너도 모르는 일이었다고?”
“예… 저 말단이에요. 존재에서 뿜어져 나오는 완숙미는 숨길 수 없지만 일단은.”
– 맞아?
– 완숙미, 그거 맞냐고.
– 완숙미는 모르겠고 일단 한소미임.
– 한소미 머리 묶었네ㅋㅋㅋ
– 와, 이게 몇 년 만이야. 판데아 좁다~ 좁아~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쉬를렌이요? 아니면 수사국이요?”
“…둘 다.”
“음… 쉬를렌에 온 지는 좀 됐어요. 남부 상황이 좀 답답했거든요. 아니, 정확히는 네베니아가.”
네베니아는 극악무도한 왕자가 왕권을 손에 넣은 후에 더 지저분한 곳이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곳에 뿌리내린 길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떠나는 실정이라고.
“그래서 뭘 어떡해요. 배 타고 무작정 동방으로 향했죠. 근데 제가 그런 쪽 분위기랑은 또 안 맞아서… 바로 북부까지 오게 된 거예요.”
“…그런가.”
“수사관은 뭐… 모험 쪽 일이 적성에 안 맞아서 이 일 저 일 전전하다가 알게 됐는데… 의외로 저랑 딱이더라고요.”
“일은 좀 어때?”
“매일매일이 새로워요. 어쩔 땐 이대로 죽는구나 하다가도 어쩔 땐 너무 할 일이 없어서 시간만 죽이다 돌아가요.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보면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살아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요.”
강설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생존이 불투명한 시대에, 떳떳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그의 가슴에 묘한 울림을 선사했다.
“엇, 뭐야. 이거 어떤 신호인가요?”
“신호?”
“전 아니에요! 그런 감정 없어요!”
“…아! 아니, 그건 아니었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랬어요!”
“…뭘 원하는 거야?”
“에헤헤… 장난이에요.”
한소미는 테라스에서 노을을 바라봤다.
“있잖아요, 오빠. 죽은 줄 알았어요.”
“…….”
“그야 그렇잖아요, 매번. 연락이 됐다 안 됐다. 아니, 안 되는 게 평범한 상황이긴 한가? 아무튼! 경택이랑 걱정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지쳤는걸요.”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시기이다.
“식구가 그때보다 늘었네요? 꼬마는 아까 보니 아빠라고 부르던데… 혹시 사고 쳤어요?”
“사고? 음… 말하자면 길어.”
“좋겠어요. 가족이라니. 시끌벅적한 게 좋긴 하죠. 쉬를렌, 어떤 것 같아요?”
“괜찮은데? 묵은 건 며칠 안 됐지만.”
“옛날에 한국에 있을 땐 왜 나는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억울해했는데 아마 그걸 하늘이 듣고 절 여기에 데려다주신 것 같아요.”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
강설은 이번 일을 함께하게 된 자말과 레이에 관해 물어보았다.
“걔들요? 전이자 출신이긴 한데 워낙에 개인주의라…. 거기다 자말이랑 레이는 단짝이라 둘이 같이 다녀서 저만 왕따예요.”
“그게 가능해?”
“사실 제 파트너가 얼마 전에 휴직했거든요. 당분간은 오빠가 제 파트너예요.”
“…별무덤에서 뭘 하면 되는 거야?”
“당일에 우린 그곳의 보안을 책임질 거예요. 물론, 말만 그렇지 실상은 주최측의 보안 요원들도 잔뜩 깔릴 거예요. 아마 저보다 훨씬 강할걸요? 거기다 수사국에서 인원도 더 파견해 줄 거고.”
그렇다면 딱히 걱정할 일은 없는 건가.
“밀수품 얘기도 나오던데.”
“밀수품 관련해서는 자말이랑 레이 담당이라 둘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우리는 경매 진행 쪽만 신경 쓰면 돼요. 그것도 시늉뿐이긴 하지만.”
“시늉?”
“모르셨어요? 별무덤에선 여태까지 한 번도 사고가 일어난 적이 없어요. 연방 유력 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만큼 각자 자기방어 수단을 철저히 해와서요. 그놈들 호위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요?”
경매 참여자들은 각자 대동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딱 한 사람만 대동할 수 있었다.
“제정신이 박힌 자들이라면, 그곳에서까지 문제를 일으키진 않겠죠. 연방 귀족 전부라 할 수 있는 많은 사람을 적으로 돌리게 되니까. 게다가 각기 파벌의 수장급 되는 인물도 뒤섞여 있으니까요.”
추리고 추려 가장 강력한 자를 대동하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무슨 걱정을 이렇게… 오빠!”
“아, 응.”
한소미가 뾰로통해서 강설을 한참 쳐다보았다.
“강하죠?”
“그게 무슨 소리….”
“느껴져요. 전보다 훨씬 강해졌죠?”
강설은 대답을 마땅히 고르지 못했다.
피식 웃는 한소미.
“휴… 다행이다. 그럼 이번에도 별문제 없을 거예요.”
“어째서?”
한소미는 테라스를 떠나며 말했다.
“글쎄요! 제가 아는 오빠는 세상에서 가장 센 사람이니까요?”
* * *
별무덤.
그 외관은 도시 중심에 자리한 거대한 유적이었다.
그 크기만 해도 축구 경기장 수 개를 합친 것과 같은 엄청난 덩치였다. 이 거대한 유적은 시민들에게 개방되지 않았다.
아직, 그 안에 담긴 비밀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수년에 한 번.
이곳으로 가면을 쓴 귀한 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모두를 수용하면서도 그들만큼 귀한 장소는 쉬를렌에 이곳 한 곳뿐이었으니 말이다.
비밀이 담긴 유적에서,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행사를 치른다.
비밀은 그 단어 자체가 가진 마력이 있기에 권력을 가진 자들이라면 모두가 탐을 내었다. 그러니 별무덤이 오늘,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미소가 인상적이시네요.”
“…그렇습니까?”
“예, 어느 가문의….”
“출신을 묻는 건 금기일 텐데요?”
“아, 실례. 잠시 이곳이 어딘지 잊었네요. 아름답죠?”
가면을 쓴 여인이, 가면을 쓴 남성에게 물었다.
“예, 아름답군요.”
가면을 쓴 남성.
강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곳 별무덤이 특별하고 아름답다는 걸 그는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보면 이런 기분이구나.’
– 그 모습은 한 세계의 별자리가 뒤엉켜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이 무슨 개소리를 잔뜩 늘어놓는가 했던 스크립트도 지금에 와서는 참으로 알맞은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 전 이만….”
“아, 일행이 있으셨군요. …또 봐요.”
끄덕…
강설이 자리를 벗어나자, 웬 여인이 팔짱을 껴왔다.
“오빠!”
“…소미야, 목소리가 크다.”
“그, 그래요? 누구예요? 저 사람?”
“몰라.”
“모르는 사람이랑 막, 말해도 되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대놓고 무시하면 기분 나빠하잖아.”
“…그렇긴 하죠. 오빠, 잊지 마세요! 우리는 지금 민중의 지팡이로 이 자리에 와 있는 거예요. 다른 무엇보다 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주세요!”
“……민중의 지팡이가 그래도 되는 거야?”
“뭐래! 제가 지팡이예욧! 오빠는 지팡이인 척하는 막대기고! 진짜 지팡이를 지켜줘야죠.”
“알았어, 지팡이.”
“…그거 은근히 어감이 기분 나쁘네요.”
피식 웃으며 막대기와 지팡이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누군가 다가왔다.
게일과 우르였다.
수사국 쪽에서 호위로 한 명을 대동할 수 있다고 말해왔기에 이곳까지 우르와 함께 왔다.
우르도 탄시아와 함께 놀이를 하는 대신, 바람도 쐴 겸 따라나섰다.
“잠시 둘이서 얘기 좀 나누시죠.”
“알겠습니다, 우르.”
“알았다, 시끄러운 여자는 내가 지켜보고 있지.”
“아, 혹시 그거 전가요?”
강설은 게일과 함께 인적이 드문 곳까지 이동했다.
“별무덤에는 벌써 세 번째 방문이군. 언제 봐도 규모에 압도당한다니까.”
“…….”
강설은 이곳에 오며 생각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사실.
‘보안 업무치고는 보상이 너무….’
수사국이 연방의 자금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별무덤의 경매품을 넘겨줄 만큼 여유로울 리가 없었다.
강설은 툭 하고 내뱉었다.
“제가 진짜 해야 하는 일이 뭡니까?”
“…이미 눈치챘군요.”
“대답에 따라서 제가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겠네요.”
“하하… 속인 건 사실이지만 뭐, 엄청난 사실을 숨긴 건 아닙니다. 약속은 지켜질 것이고 우리는 당신에게 대가를 지불할 겁니다. 그 어떤 출혈을 감내하더라도요.”
약속을 지킨다.
그럼, 임무 쪽이 거짓이었을 것이다.
“별무덤을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확실합니까?”
“추정입니다. 정보란 건 그런 거니까요.”
“조금 자세히.”
“간 크게도 유력 연방 귀족이 잔뜩 모인 이곳에서 일을 벌일 속셈인 것 같습니다. 목표는 아마도 경매품, 혹은 연방 귀족의 생명이겠죠.”
“설마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지켜달라는 허무맹랑한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대가와 맞지 않는 일이죠. 수사관님께 부탁할 일은 하나, 흔적을 쫓는 일입니다.”
“흔적?”
“별무덤의 경매는 애초에 공식 행사가 아닙니다. 때문에, 연방의 대규모 자원을 투입할 수 없다는 건 귀족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넋 놓고 일이 터지는 걸 구경만 하고 있으면 분노는 수사국에 쏟아지겠죠.”
강설이 인상을 찡그렸다.
“수사국은 문제가 벌어진 이후를 상정한 거군요.”
“눈치가 귀신이네요, 맞습니다. 혹, 별무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반드시 흔적은 남을 겁니다. 이미 문제가 터진 이상 수사국은 그걸 통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수사관이 투입되지 않는 이상요. 그러니, 일이 터진 후에 귀족들이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아내는 겁니다.”
“썩었네요.”
“일종의 처세술이죠. 일이 터지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면 좋고, 만일 일이 터진다면….”
게일의 계획은 설득력 있으면서도 영 꺼림칙했다.
“귀족이 얼마나 죽던 우리의 잘못은 아니니, 마땅히 분노할 대상만 제시하면 됩니다.”
“엉뚱하게 화를 입는 것을 막는다…. 그럴듯한 계획이긴 하네요. 절 속인 것만 빼고는.”
“별무덤의 출입 권한이 필요하지 않았습니까? 좋은 거래 아니었을까요?”
씨익…
강설도 상대가 차라리 이렇게 나오는 게 편했다. 적어도 별 관심도 없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빼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럼… 즐기십시오.”
게일이 떠났다.
강설은 우르와 다시 재회한 후, 일의 진행 상황에 대해 언질을 주었다.
“…재밌군.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건가.”
“그런 것 같아.”
“흉수 쪽은? 죽여도 되는 건가?”
“되도록 생포하는 쪽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 없지.”
우르가 살기 어린 미소를 띠었다.
“간만에 즐거운 자극이 찾아왔군.”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모두에게 좋을지도 몰랐다.
문제가 터지기만을 바라는 이가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으니.
“오빠! 뭐 하고 있어요?”
“아, 응.”
“경매가 시작하려고 하잖아요. 어서 가요!”
강설은 한소미와 함께 경매가 진행되는 장소로 향했다.
규모에 비해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추리고 추린 인원만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규모에 비해 적다는 거지 절대적인 기준으로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여긴가 봐요.”
“…어?”
끄덕…
아까 전 말을 걸어왔던 여인이 자리에 있었다. 가볍게 목례하기에 강설도 같은 행동을 취했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한소미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북부가 원래 난쟁이들의 터전이었다는 말이 있어요. 별무덤은 그 흔적이고.”
“음….”
“이 큰 유적의 비밀을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걸 보면….”
“시작한다.”
“어? 정말이네요!”
짧은 소개과 함께 경매 진행자가 등장했다.
이 자리를 찾아준 여러 귀빈, 그리고 훌륭한 보물을 출품해준 많은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둥 쓸데없는 말을 잔뜩 늘어놓은 진행자.
“자, 그럼 여기 계신 귀한 분들께 첫 번째 보물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중앙 고산 지대의 유적에서 발굴해낸, 역사적 가치가 담긴 물건! 아트라의 가면입니다!”
화아아악-!
물건을 가렸던 장막이 사라지고, 그 안에 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아트라…의?”
“꺄아아아악!”
“저, 저게 뭐야!”
“무슨….”
아트라의 가면은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남성의 잘린 머리가 그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진행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놀랄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르륵…
목이 스스로 움직여 진행인을 바라본 것.
“히… 히익….”
푸우우우우우-!
머리가 액체를 내뱉었다.
치이이이…
“크아아악!”
얼굴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진행자가 비명을 질렀다.
모두 화들짝 놀라 엉거주춤 일어나는 가운데, 잘린 머리가 말했다.
“반갑다, 얼뜨기들. 너희들의 멍청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그럼… 이렇게 만난 기념으로….”
잘린 머리의 말과 동시에 모든 전등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퍼어엉-!
퍼어어엉-!
“잔혹극을 선물하도록 하지.”
곧, 엄청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꺄아악!”
“나가! 여기서 나가자고!”
강설의 옆에 있던 여인도 강설에게 바짝 붙으며 말했다.
“이런… 위험한 상황이네요. 어서….”
푸우우욱…
“…어?”
강설의 손이 여인의 가슴을 꿰뚫었다.
챙그랑…
독이 묻은 단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인이 어둠을 틈타 손에 꼭 쥐고 있던 물건이었다.
“어떻게… 안….”
쿠우웅…
사방에 아비규환 그 자체가 펼쳐졌다.
파악-!
강설이 옆에 있는 한소미의 손을 낚아챘다.
쿠구궁…
곧, 유적의 바닥이 규칙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별무덤에 피가 흐릅니다.]
[별무덤은 더 많은 피를 원합니다.]
강설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돌발 모험 ‘별무덤’이 발생합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
한소미가 불안감에 몸을 떨며 그의 곁에 머물렀다.
“오, 오빠… 이게….”
강설이 그간 거쳐온 수라장이, 감각을 일깨워 그녀의 미래에 대해 못 박았다.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죽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