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94
제493화
새벽이 올 때, 검은 용이 추락했다. 아자닉은 그 뼛가루까지도 남김없이 푸르게 타올라 잿가루처럼 하늘로 흩어졌다.
강설은 창공에서 파란 재를 바라보았다.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대장정의 내용이 일부 변경됩니다.]
[비밀결사 : 장막이 막대한 시대력을 획득합니다.]
[세 거인과 늙은 용의 유물이 존재합니다.]
[세 거인과 늙은 용의 유물이 세 거인과 두 용의 유물로 변화합니다.]
[권능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업적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경지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다음 시대의 왕이 될 예정입니다.]
[즉위를 준비하십시오.]
[다음 시대의 왕에겐 특전이 주어집니다.]
[즉각적인 경지 상승이 이루어집니다.]
[아군을 포함한 거느린 병력이 강화됩니다.]
[단지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계속해서 시대력을 획득합니다.]
[모든 시대력 획득이 20% 증가합니다.]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약속의 땅의 위치를 획득합니다.]
[다음 시대의 왕에겐 책임이 존재합니다.]
[대적자의 도전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수련으로 상승하는 경험치가 미미해집니다.]
[투쟁으로 상승하는 경험치가 증가합니다.]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
떠오른 메시지는 말하고 있었다.
강설이, 다음 시대의 왕이 될 것이라고.
대가 그레고리, 세 거인, 천공 용까지. 그의 손에 하룻밤 사이에 죽어 나간 실력자들이었다.
그중에는 강설보다 강한 자들 또한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것은 그였다.
“강서어얼!”
“찾았다!”
날개 협곡이 붕괴를 멈추었는지, 협곡에서부터 비룡과 카쿠이가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낙원의 바미온이 지원한 난쟁이의 병력, 높새 날개의 트롤, 빙하아귀의 트롤, 비통치 구역의 3대 부족까지.
강설은 탄시아에게 이야기해, 지상으로 내려갔다. 푸른 목초가 깔린 언덕이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이 언덕도 불길에 휩쓸려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우거들은 떠났나….’
사태가 진정되고, 트리엄의 오우거들은 모습을 감추었다.
단, 협곡 바닥에 쓰러진 시체는 떨어진 오우거들보다 현저히 적었다.
그만한 높이, 그리고 떨어진 장소가 날개 협곡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오우거인가.’
강설은 아직도 협곡에서 오우거들이 추락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손에 땀이 흘렀다.
아자닉의 예상을 벗어나 그를 추락시킬 수 있었던 영광된 순간이었지만, 반대로 똑똑이의 위험성을 눈앞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지금은 어찌 되었든 그의 도움을 받은 상황이다.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게 마땅했지만 정작 오우거들이 사라졌으니… 아쉬움이 남았다.
후우웅…
후우우우웅…
강설의 주변으로 순식간에 엄청난 병력이 모여들었다. 아자닉의 황혼 비행을 저지하며 수가 굉장히 줄어들었는데도 아직 그 위용이 남아 있었다.
강설을 포함한 모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붉은빛이 점차 강해지더니, 에라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게 시대 유성….”
“에라곤….”
카렌, 그리고 카루나.
탄시아와 쟈마드도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우르가 봤으면 아는 척하느라 바빴겠군.”
“카하하하! 맞아, 그 녀석이라면 그랬을 거야.”
“…같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마침내, 유성이 꼬리를 만들어냈다. 추락한다, 에라곤이.
“이, 이쪽으로 오는 거 아니에요?”
“라진이 말하기를, 왕이 있는 곳으로 추락한다고 했었어.”
“뭐예요! 그럼 도망쳐야 하는 거잖아요!”
한소미가 화들짝 놀라 말하자, 카렌이 깔깔 웃으며 호응했다.
“도망치지 않아도 돼. 눈 깜짝하면 끝나 있을 거래.”
“…죽는 거 아니에요?”
“응, 아니야.”
“휴….”
붉은빛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긴 꼬리를 가진 이 신비로운 힘에 모두 압도당했다.
운석에 잠든 힘은 대체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이토록 강렬할까.
“아름다워… 그렇지?”
정적을 찌르고 나온 누군가의 물음. 누군가 내뱉었을 만한 말이었지만, 모두가 이상함을 느꼈다.
정말로 모두가, 한 번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
“…….”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세상에 존재할까. 특유의 젖은 눈망울과 길고 생기 넘치는 머리칼은 그녀를 이 세상 유일한 존재로 단정 지었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강설을 바라보았다.
‘무슨….’
눈이 마주친 강설은,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무슨….”
여인은 말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선 안 돼. 재미없잖아?”
“누구냐!”
여인을 에워싸는 병력.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그들을 한차례 둘러본 후, 양손을 부딪쳤다.
“암! 그래선 재미없지!”
짜아아악-!
후우우우우우우우웅-!
느껴본 적 없는 힘이, 그 안에서 꿈틀댔다.
강설이 소리쳤다.
“이 힘… 모두 물러나!”
“헤헤… 내가 누군지 이제는 알려나?”
“…넌, 탈리아드.”
씨이익…
과거의 탈리아드, 현재의 실로이가 웃었다.
불사로서 웃었다.
“날 알아보다니… 아버지, 기뻐.”
[실로이가 환상 절기 : 인간병기를 사용합니다.]
[신체의 내구력이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짧은 시간, 모든 피해를 견디고 재생합니다.]
[능력을 초과한 피해는 피로로 누적됩니다.]
끼기기긱…
실로이가 무릎을 굽히고 힘을 끌어모았다.
파아아아아아아앙-!
용수철처럼 튕겨 올라가는 그녀.
순식간에 창공에 다다른다.
그것을 본 모두가 경악했다.
절대로,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무슨… 지금 무슨….”
“저길 봐요! 저기예요!”
실로이가 향한 곳은, 시대 유성 에라곤이 떨어지는 경로였다.
“죽을 작정인가!”
“미쳤어!”
시대 유성의 경로에 몸을 집어넣는 건, 자살 행위 혹은 유성의 추락을 방해하겠다는 것이다.
강설이 중얼거렸다.
“…막을 작정이야.”
실로이가 추락하는 에라곤과 충돌했다.
후우우우웅…
에라곤은 멈추지 않았다.
실로이와 부딪히고 그대로 나아갔다.
“…죽었어!”
“아니야! 저기….”
유성에 달라붙은 그녀는, 살아있었다.
끼기기긱…
끼기기기기기기기기…
“으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신체가 새카맣게 타오르며 웃는 여인. 그녀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에라곤을 떠받치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는 광소를 터트렸다. 그 모습을 모두가 눈에 담았다.
공포스러웠다.
가공할 정도로, 두려운 자였다.
“으그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
끼기기기기기기기긱…
공중에서 에라곤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거…짓말….”
“말도 안 돼….”
실로이는 홈과 맞먹는 크기의 운석을, 맨몸으로 받아냈다.
새카맣게 구워진 채로, 입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착지하는 그녀.
“하아… 하하하… 피곤하네. 두 번은 못 할 미친 짓이야.”
강설의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가… 불사.’
돌아왔구나.
그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강설은 의회의 사건에서 영생교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부터 혹시나 하는 의심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이내 그 이름을 다시 지웠었다. 불사가 이 일에 개입하고자 했다면 일을 더 크게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의회의 모두가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을 테고.
‘녀석은… 나를 알고 있다.’
마침내, 끔찍한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에라곤은 이제 그저 막대한 힘을 품은 돌덩이에 불과했다.
[에라곤의 추락이 멈춥니다.]
[시대 전환이 유예됩니다.]
……
모두 침묵했다.
꿈을 꾸는 것이다.
여긴 꿈속인 게 분명했다.
에라곤의 추락을, 단신으로 막아낸다는 게 인간의 몸으로 가능할 리 없다.
철컥…
철컥…
흑기사를 포함한 영생교의 인물들이 저 멀리서부터 합류했다.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이라도 한 듯이.
“드디어, 꼬리를 잡았군. 이 개자식….”
끔찍하게 화상을 입은 피부를 붕대로 칭칭 감고 나타난 브리아. 남부 해안에서 우르의 마법에 휩쓸려 불탔던 여인이다.
그녀는 강설에게 엄청난 원한을 품고 있었다.
강설이 긴장했다.
‘…위험하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원한을 가진 상대가 막대한 조력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불사에게서 도주할 수 있을까?
의문 부호투성이인 생각을 걷어냈다.
그, 아니 그녀의 의도를 알아내는 데 집중해야 했다.
“지금 당장 죽여주마아아아!”
후우우우웅…
브리아가 양손에 초록빛의 구체를 형성해 강설에게 뛰어들 때였다.
서걱-
“…으?”
그녀의 머리가 핑그르르 회전하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당연히 머리를 떠받치던 몸도 달려나가던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그녀의 목을 벤 게 누구인지는 알기 쉬웠다.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야. 이번엔 경고로… 어? 죽여버렸잖아?”
실로이가 피 묻은 손날을 바라보고 히죽 웃었다.
“뭐, 됐어. 조용해졌네.”
기막힌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데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불사, 넌….”
“왕이 나타나면… 대적자 또한 탄생하는 법이지.”
입이 찢어져라 웃는 실로이.
“아버지, 내가 당신의 대적자야.”
드드드드드…
새카만 인간이 말하자, 땅이 진동했다.
[실로이는 도전자입니다!]
[조심하십시오! 하늘에 도전했던 자입니다!]
[당신은 이해 너머의 존재 앞에서 무력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
“끄으으으….”
“으으으….”
무릎을 꿇는 병사들.
새어 나온 실로이의 힘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신화의 존재 그 너머, 도전자의 위치.
그들은 하늘에 도전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불사도 마찬가지다.
왕이 될 것이었던 강설조차도, 그녀의 기운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아! 우선 내 것을 좀 되찾아와야겠어.”
실로이가 천천히 강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스으윽…
[허무의 권한을 빼앗깁니다.]
……
가슴 한쪽이 허전해지는 느낌. 불사의 강탈 행위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킥킥대며 웃고 있는 여인을 불렀다.
“이리 와, 비샤.”
“탈리아드 니임! 보고 싶었어요!”
“아하하핫! 이제 실로이라고 불러. 비샤.”
“실로이 님!”
교태를 떨며 새카만 실로이에게 가 안기는 여인.
강설은 저 여인을 알고 있었다.
“이 녀석들, 너무 약해요! 세 거인쯤은 제가 직접 나섰으면….”
“아닐걸. 세 거인은 강해. 비샤가 졌을 거야.”
“냉정해라… 그런 점이 좋아요. 제게 상냥하지 않은 점이.”
그녀는 작은 마령을 데리고 있었다.
“실로이! 그대였군요! 역시, 그대야말로 시대의 왕에 걸맞은걸요!”
“…날 알아?”
“절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아그라스! 당신을 이 일에 끌어들인 게 저예요!”
“아, 그….”
실로이가 콧잔등을 긁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더라?”
모두 이를 꽉 물었다.
아그라스는 원래, 콘지에게 감시를 부탁했었다. 한데, 비샤라는 여인과 함께 있었다.
이유는 간단.
콘지가 비샤이기에.
그녀는 배신했다.
특히나 의회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신디오가 그녀를 저주했다.
“콘지… 당신….”
“있잖아요, 탈… 실로이 님. 이 마령, 너무 시끄러워요.”
“죽여도 괜찮아?”
“동료가 아닐걸요?”
“그래, 죽이지 뭐.”
불사의 마법사, 아그라스는 당황했다.
“자, 잠… 어차피 나는 죽여봐야….”
“응, 영혼을 숨겨뒀구나.”
실로이가 아그라스의 머리를 쥐었다. 눈을 반개한 그녀가 무언가를 찾는 낌새를 내비쳤다.
“이건… 말도….”
“찾았다.”
퍼어어어어엉-!
후두둑…
폭발한 아그라스의 파편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아그라스의 처치에 기여했습니다.]
……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아그라스.
신디오가 콘지 아니, 비샤에게 말했다.
“콘지… 배신자. 우리를 속인 거야?”
“아하하하하! 속이다니? 난 배신한 적 없어. 너희를 도왔잖아?”
“…….”
콘지는 확실히, 원정대와 뜻을 합쳤다. 그것을 부정할 자는 없다.
“어째서….”
“탈리아드 님의 명이었으니까.”
“…….”
모든 게 거짓이었다.
그녀의 모든 게.
“그리고… 나는 콘지가 아니야.”
심지어 얼굴까지.
우드드득…
콘지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자, 금세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신디오….”
“하지 마… 너… 하지 마….”
“당신만은… 평화에 다다르길….”
지안의 얼굴이 되어 그가 죽어가며 남긴 말을 내뱉는 콘지.
“하지 마아아아!”
“소개하지, 실로이 님의 사신 비샤야. 얼굴 먹는 비샤라고 불러.”
“죽은 자를 능멸하다니… 지안을….”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비샤가 깔깔대며 배를 잡았다.
“재밌어… 재밌다고! 가장 재밌는 게 뭔지 알아? 죽은 자를 능멸하지 말라고 말하는 네가… 아직도 모른다는 거야.”
“…뭐?”
쿵…
쿵…
신디오의 심장이 과하게 뛰었다.
비샤, 콘지를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네 안에 있는 건 알고 있는 듯한데?”
신디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불사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그라보.”
“안 돼… 제발… 하지 마… 그 이름… 부르지 마.”
불사가 표정을 지웠다.
“그라보, 나 화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불사의 가장 큰 전력인 사신.
그의 하수인 중 가장 강력했던 자들.
일전에 흑기사는 불사에게 물었다.
– 네가 말한 사신들은?
– 찾았어. 둘.
신디오가 강설을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 미안해….”
“…신디오.”
“난… 신디오가 아닌가 봐….”
그 누구도, 바라던 평화에 이르지 못하리니.
으지지지지지지직…
신디오의 가냘픈 몸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근육과 살덩이가 흘러나왔다.
“우웨에에엑….”
“우우웁….”
그 끔찍한 모습에 모두 입을 틀어막았다. 신디오의 얼굴 가죽이 있었던 자리엔 마른 눈물 자국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조차, 다른 살덩이에 묻혀 흩어졌다.
“…….”
쿵…
쿠우우우웅…
그라보가 움직일 때마다 지축이 울렸다.
‘기워 붙인 자 그라보… 그랬던가.’
강설이 입매를 비틀었다.
얼굴 먹는 자 비샤에 이어 말도 안 되는 괴력을 가진 기워 붙인 자 그라보까지 회수했으니, 불사는 승천 전의 힘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아니… 녀석은 더 강해졌어.’
느껴진다.
그의 안에서 꿈틀대는 힘이.
“이 안에 남은 사신도 있나? 있으면 마저 챙겨 가지 그래.”
“…태연하네, 아버지.”
“…역겨우니까, 날 아버지라 부르지 마.”
“히히히… 난… 늘 생각했어.”
턱…
실로이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손 틈으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대체… 내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빌어먹을 자식이 누구인지를… 내 인생을… 멋대로 주무르는 자가 누구인지를….”
“…본 거냐.”
“아버지였어… 날 한눈에 알아봤어… 나 역시… 아버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불사는 미쳤다.
아니, 그런 존재를 승천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던 게 강설이었으니 그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난… 당신 뜻대로 살기 싫었어. 내게도 꿈이 있었다고오오!”
“탈리아드, 그딴 건 꿈이 아니야. 돌멩이 요리사라니.”
“응? 안 돼?”
“안 돼.”
“이럴 수가… 그랬구나. 안 되는 거였구나….”
실로이가 충격을 받은 듯 휘청였다가 이내 씨익 웃었다.
스윽…
어느새, 강설의 뒤에서 나타난 실로이.
“내가 이 자리에서 아버지를 죽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랬다면 날 찾아오지 않았겠지.”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넌 날 죽일 수 없어, 불사.”
“…….”
“뭐가 널 이렇게 뒤튼 거냐.”
강설이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방방 뛰었다.
“나, 날 그렇게 보지 마! 아버지… 눈을 뽑을 거야!”
“…….”
불사는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왜 날 버렸어….”
강설이 입을 꾹 다물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모험가 탈리아드는 이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갈 것입니다.]
[비록 가슴 뛰는 모험은 끝이 났지만, 그의 삶은 계속됩니다.]
……
“즐거웠는데… 행복했는데… 왜… 왜에에에에!”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오리라는 걸 알았다. 그가 게임판에 들어온 이상, 한 번쯤은.
원망을 받게 되리란 것을.
“불사는 버려졌어….”
기이한 광경이었다.
강설에게 매달려 울음보를 터트린 불사의 행동은 정말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처럼 보였다.
그렇게, 서러워 보였다.
“재수 없어… 재수 없어! 전부 알고 있잖아. 내 마음을….”
비샤가 나섰다.
“실로이 님! 제가 이 열등한 녀석을 죽여….”
콰아아아악-!
“컥… 켁….”
실로이가 비샤의 목을 움켜쥔 채로 들어 올렸다. 비샤의 광오한 기운이 순식간에 작아졌다.
아이였던 실로이는 어디 가고, 절대자의 위용이 흘러나왔다.
“아버지를 함부로 여기지 마.”
“죄, 죄송… 숨이….”
턱…
“허억… 허어억….”
비샤를 놓아준 후, 정신을 차린 듯한 실로이가 강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버지, 난 다시 승천에 도전할 거야.”
“…….”
“이번에야말로, 하늘에 오를 거라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지?”
강설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것이 곧 대답이었다.
승천을 향한 둘의 행보는 맞부딪힌다.
실로이가 활짝 웃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무대를 넓히자, 더 넓은 곳에서 싸우는 거야! 이런 조그만 땅의 왕은 재미없잖아!”
강설은 불사가 무슨 짓을 벌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다만, 이후의 일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이 순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실로이가 빛을 뿜는 에라곤에 손을 올린 채로 중얼거렸다.
“창조란 의식의 투영….”
쿠구구구궁…
에라곤이 빛을 뿜었다.
뭔가 일어나고 있었다.
“창조란 양치보다 쉬운 일….”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
빠지지지지지지직…
에라곤에 굵은 금이 갔다.
“창조는 즐거운 이이이일!”
후우우우우우우우웅…
[시대 유성, 에라곤이 시대를 전환합니다.]
[왕좌가 뒤집힙니다.]
[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첫 용의 땅, 고르고지아가 긴 시간에 걸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황금 왕 후키가 그의 무덤에서 깨어납니다.]
[시초자의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혈신(血神)의 감옥이 요동칩니다. 봉인에 금이 갑니다.]
……
이름만 들어도 수상쩍은 존재들이 우수수 깨어난다는 메시지.
[판데아 일부가 암흑천지가 됩니다.]
[마(魔)가 부흥합니다.]
[지각변동이 일어나며, 지형이 대다수 변경됩니다.]
……
강설은 에라곤이 부서지기 전, 전력으로 불사에게 손을 뻗쳤다.
[기질 : 그림자 강탈이 발동합니다.]
[세 거인과 두 용의 유물을 빼앗습니다.]
[하나 이상의 권능이 잠들어 있습니다.]
……
허무에 두고 온 대장정의 보상을 낚아채는 강설.
그 순간, 에라곤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힘에 휩쓸리는 자들.
빛에 휩싸여 대륙 어딘가로 찢어지게 될 그들이지만, 목숨은 건졌다.
불사는 이 자리에서 원정대를 전부 죽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강설과 마찬가지로 빛에 휩싸여 사라지며 말을 남겼다.
“사랑해, 아버지.”
강설은 그녀에게 경고했다.
“다음에 만나면, 잔뜩 설교해주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온 세상이 뒤집힌다.
낡은 것들이 돌아오고 새것은 쇠한다.
[행성이 모든 잠재력의 연소를 촉발합니다.]
[행성이 초신성 상태에 접어듭니다.]
……
폭발에 휩쓸린 모두가 지금 다가오는 시간이, 마지막 시대임을 직감했다.
그것은 예외적으로 저물기 전 이름 붙여졌다.
피어난 순간부터, 저물 때까지의 이름.
[최초 업적 ‘왕은 왕이다’를 달성합니다.]
[최초 칭호 「왕」을 얻습니다.]
……
누구도 왕이 될 수 없는 시대.
뒤집힌 왕좌의 시대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