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6
제55화
특이하게 생긴 나무들마다 긁혀있는 흔적.
강설은 이 흔적을, 그가 찾는 차오가 남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흔적을 따라간다.’
도중에 마차 바퀴의 흔적과 나무에 새겨진 흔적이 다른 길로 갈라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둘이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였다.
강설은 중간중간 흔적을 확인하며 걸었다.
그라면 수상한 기척쯤은 얼마든지 감지할 수 있었으니 수색에만 집중했다.
그는 기묘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숲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해지는 수상함. 특히나, 코가 찡그려질 정도의 악취가 멀리서 풍겨오고 있었다.
‘매연? 아니, 꼭 시체 냄새 같은 게 나는데?’
이곳에 넘어와 시체라면 물릴 정도로 보았고 그 냄새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뇌리에 각인되었다는 말이 더 옳겠지만.
흔적이 점차 뜸해지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거나,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얘기.
[간파가 발동합니다.]
[조잡한 마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간파가 발동합니다.]
[통찰안이 발동합니다.]
[저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강설의 황금빛 눈동자가 이상을 감지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와이어에 담긴 마법과 저주의 물결.
‘이중 함정은 함부로 설치하는 게 아닌데, 더군다나 저주는 꽤나 강력한 걸 담아둬서.’
간파에 저주나 마법, 둘 중 하나만 감지되어도 침입자는 경계하기 시작한다.
이 함정은 함정 설치에 능숙하지 않은 자가 설치한 것이다. 아니면, 수준이 낮은 자이든가.
상대방 측에서 가장 적절한 행동은 둘 중 하나만 노렸어야 했다.
침입자가 저주에 당하든지, 알람 마법을 발동해 상대가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든지.
‘통찰안이 있으니 앞으로 허술한 함정에 걸릴 일은 없겠어.’
간파가 먼저 발동하긴 했지만, 통찰안도 훌륭히 위험을 방지했다.
강설이 황금빛 눈의 효과에 만족하며 떠오른 선택지를 확인했다.
[이중 함정이 설치되어있습니다.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1. 함정을 발동시킨다.
2. 함정을 피해간다.
3. [필요 : 함정 해제] 함정을 제거한다.
4. [필요 : 흑마법사] 저주를 해제한다.
……
강설은 재능으로 함정 해제를 선택하지 않았고 직업이 흑마법사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함정을 발동시키면 침입한 행적을 들키니 피해 가야 마땅했다.
‘함정은 그렇다 치고 이 저주가 문제야. 피해 가기가 쉽지 않아.’
선을 직접 건드리지 않으면 함정은 발동하지 않는다. 문제는 덮어씌워져 있는 저주였다.
이 저주는 영역형 저주였기에 선을 함부로 넘었다가는 꼼짝없이 휩쓸리게 될 게 분명했다.
‘주각(呪刻)을 찾아야 해.’
저주의 매개가 되는 주각을 찾아 파괴하면 함정을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강설은 현재 서 있는 위치를 기점으로 횡으로 이동하며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통찰안이 발동합니다.]
[저주의 매개체를 포착합니다.]
스르륵…
통찰안의 효과로 주변에 다른 사물과는 달리, 황금빛으로 윤곽이 빛나는 물체를 찾아냈다.
‘찾았다.’
돌부리 주변에 숨겨진 올빼미 조각.
이 매개체가 저주의 파동을 발산하는 원흉이었다.
휘릭-! 촤아아악!
빠직!
그의 채찍이 휘둘러져 조각을 산산 조각내었다.
[간파가 발동합니다.]
[일대를 잠식하던 저주가 해제됩니다.]
강설은 그대로 함정만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다른 이였다면 강설처럼 저주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함정을 회피하려다 저주를 뒤집어썼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모험의 시작부터 일이 심각하게 꼬이는 것이고.
– 스노우맨은 참 보는 맛이 있어. 진행은 평범한데 더럽게 꼼꼼해
– 나였으면 쟈마드한테 목마 태워 달라고 하고 좌충우돌 돌진 갔다.
– 꼼꼼하니까 답답하지가 않넹
– 통찰안이 ㅆ사기인 거임 ㅋㅋ 함정이나 각종 ㅈ같은 것들 다 잡아냄.
– ㄹㅇ
강설은 아까보다 더 조심스러운 몸놀림으로 악취가 풍겨오는 방향에 접근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악취와 스산함이 더욱 심해졌다.
‘확실히, 뭔가 일어나고 있군.’
– 대삼림의 생명력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다. 생명력은 삶의 원천이자 특히 죽음을 거부하려는 자들에게 이용되곤 한다.
차오가 남긴 말.
대삼림이야 자원의 보고이자 생명력의 요람이었으니 그것을 탐하는 자들이 날파리처럼 들끓긴 했었다.
하지만, 지금껏 그 행동들이 대삼림에 큰 타격을 준 적은 없었다.
‘모험 이름부터 사령술사인 걸 보니, 사령술사들이 확실한가 본데.’
사령술은 그림자 소환술과 마찬가지로 흑마법의 한 종류였다. 흑마법은 이런 사이한 술법의 최고봉이자 술법의 원류였다.
이건 흑마법사들이 오만한 이유이기도 했다.
강설은 이동하며 차오가 남겼던 구절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 누군가 대삼림에 숨어들었다. 영생의 잔당인가, 그도 아니면 아예 다른 존재들인가. 아니, 이들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강력한 그림자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숨어든 자들은 죽음을 거부하는 자들, 사령술사가 분명하다.
정보와 의문이 혼재되어 있었기에 모든 정보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영생의 잔당일 수 있다는 말 정도는 참고할 만했다.
‘영생이라… 아직까지 남아 있던 건가?’
영생과 강설의 인연은 아주 깊었다.
그냥 서로 좀 얽혀 있는 정도라면 깊다는 말도 안 했을 것이다.
강설은 영생교의 교주이자 창시자였었다.
‘불사는 떠났을 텐데 어째서?’
대륙에 파란을 몰고 왔던 영생교.
강설의 말, 흑마법의 종주인 불사가 영생교의 주인이었다.
‘만일, 이 일이 영생교에서 꾸민 일이라면 함부로 발을 들여선 안 될 것 같은데.’
영생교는 위험했다.
교주인 불사에겐 절대 충성하는 말 잘 듣는 하인이었지만 영생교와 일면식도 없는 강설에게는 무자비한 악당들일 것이다.
적어도 모험 중반 이후에나 부딪히는 게 정상인 집단. 이렇게 초반부에 그들과 부딪힌다면 앞으로의 모험은 그들의 추격을 피하는 데만 소모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성장이 더뎌지는데, 이들이 영생교인지 먼저 확인해봐야겠군.’
차오도 물론 중요했지만, 앞으로의 모험 방향을 모두 틀어도 될 정도까진 아니었다.
생각을 이어나가는 사이, 강설은 숨겨져 있던 야영지를 발견했다. 천막들이 질서 없이 이곳저곳에 퍼져있는 장소.
‘천천히 접근한다.’
강설은 우선, 가장 가까운 천막에 접근했다. 이에 딱 맞춰, 말소리가 그의 귓가에 잡혔다.
“…리야!”
“…정해.”
“진정하게 생겼어? 벌써 일정이 몇 달이나 지연됐는데!”
“그럼 어떻게 해? 네가 대신 저 시체의 머릿속으로 들어갈래?”
“그건….”
“정신 차려, 저 악마는 벌써 20명이 넘는 단원들을 오로지 정신으로만 집어삼켰어. 너도 그걸 두 눈 뜨고 봤으면서 그래?”
“윽….”
강설은 고성이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악마? 시체의 머릿속?’
그들의 대화를 곱씹던 강설의 머릿속에 어떤 아티팩트가 스쳐 지나갔다.
‘사망 선고의 수정!’
사령술사들이 동 레벨 대의 사령체를 일으킬 땐, 그다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령체의 레벨이 월등히 높거나 사령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완강하게 저항할 땐 얘기가 달라졌다.
‘이들은 지금, 강제로 사령을 일으키려는 거군.’
사망 선고의 수정은 시체의 기억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해체하고 분해한다. 그 과정에서 사령술사는 사령체를 이해하게 되며 반대로 시체는 사령술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령체가 된다.
한마디로, 시체의 머릿속에 침투해 강제로 사령체를 만드는 무서운 아티팩트였다.
말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저 악마는 그 많은 사람을 잡아먹고도 미동조차 없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정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시체에 이렇게….”
“알아, 과투자이기도 하고 불안한 면도 있지. 특히, 사령체로 만들어도 통제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니까.”
“그러니까 내 말이 이대로 계속 지체됐다간….”
“그래서 대주교님이 대신 오기로 했어.”
“뭐?”
“대주교님께서 이번 사태에 많이 화가 나신 것 같아. 영생이 그간 우리를 무시해온 것도 있고, 이번 일이 꽤 중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도와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판단하셨나 봐.”
“하지만… 영생에서는 기다리라고….”
남자는 뜸을 들이다, 나직하게 말했다.
강설의 귀가 그의 말소리를 잡아냈다.
“대주교님께서는 이제 영생과의 연결 고리를 끊을 생각이신지도.”
“뭐? 그랬다간 영생이….”
“알아, 우리를 분쇄해서 돼지 먹이로 주겠지. 하지만 대주교님이 만일 저 시체를 사령으로 만든다면 어떨 것 같아?”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대답을 대신해서 들려왔다.
“사자의 진리교는 그날부로 새롭게 태어나는 거야. 영생의 찌꺼기나 받아먹던 우리가 아니게 된다고!”
“대주교님은 그래서 언제 오시는 건데?”
“거의 다 오셨어. 아마 늦어도 오늘 밤에는 야영지에 도착하실 것 같아.”
“드디어, 저 망할 악마 자식도 무릎을 꿇게 되는구나.”
“그때까진 문제없이 이곳을 지켜야지.”
“흥, 어차피 대삼림 깊숙한 곳까지 누가 들어온다고? 그리고 사방에 함정을 겹겹이 쳐놨으니 들어올 수도 없어.”
“아무튼….”
이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으나, 더 건질 만한 내용은 없었다.
‘이들이 영생교의 하청 조직이나 마찬가지인 사자의 진리회라고… 흠….’
사자의 진리교.
듣도 보도 못한 집단이었다.
아마 사령술사들이 대거 포진한 교구가 아닐까 하는데, 이들을 마주한 강설의 심정은 묘했다.
마치, 대기업의 전 회장이 말단 하청 업체의 직원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이럴까 싶었다.
이들에게는 영생교가 더없이 거대해 보이는 듯했지만, 강설에게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영생교는 그 거대한 몸집답게, 세를 여러 곳으로 뻗쳤었다. 당연히 비슷한 흑마법 단체들이 그 영향력하에 놓였었고.
아마도 사자의 진리회는 그런 방식으로 영입된 새로운 단체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아무튼, 영생교와 얽혔으면 깨끗한 놈들은 아니란 거네.’
악인들의 찌꺼기를 받아먹었으면, 결국 그 또한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되면 치워버려야겠어.’
그래도 일단, 차오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강설은 이들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만한 천막을 찾았다.
‘저기다.’
마침, 그나마 이 야영지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강설은 그곳으로 접근했다.
“크으으… 푸어어어….”
천막의 주인은 곯아떨어진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카루나를 대동하고 천막 안으로 신속하게 잠입했다.
천막 안에는 뚱뚱한 사내가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침상을 제외하면 별다를 게 없었다.
탁상에 놓인 수상한 서류 뭉치와 특이하게 생긴 수정을 제외하면.
‘한 번에 찾을 줄이야.’
아무래도 수색에는 도가 튼 것인지, 강설은 찾고자 하는 물건들을 순식간에 찾아냈다.
그는 검붉은 빛을 발하는 수정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원래는 아주 검은 수정인데, 사람을 많이도 잡아먹었군.’
수정에 붉은 기운이 돈다는 것은 수정에 갇혀 죽은 사람이 꽤 된다는 것이었다.
[사망 선고의 수정을 획득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서류 뭉치였다.
기괴한 문양과 그에 대한 설명들.
그리고 술법과 이곳에 사자의 진리교가 모인 이유인 수수께끼의 시체에 관한 내용으로 빽빽한 서류 뭉치.
‘술법이야 별다를 게 없고… 역시, 시체를 강제로 사령체로 만들려고 하고 있군. 근데, 이 시체는 도대체 뭐지?’
차오도 이 수수께끼의 시체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녀는 이 시체가 강력한 힘을 품고 있다고 추측했고.
강설은 관련 내용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 사자의 진리교가 이 시체를 발견한 장소는 대삼림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신기루의 사막이었다.
신기루의 사막.
남부와는 멀리 떨어진, 오히려 대륙의 중앙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거대한 사막.
그 누구도 이 사막이 왜 생겨난 건지, 어떤 문명을 이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건,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대현자 밀란을 플레이했던 강설도 마찬가지였다.
– 사막의 모래폭풍을 피해 어쩔 수 없이 꽤 오랫동안 버텨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시체는, 모래폭풍이 걷힌 어느 날 우리 앞에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꼿꼿이 서 있었다. 시체가 품고 있는 힘은 강력했으며, 내력은 알 수 없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그곳에 서 있었는지조차.
내용은 흥미로웠다.
강설이 입술을 말아 올리며 다음 내용을 살폈다.
– 우리가 처음 발견했을 당시, 시체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마법적인 처리를 가미한, 사진에 가까운 그림이 서류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강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카… 루나?’
시체가 발견됐을 당시의 모습은, 카루나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옆에서 함께 보고서를 확인하던 카루나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이자….”
그가 시체를 아는 것 같았다.