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21
제520화
[시초자를 처치했습니다.]
[최초 업적 ‘썩은 뿌리’를 달성합니다.]
[최초 칭호 「근본 없는 자」를 얻습니다.]
[서사시 : 심판의 결말 조건을 달성합니다.]
[서사시 : 심판은 그 결말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시초자가 소멸함으로써 시초의 피 또한 소멸합니다.]
[시초의 피를 잃습니다.]
[잠시 후, 부작용이 찾아옵니다.]
[시초의 피로 만들어진 모든 능력이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생명의 단지를 획득합니다.]
[하나 이상의 권능이 잠들어 있습니다.]
……
시초자 소멸.
“쓰, 쓰러졌다.”
“놈이 죽었어! 죽었다고오!”
“와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함성.
그러나 사건이 벌어진 공간과는 거리가 꽤 멀어 귀가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바라노아의 수도 테트라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던 시초자는 쓰러졌다.
그에 따라 시초의 피 또한 소멸 예정.
아쉬운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것이고 후회하지 않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반드시 해냈어야 하는 일이다.
많은 희생과 잿더미 위에 써 내려간 역사다.
강설은 시초자의 밑에 깔려있던 화신에게 다가갔다.
화신은 하반신이 존재하지 않았고 상반신만이 남겨져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거기에, 시초의 피가 소멸함에 따라 그의 몸이 서서히 녹고 있었다.
“핀….”
“덕분에… 뭔가를 지켜내긴 한 것 같네요. 그보다 전 핀이 아니에요.”
“알아, 핀의 일부일 뿐이라는 거.”
“저 곧 사라져요, 궁금한 건 그것뿐?”
많다.
궁금한 거.
“…핀은 어디에 있지?”
“하필 그걸 물으시네요. 그건 몰라요. 아니, 오히려 제가 묻고 싶네요.”
핀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건너뛰어서…
“핀은… 어디에 있는 거죠?”
“…….”
강설은 싱긋 웃었다.
그것은 분명 대답이 되었다.
“저는… 실패했군요.”
화신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괜찮아요!”
씩씩하게 말하는 화신.
“나는 분명, 포기하지 않았을 테니까.”
스으으으…
화신이 사라진다.
마치 오늘 있었던 일이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다시 보기를, 고행자.”
“…그래, 그곳이 어디든.”
강설이 다짐한다.
“너무 늦지 않게, 만나러 갈게.”
사아아아…
붉은 핏방울이 안개가 되어 흩어진다. 곧 있으면, 강설에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날 터.
그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들이 아직 남아있다.
부유섬이 추락하며 발생한 피해와 그곳에서 떨어진 자들의 생사다.
콰직…
콰지지직-!
“무너진다! 피해에에에!”
“건물에서 떨어져!”
부유섬의 추락으로 발생한 인명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신민들을 통솔해 미리 위험에 대비했던 차멜리의 혜안이 성과를 거둔 것이다.
또한, 강설이 지상에 남겨두고 간 안배 때문도 있었다.
새액…
새액…
탈진한 듯한 카루나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강설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위에 남았다면 덜 피곤했을 것 같군요.”
“…고생했어.”
“해야 할 일입니다.”
카루나가 가진 힘이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 그가 아니었다면 추락을 늦출 수 없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이미 충분히 끔찍하지만….’
희생자가 없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여기저기 우는 소리가 한가득이다.
“해내셨군요.”
강설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누군가. 손이 뭉툭하고 거대했다.
“…마엘. 무사한 겁니까?”
“보시다시피, 그래도 나름 각오한 건데 상처 하나 없더군요.”
차멜리의 순례자들, 혹은 카루나가 받아냈을 것이다.
마엘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는… 제가 아닙니다.”
“…….”
“…이쪽으로.”
강설이 무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걸었다.
조금 걷자, 차멜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누군가를 에워싸고 있는 게 보였다.
강설은 불안감을 애써 감추고 그 인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
“…….”
그곳에 미다르가 있었다.
그는 살아있었다.
아니, 기적처럼 살아있었다.
“…미다르.”
씨익…
“죽인… 건가?”
“…….”
“그 괴물… 죽일 수 있던가?”
강설이 답했다.
“덕분에.”
미다르가 만족했다는 듯이 숨을 내쉬었다.
새액…
“그래… 그럼 된 거야….”
차멜리가 강설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장기가… 전부 썩었습니다.”
시초의 피가 미다르의 몸에 침투했을 때, 이미 그는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였을 터.
“당장 숨을 거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에요.”
“살 가능성은….”
“…없어요.”
그가 선택한 길이다.
주변의 만류에도 꿋꿋이 걸어간 길.
다만, 그 길을 걸은 미다르가 외로워 보였다.
강설은 미다르의 숨이 느껴지는 거리까지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다르.”
“크하악….”
검은 피를 토하는 그.
“이제 좀…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
“이번에야말로 바라노아를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젠장할….”
순례자 중 한 명이 그를 위로했다.
“숭고한 자, 미다르. 테트라에 형제의 동상이 세워질 것이요. 그리고 모든 이가 형제의 희생을 기억할 것이니….”
“싫다.”
“…….”
미다르는 인상을 썼다.
“오늘의 일은 재앙…이다. 너무 먼 길을 와 버린 바라노아에게 벌어진 재앙… 오늘을 승리로 기억해서는 안 돼.”
주변은 울음으로 가득했다.
이번 사태로 가족과 친지를 잃은 자가 그만큼 많았다.
“…우리는 패배했다.”
“어찌….”
“그러니까, 모두 오늘의 패배를 기억하고 바꿔나가야 하는 것. 다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가 빙긋 웃었다.
“…그땐 내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날 기억하게 하지 마시게.”
강설은 미다르만큼 한결같은 자가 또 있을까 싶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마주쳤어도 그는 늘 같았다.
그때, 모두가 미다르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을 때 누군가 어물쩍거리며 다가왔다.
마녀단의 단장 샐리였다.
그녀는 차멜리에게 무어라 귓속말을 남겼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으, 응….”
차멜리의 얼굴이 밝아졌다.
“샐리, 직접 말씀드리세요.”
“그게….”
샐리가 꺼낸 것은 작은 병.
그 안에 넘실대는 액체는 연보랏빛 독액이다.
‘…저건.’
강설이 멈칫했다.
독액의 정체를 알아서다.
“이게… 하루를 더 살게 할 수 있어요.”
“…뭐?”
“단 하루지만… 하루가 지나면 반드시 죽지만….”
일명, 뒷정리라는 이름의 맹독.
그 말 그대로, 딱 하루의 시간을 벌어준다.
미다르가 회의적인 어조로 답했다.
“고작해야 하루… 무엇을 위해….”
덥석…
차멜리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하루만…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미다르.”
“…….”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러니까… 버텨주세요.”
“…….”
미다르는 샐리가 건넨 독액을 손에 쥐고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목으로 흘러 넘겼다.
“쓰군.”
털썩…
미다르가 혼절했다.
모두가 샐리를 쳐다봤지만, 샐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원래 이런 거야.”
쿠구구구궁…
쿠구구궁…
부유섬의 추락 문제 이외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긴 듯했다.
누군가 황급히 달려오며 말했다.
“기간 시설들이….”
“…….”
“신성 공급이 멈춰 문제를….”
“…그래서요?”
“신성의… 재….”
“그들과 똑같은 짓을 벌이자는 건가요?”
“제 말은….”
차멜리가 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내버려 둬요.”
“하, 하지만….”
“내버려… 두세요.”
쿠구구구궁…
* * *
치직…
치지지직…
“간지럽습니다.”
소피아가 작업대 위에 걸터앉아 뾰루퉁하게 말했다. 소피아의 앞에, 그리즈가 서서 그녀의 새로운 다리를 손보고 있었다.
“중요한 자리니까, 예쁘게 하고 가야지요.”
“간지럽습니다.”
“조금만 참아요, 딱 맞게 완성될 테니까.”
강설은 어느 부녀의 일상처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사건이 해결된 어제부터, 한숨도 자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미다르의 생명이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차멜리의 신변 위협 때문이다.
바라노아가 극심하게 혼란스러운 이때, 살아남은 주교 이상급 인물은 그녀가 유일했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갔지만, 대략 반나절 동안은 꼼짝없이 차멜리의 신변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아무튼,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갔다.
끼이익…
끼이이익…
“괜찮나요?”
“훌륭합니다, 그리즈.”
그리즈가 뒤를 돌았다.
“그럼… 가실까요?”
그가 뒤돌아본 자리엔 강설 일행을 비롯하여 마엘과 샐리가 있었다.
또한, 나무 바퀴를 매단 의자에 앉아 죽어가는 미다르가 있었다.
그의 찬란했던 금발은 어느새 희게 변해 푸석푸석해졌다.
그의 몸에서 악취가 느껴졌지만,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다.
끼릭…
미다르의 의자를 움직이는 강설.
곤히 자고 있는 그를 깨우지는 않았다.
어차피 행사가 시작되면, 그는 깨어날 것이다.
샐리가 미다르의 몸을 덮은 담요를 주섬주섬 끌어 올렸다.
끼리릭…
전경이 바뀐다.
그들이 있는 곳은 대성당.
신기하게도, 테트라의 건물 중 대성당만큼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사실은 반파된 게 분명했지만, 오늘 행사가 있을 테라스와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의 뼈대는 멀쩡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 잘하고 오도록 해요.”
그리즈가 강설 일행 쪽으로 합류하며 소피아를 배웅했다.
기이잉-
소피아는 당황스러워하며 그리즈에게 물었다.
“지켜보고 있을 겁니까?”
“…당연하지요.”
소피아가 웃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끼리릭…
미다르의 의자를 밀며 향한 곳은, 광장이었다.
미다르의 상황이 좋지 않기에, 인파가 가득한 광장으로 나가는 것은 분명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설은 그의 마지막이 이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모두 그의 뜻을 존중했다.
광장으로 나와 대성당의 테라스를 올려다보는 그들.
주변의 모든 이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기도하고 있었다.
실로 바라노아다운 풍경이다.
저벅…
저벅…
테라스에 누군가 등장한다.
“…차멜리.”
어느샌가, 미다르가 깨어나 테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멜리와 검은 순례자들은 눈 밑에 그린 검은 문신을 지우고 나타났다.
모든 순례가 끝이 났다는 의미.
비로소, 그들만의 길을 찾았다는 의미다.
문신을 지운 평범한 상태의 차멜리는 빛이 났다.
그녀의 외모뿐만 아니라, 무언가 사람을 이끄는 기운이 있었다.
오늘은 그녀의 즉위식이 있는 날이다.
사제 시절부터 사용하던 주교관을 쓰고 나타난 그녀는, 기품이 넘쳐흘렀다.
순백의 반지를 수여 받고, 임시로 선출된 추기경들이 순명 서약을 하고 나서야 행사의 절반쯤이 진행되었다.
“기도를 멈추세요, 신민들이여.”
그녀는, 즉위식을 도중에 멈추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전, 우리는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잊어서는 안 될 거예요.”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가슴 아픈 기억이지 않습니까?”
“맞, 맞습니다! 떠나보낸 자들을….”
그때, 소피아가 테라스로 걸어왔다.
기이잉-
철컥…
철컥…
그녀는 만들어진 존재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즉위식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이고 어떻게 보면 이단이라 폄훼할 수도 있었다.
한낱 기계가 신성을 다룬다니.
그렇다면, 신민들이 믿는 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차멜리는 차분하게 이곳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의 내막을 신민들에게 밝혔다. 단 하나의 거짓도 섞지 않고, 바라노아의 어둠 속에서 벌어졌던 일 전부를.
“…….”
“그런….”
알고 있던 자들, 어설프게 알았던 자들. 알려 하지 않았던 자들.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죄악감을 느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어제 벌어졌던 의식 때문이다.
소피아의 정신세계와 공명하며, 모든 신민은 그녀를 이해했다.
그리고 소피아를 지옥으로 떨어트렸던 자들과 그들 자신이 그리 다를 바 없다는 사실 역시 이해했다.
참회인가, 심판인가.
“미… 미안합니다.”
누군가 눈물지으며 말했다.
기이잉-
소피아가 말을 꺼낸 자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눈물은 전염된다.
감정의 폭풍 역시.
소나기를 동반한 구름이 지나가듯, 깨달음을 얻은 순교자처럼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앞다투어 죄를 고했다.
“내… 내가 이기적이었어!”
“미안해요… 미안해….”
“용서를….”
그래, 용서를.
“용서를 구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소피아는 고민한다.
그녀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나는 용서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언제나 같은 대답인가.
“하지만….”
소피아는 빙긋 웃었다.
“그대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오늘만큼은 다른 대답.
쿠구구궁…
신성으로 작동하는 기반 시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테트라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시설 전부가 말썽을 일으켰다.
빛이 꺼졌다.
이는 문명의 퇴보인가.
기이이이이잉-
“소피아!”
파아아아아아앙-!
소피아가 날아오른다.
후우우우우우웅…
샛노란 빛무리가 테트라를 감싼다.
기반 시설의 불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 기도했다.
“흐… 흐흐….”
미다르가 울며 웃었다.
“역시, 아닙니다.”
“…….”
“기억되고 싶어요, 이들에게.”
“미다르.”
미다르가 하늘을 빛으로 물들이는 소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라노아여….”
마지막이구나.
“실패함에도… 내딛기를 두려워 말라… 나약한 자들이여. 이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
“…….”
“…괜찮은 하루군요. 오늘은.”
스륵…
미다르의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죽기 전, 나름의 답을 얻었다.
가짜 신들과의 하룻밤은 참으로 기묘했다. 참으로, 기묘한 하루다.
강설은 미다르의 눈꺼풀에 손을 올려 안식을 주었다.
“잠들기를, 미다르.”
푸스스…
미다르의 몸에서 푸른 입자가 새어 나왔다.
[서사시 : 심판의 결말이 정해집니다.]
[서사시 : 심판의 보상이 대폭 상향됩니다.]
[시초자 처치 결과에 따라, 보상의 범위가 정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